전조 / 이설빈 시인

[문이레]

전조

고개를 들면 밤의 해바라기밭, 검은 씨앗들의 방언이 빼곡하다 머리카락처럼 살아 있는 뿌리는 그보다 월등한 시체를 향하지 밤이 오면, 우리는 더욱 현명해지리라 밤 아닌 것들과 함께

번뜩이던 창문에는 얼마간 다른 빛이 깃들어 자신이 헤쳐 지나온 건초지, 불길에 사로잡히는 울타리를 바라본다 하나, 둘……

메시지가 닿을 즈음이면 그곳에도 사막의 사인이 젖어 들겠지요 이곳에는 별들이 많아요 그리고 암흑보다도 짙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씨앗보다는 흙을 기르는 존재에 가깝습니다

▶ 이 시는 전달하지 않고 씨를 놓는다. 아니 시의 문맥을 참조해 다시 말해보자면,
불안의 씨를 심는 게 아니고 불안의 양생을 양생한다. 불안의 전달과 확산이 아니라 불안의 양생을 양생하는 것은 엄연히 존재하는 불안을 부정하거나 낙관으로 쉽게 대체하는 정신 승리 대신

불안을 기억하라는 것에 가깝다.

    -중략-
                        조강석(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