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20 (금) 역사상 가장 더웠던 추석 … "10월로 고정하자"
"생전 추석에 이렇게 더운 건 처음이야. 모처럼 손주들이 놀러 왔는데 덥게 있을까 봐 신경 쓰여 혼났어." 충북 괴산에서 농사를 짓는 백춘옥 씨(79)는 올해 추석만큼 더운 추석이 없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올해는 유독 날씨가 더워 복숭아 농사도 힘들었는데 이 더위가 추석까지 가시지 않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백씨는 "이번 명절에는 뜨거운 기름 앞에 앉아 전 부치기가 힘들어 반찬가게에서 전을 사다가 차례상에 올렸다"고 말했다.
올해 추석에는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추석 당일인 9월 17일 대부분 지역에서 한낮 기온이 30도가 넘었고, 전남 곡성과 경남 진주는 최고 38도까지 치솟았다. 기상청은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9월 18일에도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를 발효했다. 때아닌 폭염으로 전국 곳곳에서 온열질환자가 속출하는 등 피해가 잇따랐다.
지난 9월 17일 부산에서 열린 프로야구 경기에서는 관중 43명이 온열질환을 호소해 응급처치를 받기도 했다.주부 안미자 씨(54)는 "고향이 부산이라 기차를 타고 내려갔는데도 날씨가 더워 매우 지쳤다"며 "시댁에서 차례를 마치고 너무 더워 아무것도 하기 싫었는데도 간신히 힘을 내서 친정까지 다녀왔다"고 전했다. 밤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인 열대야도 추석 연휴 내내 계속됐다.
9월 16일 밤 ~ 9월 17일 새벽 서울 최저기온은 25.8도로 열대야가 발생했다. 특히 9월 17일 밤 ~ 9월 18일 새벽 서울의 최저기온은 26.5도로, 서울에서 기상 관측을 시작한 1907년 이후 117년 중 역대 가장 높은 9월 최저기온을 기록했다. 서울에서 추석날 밤에 열대야가 나타난 건 처음이다. 지난 9월 17일에서 9월 18일로 넘어오는 밤 전국 곳곳에서도 열대야가 관측됐다.
기상청 관계자는 "현재 우리나라 상층에는 따뜻한 고기압이 자리하고 있고 하층에는 동쪽에 고기압, 남쪽에 저기압이 위치해 남동풍이 불고 있다"며 "남동풍으로 인해 따뜻한 공기가 유입되다 보니 더위가 지속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기도 부천시 주민 정 모씨(40)는 "올해는 너무 더워 성묘할 때 아이들을 데리고 오지 못했다"며 "추석 명절에 부모님 댁에 방문할 때도 평소 같았으면 아침저녁으로 쌀쌀해 긴 옷을 챙겼겠지만 올해는 반팔옷을 입고도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고 말했다.
토요일부터 수요일까지 5일간의 추석 연휴를 활용해 늦여름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도 많았다. 제주도는 지난달 8월 31일 도내 해수욕장을 공식 폐쇄했지만 추석 명절 기간 제주도 해수욕장 12곳에는 계속해서 늦여름 피서객이 몰렸다. 박세은 씨(26)는 "추석 연휴가 길기도 하고 날씨도 여름 날씨라 급히 항공표를 예매해 제주시 월정리로 놀러왔다"며 "바닷가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 추석이 아니라 여름 휴가철인 것 같았다"고 전했다.
이에 음력 8월 15일인 추석을 10월 이후 양력으로 재지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추석은 절기상 낮과 밤의 시간이 같아지는 추분에 위치해 있어 '가을의 시작'으로 여겨졌지만, 기후변화로 여름이 길어지면서 추석이 더 이상 가을을 대표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추석(秋夕)'이 아니라 '하석(夏夕)'이 아니냐는 말까지 등장했다. 직장인 이 모씨(34)는 "올해 추석은 날씨가 더워 성묘나 차례상 준비에도 어려움이 있던 만큼 바뀐 기후에 맞춰 가을에 추석을 맞을 수 있도록 날짜를 10월 중으로 고정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추석은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이듬해의 풍농을 기린다는 의미가 있지만 날씨가 점점 더워지고 있어 추석이 왔음에도 여름 농사일이 끝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점차 추석의 의미도 쇠퇴하고 있어 추석을 10월의 특정일로 고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물론 '전통'을 중시하자는 의견도 여전히 많다. 한편 가을 폭염과 열대야는 9월 19일까지도 이어질 전망이다. 9월 19일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효된 가운데 열대야가 나타나고 최고 체감온도는 33도에서 35도까지 올라 매우 무더울 것으로 보인다.
“논길에 수시간 갇혔다”… 내비게이션에 낚인 귀성 차량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귀경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길에 진입했다가 차량 정체로 논길 한복판에서 수시간째 갇혀있었다는 사연이 전해졌다. 소셜미디어 스레드에는 추석 당일인 지난 9월 17일 이 같은 후기들이 연달아 올라왔다. 네티즌 A씨는 “내비게이션이 이상한 농로로 보내 1시간째 갇혀 차 수백 대가 늘어서 있다”는 글과 함께 사진 2장을 첨부했다.
사진에는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농로에 차량들이 서 있는 모습이 담겼다. 차량 양 옆으로는 논이 펼쳐져 있다. 그는 “내비게이션에 속은 차들”이라고 덧붙였다. B씨도 스레드에 “빨리 가려다 감옥에 갇혀버렸다. 5㎞ 남았는데 여기서 30분째”라며 “아산 인주교차로 논길로 가지 마라. 빠져나가는데 3시간 걸렸다”고 했다.
그가 올린 사진에는 보름달 아래 논길에 차량들이 정체돼 있는 모습이 담겼다. B씨는 이어 “내비게이션이 논길로 가면 빠르다고 해서 왔는데 이 내비게이션을 쓰는 사람들 모두 몰려서 뒤로 갈 수도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며 “합류 구간이 4군데나 있어 차량들을 끼워주다 보니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엠엘비파크’에도 비슷한 후기가 올라왔다. C씨는 추석 당일 오전 광주광역시에서 출발해 부천으로 향하던 중 이 같은 일을 겪었다고 했다. 그는 “행담도 방면 서해안 고속도로가 너무 밀렸다. 내비게이션이 국도로 안내하길래 따라갔다가 논두렁길에 고립됐다”며 “2㎞ 지나는데 5시간이 걸렸다. 수백대가 논두렁 옆 길에 서 있었다. 아이고 어른이고 오줌 싸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했다.
이런 풍경은 충남 아산시 인주면에서 평택호 방향으로 가는 농로에서 나타났다. 후기를 올린 사용자들 모두 같은 회사의 내비게이션을 이용했다. 후기를 본 네티즌들은 “정체일수록 고속도로로 가는 게 맞겠다” “보통 밀릴 때는 국도 가면 더 막힐 확률이 높다” “내비게이션이 이렇게 교통량을 분산시켜준 건가” “어제 큰길 타고 오면서 농길에 진입하는 차량 보고 한참 웃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에헴" 지팡이 짚고 선 담비… "지금은 영역표시 중"
지난 8월 3일 충청북도 속리산국립공원에서 포착된 담비
무지갯빛의 신비한 몸 색을 뽐내는 비단벌레, 영역 표시를 하는 담비 등 국내에 서식하는 희귀한 야생생물의 모습이 공개됐다. 9월 18일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공단은 올해 1월부터 최근까지 내장산, 치악산, 다도해 해상, 경주, 소백산, 태안해안, 월출산, 속리산, 덕유산, 팔공산, 가야산, 무등산 등 국립공원 일대에 설치된 무인카메라에 포착된 야생생물의 활동 장면을 소개했다.
이번에 포착된 무인카메라 영상에는 멸종위기 1급인 비단벌레, 붉은박쥐, 수달과 멸종위기 2급인 삵, 표범장지뱀, 팔색조, 담비를 비롯해 일반 야생동물인 고라니, 너구리, 꿩, 오소리 등이 담겼다. 특히 비단벌레는 전라도와 경상남도 등 일부 지역에서 간헐적으로 발견되는 매우 희귀한 곤충인데, 올해 6월 내장산국립공원에서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모습이 포착됐다.
속리산국립공원에서 지난 8월 촬영된 담비는 두 발로 선 채 영역 표시를 위한 행동을 취하는 장면이 찍히기도 했다. 영역 동물인 담비는 배설물이나 항문선에서 나오는 체액으로 자신의 영역을 표시한다. 또한 치악산과 다도해 해상에서는 몸 전체가 선명한 주황색을 띠는 붉은박쥐의 동면이 촬영됐다. 붉은박쥐는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박쥐 가운데서는 중간 정도 크기로 몸무게가 15~30g 정도 나간다.
그 밖에 경주, 소백산, 태안해안, 월출산, 팔공산, 가야산, 무등산에서는 표범장지뱀, 팔색조 등 다양한 야생생물의 모습이 관찰됐다. 송형근 국립공원공단 이사장은 “이번에 촬영된 영상은 각 국립공원 현장에서 멸종위기종 등 야생생물 조사(모니터링)를 통해 확보한 귀중한 자료”라며 “앞으로 다양한 야생생물의 생태적 습성을 파악하여 서식지를 보전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라고 말했다.
지난 7월 경상남도 가야산에서 포착된 고라니
지난 5월 경상북도 경주시의 한 하천에서 발견된 수달
지난 3월 충청북도 소백산에서 촬영된 삵
지난 9월 11일 충청남도 태안해안에서 발견된 표범장지뱀
지난 6월 전라남도 월출산에서 발견된 팔색조
지난 6월 전라북도 내장산국립공원에서 촬영된 비단벌레
지난 1월 강원도 치악산에서 발견된 붉은박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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