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10일 (월)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 말씀 묵상 (창세 1,1-19) (이근상 신부)
1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2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3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4 하느님께서 보시니 그 빛이 좋았다. 하느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가르시어, 5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날이 지났다.(창세1,1-5)
말씀으로 창조하시다. 믿는 이들의 하느님 이해, 하느님 역사하심은 그 분이 말씀이라는 것. 인간이 참 어리석고 완고한데, 그러나 또 한 면에서 보면 하느님을 닮아서 하느님을 알아보는 눈이 있다. 그 분이 말씀으로 이 모든 것을 이루셨다는 것을 인간이 알아보았다.
이때 말씀이 그저 말만이 아니라 마음 저 깊은 원의라는 것은 구구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건 말마디로 드러난 것, 이를테면 소쉬르의 기호학적 구분에 따르면 이는 기표(나무, 흙 등의 대상을 지칭하는 이름이나 행동을 지칭하는 물리적 형태, 그리니까 소리, 이미지, 문자 따위)가 아니라 기의(나무, 흙 등의 기표가 가르키는 개념이나 의미)를 뜻한다.
그러나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는 이는 그저 기의만으로 세상을 창조하신게 아니다. 그 의미하는 바만으로 무엇인가가 이루신게 아니라 실로 구체적인 말로 그 뜻을 드러내셨다는 것. 그 뜻이 그저 하느님의 세계에서 온전하게 보존되는게 아니라 창조물 세상으로 드러내셨다는 것은 애닯은 사태다. 이건 파견이기에 그러하다. 하느님이 말로 그 뜻을 드러내어 하나 하나 실로 낯선 세상에 그들을 내 놓으셨다는 것. 인간의 말이라는 껍질로 그 거룩한 온전함이 덮여지는 순간, 뜻이 하느님이 아닌 창조물의 세계로 들어서는 바로 그 순간. 그 뜻은 계속해서 추락한다. 온전하게 창조된 모든 것들이 죽음으로 그 타락하듯. 하느님의 창조, 말씀으로 이루신 창조는 그렇게 창조이되 또 한편에서는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지기 시작하는 어떤 자유...
하느님은 이 자유를 좋아하셨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자유, 하느님의 온전하심과 참 거리가 멀어져 버린 이 추락을 창조의 실패가 아니라 하느님이 감당하셨듯, 우리 역시 감당해야 할 하나의 부작용으로... 어쩌면 아름다움을 이루는 한 색깔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그가 파견하였으니 어쩔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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