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runch.co.kr/@a8191a0cd687439/85
묵선墨線 너머의 낯설음을 찾아
by최원돈
May 15. 2026
묵선墨線 너머의 낯설음을 찾아
―일중서예상 대상 초민 박용설 초대전을 보고
최원돈
봄비가 그친 뒤였다. 인사동 백악동부白岳洞府 백악미술관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연초록 잎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멀리 산빛은 젖어 있었고, 하늘은 한층 높아 보였다. 나는 이날 한 사람의 글씨를 만나러 갔다. 그러나 돌아올 때는 한 사람의 삶과 정신을 만나고 돌아왔다.
‘제9회 일중서예대상 수상자 초대전.’
초민 박용설 선생의 전시였다.
서예는 오래전부터 내게는 어렵고도 먼 세계였다.
한 획 속에 정신을 담는다는 말도, 먹빛 속에 우주의 기운이 흐른다는 말도 어쩌면 관념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묵향 속에서 이상하리만큼 낯선 침묵을 만났다. 그리고 그 침묵은 오래된 산사의 풍경처럼 마음 깊은 곳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전시장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난 작품은 ‘문자향 서권기 文字香 書卷氣’였다.
예서로 쓴 단정하고 고졸한 글씨였다. 검은 먹빛은 깊었고, 여백은 맑았다. 초민 선생은 왜 이 작품을 가장 앞에 두었을까.
‘文字香 書卷氣. 글자의 향기와 책의 기운.’
추사가 평생 가슴에 품었던 말이다. 글씨란 단순히 손끝의 재주가 아니라, 한 인간이 읽고 사유하고 견뎌온 시간의 향기라는 뜻이다. 나는 한동안 그 작품 앞에 서 있었다. 묵 선은 움직이지 않는데도 이상하게 마음속에서는 바람이 불었다. 붓으로 쓴 획인데도, 그 속에는 사람이 살아온 세월의 결이 스며 있었다.
생각해 보면 초민 선생의 글씨는 단순히 ‘잘 쓴 글씨’가 아니었다. 그것은 평생 배우고 탐구해 온 한 수행자의 흔적에 가까웠다. 그는 늘 말한다.
“한 획 한 점도 허투루 써서는 안 된다.”
그 말처럼 그의 글씨에는 흐트러짐이 없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빈 곳이었다. 글씨가 없는 자리, 비워 둔 공간에서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이 피어났다. 나는 그제야 등석여의 ‘계백당흑計白當黑’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흰 여백을 검은 먹과 똑같이 계산해야 한다는 뜻. 결국 서예란 쓰는 예술이 아니라 비우는 예술인지도 모른다.
‘춘산야월春山夜月’ 앞에서는 오래 발길을 떼지 못했다.
“국수월좌수掬水月在手 농화향만의弄花香滿衣.”
“두 손으로 물을 뜨니 달빛이 손안에 담기고, 꽃을 만지니 향기가 옷깃에 가득하다”라는 구절이다. 초민 선생은 그 절창의 자리마다 유인을 찍어 두었다. 붉은 낙관은 마치 시의 숨결 같았다.
나는 순간 오래전 어느 봄밤을 떠올렸다. 강가에서 달빛을 바라보던 기억,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던 풍경, 그리고 말없이 걷던 시간 들. 좋은 서예는 글씨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기억을 흔드는 것이 아닐까. 한 줄의 시구가 마음속 오래된 풍경을 다시 깨워내는 것처럼 말이다.
전시장을 돌수록 나는 점점 ‘낯설음’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평론가 김찬호가 이번 전시를 두고 “묵 선에 감춰진 낯설음”이라 했던 까닭이다. 초민 선생의 글씨는 익숙한 서체 안에 머물지 않았다. 전서와 예서, 해서와 초서를 넘나들며 때로는 비전비예非篆非隸의 경계로 걸어 들어갔다. 형식은 오래되었으나 정신은 낡지 않았다.
‘흥국염원興國念願’ 앞에서는 한동안 숨이 멎는 듯했다.
전서도 아니고 예서도 아닌 고예古隸의 기운. 마치 오래된 비석이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거기에는 나라의 안녕과 백성의 평안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글씨는 단순한 조형이 아니라 시대를 향한 염원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거대한 작품 소식蘇軾 ‘적벽회고사赤壁懷古詞’는 또 다른 충격이었다.
전지 다섯 장을 이어 쓴 대작 앞에 서니 강물과 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힘찬 금문체의 획은 파도처럼 밀려왔고, 거친 먹빛은 적벽의 절벽을 닮아 있었다. 나는 그 작품 앞에서 단순히 글씨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깊이 남은 작품은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이었다.
어딘지 서툴고 투박하다. 정제된 문장도 아니다. 그러나 바로 그 엉성함 속에 신라인 두 청년의 떨리는 맹세가 살아 있었다. 忠道충도를 지키겠다는 다짐, 경전을 배우겠다는 결심. 초민 선생은 왜 이런 글을 작품으로 옮겼을까.
나는 문득 깨달았다.
그는 완성된 아름다움보다, 인간이 무엇인가를 배우고자 몸부림치는 순간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일까. 초민 선생의 글씨에는 늘 공부하는 사람의 숨결이 있다. 그는 지금도 선대의 법 첩을 들춰보고, 옛 비문의 획을 따라가며, 한글과 한문의 새로운 조화를 고민한다. 익숙함 속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낯설어지려 한다.
전시장 마지막 즈음에서 나는 ‘녹명鹿鳴’과 ‘비상飛翔’을 만났다.
‘鹿鳴. 먹이를 발견한 사슴이 혼자 먹지 않고 동료를 부르는 울음소리.’
‘飛翔. 스스로 날아오름.’
그 순간 개막식에서 초민 선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재능이나 성공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세상이 도와주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속에서 그의 글씨보다 더 큰 울림을 들었다. 서예는 결국 사람의 마음을 닮는다는 사실을.
‘서여기인書如其人. 글씨는 사람과 같다고 했다.’
실로 초민 선생의 글씨는 그의 사람됨을 닮아 있었다. 남에게는 한없이 부드럽고, 자신에게는 끝없이 엄격한 사람. 늘 배우려 하고, 늘 낮아지려 하며, 자신보다 주변을 먼저 돌아보는 사람.
전시장을 나오는데 어느새 해가 기울고 있었다. 백악동부 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왔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왜 사람은 평생 글씨를 쓰는가.’
‘왜 어떤 이는 한 획을 위해 평생을 바치는가.’
아마도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닦아가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 획을 바르게 쓰기 위해 마음을 바르게 세우고, 한 줄의 글을 완성하기 위해 삶을 가다듬는 일. 서예란 먹으로 쓰는 수행인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길, 나는 오래도록 손끝에 남아 있는 묵향을 느꼈다.
보이는 선은 이미 끝났으나, 보이지 않는 선은 아직도 마음속을 흐르고 있었다. (2026.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