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충격적인 부고를 받았다. 메신저 덕분에 지금은 어떤 연락이든 실시간이다. 그야말로 놀라운 문명의 혜택이다. 그러니 반가움도 충격도 실시간인 셈이다.
나보다 12살위인 이건재집사는 명석하신 분이다. 경복고를 졸업하고 외대불어과를 졸업하신 후 일생동안 해태그룹에 근무하다가 외환위기 때 실직을 하셨다. 처음에는 개인사업을 하셨다고 하는데 너무 꼼꼼한 성격이라 사업은 오래가지 못하고 재정만 날렸다고 하였다.
곧바로 중국사업에 뛰어들어 이일 저일 해봤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15년전부터 연결된 땅콩버터 수입업으로 어느정도 뜻을 이루셨다. 그러다가 코로나19 때문에 20년도 3월말 귀국 후 다시 현지로 복귀하지 못하고 별세하신 것이다. 그토록 중국을 가기 원했지만 재발해 수술한 암치료의 후유증을 견뎌내지 못하셨다. 아마도 2년정도 투병하신 모양이다.
나와의 연결은 칭다오에서 한인커뮤니티를 통해서 였다. 내가 담당하던 컴퓨터상담 코너를 통해서 였다. 그런데 그 때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라고 하셨다. 한인들이 선호하던 지역의 원룸 아파트에 살고계셨다. 그 뒤 부터 일이 풀리기 시작해 두번째 전성기가 시작되었다고 하셨다.
집사님이 너무 명석하신 분이라서 그런지 왠만한 사람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하는 단점도 있었다. 아마도 나와는 가장 코드가 잘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셨던듯 하다. 워낙 건강하시고 동안이라 어느 누구도 이분의 나이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건강하던 분이신데 암이 재발해 수술한 이후부터는 도무지 맥을 추지 못한다는 말씀에 아무래도 수술이 잘못된 탓일 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무래도 그 영향이 아닐까 싶지만 그렇다고 어찌할 수도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