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8:33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 (개역개정판)
이스마엘에게 아버지 아브라함과 큰어머니(?) 사라는 어떤 존재였을까?
친어머니 하갈과 자신을 내쫓았던 이들...
하나님의 뜻(창 21:12)도 자신들을 내쫓는 것이었으니... 할말은 없었을테고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아침 일찍 내어보내는 것(창 21:14)은
사막 한 가운데서 그냥 죽으라는 말 정도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을지
실제로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고 소리 내어 울었던 하갈의 울음(창 21:17)을 하나님께서는 외면하시지 않으셨다.
허나, 이스마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이삭도 마찬가지...
아버지 아브라함이 자기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번제물로 바치려했다.
번제물 드리기 직전까지 그러했다. (창 22:9)
일단, 가만히 있었지만
적지 않은 충격과 공포가 있었을 것이다.
충분히 아버지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나
착한 이삭은 끝까지 잠잠했다.
다만, 아브라함이 이삭을 위해 며느리 리브가를 구해왔을 때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을 떠나 남쪽 네게브에 살고 있었다. (창 24:62)
아버지와 따로 살았던 것이다. 그 이유를 성경은 직접 말하지 않는다.
무슨 이유가 있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렇기에 이런 상상도 가능하다.
창세기 22장과 연결해 읽으면, 이삭의 상처가 보인다.
아버지의 손에 묶여 제단 위에 올려졌던 기억. 아무리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해도, 아이였던 이삭의 큰 상처가 남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 상처 때문에 아버지 곁을 떠났던 것은 아닐까?
말도 안되는 상상이기는 하지만,
말도 안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벌어지는 오늘날의 가정의 렌즈로 비추어보면
당시나 지금이나 뭐,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후처 그두라도 있었는데 시므란과 욕산, 므단, 미디안, 이스박, 수아를 낳았다 (창 25:2)
이삭에게 모든 소유를 주었고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게 했었을 때 (창 25:6)
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러나, 성경은
그들을 내쫓은 아브라함을 비난하지도
그리고 그들에게 내보냄 받은(쫓겨난...) 서자들의 마음을 대변하지도 않는다.
아브라함이 두 번이나 자기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였지만
그 아브라함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없고
애굽의 바로와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만 남편이 있는 여자를 데려간 것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 생각난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었기 때문에 그러했던 것일까?
마치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세에게
대적하는 이들의 편을 한 번도 들어주신 적이 없고
전부 모세의 편을 들어주셨던 것과도 비슷해 보인다.
이삭과 리브가는 각각 에서와 야곱을 편애하였고,
그러한 편애가 야곱에게는 이어져
또 라헬과 요셉, 베냐민에 대한 비정상적 집착으로 이어졌다.
딸 디나가 하몰의 아들 추장 세겜에게 강간 당했을 때(창 34:2)에는
오빠들보다 잠잠했던 (창 34:5) 야곱은
아들 요셉이 사라지자 죽은 것으로 알고 위로받기도 거절한다. (창 37:34-35)
물론 야곱은 자신의 편애가 이런 결과를 낳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거둔 것은, 그가 심은 것의 열매였다.
그가 아들 요셉의 피 묻은 옷을 붙들고 통곡하는 자리는,
그가 오랫동안 기울어진 방향으로 살아온 삶의 열매였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야곱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하나님의 권위와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들에 대한 권위를 끌어내리지 않는다.
부족한 아브라함에게
부족한 이삭에게
부족한 야곱에게
부족한 모세에게
하나님 주신 권위로 세우시고
그들을 믿음의 사람으로 인증하신다.
부모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부모 자격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없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완벽(내지는 자기 마음에 들 것...)을 기대하듯이
자식도 부모들에게 완벽(내지는 자기 마음에 들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부모에게든, 자식에게든
지금 당장 완벽할 것을 요구하시지 않으신다.
기대하실지언정
요구하시거나, 윽박지르시지는 않는다.
가정의 연약함에도, 공동체의 초라함에도
내 부모의 저러함에도
혹은 내가 부모로서 무자격한 것 같아 보여도
내 자식들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내 자식들이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도
좌절하거나 비교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못하다.
- 연약함을 다 극복하고 하나님께 나아가겠다는 것은 순서에 맞지 않기 때문이고
- 고쳐지지 않는 연약함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기다리)는 것이 성경적이기 때문이며
- 믿음은 연약함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된 분이들다.
노아가 대홍수 이후에도 술에 취해 벌거벗고 누웠을 때도
성경은 무엇이 옳은지를 이야기 하기 전에
부모에게, 곧 하나님께서 홍수 심판 가운데서 구원하신 자들의 조상으로 삼으신 자에게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따름이다.
거기에서 복과 저주가 갈라졌다는 점은 서늘하다.
그 이후로도 성경의 가르침은
그 방향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말이 길었지만...
늘 그렇듯
이러한 묵상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고
내 스스로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내 부모가 존경받을 만해야 존경한다면
그건 이미 성경의 가르침과는 어긋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존중받을 만하지 않아도 자녀인 것이 마땅하듯이
존중받을 만한 삶을 살지 못해도 부모인 것이 마땅하다.
물론 자녀를 버리거나, 학대하거나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는 부모가 많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그리고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최선을 다하려고 사는 이들조차
살아가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현실이다.
나를 보내신 하나님
나를 태어나게 해주신 부모님
부모님만큼 나를 길러 주신 많은 분들
영적 부모님들
지혜로우신 선배님들
그리고
우리 다음 세대들...
저마다의 삶이 팍팍해도
특히 자녀를 노엽게 하는 부모들(엡 6:4)이 많아도
(대개 그 양반들은 자녀들 말고도 타인들도 노엽게 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를 맥 빠지게 하는 자녀들이 많아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삶의 최우선 신분이 자녀였음을 잊지 말고
궁극적으로 우리가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신분 또한 주의 자녀임을 잊지 않으면서
따뜻한 전화 한 통
그게 힘들다면
해가 지기 전에
더 늦기 전에
더 늙기 전에
그 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옳다.
첫댓글 https://youtu.be/F6meuzhfXgY?si=BeAbuUJD7VqxOU_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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