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잔소리 조리법 1편
황순각
엄마의 잔소리를 잡아먹기로 했다
마침표 없이 무한 반복되는 문장의 배를 갈라
쩌억 펼쳐놓고
동남아의 매운 맛 소스를 마구 끼얹었다
옆에 있던 딸아이 눈이 휘둥그레지던 말든
속에서 열불이 난다는 걸 보여 주려고
그 다음
내 귀에 도착하는데 까지 오래 걸리도록
발과 다리 부분을 집중적으로 잘근잘근 다져서
어떻게든 입속에서 씹지 않아도 되게
미각을 건드리지 않고 바로 삼킬 수 있게 준비했다
엄마가 사랑하니까, 다 너 잘 되라고는
도마에 송송 썰어 고명으로 빈틈없이 뿌려준 뒤
지상에서 한 번도 피워 본 적 없는 화력으로
불을 들였다
어때?
잔소리가 뼈도 못 추리게 흐물흐물 해졌지
공작새의 구애
황 순각
나는 지금 꼬리 깃털을 활짝 펴고 있어요
암컷을 홀리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깃털 끝까지 골고루 힘을 배당하려면
살 떨리는 긴장감으로 팽창한 후
물고기가 떼로 몰려가는 햇빛의 방향을 잘 피해
한 번도 노출된 적 없는 각도에서 폼을 잡아야
더 매력적이거든요
머리에 쓰고 있는 금 수저 풍의 왕관조차
첨예한 생존전략 앞에서는 빛을 잃고 말지만
꼬리털에 일일이 박아놓은
지식을 축적한 눈동자들이 제시하는 해결책이
도움을 많이 주기는 해요
하지만
문제라는 게 항상 정답이 있는 게 아니잖아요
내가 아무리 항문을 쪼이는 통증을 참으며
깃털을 꽃다발처럼 안기며 휘 돌아설지라도
암컷이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 가 버린 거 있죠
암컷 마음 하나 얻으려다 난파한 무수한 밤과 밤사이에
쪼그리고 앉아 훌쩍이다
저 허공 어디쯤 내 새끼들이 오고 있는 걸까요
교육학 박사
서울교대 강의교수 역임
앙코르대학교(캄보디아소재) 교수 선교사
2021 예천 내성천 문예공모전 시 당선
2023 <시조문학> 으로 시조등단
2023 시조집 ‘초록이 만발하던 날에’ (영문번역수록)
2024 <애지> 로 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