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동몽선습童蒙先習입니다 두서너 살 아기를 위한 게 아니라 대여섯 살을 시작으로 하여 예닐곱 살 여남은 살 등 소년 소녀들을 위한 책입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면 소학小學을 읽으면 읽지 동몽선습을 읽을까요? 학교에 들어가기 전으로서 미취학 아동未就學兒童입니다
대여섯 살에 천자문을 읽었다면 예닐곱 살짜리가 읽을 글이 아무래도 동몽선습이 아니었을까요 초등학교에 입학할 만한 나이가 우리나라 나이로 여덟 살이라면 이 나이 또래 교과서는 소학입니다 예서 이어진 이름이 소학이고 소학이 요즘 초등학교 교재입니다 사서四書 가운데 하나로서 대학大學의 상대적 개념입니다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오를라치면 초등학교가 본디 소학교였고 소학교에서 보통학교로 보통학교에서 다시 소학교로 바뀌게 됩니다 나중에 황국 신민皇國臣民에서 한 자씩을 따 국민학교로 바뀝니다 그렇게 내려오기를 여러 해 뒤 25년 전인 1996년 3월 1일 마침내 초등학교로 바뀌었습니다
중국이나 타이완에서는 쓰지 않고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용어로서 사서삼경四書三經이 있지요 중용中庸을 비롯하여 대학大學과 함께 논어論語와 맹자孟子를 한데 묶어 사서四書라 합니다 이 대학大學Great Learning에서 바로 대학大學university이 나왔습니다 이는 내가 갖다 붙인 말이 아니라 역사가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인류사에 있어서 위대한 교사였던 공자님은 열댓 살이 되어서야 배움에 뜻을 두었다 하지요 이를 원문대로 표현하면 '오 십유오이지우학 吾 十有五而志于學'입니다 열다섯 살이면 사춘기 청소년입니다 요즈음 같으면 중학생 무렵이지요 공자는 야무진 분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5년 동안 공부한 뒤 서른 살 때쯤에 세상에 우뚝 섰습니다
서른 살에 입신立身을 하였으니 예수님이나 부처님보다도 일찍 일어선 편입니다 예수님은 서른세 살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했고 부처님은 서른다섯 살에 올라 깨달음을 얻고 세상이 나왔으니까요 그렇게 볼 때 동몽선습을 읽을 나이가 예닐곱 살이면 빠르지 않을까요 생각보다 이른 편입니다
동몽선습童蒙先習이라 하니까 어떤 분이 내게 말했습니다 "동몽이면 스님 법호가 아닌가요 스님이 동몽 스님이잖아요." 그래서 내가 또박또박 답했습니다 "동몽이 아니라 동봉입니다" 그러자 그가 다시 말을 받으며 "네, 스님. 동몽 스님" 이오 강원도 횡성이 나의 고향인데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 듯싶습니다
로드맵에 음성으로 갈 곳을 부르면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로 되돌아오기 일쑤입니다 내 발음이 동몽으로 들리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요 동몽童蒙은 한자로 새길訓 때 '아이 동'자에 '어두울 몽'자입니다 이는 한두 살짜리가 아닙니다 차라면서 마을里 골목길을 마음껏 뛰어다니立는 아이지요
예나 이제나 아무래도 마을里이라면 고을洞보다는 작은 개념입니다 고을이 면面과 비슷하다면 리里는 통이나 반보다는 크지요 아무튼 마을을 마음껏 다니는 아이가 아이 동童 자에 담긴 뜻입니다 화엄경 입법계품에 따르면 복성장자의 아들이었던 저 유명한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쉰세 분의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 불도佛道를 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한두 사람도 아니고 쉰세 분이며 거리가 가까운 것도 아닙니다 정말로 나이가 어려서 동자라면 진리를 찾는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아니, 진리가 뭔지나 알겠습니까 누가 스승이고 선지식일지 제대로 알아보기는 하겠습니까 가네코 다이에이金子大榮 선생은 그의 사십팔원강의四十八願講義에서 '선재는 어린 동자가 아니라 마음이 어린이처럼 순수하다'합니다
동몽의 몽蒙은 '어두울 몽'이고 사리에 어둡다 어리석다 무릅쓰다 어리다 등으로 새깁니다 어둡고 어림은 맞는 말이지만 어린이라 하여 정말 어리석던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현명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는 남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며 끊임없이 거짓을 말하는 자입니다
어린이는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순수純粹 바로 그 자체입니다 이처럼 순수童한 어린이蒙가 먼저先 익혀習야 할 게 이 책입니다 어떤 책보다 먼저 익힐까요 소학小學이란 책보다 먼저입니다 소학은 내용이 좀 단순하지만 여러 번 반복을 거듭하는 까닭에 분량이 제법 두꺼운 책이지요 요즘 어린이집 이야기가 아니고 옛날 어린이집에서 읽던 책입니다
논어 첫머리에 학습學習이 나오는데 학과 습은 떨어질 수 없습니다 익힘習이 곧 배움學입니다 배우고 때로 익히는 삶은 생명을 가진 것들의 필수입니다 깃羽은 접혀 있을 때의 날개고 펼쳐진 날개飞는 비상飛翔입니다 날개羽를 하늘日 위로 펼치고 높이 나는 법을 익힘이 습習입니다 동몽선습에서 먼저 잘 익히면 소학에서는 마음껏 날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