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 마운틴 La Montaña sagrada The Holy Mountain 1973 미국,멕시코 청소년 관람불가 상영시간 : 114분 개봉일 : 2007-03-15 누적관객 : 2,930명 감독 :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출연 :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호라시오 살리나스 more 제작 :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알렌 클라인, 로베르토 비스킨 각본 :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촬영 : 라파엘 코르키디 음악 :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돈 체리 편집 : 페데리코 란데로스,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미술 :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의상 :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새로운 광기의 세계를 열어주는 충격적인 영화!
세상을 처음 접한 사내와, 일곱 수행원들의 ‘성스러운 산’ 수행기
예수를 닮은 한 사내. 이름 모를 기이하고도 그로테스크한 곳에 떨어졌다. 벌거벗은 채로, 난쟁이를 따라 얽히고설킨 ‘세상’에 조금씩 눈을 뜨게 되는 그. 복잡한 세상을 정신없이 헤매던 그는 기묘한 여정에 들어서게 된다.
우선 사내는 우연히 신비의 지도자를 만나게 된다. 지도자를 통해 ‘연금술’의 능력을 배우면서 지도자에게 인정을 받게 된 그는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7명의 인물을 만난다.
이 7명의 인물들은 태양계의 행성들을 각각 수호하고 있는데, 각자가 세상을 위해 하는 일들이 에피소드 형식으로 독특하게 소개된다.
그 이후 예수를 닮은 사내와 지도자, 7명의 수행원은 속세의 물건을 모두 버리고 9명이 한 무리를 이루어, 신의 일을 대신하고 있는 불사의 현자들을 찾아 성스러운 산(Holy Mountain)으로 길을 나선다.
과연, 그들이 성스러운 산을 오르기까지 어떤 놀랄만한 사건들이 그들을 엄습해 올 것인가. 성스러운 산에 올라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은 절대 쉽지가 않다.
제작 노트 <홀리 마운틴>의 시나리오가 만들어지기까지
홀리 마운틴은 십자가회 ‘세인트 존’의 <카르멜 산의 등반> 및 ‘르네 다우말’의 <아날로그 산>에 기초해서 만든 이야기이다.
위의 두 스토리를 중심으로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은 멕시코 전역의 마을 구석구석을 돌며 영화 장면에 대한 구상을 글로 옮겼다.
이 여행은 40일 동안 계속되었는데, 영화에 대한 감독의 열정과 멕시코의 강렬한 영감이 만나, 짧은 기간이었지만 영화의 큰 틀을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감독은 “40일간의 여정 동안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 안에 있는 신비한 열망과 뜻 모를 향수가 지구, 아니 지구 밖의 공간을 통해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며 40일 동안 탈고의 기억을 되새기기도 했다.
위험했던 <홀리 마운틴> 촬영장과 감독의 특별한 애정!
영화 <엘 토포> 이후,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열렬한 팬이 된 비틀즈의 ‘존 레논’과 그의 부인 ‘요코 오노’가 이 영화에 투자를 했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일화. 이 덕분인지, <홀리 마운틴>은 제작 당시 150만 불의 예산으로 기획되어 멕시코 영화 제작 사상 가장 투자 규모가 큰 영화로 기록되고 있는데, 사실 실제 촬영에 소요된 비용은 그 절반도 되지 않았다.
이 영화 촬영에 앞서,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은 ‘젠 마스터’의 지도 아래 1주일 간 수면 금지, 아내와의 성생활 금지 등의 수행으로 세속적인 욕망을 자제하며 한 달 동안 영화 속의 인물로 지내기도 했다.
게다가 <홀리 마운틴>은 <엘 토포> 제작 때처럼, 정부의 허가를 받지 못한 채 멕시코에서의 촬영을 강행했다. 촬영지로 집중되는 관심을 피하기 위해, 촬영 스텝 모두 경찰복으로 변장하고 일을 하기까지.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정부로 부터 “계속해서 경찰 유니폼을 사용하거나 교회를 모독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 이라 협박까지 받게 된 것이다. 결국 감독은, 촬영 장비를 멕시코에서 모두 철수하고, 뉴욕으로 촬영지를 옮겨 영화 작업과 음악 작업에 시간을 보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멕시코를 찾은 감독에게 멕시코 정부는 그때서야 그 동안 감독의 노고를 치하하며, 전 세계에 멕시코를 알릴 수 있는 다른 좋은 작품들도 만들어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
컬트 영화의 최고봉, 37년만에 정식개봉!(2025년 6월 기준 55년의 세월이 흘렀다)
PART 1
뜨겁고 황량한 사막에서 벌이는 현자(賢者)들과의 한 판 승부!
주인공 ‘엘 토포’는 환상적인 총 솜씨를 자랑하는 유명한 총잡이.
아들과 말을 타고 사막을 건너는 중, 한 마을에서 끔직한 살육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악당의 횡포로 폐허가 된 마을을 ‘엘 토포’가 대신 나서서 복수 해주고, 어린 아들 대신 한 여자 ‘마라’를 선택하게 된다.
자신이 곧 ‘신(神)’인 것처럼 기세등등하게 다시 사막을 걷는 ‘엘 토포’는 ‘마라’의 부추김에 동양철학자. 자연주의자, 사막의 성인(聖人) 등 다양한 현자들을 만나며 대결을 하지만, ‘엘 토포’는 단순한 ‘총잡이’일뿐 처음부터 그들과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엘 토포’는 비열한 속임수와 우연한 행운으로 모든 대결에서 승리를 맛보게 되는데...
기쁨은 잠시. 믿었던 ‘마라’의 배신에 ‘엘 토포’는 절망에 빠지게 된다.
그 후, 자신은 ‘신(神)’이 아니라 하찮은 인간일 뿐, 자신과의 싸움에서 패배했다는 것을 뒤늦게 때달으며 스스로 목숨을 포기한 채 그때서야 신(神)을 부르기 시작한다.
PART 2
‘엘 토포’의 부활!
그리고 새로운 수행의 시작
시간이 흘러, 동굴 속에서 ‘엘 토포’가 긴 잠에서 깨어난다.
그 속에서 ‘소외받은 자’들을 만난 ‘엘 토포’는 자신을 살려준 그들을 위해 희망의 통로를 만들어 주기로 다짐한다. 그리고 과거의 죄를 씻고 해탈의 경지에 오르기 위한 수행을 시작한다.
하지만, ‘희망’처럼 보이는 바깥세상은 탐욕과 차별로 더럽혀진 곳일 뿐.
흔히 ‘정상인’으로 불리는 바깥세상의 사람들은 동굴 속 ‘소외받은 자’들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을 만큼 몸과 마음이 더럽혀져 있다.
하지만 결국 우여곡절 끝에 통로가 만들어 지고 ‘소외받은 자’들은 한꺼번에 바깥세상을 향해 내달리지만, 결국 사람들에 의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엘 토포’는 그들의 횡포를 목격하고 분노에 휩싸이게 된다.
제작 노트
미드나잇 컬트 무비의 시작점!
‘존 레논’과 ‘앤디 워홀’등 최고 아티스트들의 열광적인 지지까지!
1968년에 작품은 완성 되었지만, 개봉이 늦춰지면서 결국 1970년 12월 뉴욕의 심야영화관에서 깜짝 개봉을 감행한 <엘 토포>.
신비하면서도 광적인 분위기의 영화 <엘 토포>는 ‘플라워 파워(Flower-power : 1970년대 히피들이 벌였던 평화운동)’ 세대로부터 뜨거운 호평을 받으며 컬트 매니아 층을 사로잡았고, 결국 이 영화는 최초의 심야영화로 세계 영화사에 대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7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뉴욕 언더그라운드 미드나이트 영화’로 불리며 <이레이저 헤드>, <몬티 파이톤과 성배>등의 영화와 함께 장기 상영되면서 매니아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엘 토포>는, 전위영화는 흥행에 참패한다는 철칙을 깨고 천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이례적인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특히 세계적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 롤링 스톤즈의 ‘믹 재거’. ‘데이빗 보위’는 이 영화의 열렬한 지지자이며, 비틀즈의 멤버인 ‘존 레논’은 <엘 토포>에 심취한 나머지 영화 판권을 구입하여 전국 개봉을 추진시키기도.
그래서 이 영화의 판권은, 다른 영화들처럼 영화사가 아닌 유명 음반 레이블인 애플 레코드가 가지고 있다.
위험과 모험을 감수하며 <엘 토포> 한 편을 만들기까지!
사실 <엘 토포>는, 비윤리적이고 사회비판적인 영화 내용 때문에 당국으로부터 촬영허가를 거부당했었다. 하지만, 여기서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영화 열정이 중단 될 수는 없는 터. 결국 ‘불법’으로 숨어서 촬영을 강행했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실제 사막의 악조건 속에서 야심만만하게 촬영을 강행한 감독은, 최소한의 촬영 스텝만을 구성하여 감시자들의 눈을 손쉽게 피할 수 있었다고. 이렇게 위험한 촬영 끝에, 현재의 우리는 감사하게도 <엘 토포>속 멋지고 귀한 장면을 극장에서 편하게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작품 세계는 인간 존재의 불완전성이란 주제에 매혹되어 있었다. 이 주제를 극명하고 강렬하게 전달하고자 캐스팅 또한 예사롭지 않았는데, 불구자와 기형자 등 사회에서 소외받은 계층을 영화의 주 무대에 끌어올림으로써 메시지 전달에 더 큰 힘을 실을 수 있었다.
감독은 “열정에 미친 예술가의 눈으로, 멕시코 작은 마을 골목이란 골목은 모두 뒤져 작품에 필요한 배우가 아닌 작품에서 살아 숨 쉴 수 있는 인물 자체를 찾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들을 보면 징그럽다 괴물이다 하겠지만,
내 눈에는 그들이 바다에서 어렵게 건져낸 진주와도 같았다. 내 영화에 유명한 배우가 출연하는 것이 싫다. 스타라는 대단한 자아가 영화의 매력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라는 말로 그의 영화 속 주인공들을 자신 있게 내세웠다.
조도로프스키 감독과의 ‘남다른’ 인터뷰(2006년 12월 13일 <엘 토포> 프랑스 개봉당시)
Q. 30여년이 지난 오늘 새롭게 복원되어 관객들이 이 영화를 다시 찾게 하는 매력은 무엇인가.
A. 우울함과 기쁨의 공존이라고나 할까...세월이 지나 나는 많이 변했지만, 이 영화들은 내 과거의 일부분이다. 하지만 30 여년을 투쟁한 끝에 다시 관객을 찾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Q. 특히 <엘 토포>와 <홀리 마운틴>은 감독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A. 내 몸과도 같은 작품들이다. 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이 정직하고 순수하게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하지만 영화의 순수한 의미 그대로 업계에서 인정 받을 거라고는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았다. 이 두 영화는 어찌 보면 내게는 UFO와도 같다. 내가 가진 능력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고 어떠한 타협 없이 내가 만들고 싶은 의도 그대로를 살려서 만든 작품이다.
Q. 첫번째 작품 <환도와 리스>에 대해 순수한 예술의 결정체라 평가받고 있는데.
A. 여유 자금이나 능숙한 기술 없이 찍었던 영화다. 멕시코에서는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었다. 그 영화가 나온 후 사람들이 나를 죽이려고도 들었다. 지금에야 웃으며 이야기 하지만 당시에는 내 영화가 가진 컨셉을 처참히 부셔버린 끔찍한 일화다.
Q. 자신이 만든 영화들이 오래되었다고 생각하나
A. 전혀. 엘 토포의 경우 언제부터다 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영화다. <홀리 마운틴>의 경우는 특정 머리 모양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당시만 해도 난 현대적인 유행을 만들어내려 노력했었다. 기묘한 신발 끈이나, 인디언들의 헤어스타일이라던가. 이 모든 것들을 난 앞서서 실행했다. 그러니 영화가 오래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디지털 효과가 없었다. 투견 씬의 경우, 실제 투견 장면이다. 오늘날 만든 것은 모두 만들어진 가짜 장면이 아닌가. 그 당시에만 해도 이러한 기술들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영화가 오래된 것이 아니라, 색다른 것일 뿐이다.
Q. 이 두 영화가 영화계에 미친 영향과 파장은 엄청나다. 수많은 영화 팬들에게 칭송받고 있는데, 심지어 당신을 신격화 하는 팬들도 있다.
A. 난 오히려 신화화 되었다고 표현하고 싶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 영화들, 만화영화들, 책들을 제작한 것이 바로 나니까. 그들이 나를 신화화 하는 모든 이유들이 내 머릿속에서 나온 이야기들이니까.
Q. 두렵지 않은가
A. 전혀. 그 존재가 바로 나 자신 아닌가. 난 내가 두렵지 않다. 나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기도 하지만 그건 내 상상력이 끝도 없이 넘쳐나기 때문이고, 나는 한순간에 강한 결말을 끄집어낼 수도 있는 것이다.
Q.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생각도 있는가
A 자금의 여유만 주어진다면 당연히! 수익성 좋은 흥행 감독이 된다면 사실 <엘 토포>와 <홀리 마운틴>으로는 10원 한 장도 벌지 못했다. 게다가 <엘 토포>의 프로듀서이자 모든 영화의 판권을 보유하고 있는 알렌 클라인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30년이 지나고 나서는 다시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래서 영화가 다시 빛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Q. 엘 토포의 후속작을 시도했다고 들었는데
A. 그렇다. 엘 토포의 아들에 관한 얘기이다. 살아있는 한, 혹 100세까지 산다면 언젠가 꼭 만들어보고 싶은 이야기이다. 실제로 내 부친도 100세까지 사셨다. 그러니 나도 모를 일 아닌가. 이번 재개봉으로 이제는 돈을 좀 만져 볼 수도 있겠다. 사람들이 나를 돈 잘 버는 감독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나는 영화에 필요한 최소 제작비만을 가지고 제작에 임한다. 하지만 사실 ‘영화’라는 것이 순수한 열정도 필요하지만, 수익을 내긴 해야 한다. 영화도 일종의 산업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예술인 동시에 비즈니스인 것이다.
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