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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 강습회에 다녀온 후 암벽등반에 빠져들게 됩니다. 노란 슬링줄 2m짜리 3개와 O 형 카라비너 6개 그리고 자일 48m 한 동을 구한 후 암벽을 거침없이 올랐습니다. 저를 주축으로 1년 후배인 p군과 암벽을 해나가며 세를 부풀려 나갔습니다. 학교 선후배가 주축이었지만 함께 이웃에서 자랐던 친구들도 함께 하고 싶다는 청을 받아 허락한 후 별도의 시간을 내어 다니기도 하였지만 학교산악부가 중심이었습니다. 특히 등반대회가 열리며 전국에서 모인 팀들과 교우를 하면서 연합등반 팀을 구축하여 암벽등반과 원정등반을 함께 하며 친선을 지금까지도 이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우이동에 우리들만 모이는 장소를 정하고 그곳에서 산 중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구매와 매식도 하고 무거운 암벽장비를 보관해 놓고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암벽등반을 한다는 것에 대한 부모님들의 걱정이 두렵기 때문에 숨기는 비책이었습니다. 특히 p 군은 사실 2년 후배였지만 제가 개인적인 사고로 8개월 이상 하반신 석고붕대를 하고 환자생활을 하고 재활치료 등등으로 거의 1년 이상 행동할 수 없어 이 여파로 학업이 성취되지 않아 재수를 결정하게 됩니다. 이 여파가 p군과 학년 차가 좁혀진 것입니다. 그러나 p군은 정말 살갗게 잘했습니다. 친형제처럼 모든 것을 공유하며 오랜 세월 산중세월을 이어갔습니다. 제가 먼저 산으로 들어 가 야영장에 윔퍼텐트를 치고 있으면 부식거리와 각종 행동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올라와 펼쳐 놓고 부식재료를 이용하여 반찬을 만들고 있으면 대신 밥을 하고 밥상을 차리고 함께 먹다 설거지를 말끔하게 처리하고 쓸모 있는 재담을 늘어놓는 사랑하는 후배였습니다. 그리고 참 멋쟁이였습니다. 졸업 후에도 출장뷔페 회사를 차려 잘 운영하던 후배였습니다. 제가 회사를 운영하였을 때 봄가을 피크닉 행사에 사용할 도시락을 주문하면 책정된 금액보다 더 좋은 도시락을 보내주어 직원들에게 환영받던 후배였습니다.
우린 보통 어느 일이든지 완성도가 높아지기 시작하면 물이 올랐다고 이야기합니다. 인수봉을 동쪽에서 바라보았을 때 위치를 전면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좌측면을 Face(얼굴)라고 불렀습니다. 그곳에는 암벽 용어로 crack 부르는 십자로 갈라진 틈이 있어 십자로 면이라고도 불렀고 서쪽은 툭 불거진 바위면이 상단에 있어 상단 위에 하강할 때 안전하게 걸 수 있는 p자형 쇠말뚝을 박아 놓아 이 확보용 쇠말뚝을 piton (피톤)이라 불렀습니다. 이곳에 자일에 따라 총길이가 50m 짜리면 반을 접어 25m 지점이 피톤에 걸리도록 하고 양갈래 줄을 밑으로 내려뜨립니다. 하강 시 두 줄을 시용하여 20m 지점까지 내려 가 그곳에 설치되어 있는 하켄이나 기타 확보물에 자신의 몸을 안전하게 확보 후 자일을 풀고 다음 사림이 자일을 이용하도록 구호를 소리쳐 알려 주어야 합니다. 만약 내려가는 길이. 50m 이면 50m 이상 자일 두 개을 묶어 두 줄로 시용하면 됩니다. 툭 불거져 나온 바위를 over hang(돌출된)이라 하는데 이곳을 자일을 이용하여 내려오게 되면 허공에 매달리게 됩니다. 이러한 바위의 자연적인 모습에 인수봉 서쪽을 오버행 쪽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북면은 귀바위가 있어 귀바위 방향이라 불렀습니다. 인수봉은 4면 다 오를 수 있는 코스가 있고 내려갈 수 있는 천혜의 암벽 길이 있어 최고의 암벽등반 바위입니다. 특히 전면부에는 등빈 시작부터 바위면이 평평한 면과 가파른 각이 공존하는 대슬랩과 소슬랩이 있어 처음 하는 등반자의 마음을 서늘하게 합니다.
또한 대슬랩을 오른 후 좌에서 우측으로 이어진 띠처럼 생긴 바위가 이어져 있어 밴드라 불렀습니다. 이 지점 위부터 시작되는 슬랩구간을 소슬랩으로 불렀고 중앙에 밀도가 좋은 숲이 있어 더운 여름철에 잠시 쉬어갈 수 있어 보통 이 지역을 오아시스라고 불렀습니다. 소슬랩 상단에 촘촘하게 크랙이 있는 곳이라면 암벽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이 중에 가장 대표되는 바위길은 기존 B, 기존 A 코스였습니다. 이 두 코스는 한국산악계를 태동시킨 산어른들께서 개척하고 이용하시던 기존 루트 성격이 강해 기존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 그 외 코스들은 대학산악부를 비롯하여 사회 유명 산악회들이 개척하거나 전문 동호인 산악회에서 개척한 코스이고 외국인으로 코스를 개척하여 남긴 사람은 미국인으로서 주한미군으로 재직당시 개척한 귀바위 하단 취나드 A, B 코스가 유일합니다. 코스 개척자가 자신의 이름을 암벽코스명으로 붙인 것은 최초의 일이었습니다. 개척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의 이름을 붙인 경우는 있습니다. 대부분 학교 산악부 이름을 붙이거나 산악회 이름으로 명명한 것이 대부분이었고 코스난이도에 따라 최강의 코스를 표범길로 허리를 가로질러 오른다 하여 허리길, 바위틈에 박쥐가 산다고 하여 박쥐길, 진자운동처럼 옆으로 반원을 그리며 오른다 하여 팬드럼 길 등으로 명명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해 인가 5월 들어 주말에 인수봉 암벽등반을 하기 위하여 우이동에 모여 있었습니다. 우리 팀은 야영을 하며 인수봉을 오르기로 하고 모인 것입니다. 그때 위의 사진 일본 산악인이 나에게 다가와 명함을 내밀었습니다. 전면에는 부산 영도 파출소 소장 이름이 전화번호와 함께 적혀 있었고 뒷면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 생략하옵고 이 명함을 지니고 있는 일본인에게 편의를 제공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본 산악인으로서 우리나라 인수봉이 얌벽등반 장소로 일본까지 소문나 찾아온 사람입니다. 그래 서울 우이동으로 찾아 가 산악인을 만나 부탁하라고 길을 가르쳐 주고 올려 보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인연이 되어 머무는 동안 암벽등반을 같이 하게 됩니다. 이 친구는 당시 피아노 조율사로서 명성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암벽등반을 하고 싶어 단독으로 배편으로 부산으로 들어와 파출소를 찾아 가 소장에게 부탁하여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서 내려 영도 파출소 소장이 서울역전 파출소 소장에게 길 안내를 부탁하여 7번 버스를 태워 우이동까지 흘러들어왔다가 우연히 저를 만난 것입니다. 반갑게 우리 대원들과 인사를 나눈 후 함께 인수산장으로 올랐습니다. 당시 산장지기는 백운산장 지기 이영구 님의 친동생 이경구 씨가 아내와 함께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인수산장 침상에서 짐을 풀고 저녁을 함께 먹은 후 일본친구에게 침랑과 에어배게를 배당해 주고 1층 침상 드나들기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일찍 일어나 어제 미리 해 놓은 밥과 반찬으로 아침을 챙긴 후 걸어서 인수봉 대슬랩 아래로 이동하였습니다. 암벽등반 대원을 A조 6명, B조 7명으로 선발한 후 함께 오아시스까지 슬랩을 오른 후 그곳에서 A조는 기존 A 암벽길을 오르고 저는 일본 산악인과 후배들과 함께 기존 B를 오르기 위하여 남쪽으로 횡단하여 크랙 앞에서 장비를 재 점검한 후 선등자인 제 다음으로 오를 준비를 시키고 선등자를 위한 확보술에 대하여 교육을 시켰으나 나름 경험이 있어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출발이란 구호와 함께 크랙을 다가 서서 양손과 양발을 크랙을 벌리듯 하는 자세를 유지하며 항아리 홀드까지 1 핏치를 끝내고 크랙에 박혀 있는 나무기둥에 자기 확보를 한 후 일본산악인이 올라오도록 지시를 하자 균형감각이 뛰어나고 홀드와 스탠스 확보가 정확하여 안심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올라온 일본 산악인에게 후 등자 안전확보를 해주라 하고 3번째 등반자의 오르는 자세와 세심하게 이끌어 주어야 할 일본인의 확보 자세가 무척 중요함으로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한 것을 보며 처음같이 하는 암벽등반에 대한 우려를 떨쳐낼 수 있었습니다. 암벽등반이란? 등반자의 신체 중 손과 발을 사용하며 최대한 균형을 유지하며 고도를 높여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네 점 등반이라 개인적으로 표현하곤 하였습니다. 후배들에게 등반 강습을 할 때 사용하는 언어였습니다. 최소의 안정적 구도는 삼각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삼각보다 더 안정적인 모양은 사각이지만 이동할 목적으로 실행하려면 삼각을 유지하고 팔이나 발 중에서 하나를 이동하는 역할로 삼아야 합니다. 안전하게 두 손과 두 발을 바위지면에 돌출 부분이나 갈라진 틈을 이용하여 손으로 잡고 발로 딛고 서 있다가 조급 더 위로 오르기 위하여는 손과 발 중에서 상황에 따라 위로 하나를 옮겨야 수직으로 전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어느 상황에서도 세 점은 확보되어야 추락하지 않고 계속 전진이 가능해집니다. 균형이 무너지면 추락하기 때문에 세 점 확보의 연속성이 바로 암벽등반의 기본적 자세가 되는 것입니다. 코스 바위특성상 신체로만 삼 점 확보가 어려울 경우 인공장비인 하켄, 볼트 등을 비롯하여 철재장비나 나무로 만든 장비를 이용하여 신체적 확보술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 번 재로 데라스에 올라 선 후배는 P군으로서 제가 가장 신뢰하는 후배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등반자로 선정한 7 번째 후배 또한 믿을 만한 등반자였습니다. P군에게 K군에게 5명의 등반팀을 맡긴 후 자일 한 동을 별도로 꺼내 일본 산악인과 둘이 먼저 등반을 시작하여 인수봉 정상으로 가는 길목인 약 20m의 크랙구간이 끝나는 테라스에 먼저 오르기로 하였습니다. 일본 산악인의 등반 모습을 보고 신뢰가 생겨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반 침니구간을 오른 후 이어서 케이 크랙구간에 들어 섰습니다. 이곳이 가장 공포감을 불러오는 구간입니다. 신중하게 균형을 유지하며 교대로 양손과 발을 교차해 가며 조금씩 오른 후 테라스에 올라섰습니다. 그리고 확보물에 자기 확보를 한 후 출발하라는 신호로 스타트라 소리쳐 일본산악인 등반시작을 지시하였습니다. 올라올수록 자일을 끌어당겨 주어야 합니다. 자일을 팽팽하게 유지하되 자일에 등반자의 힘이 실리면 안 됩니다. 자일이 늘어져 등반을 방해하는 것만 정리하듯 조금씩 회수하며 길을 열어주다 위급한 미끄러지는 상황이 재현되면 팽팽하게 당겨주어 고정시켜 추락을 방지해 주는 것이 버로 확보술입니다. 그렇게 하여 테라스에 도착한 일본산악인을 안전하게 확보해 준 후 둘이 나란히 앉아 산 아래 펼쳐진 멋진 풍광을 감탄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던 일본친구가 배낭을 풀더니 그 안에서 참치갠과 식빵을 꺼냈습니다. 처음 보는 참치갠 그 맛이 어떨까? 관심을 갖으며 일단 자제토록 하였습니다. 일단 아래 대원들이 전부 도착하면 함께 먹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입니다. 그들이 다 도착한 후 수고하였다는 인사를 나눈 후 오르면서 경험한 코스와 관련된 이야기를 각자 발표하는 시간을 갖으며 우리는 삼립크림빵과 아폴로 빵을 돌리고 일본 산악인은 참치캔 여러 개와 치즈와 식빵을 꺼내 식빵 사이에 치즈와 참치통조림을 넣은 후 나누었습니다. 처음 먹어보는 참치통조림은 당시 우리나라 대한종합식품에서 나오는 꽁치, 고등어 통조림과 맛이 달랐습니다. 그리고 일본인 친구를 통해 발전된 산악장비에 대하여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일본의 산악장비 유명업체가 호일산장이라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일본에서 생산되는 자일이 제일 부러웠고 다음으로 배낭과 코펠 등 버너 등도 부러웠습니다.
정상을 1피치 남긴 테라스에서 우린 당시 자연보호라는 강렬한 현장을 목격하게 됩니다. 다 사용한 참치캔을 암벽등반용 해머를 꺼내더니 툭툭 쳐서 납작하게 만든 후 주머니에 담아 다시 배낭 안에 넣고 다른 잔재물도 말끔하게 넣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당시 우리는 이러한 의식이 전무하던 상태였습니다. 야영 후 남은 쓰레기들은 주변에 땅을 파고 묻고 내려가는 것이 환경보호 수준이었던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본 후 우린 많은 반성과 함께 자연보호 신봉자로 변신하게 됩니다. 오히려 청소용 도구와 주머니를 준비해 갖고 다니며 산과 계곡을 청소하며 하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추후 일본을 방문하여 안 사실이지만 일본도 그러한 과정을 거친 후 자연보호에 대한 기운이 선풍적으로 불어 정착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새로운 우정도 중요한 일이지만 새로운 산악환경문화에 대한 소중한 정보를 얻은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마지막 피치를 끝낸 후 인수봉 정상에 섰습니다. 이곳에 올라서면 청명한 날이면 개성 송악산과 인천 앞바다도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암벽등반을 끝낸 후 정상에 섰을 때 이 친구도 벅차오르는 심정을 숨길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당시 즐겨 부르던 산사나이 노래를 불러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 노래라는 인식이었는데 알고 보니 일본 산노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산 사나이
산에는 마음이 있어 산사나이에 보금자리
산 없이 못 사는 사내 산사나이 뿐이라오.
어떤 바보가 산사나이더러 미친놈이라 욕하였소
그러나 산사나이는 웃으며 산에 가오
그러나 산사나이는 껄껄대며 산에 가오.
아가씨여 산에 한번 올라와 보오
그리고 산사나이가 지은 밥을 먹어보오
그리고 산사나이가 지은 반찬을 먹어보오
인수봉 정상에 서면 고인돌과 흡사한 바위가 놓여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 바위 위가 바로 인수봉 정상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바위 아래 부분에 공간이 있어 야간에 암벽등반을 끝낸 후 이곳에서 비박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이야기해 주고 웃으며 진짜 정상에 오르자고 하였더니 요시하며 올라섰습니다. 그리고 모두 올라 가 함께 단체사진을 남겼습니다. 그 사진이 어딘가에 있을 텐데... 찾고 있는 중입니다. 이 친구와 암벽등반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날 안전하게 인수봉을 내려온 후 하산 길에 봉황각 숲에 잠시 쉬며 행동식을 먹으며 내일 이어서 할 암벽등반에 대하여 설명해주고 있는 사진이 바로 위에 사진입니다. 붉은색 티셔츠는 바로 아끼는 후배입니다. 손에 잡힐 듯 한 시간인 것처럼 느껴지는데 벌써 훌쩍 50년 이상 세월이 흐른 과거의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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