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998년 12월 자진 월북한 윤성식(69) 전 4월혁명연구소장이 자신이 남쪽에서 친북 재야 활동을 했던 당시를 회상한 글이 13일자 북한의 노동신문에 실렸다.
이 회상기는 `천하무적의 백두령장 계시여 두려울 것이 없다'는 제목이 말해주 듯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지도력을 찬양하려는 목적이었지만 윤 씨가 남쪽에서 겪은 일화를 중심으로 작성됐다.
회상기는 지난달 2월 김정일의 생일(2.16)을 맞아 월북 인사로 구성된 재북 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인 윤 씨가 제9차 김정일화 축전장에 설치된 한국민족민주전선 평양지부 전시대를 방문하면서 느꼈던 감동을 계기로 `과거'를 떠올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북한 인터넷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전해진 회상기에 따르면 윤 씨는 1996년 11월말 몇몇 학생들을 데리고 지리산에 올랐다. 전파 장애가 없는 곳에서 평양방송을 청취하기 위해서였다. 라디오를 켜는 순간 김 위원장이 판문점 대표부를 시찰했다는 소식이 흘러 나왔다.
"지리산에 올라 장군님 판문점 방문 방송 듣고 온 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 감격.."
윤씨는 이에 대해 "순간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했다. 적아 쌍방의 총구가 마주한 곳, 서로의 숨결에도 긴장이 서리고 굴러가는 낙엽소리에도 총탄이 빗발친다는 그 판문점에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여유작작하게 군인들과 농담도 나누시고 기념사진도 찍으시다니 얼마나 통쾌한 일인가"라고 회고했다.
윤 씨는 "이윽고 누군가가 라디오를 높이 추켜들고 `조선아, 단군민족은 살았다. 너 5천년 역사국이여'라고 격동된 어조로 외쳤다. 학생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돌아갔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끓어오르는 감격을 금치 못하며 우리는 '불세출의 영장 김정일 장군 만세'를 외쳤다"고 회상했다.
그는 1997년 여름날 서울의 한 대학교 강당에서 1천여명의 학생 대표들이 참석한 집회에서 김 위원장을 찬양하는 노래가 불렸던 일화가 있다고 소개했다. 당시 경찰의 봉쇄 속에서 치러진 집회가 끝날 무렵 누군가의 선창에 따라 학생들 속에서 노래가 흘러 나왔다.
윤씨는 "비록 처음 듣는 노래였지만 그것이 공화국에서 불리는 노래임을 알 수 있었다. 단상에 앉은 비전향장기수들과 함께 우리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윤 씨의 회상을 어디까지 사실로 받아들여야 할지는 미지수이다.
"공화국의 위성 발사에 남조선 시민들이 감격과 격정속에 환성과 만세를 불렀다"
윤 씨는 또 작년 12월 29일자 북한 노동신문에서 "공화국(북한)의 위성발사(1998년 8월 31일) 소식을 접하고 (남조선) 거리의 어디에서나 감격과 격정 속에서 환성을 지르고 만세를 부르는 시민들로 성황이었다"고 사실과 동떨어진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다박솔 초소에서 시작된 선군정치의 위력을 절감하며'라는 제목으로 김정일의 선군정치를 찬양하는 글에서 1998년 9월초 미국의 CNN 방송이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소식을
구체적인 궤도까지 그려 설명하면서 "공화국(북)의 위성궤도 진입이 단한번의 발사로 성공했으며 이것은 공화국이 당당한 위성보유국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도했다"고 말했다.
2001년 입국한 탈북자 김모(41)씨는 "당시 북한 매체에서는 연이어 남한 주민을 비롯한 세계 각국 사람들이 인공위성 발사에 환호를 보냈다고 선전하곤 했다"고 전했다.
윤 씨의 이같은 행동에 대해 직장인 김환국(35)씨는 "월북자가 북한에서 목숨을 부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목청 높혀 남한을 비난하고 김정일의 비위를 맞추는 언행을 해야 되겠지만, 그의 허황된 거짓말에 분노 보다는 애처로움이 앞선다"고 말했다.
북한, 월북/납북자들, `선군정치' 찬양, 대남.대미 비난에 이용
북한은 올해 1월 2일에도 납치했거나 자진월북한 남측 인사 10여명을 북한의 대남방송인 평양방송에 출연시켜 '선군정치'를 찬양케 했다.
이 방송 프로그램은 북한이 1월 1일 발표한 신년 공동사설에 대한 반향을 소개하고 선군정치의 성과를 대외에 소개하는 차원에서 마련된 것이였다.
방송에는 1949년 국군 대대를 이끌고 월북해 현재 80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강태무씨가 출연해 아직까지 생존해 있음이 확인됐다. 현재 인민군 중장(소장)인 강 씨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1979년 4월 노르웨이에서 납북된 고상문씨도 이날 방송에 출연했다. 고 씨가 북한 매체에 등장한 것은 2002년 11월 20일 평양방송이 '미제에 의해 말살돼 가는 남조선의 민족문화'란 제목으로 작성된 고 씨의 수기를 방송한 이후 처음이었다.
북한 농업과학원 연구사로 재직 중이라고 밝힌 고 씨는 "위대한 장군님(김정일)의 구상에 따라 `2월17일 과학자 기술자 돌격대'의 성원으로 타조목장 건설에 참여했으며 공사에 참여한 인민군대의 헌신과 노력에 감동했다"며 선군정치를 찬양했다.
북한은 윤성식, 강태무, 고상문씨 외에도, 91년 8월 일본 유학 중 월북해 조선컴퓨터센터 실장으로 근무하는 김용규씨, 윤이상 음악연구소에서 작곡가로 일하는 정민씨, 88년 군산실업전문대학 교수로 재직 중 월북한 이우갑씨 등을 방송이나 신문에 출연시켜 체제선전과 대남, 대미 비난에 이용하고 있다. (kon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