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흑산도를 애타게 사모하는 서울아저씨의 흑산도 기행
흑산도에 첫발을 그동안 이상하게도 흑산도와 인연이 닿지 않았다. 처음 흑산도를 찾아가려고 할 때는 바람때문에 아예 목포에서 배가 뜨지 않았고, 가거도 갈 때나 홍도 갈 때도 이 섬에 들를 기회가 있었는데 급한 볼일이 생겨 눈물을 머금고 지나가야만 했다. 매번 흑산항을 거쳐갈 때마다 상라봉 12굽이길을 애틋하게 바라보면서 입맛만 쩍쩍 다질 수밖에 없었다. 배고픈 강아지 앞에 대롱대롱 매달린 뼉다귀가 바로 나의 흑산도였다. 아쉬움의 섬~ 흑산도. 이번에 드디어 기회가 왔다. 그 기회는 도둑처럼 갑자기 찾아 왔다. 열 일 제쳐놓고 남도행 KTX에 올랐다. 이번에는 스처가는 경유지가 아니라 떳떳한 나의 목적지였다. 상리 12굽이길과 반월성을 바라보며 개선장군처럼 예리항에 들어섰다. 드디어 내가 흑산도 땅을 밟았단말이다. 배에서 내리면 흑산도 표지석이 반기는데 돌이 홍어모양을 하고 있다. 그 뒷면에 흑산도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번잡한 예리항. 서울에 강남과 강북이 있듯이 흑산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예리항은 여객선터미널이 있어 관광객을 쏟아내는 항구이자 횟집, 술집, 다방등 유흥업소가 밀집한 신사동이었다. 반면 행정중심지인 진리항은 곰삯은 새우젓마냥 오래고 진득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흑산도 사람들의 진솔한 정을 느끼겠다면 진리항을 찾는 것이 좋다.
푸르름이 짙어 흑산도가 되었다는 섬 진리항 가다보면 해군부대가 나온다. 그 앞바다가 물고기 텃밭인 동지나해다. 그 황금어장을 지키는 병사들이 전방같은 후방을 지키고 있다. 흑산도는 해안선의 길이만 185km로 섬 한바퀴 도는 것도 만만치 않다. 삼림이 많아 오히려 그 색깔이 검게 보여 흑산도라고 불렸다. 95%가 상록활엽수이기에 겨울에도 앙상한 가지 하나 없고 1년 내내 푸르름을 유지한다. 차라리 '녹산도'나 '청산도', 아니면 정약전이 지은 '자산도'가 더 어울릴 것 같은데 하필 칙칙한 검은섬의 이름표를 달았는지 모르겠다. 모든 색을 더하면 검은색이 되는 것을 흑산도는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색의 평정뿐 아니다. 아이의 머리통 굵기의 동백, 후박나무, 너도밤나무 등 남방의 식물들이 머리털마냥 촘촘하게 박혀 있다. 그 숲을 거닐면서 흑산도의 속살을 더듬는 자만이 진정 흑산도를 아는 사람이다. 조금 걷다보니 흑산 중학교가 반긴다. 특이하게도 기숙사가 학교 건물보다 더 크다. 흑산도 전역은 물론 홍도, 가거도, 만재도, 상하태도 등 인근 섬에서 이곳으로 유학을 온다. 각 섬대표들이 모여 올림픽 경쟁을 하듯 공부한다. 그 안쪽 흑산초등학교는 16개의 분교를 가진 작은(?) 공룡학교다. 분교만 순례를 해도 한달은 족히 걸릴 것이다.
진리고인돌은 화순에서 보았던 남방식 고인돌이었다. 목포에서도 92km나 떨어진 이 먼섬까지 선사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건너 왔을까?
정약전이 뿌린 복음의 씨앗 흑산도 최초의 신자는 다름아닌 다산 정약용의 둘째형인 정약전이다. 신유박해때 이 먼 흑산도에 유배되었다가 이곳에서 민초들과 더물어 살다가 자산어보를 지었다. 정약전, 정약용선생에게는 죄송하지만 만약 유배가 없었더라면 우리가 어찌 자산어보나 목민심서를 만날 수 있겠는가? 그들의 처절한 고통 덕에 후세인은 소중한 정신문화를 얻게 된다. 만약 함경도 두메산골로 갔다면 약초책을 하나 냈을 지도 모른다. 어디를 가든 다산가의 배움의 열정은 남달랐으니 말이다. 또하나 정약전의 죽음으로 인해 먼 훗날, 섬사람들도 신앙을 접하게 된다.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절해고도로 유배를 왔는데 그 유배현장이 오늘날 천주교 신앙의 근거지가 되었으니 세상의 이치는 참으로 묘하다.
새벽 상라봉에서 들렸던 은은한 종소리는 바로 흑산천주교회의 종소리다. 새벽 산꼭대기에서 바다공기를 가르며 내 심장을 울려 놓은 종소리를 난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누워있는 십자가를 본 적이 있는가? 거기다 투명관에 누워 있는 파격까지 발휘한다. 아예 보물 1호라고 써 놓았다. 초창기 선교사들은 구호물자를 가득 들고 이 섬에 자선을 베풀었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성당 문턱에 넘어서다가 주민들은 차츰 신앙을 알게 되었고...신자들은 차츰 늘어나면서 공소에서 성당으로 발전한다. 그 공소의 십자가를 이렇게 모셔둔 것이다. 오로지 성체를 모시기 위해 5~6시간 배를 타고 이 성당에 들어 섰을 때 이 십자가가 맞이해 주었을 것이다. 잠시 눈을 감고 그 환희의 순간들을 상상해 보았다.
"저는 정약전이 흑산도에 있는 박인수네 집에 귀양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박인수도 교우가 되었습니다. 정약전은 한국어 성가의 가사를 만들었는데 제가 그것을 받게 되면 곧 주교님께 보내드리겠습니다.이 최초의 교우에 대한 평판은 존경에 가득찬 것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를 겸손과 정결함의 모범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목포성당 중미신부인 드예신부가 1902년 뮈델 주교님께 흑산도 사목 방문후 제출한 사목보고서
절로 무릎이~
신들의 고향 진리당 섬사람들의 민간신앙의 공간인 흑산도 진리당이다. '흑산의 본당'이라고 할 정도로 권위가 높았는데 용왕굿을 통해 뱃길의 무사항해와 풍어를 기원하고 있다. 숲길을 따라 바다쪽으로 가면 용왕을 모신 용신당이 자리한다. 정면 건물은 제물을 준비하는 곳이며 뒷 건물은 흑산의 당신들을 모시는 당집이다.
진달래 아저씨
동백아가씨 그 끝자락에 전설외 고향 '흑산도 처녀당과 피리부는 소년'으로 소개되었던 각시당이 있다. 이곳은 초령목이 자라고 있는데 아시아 1속1종의 휘귀목이다. 300년된 초령목과 어린 초령목 40여그루가 자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흑산도와 제주도에서만 서식하고 있다.
숭어후리기 배낭기미 해수욕장. 일본말이 아니라 순 우리말이다. '배가 닿을 수 있는 곳'이란 뜻이다. 지금 한창 숭어후리기철이다. 숭어가 산란때 수온이 높은 따뜻한 해안가에 몰려드는데 해안가에서 낚시줄을 던져 잡아 당기면 숭어가 몸에 걸린다. 얼마나 고기가 바글바글 하던지 낚시줄을 던지면 1분 이내에 숭어가 걸려든다. 어찌보면 임산부를 향해 잔인한 방법으로 물고기를 잡는 셈이다.
무진장 잡힌다. 몇마리 가져가라고 하는데....정중히 사양. 회를 뜰 수가 없어요. 저는 입만 가지고 다녀요.
옥섬. 청옥처럼 예쁜 이름이지만 실은 죄수들 가두었던 천연 감옥이다. 섬속의 섬에서의 고립감이 오죽했겠는가? 차라리 죽여 다오.
무심사터 흑산도에서 고려때 유물을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속칭 탑산골이라고 불리는 무심사터다. 그 좁은 협곡에 앙상한 탑이 마을을 바라보고 있며 화사창을 잃어버린 석등만이 배의 돛대마냥 외롭게 서 있다. 이 부근은 빼곡한 동백숲이다. 동백숲 터널을 벗어나면 상라 굽이길이 이어진다. 이 곳에 절이 들어선 이유는 불법으로 왜구를 물리치려고 했던 섬사람들의 염원이 아닐까 싶다. '無心'. 어쩌면 모든 것을 초연한 이름같지만 이보다 더 처절한 이름이 어디 있으랴? 피빛보다 진한 동백이 탑으로 변한 것 같다.
아리랑을 흥얼거리며 올라가는 상라리 고개 굽이굽이 12굽이 상라리 고개. 돌아라 돌아라~ 굽이 돌아라. 만약 민요 '아리랑'을 길로 표현하면 이런 길이 아닐까 싶다.
창자를 꺼내 민족자존을 외쳤던 이준 열사가 뜬금없이 생각나기도 하고, 지글지글 동태찌개 속에서 건져낸 지리가 생각난다. 저 창자 끝자락에 바다로 향하는 항문을 이어지겠지.
속리산의 말티고개보다 더 굴곡이 심한 S자형 고갯길.
굽이길 너머가 흑산도 최고의 항구인 예리항이다. 출어기가 되면 1천 척의 배가 불야성을 이룬다.
진달래와 굽이길
고려 때 외적방어를 위해 세운 상라산성과 봉수대다. 중국이나 일본의 사신이 입국할때 항로 안내의 기능을 한다. 12세기 송나라 사진이 입국했을때 봉하를 올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엉덩이 한번 흔들고 바다 한번 처다보고 10명의 아줌마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신나게 엉덩이를 흔든다. 무아지경의 표정을 보는 것도 흑산 앞바다 보는 만큼 재미있다. 나는 이렇게 솔직한 아줌마들이 좋더라. 어쩌면 '흑산도아가씨 노래비'가 이들의 가슴속에 꼭꼭 원초적 본능을 일깨웠는지 모른다. 이미자 노래가 그리 많은지 모른다. 현철노래가 나오고, 송대관의 차표한장에 열광하면서 온 몸으 땀으로 흥건하게 적셔진다. 그리고는 청량한 바닷바람을 한번 쐬고는 다시 카니발을 올라 타고 훌쩍 떠난다. 아마 포구 허름한 횟집에서 찾아 2차를 즐기겠지. 그들이 떠난 상라봉. 그 적막감은 더 컸고, 칙칙한 흑산도는 더욱 짙겨진다. 그나마 그 삭막함을 잠시나마 상쇄시켜준 아줌마들이 참 고맙고 그들의 꿈틀거림속에 내가 멀쩡하게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된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랩을 즐겨 듣는 10대들이 60대가 되면 저럴 수 있을까? 친구와 내기를 한 적이 있는데...친구는 "그럴거다." 라고 말한다. '나이 먹으면 어쩔수 없이 내면의 춤사위가 자연스레 나오게 되있어.' 60세가 되면 나도 이럴수 있을까? 꼭 이랬으면 좋겠다. 아니 거리낌없는 속마음을 가감없이 자유롭게 표현했으면 좋겠다.
바다에서 바라본 상라산성. 바리깡으로 머리를 깎아 놓은 모양이다. 280m의 작은 성. 예쁜 바다풍경 때문에 외적을 지킬 수 있는 지 의문이다.
상라봉에서는 일몰과 일출이 가능하다. 삼면의 바다를 볼 수 있는 전망 포인트다. 노래비, 전망대, 봉수대 모두 시원스런 전경이 보장된다. 바다 건너는 기차처럼 장도가 길게 이어진다. 그 너머 희미한 섬이 바로 홍도다. 일몰을 보니 '홍도야 우지마라. 모놀대장이 왔다.'란 말을 해주고 싶다.
흑산도에서 기차를 보셨나요? 그러고보니 흑산도의 기차를 들어본 적 있는가? 1978년인가 흑산도 낙도어린이들이 청와대를 방문한다. 그 천진난만한 아이들에게 대통령은 선물을 주고 싶었다. "얘들아 뭐가 제일 제일 보고 싶니?" "배도 실컷 보고, 비행기도 가끔보고...그런데 흑산도에는 기차는 없어요. 기차가 보고 싶어요." 며칠후 기관차와 철로를 실은 군함이 진리항에 닿았다. 정적 김대중의 고향에 던지는 고도의 정치적 술수인지는 모르지만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큰 꿈이 이루어질 줄은 누가 알았으랴? 섬에 기차를 보내라는 대통령도 대단하지만, 대통령이 죽자 그 기관차를 고철로 팔아버린 흑산도 사람들도 참 어처구니 없다. 지금 다시 기관차를 사려 하니 기차살 돈과 운송비를 댈 수가 있어야지. 최근에 희귀상어를 잡아먹은 필리핀 사람이나 다를 바 없다.
제가 황금술 한 병 선물합니다. 이 것 마시고 흠뻑 취해보세요. 기차처럼 길게 이어진 장도는 200m 정상에 대규모 습지가 있다. 거기다 다양한 동식물로 2004년 우니라라에서 세 번째로 람사 습지로 등록되었다.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노래비다. 1969년 흑산도 아가씨 라는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나왔는데....뽕짝이 이렇게 감미로울 줄은 여태 몰랐다.
지도바위..바위 구멍이 대한민국 지도처럼 생겼다. 왼쪽으로 몸을 조금 움직이면.....
이렇게 넓어진다. 일본이 가라앉고 동해아 융기할래나.
하늘도로. 도로 아래가 교각이 없어 하늘에 떠 있는 느낌이다. 신안의 명물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기사님 빨리 지나가세요. 무서워요."
할미재 약수터. 더덕과 산야초 성분이 들어가 있어 보약이 따로 없다. 흑산도의 엑기스는 바로 이 약수에 있다.
운암봉. 흑산도 서쪽은 케익처럼 웅장한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다. 산세가 대단하다. 섬의 서쪽면이야말로 웅장한 흑산도를 볼 수 있다.
곤촌마을. 흑산에서 가장 작은 마을이지만 부자 마을이 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곤촌이라고 불렀단다.
운암산 아래가 심리(深里)마을이다. 심산유곡 깊은 마을로 번화가인 예리항의 정반대에 있다. 하트모양의 포구모양이 하도 예뻐 내 심장을 꺼내보는 줄 알았다. 지금은 폐교가 된 학교가 학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 국회의원인 이상렬씨가 이곳 출신이란다.
심리에서 사리까지....큰 산이 가로막혀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벽에 가로막혀 버스가 순환하지 못했다. 그러나 2009년 8월이면 이곳에 말끔히 포장되어 버스도 마음놓고 다닐 수 있게 된다. 울릉도는 잘 포장했는데 흑산도는 포장도 안해준다고 불만이 대단하다. 상라 S자 코스보다는 못하지만 구불구불 돌아가면서 고개를 넘어가는 있다. 그 너머가 흑산도 최고의 미항인 사리항이 나온다.
사리에서 바라본 사리재..저 너머가 심리다. 사실 흑산도의 오지는 가장 남쪽인 암동지역이다. 이곳에 정약전 산책로가 놓여 있는데...다음엔 꼭 한번 거닐어 보고 싶다. 사촌초등학교는 한때 학생이 250명이나 되었는데 지금은 달랑 11명이다.
사리마을에는 손암 정약전 선생의 사촌서당이 자리잡고 있다. 정약전은 다산 정약용의 형으로 신유박해때 유배되어 16년간 유배생활을 하면서 총 227종의 어족연구를 집대성한 사전어보를 저술하였다. 정약전은 다른 유배인과는 달리 지역 주민들과 친분관계가 두터웠으며, 장창대를 비롯한 주민들이 도움을 받아 자산어보를 완성하였다.
현재의 서당은 1998년 신안군에서 복원한 것으로 그 앞에 천주교 공소가 세워져 있어 그 인연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자산어보는 이렇게 발견되었다. 심심풀이 오징어의 어원은 바로 오적(烏敵)이다. 오징어는 까마귀를 즐겨먹은 성질이 있는데 한낮에 물위에 떠 있다가 까마귀가 죽은 줄 알고 날아들어 쪼려고 하면 다리로 감아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 잡아먹는다고 한다. '까마귀의 적' 오적이 바로 오징어가 된 것이다. 이 재미있는 이야기는 바로 자산어보에 나오는 얘기다. 다산의 둘째형 정약전은 천주교 포교활동을 하다가 붙잡혀 1801년 흑산도로 유배되었다. 아우 약용과 함께 유배길에 나선 약전은 나주(현 동신대학 앞)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형제는 헤어지게 된다. 이 때가 이승에서의 마지막 만남임을 누가 알았을까? 동생은 18년만에 해배되어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형은 동생을 만나지 못한채 16년 만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귀양살이에서 해배된 다산은 몸을 추슬리기도 전에 아들, 조카와 함께 영월의 선산을 찾는다. 조상의 묘를 살피고 산지기 박서방네 집에 들어선다. 늦은 밤에 약용은 술도 거나하게 들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아침이 되자 산지기방에 이상한 물고기 그림이 가득 도배가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자세히 살펴보니 형 약전이 귀양살이 하면서 그림과 함께 해설한 해양생물도감이었다. 무식한 산지기가 약전의 시신을 수습하면서 딸여온 책을 방의 도배지로 썼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여러번 겹으로 덮여 있어 뜯어 낼 수도 없었다.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다행히 산지기의 손자며느리 방은 한겹으로 발라져 있어 글씨를 알아볼 수 있었다. 다산은 아들, 조카와 함께 벽지의 그림과 글씨를 보고 일일히 모사를 했다. 그림과 글씨를 쓰면서 형에 대한 절절함 느꼈을 것이다. 그런 이유때문에 자산어보는 원본이 없고 필사본만 남아 있다. 자산은 흑산의 다른 이름이다. 약전은 흑산도 근해의 해양생물을 몸소 조사하고 채집하여 각 종류별로 분류한 후 명칭, 분포, 형태, 습성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얼마나 자세한지 오늘날 서해와 남해의 잡히는 어종 전부를 망라하고 있었다. 만약 다산이 성묘를 가지 않았고, 산지기 방에서 묵지 않았다면 우린 19세기 해양생물이 담겨진 이 위대한 해양백과사전을 영원히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나폴리의 아름다운 풍광을 닮은 사리해안가 풍경. 이런 멋진 곳에 약전이 머물렀기에 어류연구를 하지 않았나 싶다. 7개의 바위가 포구를 감싸고 있어 풍랑을 막아내고 있다. 그 옛날 사리마을에 홀어머니가 아들 7형제와 함께 바다에 물질하며 살고 있었는데 어느 해 큰 태풍이 불어와 몇 날 며칠을 어머니가 바다에 나가 물질을 하지 못하자 아들 7형제 하나하나가 바다에 들어가 두 팔을 벌려 파도를 막아 7개의 작은 섬들로 굳어 버렸다고 한다. 지금도 매년 100여명의 제주 해녀가 흑산도에서 물질을 하고 있다.
소사리만 보면 이곳에 섬인지 의아스럽다. 강원도 산촌 냄새가 난다. 흑산도에서 민물욕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소사리를 지나면 자갈과 고운 모래의 샛개해수욕장이 나온다. 어머님의 품안처럼 아늑하다.
면암 최익현 선생의 유허비가 서 있으며 바위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 최익혀은 흥선대원군의 정책에 비판하여 여러차례 귀양살이를 하였고 그 뒤 단발령에 반대하여 다시 옥살이를 하였다. 1876년 강화도 조약에 반대하는 상소로 인해 흑산도에 유배되었다. 이곳에 서당을 세워 후학을 양성하였다. 손바닥 바위에 그의 8글자가 새겨져 있다.
일명 '거시기 바위'로 불리는 구문여. 여자 거시기와 닮았다고 하는데 거센 파도가 칠때 구멍사이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올때 장관이라는데....태풍때 흑산도를 찾아야 할지~~~
흑산도 홍어맛을 보자 "마마님. 자꾸 씹으니, 맛이 납니다. 처음엔 코끝이 찡하고 다음엔 입안이 상쾌하고 끝맛은 청량합니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와 한상궁마마가 음식대결에 나가기 위해 준비한 홍어회다. 홍어는 바다 해저면에 살기위해 독특한 생존비결을 가지고 있다. 해저면 압력이 높기 때문에 체내 삼투압을 외부의 압력보다 다소 높게 유지하기 위해 혈액속에 다량의 요소를 함유하고 있는데, 홍어가 죽은뒤 박테리아에 의하여 암모니아로 분해된다. 홍어 살코기의 독특한 냄새와 맛은 바로 이 암모니아 때문이다.
참 운이 좋다. 오늘이 3월31일. 4월1일부터는 홍어 금어기에 들어가기 때문에 홍어잡이 배가 뜨지 못한다. 그 마지막날 경매를 보는 행운을 얻었다. 7시부터 무게를 재고 6종류로 분류하고 경매에 들어간다. 예리항 선창가는 온통 홍어로 가득하다.
1번은 8~12kg 가장 큰것은 한 마리에 40만원에 낙찰이 된다. 배 한척당 1천5백만원어치 홍어를 낚는다.
모든 홍어를 끄집어 내서 선창에 널어 놓고 무게를 잰다. 그리고는 1급부터~6급까지 줄을 세운다.
상처가 난 것은 뒤집어 놓는다. 꼬리가 3개는 숫놈, 꼬리가 하나는 암놈이다. 얼굴도 사람얼굴을 하고 있어 마치 가오리연을 보는 듯하다. 껍질을 벗겨서 밋밋하면 칠레산, 살이 몽글몽글 하고 선홍색을 뛰면 흑산도산이다. 보통 4~5배는 비싸다. 다행히 흑산도에 가면 전부 국산을 맛 볼 수 있다. 가장 맛있는 부위는 위쪽 모서리 부분인 코부위고 그 다음 꼬리, 몸통순이다. 나주 영산포에 홍어골목이 자리잡고 있다. 왜 영산포란 이름을 얻었을까? 몽고가 세계정복을 끝냈건만 조그만 반도국가인 고려는 38년동안 항복을 하지 않았다. 간신히 제압을 했건만, 이번에는 삼별초 항쟁이 골치거리였다. 섬을 공략했더니 다른 섬으로 피신을 하고..... 그렇기에 조정은 섬사람들을 강제로 이전시킨다. 오늘날에도 흑산도 옆에는 영산도란 섬이 있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 모두 나주쪽에 강제 이전시켰는데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그 곳 지명을 영산포라고 불렀다. 그옛날 흑산도에서 나주까지는 배로 5일~10일이 걸린다. 고기 잡는 기간까지 합하면 거의 15일이 소요된다. 홍어를 가마떼기에 덮어서 보냈는데..그것이 삯혀져 홍어 특유의 맛이 난다. 처음 고향사람인 영산포사람이 즐겨먹다가 차츰 소문이 나서 전라도에 알려지더니 나중엔 전국 제일의 음식이 된다. 흑산도에서는 바로 잡히기 때문에 굳이 삯혀서 먹을 일이 없다. 홍어맛이 나지 않는다고 항의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경매야말로 치열한 삶이 현장이다. 요즈음은 많이 잡히지만 몇 년전에는 홍어가 씨가 말라 배 한척당 4~5마리밖에 낚지 못한 적도 있었다. 이때는 아무도 먹지 못하고 청와대로 직행했다고 한다.
흑산도 전복죽
홍어, 돼지수육, 신김치가 어우러져 홍어 삼합이 된다.
|
첫댓글 내일 새벽에 출장가기 때문에 미완성으로 남겨 둡니다. 다녀와서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흑산도 정말 좋아요. 모놀식구들과 함께 동백꽃길을 걷고 싶습니다.
아, 부러워라! 이종원 대장! 어쩜 이리저리 종횡무진 발걸음 옮기며 천하절경 그대로 사진에 옮기는 솜씨, 허구헌날 이대장만 따라다니고 싶어지네요!
현장취재사진과 대장님의 재미나는 설명에 흠뻑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친한 친구가 암태도 출신이라서 흑산도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만, 실감나는 대장님 설명에 정말 가고 싶어집니다. 귀한 발자취 늘 감사드립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흑산도의 멋진 사진을 보니 모놀에서 한번 가봤으면 참 좋겠네요 대장님
너무 멋져요 대장님!!!
흑산도 하늘 길.....정약전이 유배지인 흑산도에 갇혀 살다가 해배되지 못하고, 바다 건너 강진의 동생 다산 약용을 그리워하던 곳.....180년 전의 그 곳을, 그 분의 발자취를 따라 걷고 싶습니다....삼합(홍어+묵은 지+돼지 수육)과 홍탁(홍어+탁주)~~~캬아!~~쥑인다!!
개다리 춤이 절로 나오쥬? ㅎㅎㅎ
역시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나 보다...10년전쯤 흑산도에 다녀왔지만 노래비와 형용할수 없는 아름다운 저녘노을만 기억하고 있다...한번 더 가고싶다
사진으로 보는 것으로도 이렇게 멋진곳을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니 참 반가운 일입니다. 대장님 사진 보면서 그곳의 속살을 빨리 보고 싶어집니다. *^^*
너무 멋집니다. 우린 언제 가요. 날을 얼른 잡아야 하는데~~ 너무 너무 좋습니다.
약간 썩힌 홍어에 탁배기 한사발 마셨으몬... 갑시다! 흑산도로 답사가요, 대장니~~~임!~ ^^*
흑산도 아직 못가봤는데.......
사진 감동입니다..저곳에 우리도 갈 수 있다는 거지요?..기대만땅..ㅎㅎ 이쯤에서 우스운 이야기 하나.. 중학교 사회시험에 나온 문제라네요..실학자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이 흑산도로 유배가서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수산학 및 어류 연구서의 이름은 ? (힌트 4글자) 답이 자산어보인데..어떤 학생의 답 . . . . ...........................................................................................................................월간낚시....ㅋㅋ
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부지런한 대장님 덕분에 우리들은 늘 호강 하고 있지요~~편히 앉아서 보기가 늘 미안 하네요~
흑산도아가씨에 얽힌 노래 생각하며 혼자 웃습니다. 섬에서 탈출하였건만..다시 그 유배지가 그리운 건요 뭔지,,??
야~~~~~~~~~~아~야~~~~~~~~` 흑산도가 이렇게 좋을즐 예전에 미쳐 몰랐다야~~아~~야~~ 흑산도가 검은섬이 아니라는걸 예전에 미쳐 몰랐다 야~~~~아~~~야~~ 미쳐 버립니다^^* 저에게도 기회가 올까요?? 아님 혼자 덜러덩~~ 가삐리지뭐~~ ^^* 잘 보고 갑니다
욕 본다~~^^; 집 나가면 개~ 고생이다. 나처럼 콕~~~처박혀 있는게 ㅎㅎ^^; 항상 조심하시게나~ 보기 좋네~
대장님이 부럽습니디... 사진보며 떠나고 싶다는 충동이 막 일어나네요... 멋있는 사진 항상 잘 감상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언젠간 가게 되겠지요? 그 날을 기대해 봅니다. 그 날이 빨리 오기를 ~~~~~ 다 들 그런 맘이쥬?????
저도 아직 흑산도 못가봤어요. 대장님, 내년 동백꽃 필때 가나요?
정말 멋진 곳이네요~~아는 만큼 보이니..많은 것을 알게하고 보게하시는 대장님께 감사..정말 가고 싶은 곳이네요 모놀식구들과 함께..*^^*
흑산도,,,,가거도,,,,, 청산도,,,, 추자도,,,,, 꼭 가봐야할 섬으로 등록시켜놓고 때를 기다리고이ㅆ습니다,,,, 빨리 그날이 오기를 홍어 한점먹는 행복을,,,,///
맛깔스런 글솜씨에 푹 빠져 흑산도에 가 있는 느낌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잘보고갑니다. 1:1화각의 위력을 느낍니다. 건강하세요.
잘 보았습니다. 예전 군대시절 흑산도 출신이 잇어 노래부를 때면 무조건 '흑산도아가씨'를 불러야만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고향에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ㅎㅎ k완당씨라고...
잘보구갑니다꼬옥 한번 여행하고픈 곳이예요
저도 꼭 보고싶어지네요...가고 싶어라저 떠나고 싶어요
가 본 적 없는 흑산도...구경 잘하고 좋은 음악 감사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언제나 건강 하시길 빕니다. 대장님 화이팅!!!
한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저는 믿습니다. 모놀과 정수 때문에 이곳을 꼭 갈수 있으리라 믿고 기다립니다.ㅎㅎㅎ
저위 심리마을~~~!!!~~ 1박 하며 새벽예배도 드리고 하트모양의 바다가 호수같이 느껴지는 산과 어우러진 심리마을,...... 바다....그리고 마을앞 고목,,,동트기전 마을 한바퀴 돌며 알프스를 떠올렸던곳...새벽의 상쾌했던 동네 한바퀴를 다시 느껴보고 싶다~~~~뜬구름,스마일 생각나지요?.. 심리의 추억을~~
정말 가보고 싶네요 ..꼭 한번 가보야 겠네요 ~~~감사합니다 ...
자세한 설명과 현장감 넘치는 사진이 함께한 좋은 정보 항상 감사히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저 감사하다는 글 밖엔~
옛 추억이 떠올려지는 군요. 자전거를 타고 굽이굽이 타고 넘던 상라고갯길하며 하늘다리 놓여진 길하며 아직도 포장이 안된 그 길을 넘을 때는 바퀴가 헛돌아 힘들게 넘었었는데 늦은 밤 공동묘지도 지났지만 흑산아가씨비가 있던 곳에서 아랫마을로 내려 가던 길에 맞이한 저녁노을은 골든혼보다 더 아름다웠습니다. 결혼 3주년 기념으로 그 길을 아내와 함께 다시 갑니다. 하룻밤 재워주며 사위 삼고자 하셨던 어르신도 뵙고요.
저도 한번 가보고 싶네요
흑산도여행을 이렇게 맛깔있게, 뜻을 알면서 여행을 하면 참 좋겠네요. 일전에 갔다는 왔지만, 수박 겉할기식이였으니 마냥 부럽네요.
자세한 설명. 감사드려요.. 예전 20년전 여행사 가이드 시절에 한번 가보고는 아직 못가본곳인데.. 감사드려요.. 예전의 기억이 새록새록나네요.. 그때보다 지금이 더 발전 되었네요...
가보고 싶은 욕심은 나는데.........
정말 감탄 했어요. 사진 들... 다시 한번 가보고 싶네요...
몇 해전 옆지기랑 다녀 왔는데......이렇게 읽으니 새롭고....다시 가고 싶어집니다~~
흑산도 사진을 보니 가슴이 메이게 가고 싶어집니다~ 언제나 가볼까나...ㅠㅠ
흑산도 흑산도 말만 만이 들어왓는데...감사합니다`~홍어찜 톡쏘는 암모니아의 그절묘한 맛! 카~`가고 십습니다~^^
이번주 흑산도와 부속도서 장도와 영산도 여행을 갑니다. 제발 풍랑이 불지 말아야 되는데 걱정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