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비유는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라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9절). 비유에는 서로 정반대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즉, 바리새인과 세리입니다.
10절에 보면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고 말씀합니다. 당시 사람들이 성전에 올라가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은 속죄제 희생을 드리는 오전 9시와 오후 3시였습니다. 이렇게 하루에 두 번씩 대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가 향단에 분향하며 하나님의 백성의 죄에 대한 용서를 위해 희생 제사를 드리는 시간에, 백성들은 희생의식을 지켜보면서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구하고 그들의 소원을 들어줄 것을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11절에 보면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한 반면에, 13절에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기도하였다고 말씀합니다. 바리새인이 서서 따로 기도한 것은 자신을 거룩하고 깨끗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다른 더러운 사람들과 같이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세리는 일반 경배자들 앞은 물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기도는 시간과 장소가 중요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곧 기도 응답으로 이어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에 임하는 마음가짐입니다. 자세입니다. 태도입니다.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보시기를 원합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의 내용이 각각 11-12절, 13절에 나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 내용을 살펴보면 자신의 죄인 됨에 대한 고백이 없습니다. 용서를 구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 앞에 교만합니다. 자랑합니다. 그리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합니다.
반면에 세리는 남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진솔합니다. 죄인이라는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가슴을 치며' 주님의 인자와 긍휼에 호소합니다. 자신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가슴을 치며'라는 행동은 평생 한번 볼까 말까하는 행동입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두 번 나옵니다. 한번은 본문에 나오는 세리이고, 다른 한번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었을 때 남자들이 가슴을 친 것입니다(눅23:48). 진심어린 회개, 간절한 회개의 기도를 말씀합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라는 말은 헬라어로 '힐라스코마이'로서 '자기의 죄를 덮어 달라'는 뜻입니다. 세리가 성전에서 행하여지는 속죄의식을 바라보면서 자신을 대신해 죄 없는 짐승이 태워지고 있으니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서 덮어주시고 받아달라는 간구인 것입니다.
본문의 비유의 내용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할 때 몇 가지의 내용을 주의할 것을 말씀합니다. 첫째, 자신의 죄와 부족함에 대한 원인이 철저하게 규명이 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디에 문제가 있고, 어디에 부족함이 있는 것에 대한 철저한 규명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모든 원인을 자기에서 찾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돌려야 합니다. 남을 탓하거나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울러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과 말씀에 비교하여 죄의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예수님의 은혜와 자비와 그리고 긍휼에 호소해야 합니다. 세리의 기도의 내용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은혜와 죄용서 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주님 앞에 기도할 때 다만 하나님의 은혜와 죄용서를 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넷째는 예수님과 비교해야 합니다. 나보다도 거룩한 사람들과 비교해야 합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 비슷한 사람과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는 교만과 자랑만이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과 비교하고, 나보다도 거룩한 사람과 비교할 때 겸손하여질 수 있습니다. 겸손한 기도가 진정으로 바른 기도일 뿐만 아니라 응답받는 기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