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들려주는 친구
전주꽃밭정이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윤동현
새벽바람이 쌩하니 낯을 스치니 코끝이 차갑다. 겨울도 한참 깊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사방이 조용하고 어둠이 깔려있어서 옆에서 무엇이 뛰쳐나올 것 같은 생각에 온몸이 움찔해진다. 얼른 친구에게 노래를 불러달라고 부탁하는 신호를 넣는다. 또 전등도 꺼내서 켜고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거의 매일 아침운동을 하러 산으로 간다. 왼손에는 지팡이를 오른손에는 전등을 쥐고 걷는다. 호주머니 속에서는 노래친구가 불러 주는 노래 소리 때문에 마음도 든든해지고 발걸음에도 힘이 들어가 무서움증도 가신다. 오직 앞만 보고 열심히 목적지를 향해 갈 수 있다.
5,6개월 전만 해도 몇 년 동안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그저 땅만 보고 머릿속에서 평소 다닌 길을 생각하면서 희미하게 보일 듯 말 듯한 산길을 거의 짐작만으로 다녔었다. 그런데 어느 날 멧돼지가 나타났다는 얘기를 들었고, 설상가상으로 도심에서도 멧돼지가 나타나 피해가 심하다고 TV뉴스를 보기도 해서 은근히 겁을 먹고 있었다. 그러나 획기적인 것은 어느 날 무심코 올라가고 있는데 앞에서 짐승들이 싸우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 혼비백산하고 뒤돌아온 뒤로 다니기가 두려웠다. 시간도 한 시간 늦추고 다른 동네 분들과 같이 다녔는데 11월부터는 오후에 다닌다고 하여 또 혼자가 되었다. 우선 스틱과 전등을 장만하려 했으나 스틱을 어디서 구입할 줄도 모르고 겨우 전등만 구입하고 산에서 벌목해놓은 아카시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 지팡이를 만들어 갖고 다녔다. 그런대로 얼마를 다녔다. 그런데 어느 분이 노래기계를 갖고 다니면서 노래를 듣는 것을 보았다. 마침 복지관 입구에서 행상이 이 기계를 팔고 있어서 즉시 구입했다.
가장 좋은 친구는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고 자신을 믿기 전에 믿어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친구는 3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음식과 같은 친구로 매일 만나야 한다. 둘째는 약과 같은 친구로 이따금 만나야 한다. 셋째는 병과 같은 친구로서 이를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친한 벗의 고마운 점은 함께 바보스런 말을 할 수 있는데 있다고 한다.
벌써 하늘나라로 간 지 10년이 됐지만 평생 잊지 못할 친구가 생각난다. 고등학교 졸업 후 진학도 못하고 직장도 없이 방황할 때 그 친구는 졸업 전에 이미 취직이 되어 교육청의 발령을 받고 온 친구였다. 학교 다닐 때는 한 번도 같은 반을 한 적도 없어서 그리 친하지도 않았고 동창이란 것 외에는 잘 몰랐다. 그러나 한 번 두 번 만나 식사도 하고 술자리를 갖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서로의 처지나 성격을 알게 되었고, 마음이 통하여 친하게 되었다. 아무리 친하다 해도 몇 번 얻어만 먹고 내지 않으면 싫어하고 만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이 친구는 전연 그런 기색이 없이 내 처지를 알고 만날 때마다 항상 나 모르게 미리 값을 치르고 먼저 전화를 해서 만나자고 했다. 그것뿐이 아니라 내가 잠시 학원을 할 때도 부족한 것이 보일 때면 자기가 직접 해 주고 채워주고 울타리 노릇까지 전부 해주었다. 또 내가 집에 있기가 곤란한 것을 보고 하숙집에서 나와 따로 방을 얻어 자기와 같이 자취를 하자고 하여 3년간을 같이 있었는데 자기 집이 시골이라 쌀부터 반찬거리까지 전부 가져오는 것이었다. 그보다도 더 놀란 것은 그 친구 어머니셨다. 모든 것을 갖다 주셨다. 웬만한 분 같으면 자기 아들에게 들붙어 귀찮게 하고 돈만 쓰게 한다고 미워할 것인데 전연 그런 기색도 없었다. 오히려 집에도 놀러 오라고 하시면서 친구나 똑같이 대해 주셨다. 참으로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란 말이 잘 맞는 것 같았다. 인생이란 우리 자신을 만드는 것이면서 우리가 선택한 친구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길 위에서 어둠을 맞는다면 너는 진실로 너 혼자가 아닌 한 사람의 친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우정이란 친구를 딛고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친구가 내 자신을 딛게 하여 친구를 높이는 것이라는 말을 가장 잘 실천했던 친구였다. 내가 갖고 다닌 노래친구도 1950년대부터 지금 2010년대까지 무려 70년을 넘게 희로애락의 사연을 모두 담아 아낌없이 전달해 주어 우리의 삶을 일깨워 주며 마음의 안정을 주는 고마운 친구다. 또 매일 나와 동행하고 나에게 기쁨을 주기도 한다. 오랜 치구가 좋은 이유는 함께하면 바보가 되어도 좋기 때문이란다. 친구라는 말을 한자로 풀이해 보면 친할 친(親)자와 옛 구(舊)로 동우리란 뜻이다. 즉 친할 친(親)은 설립(立)과 나무목(木), 볼견(見)이 합쳐진 글로서 나무를 세우는 것을 보는 것이고, 옛구(舊)는 풀초(草)와 새추(推), 절구구(臼)이니 새가 풀을 모아서 동우리를 오래 전부터 지었고 지금도 새가 깃들여 있는 동주리(짚으로 만든 동우리란 뜻이다)라 한다. 뜻글자인 한자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어 좋다.
(2014.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