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릴파르처는 20대에 함대사령관이 되었을 정도로 유능한 인재였으며 군문 외에 지리학에도 조예가 깊은 인물이었기에 친구인 크납슈타인과 함께 미터마이어&로이엔탈 듀오의 뒤를 잇는 '차세대 쌍벽'으로 평가받으며 미터마이어에게서도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으며 언젠가 제국군 3대 장관 자리에 오를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인물이었다. '그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우르바시 사건이 터진 후 노이에란트 총독이었던 로이엔탈은 사태 수습에 나섰다. 본인의 통치영역에서 벌어진 사건인데다 카이저 라인하르트를 초청한 것도 자신이었기에 마땅히 수습에 나서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역할을 그릴파르처에게 맡겼다. 하지만 이 선택은 로이엔탈, 그릴파르처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 되고 말았다.
현지에 도착한 그릴파르처에게는 난제가 있었다. 카이저가 떠났지만 우르바시는 아직도 혼란스러웠고 이 때문에 수사는 커녕 반란 진압이 먼저였다. 이에 그릴파르처는 무려 2000명에 달하는 반란군 병사들을 죽여가며 강수를 써서 반란을 진압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 빈클레 중장이 실종되고 현장의 병사들 또한 엉뚱한 증언을 내놓아 혼란스럽게 했으나 계속된 수사 끝에 반란군 중에 지구교 경전 및 문장 소시자들이 나옴에 따라 사건의 실마리는 잡혔다. 이 사건은 지구교단의 소행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만일 그릴파르처가 정직하게 사건을 로이엔탈에게 보고했다면 노이에란트 전역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릴파르처 또한 당연히 아무 생각 없이 당연히 상관인 로이엔탈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순간 그릴파르처의 머리 속에서 스쳐 지나간 생각이 있었다.
그릴파르처가 판단하기에 지금은 난세가 끝나가는 시대였다. 기존까지 골덴바움 왕조, 페잔 자치령, 자유행성동맹으로 분열되어있던 우주는 로엔그람 왕조로 통합되어가고 있었고 이제 남은 이들은 이제르론 요새에 웅크린 한줌 공화주의자 세력 뿐이었고 이들마저도 제국에 비해 유의미한 규모를 가진건 아니었다. 즉 전란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전란의 시대에는 군인들이 출세하기 쉽고 목소리 내기도 쉽다. 그릴파르처 자신 또한 현장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기에 20대에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이었으니 그 자신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란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는 이상 과거와 같은 고속 출세는 기대하기 어려울 일. 그렇지만 그릴파르처가 보기에 방법이 하나 있긴 했다.
그릴파르처는 이 사건을 잘 이용해보면 자신의 승진이 가능할 것이라 여겼다. 이번 사태의 진상을 공표한다면 이 사건의 책임은 마땅히 지구교에게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지구교는 군사적으로 의미있지는 않기에 자신이 받을 상은 승진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진상을 숨긴다면 이 사건의 책임은 로이엔탈에게 돌아가게 된다.
거기다 로이엔탈은 오베르슈타인, 랑 두 사람에게서 공격받는 신세에 그 자신도 야심가이므로 높은 확률로 몰린 끝에 일을 저지를 것이다. 다만 승산은 카이저에게 있으므로 자신은 그런 로이엔탈과 한편인 체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로이엔탈을 배신해 (외형상) 반란 진압에 큰 공을 세우게 된다면 승진은 따놓은 당상이라 여겼다.
그래서 그릴파르처는 사건의 진상을 숨겨 사태가 더 심각해지게 만들었으며 그로 인해서 마침내 로이엔탈이 반란을 결심하자 동의의 뜻을 보였고 친구인 크납슈타인을 공범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드디어 로이엔탈이 노이에란트 치안군을 이끌고 페잔을 향해 나아가자 그릴파르처는 속으로 좋아죽었다. 적어도 란테마리오 성역에서 제국군과 대치할 때까지는.
그릴파르처의 비겁한 잔꾀는 전장에서부터 무너져내렸다. 이는 제국군의 두 쌍벽인 로이엔탈과 미터마이어의 능력이 그의 생각보다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미터마이어도 로이엔탈도 의도는 아니었지만 그릴파르처에게 틈을 주지 않았다. 그릴파르처는 배신하기 위해 잠시라도 공격을 멈췄다가는 엄청난 화력을 쏟아내는 미터마이어 함대에 갈려나가든 아니면 아군에 배신자로 찍혀 박살이 나든 둘 중 하나였고 결국 그가 배신한 시점은 자신이 끌어들인 크납슈타인이 죽고 아군에 패색이 보인 때였다.
그러나 그 타이밍은 정말 최악이었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간 보다가 편 바꾼다는 속셈이 드러나기 쉬웠고 또한 크납슈타인의 부하들은 상관을 잃은 슬픔을 느끼기도 전에 아군이자 자기 상관의 친구가 통보조차 없이 갑작스레 배신하였기에 슬픔이 분노로 바뀌어 애꿏은 그릴파르처의 부하들만 죽어나갔다.
이 같은 추태는 그릴파르처의 입지를 악화시켰다. 전투가 끝날 무렵 그릴파르처는 제국군에 있어 혐오감을 느끼게 만들기 충분했고 그릴파르처 역시도 이 상황을 깨닫고 그래도 자신의 입지를 위해 계속해서 머리를 굴렸다. 자기를 미워할 미터마이어 대신 바렌에게 항복했는데 제국군 역시도 그의 의도를 모르지 않았기에 더욱 미움을 샀다.
이 상황에 이르러서야 그릴파르처는 자신의 처지가 어찌될지 반쯤 알아차렸다. '배신자'로 몰린 이상 아마 앞으로의 출세는 완전히 막힐 것이 분명하고 까딱하다간 군문에서도 쫓겨날지도 모르는 상황. 하지만 그릴파르처는 그래도 군문에 남아있게 되면 어떻게든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믿으며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그 그릴파르처의 희망은 메크링거에 의해 완전히 꺠진다 메크링거는 우르바시 사태로부터 제2차 란테마리오 성역 회전까지 이어진 일련의 사태의 진상을 모두 파악하게 되었고 이에 격노해 그릴파르처를 책망했다. 이 때서야 그릴파르처는 예감이 좋지 않다고 여겼지만 그렇지만 어떻게든 모면하기 위해 변명을 했으나 그 변명은 메크링거를 더욱 격노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릴파르처는 끌려나가 처분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그리고 이 때서야 그릴파르처는 자신이 선택을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메크링거는 분명히 그릴파르처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제국군 상층부 전체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릴파르처는 굳이 잔꾀 부리지 않고도 언젠가는 고위직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그릴파르처의 불안감을 가져왔을 요소도 없는건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제국군 상층부가 '너무 유능한 것'은 하급자들에게는 승진속도가 느려지게 하는 원인이었다. 차라리 이전 시대처럼 무능한 상관과 유능한 상관이 적당히 섞여있다면 무능한 상관들은 계급이나 인맥이라도 있지 않다면 무능하기에 전사하기 쉽고 진급하기도 쉽지 않으니 유능한 자신은 쉽게 진급하겠지만 현재는 자신 위로 유능한 상관만 들어찼기에 승진길이 사실상 막히게 된 셈이었다. 그나마 이 상관들이 지속적으로 많이 죽어나간다면 모르겠지만 라인하르트가 뽑아놓은 부하들은 많았기에 어느정도 잃기는 했어도 그릴파르처에게 기회가 주어질 정도는 아니었다.
때문에 변수가 터지지 않는다면 그릴파르처는 상관들이 다 퇴역한 후에야 다시금 출세길을 노려볼 수 있을텐데 그와 상관들 사이의 나이 차는 불과 10여세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20대에 대장 달았는데 50대에 들어서야 상급대장을 달 수 있다면 승진욕이 많은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답답할 일.
거기다가 그릴파르처의 상관인 로이엔탈 또한 세심한 사람이 아니었다. 로이엔탈이 노이에란트 총독이 되었을 때 그 밑으론 베르겐그륀, 그릴파르처, 크납슈타인 세 사람이 있었다. 로이엔탈은 이들 중에 베르겐그륀을 가장 앞에 두어 나머지 두 사람의 불만을 산 바 있는데 로이엔탈은 이에 대해서 이해가 되도록 설득하긴 했지만 그가 세심하지 못해 두 사람의 불만을 다 잠재우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릴파르처의 행위는 지나친건 사실이었다. 그의 행위로 제국의 반이 들고일어난거나 다름없는 초대형 내전이 터졌으며 양측도합 1천만명이 넘는 병력이 충돌해 수백만명의 사상자를 냈다. 제국의 쌍벽 중 하나인 로이엔탈이 사망하게 된건 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이 지구교에게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알량한 승진길만을 생각하는 그릴파르처의 이기심이었으니 그릴파르처의 행위는 지나치다고 해도 억울할게 없었다.
아무튼 처분을 기다리게 된 그릴파르처는 이제는 승진도 뭣도 아닌 목숨만이라도 보전하기를 간절히 바랬다. 이전까지 승진에 목 맨 그에게는 비참한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그릴파르처는 군재가 아닌 지리학에도 조예가 깊었기에 목숨만이라도 구명한다면 그쪽으로 활로를 뚫어볼 시도를 할 수도 있었고 설령 구 제국령에서 자신의 인식이 나빠 성공 못하더라도 제국령은 구 동맹령까지 넓어진 만큼 거기서라도 어떻게 재기를 노려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카이저 라인하르트의 진노를 사기 충분했으며 결국 그릴파르처에게 주어진 처분은 계급 박탈과 자결. 이 명령을 받은 그릴파르처는 절규하며 부정하고 자비를 구걸하였으나 라인하르트는 어느 하나도 신경쓰지 않았다. 결국 그릴파르처는 옥중에서 자결하는 것으로 짧고 불명예스러운 삶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의 수난은 죽고도 이어졌다. 그릴파르처는 결혼하지 않아 아내도 자식도 없었지만 부모님은 있었다. 물론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살았고 그의 부모도 아들의 경제적 지원이 필요없을 정도로 잘사는 중산층 가정이었기에 랑과는 달리 연금 못 받아 생기는 경제적 타격은 없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그릴파르처의 부모는 정신적 충격에 고생해야 했다. 이 사건이 터지기만 해도 그릴파르처의 부모는 자신의 자식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대단했다. 건국군주인 루돌프 대제부터가 군인 출신이었던 만큼 군인이라는 직업이 선망받는 제국이었고 동맹과의 전쟁이 시작되자 이 인식은 굳어져 갔기에 아들이 장교라는 것은 자랑할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아들이 20대에 장성급에 오르기까지 했으니 이것은 자랑으로도 끝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아들이 갑자기 배신자로 낙인찍혀 매도되고 결국에는 옥중에서 자결까지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면 부모 마음이 어떻겠는가. 연금이 박탈된것도 연금을 못받는 것 자체가 아니라 연금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잘못한 것이 더 문제가 되었다. 심지어 그릴파르처의 부모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호소했지만 제국군은 어딜가든 반응이 단호하였다. 이것이 그릴파르처의 부모가 아들 때문에 고생한 이유였다.
여파는 그들로만 그치지 않았다. 그릴파르처의 행위는 이후 제국군에게 매우 불명예스러운 이름으로 전락하여 제국군 내에서 그의 이름은 마치 욕설처럼 여겨졌으며 그로 인해서 괜히 '알프레트' 라는 이름을 가진 군인들은 괜스레 고생해야 했다. 나중에는 은하연방을 멸해지고 골덴바움 왕조가 일어서고 골덴바움 왕조가 멸해지고 골덴바움 왕조가 멸해지고 로엔그람 왕조가 일어섰듯 로엔그람 왕조 또한 멸해지게 되지만 결국 그릴파르처에 대한 평가가 뒤집히지는 않았다.
렌넨캄프는 라인하르트의 부하들이 다 그렇듯 유능하였으며 또한 공정하였다. 골덴바움 왕조 시절에도 이것을 인정받았고 이 때문에 은근히 백안시되던 처지였으나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일하며 누가 부하가 되든 누가 상관이 되든 공정하였다. 이 점이 인정받아 라인하르트가 권력을 잡자 그도 본격적인 출세길을 걸을 수 있었고 이 때문에 렌넨캄프는 한때의 부하였던 라인하르트에게 충성을 다했다.
허나 그는 이 때부터 엇나가기 시작한다. 그는 본디 특유의 '군인적 사고방식'을 철저히 가지고 있었는데 '군인이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군인으로서는 좋은 사람이라서 자기 부대 내에서 부조리를 최대한 없애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고 전공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군의 손실을 줄이는 것에도 관심을 가지는 나름대로 훌륭한 군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군재는 뛰어나지만 군인으로서는 영 아니올시다'인 양 웬리를 만나며 꼬인다. 그의 모습을 보고 겉보기로는 군인이 아니라 니트라 불리는게 맞는 자에게 진 자신에게 분개하며 그러면서도 양의 군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군재와 군인으로서의 자세가 분리된 양에게 열폭을 느끼게 되었고 결국은 월권행위를 저지른 끝에 양의 부하들의 반격을 받고 자신은 절망 끝에 자살하는 최후를 맞았다.
그는 자살한 후에도 대우가 좋지 못했다. 그의 충성심은 진짜였지만 전사한 것이 아니라 자업자득 끝에 자살한 것이라 동료나 상관들의 그의 행위에 대한 평가는 냉담한 편이었고 결국 순직으로 인정받지 못하여 계급 추서는 없었다. 그나마 장례는 제국의 고관들이 참석하는 등 나름 신경을 써줬지만 그뿐이었다.
물론 렌넨캄프는 그나마 평가가 좋은 편이었다. 이후의 제국군은 그를 흑역사로 처리하지는 않았다. 렌넨캄프는 그래도 30대에 상급대장이 될만큼 능력이 있었고 그의 최후도 반역이나 배신이 아니었기에 제국군 또한 그를 흑역사 처리하지는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제국군의 그에 대한 평가는 냉담해서 그의 능력과 충성은 인정하였지만 결국은 열폭으로 자멸하였다며 그의 공과 과를 명확히 했다.
그래서 로엔그람 왕조 시절 사관학교에서 렌넨캄프는 그 시대의'우수한 군인'으로서의 표본이자 '불명예스러운 군인'으로서의 표분 두 가지 예시 모두의 사례로 꼽았으나 그 시절 제국군 상층부에서 불명예스러운 군인의 표본은 많지 않았기에 결국 렌넨캄프는 '불명예스러운 군인'의 이미지가 강하게 따라다니게 되었다.
투르나이젠과 좀바르트는 제1차 라그나로크 작전에서 인생이 망한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라인하르트 체제에 편입될만큼 실력이 없는 사람들은 아니었으나 좀바르트는 보급에서 방심에 의한 실패로 투르나이젠은 버밀리온 회전에서 자만에 의한 실패로 인생이 망하였는게 결국 좀바르트는 자결하는 것으로 투르나이젠은 한직으로 좌천되느 것으로 책임을 져야 했다.
당연하지만 두 사람 모두 그 뒤의 신세가 좋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로엔그람 왕조에서는 철저히 비판받았고 그래도 고관들에 의해 장례식이 치뤄진 렌넨캄프와는 달리 좀바르트는 그것조차도 없었으며 투르나이젠은 살아남긴 했지만 그 후 단 한번도 명예회복을 할 기회 없이 퇴역할 때까지 한직만을 전전하다가 정년이 되자 퇴역하였고 퇴역 후 연금을 받았지만 그는 군인 시절이나 퇴역한 후나 쥐 죽은 듯 조용히 살았다.
우드 디터 훔멜은 렌넨캄프가 고등판무관이 되었을 때 그를 보좌하기 위해 파견된 인물이다. 그가 파견된 명목상의 이유는 공무원 출신이 아닌 무인 출신이므로 고등판무관으로서의 일을 온전히 맡기 힘들다는 이유였으나 실제로는 오베르슈타인에 의해 파견된 그의 감시역이었으며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활동하였다.
렌넨캄프가 양에 대해 열등감을 갖고 있는 것을 알게 된 후 양을 제거해야 한다고 여긴 오베르슈타인의 지시대로 렌넨캄프를 부추기면서도 협조하며 양을 위기로 몰아넣었으나 결과는 렌넨캄프가 위기에 빠진 끝에 죽고 양은 빠져나가는 것으로 끝난다. 예상치 못한 사태에 고등판무관부는 마비되었고 보좌관인 훔멜의 신세는 위태로워졌다.
그나마 그의 뒷배가 되어줄 사람은 오베르슈타인이었으나 오베르슈타인은 이 사건과 제국의 연관성을 부정하기 위해 그를 손절했고 또 이미 그럴 준비를 해 둔 뒤였다. 혼란스러워진 그는 자칫하다간 죽은 렌넨캄프의 죄를 대신 뒤집어 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렇다면 뭔가 공이라도 세워 위기를 모면하고자 했고 또한 제국군이 하이네센에 당도한 상황이 되면 분노한 하이네센 시민들에게 고등판무관부가 공격받을 가능성 또한 있었으며 훔멜은 이것을 모면할 방법은 하이네센의 빠른 항복이라 보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으로 저지른 것이 레벨로 암살과 동맹의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훔멜은 양의 탈출 후 패닉에 빠진 록웰을 사주하였고 훔멜에게는 다행히도 록웰은 생각없이 그에게 낚여 레벨로를 암살해버리고 제국군에 항복했다. 그랬기에 적어도 제국군은 하이네센에 무혈입성할 수 있었고 고등판무관부가 분노의 표적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그는 책임을 온전히 피해갈 순 없었다. 결국은 그의 책임이 카이저 라인하르틍에게도 들어갔고 라인하르트는 그를 불러다 질책했다. 이에 훔멜은 변명하였으나 라인하르트는 그가 렌넨캄프의 경거망동을 막지 못한 책임을 중하게 여겨 훔멜을 경질하고 오딘으로 보내버렸다.
이 일로 인해서 훔멜은 사실상 좌천당한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훔멜은 그래도 끝은 좋았다. 다른 이들에 비해서야 훔멜의 행위는 충성심으로 인정받을 건덕지는 있었으며 렌넨캄프의 행위는 훔멜보다 렌넨캄프의 책임이 더 컸기에 시간이 지난 후 어느순간 스리슬쩍 복귀할 순 있었다.
물론 훔멜은 투르나이젠과 마찬가지로 요직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법무성 산하 중견관료 정도로 경력이 멈췄지만 그래도 투르나이젠과는 달리 쥐 죽은 듯이 살지는 않아도 되었고 적어도 가족들에게도 부끄러운 대상일 뿐인 투르나이젠과는 달리 그는 가족들과 지인에게는 '한때의 실수'로 출세길이 막힌 것으로 여겨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