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못생겼건 잘생겼건, 좁건 넓건 간에 주어진 상황에 맞춰 최선을 다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작품’이 탄생할 수도 있다는 점이 건축의 매력이다. ‘땅이 좁아서’ 건물 올릴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는 사람, 건축은 넓은 땅과 넓은 집에만 해당된다는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이 가진 고정관념을 깨줄 만한 멋진 건물 두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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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면적 29.8평, 연면적(각 층의 면적을 다 합한 면적) 78.1평. 평창동 소산 박대성 화백의 집은 절대적인 의미에서는 결코 작지 않은 집이다. 하지만 그 집이 평창동에 세워졌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의 집은 작은 편이다. 살아오면서 여러 채의 집을 지어 살아본 박대성 화백에게도 이 집은 그중 가장 작은 집이기도 하다. “두 딸도 다 자라고, 큰 집이 필요 없어 좀 작게 지었지. 게다가 내 작업실은 경주에 있으니, 서울집이 클 필요가 없거든.” 20대에 상경한 이래 운 좋게도 좋은 지역(원서동, 우이동, 팔당, 평창동 등)에만 살아봤다는 박 화백이 이 집터를 발견한 것은 몇해 전. 15년 이상 평창동에 살아왔던 그는 오며 가며 이 땅을 보고는, 집을 지으면 딱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녹음이 우거진 바위산과 인접한 좁고 긴 땅. 그는 그 땅을 두 필지로 나눠 똑같게 생긴 집 두 채를 짓고자 했다. 집을 짓기로 맘먹은 뒤 연락한 곳은, 동시대 최고의 건축가로 꼽히는 재일교포 2세 이타미준 선생의 건축사무소. 건축에 여백, 절제, 빛과 어둠의 조화를 구현하고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건축주 박대성 화백이 요구한 것은 단 하나. ‘건축가에게 일임하겠다’는 것. “건축주는 자신이 건축가를 이미 선택했으면 모든 것을 맡겨야 하는 거야.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고 하는 것은, 그것은 마치 내가 호랑이 한 마리를 그리는데, 그림을 사겠다는 사람이 옆에서 한 마리만 더 그려 넣어달라는 거랑 같은 거야. 화나는 일이지. 그러면 제 역량을 발휘하기도 힘들고.”
‘박대성 아틀리에’는 설계부터 완공까지 1년 여가 걸렸다. 대지면적은 1백10평 정도 되지만 그 안에는 바위산이 포함된 탓에 결국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땅은 29.8평. 마당 없는 건물이 된 것도 바로 건축면적을 최대한 확보하려 했기 때문이다. 1층은 차고와 창고로 사용 중이고, 2층은 주거 공간, 3층은 서양화가인 부인 정미연 씨의 아틀리에로 활용되고 있는 이 건물의 가장 큰 특징은, 바위산과 경사진 땅이라는 본래의 자연환경을 그대로 살렸다는 것. 마감재인 동시에 햇빛 조절 기능을 지닌 접이문, 산을 등진 쪽을 제외한 나머지 3면에 넉넉하게 창을 내어 햇빛만으로도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도록 한 것도 눈에 띄는 건축적인 요소들이다. 불투명유리, 창호지 등의 소재를 활용, 한껏 받아들인 빛을 다시 한 번 걸러주고 있는 것도 재미있는 부분.
1 3층 화가의 작업실에서 건물 외벽에 설치된 스기목 재질의 대형 접이문은 3층의 1/3 정도까지만 올라온다. 대신 3층 내부에 창호지를 바른 접이문을 달아 채광을 조절함과 동시에 집 안에 운치를 더했다. 2 ‘박대성 아틀리에’ 출입구 정면이 현관문일 것 같지만 실은 계단을 올라간 다음 몸을 오른쪽으로 돌려야 현관문을 만난다. 전면 벽면에 보이는 구멍은 우편함. 우편물이 도착하면 집 안쪽 바닥에 툭 떨어지게끔 된 것이 재밌다. 1층 전면의 외벽은 아연판으로 마감, 스기목 재질과 극적으로 대비시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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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층 작업실 전경 구획되지 않고 하나의 공간(계단 쪽에 작은 방 하나와 화장실이 있긴 하다)으로 된 3층은 서양화가인 부인 정미연 씨의 작업실로 사용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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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박대성 아틀리에’ 외관 바위산에 접한 경사지라 대지면적은 110평 정도 되었지만, 건축할 수 있는 공간은 30평이 채 안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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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에 지으려고 했던 나머지 한 채는 잠시 유보되어 계단식 공터로 남아 있는 상태. 작업실이 있는 경주로 집을 아예 옮길까도 싶어 망설이는 중이라고 했다. “5년 전부터 경주에 작업실을 두고 왔다갔다하고 있지. 평창동도 아주 좋지만, 동양화를 그리는 사람에게 천년고도인 경주는 무궁무진한 소재를 제공해주거든.” 평창동 집이 ‘박대성 아틀리에’라는 이름을 지닌 반면, 낡고 작은 한옥을 레노베이션했다는 경주 작업실은 ‘불편당’이라는 이름을 지녔다. ‘불편당’은 너무 편리한 것만 좇고 물질적인 것만 좇기 때문에 사람들이 점점 극단으로 치닫게 되었고, 따라서 불편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만이 ‘도’를 깨달을 수 있다는 그의 염원이 반영된 이름이다. 자가용 없이 기차 타고 경주와 평창동을 오간다는 박 화백과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불편당은 상당히 잘 어울리는 공간일 듯싶었다. 그렇다고 평창동 집이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오산. 박 화백은 이 집을 “한시절 번쩍거리고 마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흐를수록 골동품처럼 점잖게 나이들어갈 집”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그것은 일곱 살 때부터 그림을 그려오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 대표적인 한국화가로 우뚝 선 박 화백의 이미지와 너무도 닮아있었다.
1 2층 안방에서 본 실외정원 거실 쪽에서 바라본 안방 전경. 경사진 땅을 십분 이용, 실외정원을 만들어냈다. 실외정원에는 대나무와 돌탑을 두어 동양적인 정서를 담았다. 2 오리엔탈 기분으로 꾸민 3층 입구 박대성 화백이 여행길에 구입해온 아프리카 토산물과 티베트 장은, 여백이 있는 집과 잘 어울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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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거 공간으로 사용 중인 2층 2층은 안방과 거실과 주방, 화장실이 있는 주거 공간. 계단 쪽으로 거실과 아담한 주방이 있고, 거실과 주방 맞은편으로 안방이 있다. 거실의 한쪽면은 전면창인데 실외에 접이식 나무 덧문을 달아 채광을 조절할 수 있다. 실내에도 블라인드를 달아 다시 한 번 빛을 조절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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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도로에 편입되고 남은 22평 자투리 땅에 건물을 짓다 인천 부평 사거리, 새로 지어진 아파트 단지와 재개발 예정인 주택가 모퉁이에 주변 분위기와 쉽게 매치되지 않는 건물 하나가 들어섰다. 청담동이나 압구정동이라면 그냥 넘겼을지 모르는 콘크리트와 유리 소재의 모던한 건물. 이 건물이 특별히 기자의 눈에 들어온 것은 건물의 심플한 디자인보다 크기 때문이었다. 정말 손바닥만 한 넓이에 지어진 4층 건물. 외부에서 보아도 내부의 디스플레이가 한눈에 들어오는, 마치 4층짜리 쇼윈도 같은 미니 빌딩이었다.
이 건물은 지난 3월에 오픈한 까사미아 매장으로 건물주이자 까사미아 부평점의 대표인 임형기 씨가 작년부터 짓기 시작해 1년 만에 완공한 공간. 양면이 도로에 인접해 있던 56평 땅이 도로 확장 공사로 흡수되면서 22평의 땅만 남게 되었고, 그 자투리 땅에 새로운 기능을 부여한 것이다. 대개의 경우 조각난 땅이 있으면 팔거나 옆의 땅을 사들이게 마련인데 평소부터 건축과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던 임형기 씨는 인생의 첫 건물을 미니 사이즈로 지어보기로 결심, 완성한 그의 걸작품인 것.
대지면적 22평, 여기에 건축규제법에 제시된 미관지구 2m를 건물 앞쪽으로 남기고, 건물의 양면과 뒤편에 다른 건물과의 거리 50cm를 빼고 나니 달랑 12평 공간만 남았다. 처음에는 1층에 자동차 2대를 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2층부터 각 층마다 가족실, 아들방, 부부 공간으로 이루어진 4층 건물을 지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양쪽에 인접한 도로의 소음 때문에 상업 공간을 짓기로 결정했다. 워낙 땅이 좁기 때문에 임대용 건물을 짓기는 어려웠고 한 가지 용도로 쓰이는 컨셉트 있는 건물이 올려졌다.
건물을 지으려고 마음먹은 것은 지난해 초. 너무나 작은 땅에 집을 지으려니, 좁은 공간을 알뜰하게 나눠줄 적합한 설계자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고심끝에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헤이리 마을을 무작정 찾아갔다. 헤이리 마을은 계획된 문화 예술의 마을인 만큼 뭔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으리라 짐작했던 것. 그곳에서 그동안 머릿속에 담아두었던 짓고 싶은 집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았고, 샘플이 되는 집과 그 설계자인 김헌(Asylum)교수를 수소문해 설계를 의뢰했다. 건물의 대략적인 설계가 나오자 건물과 어울리는 사업 아이템을 찾아 까사미아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 건물의 컨셉트와 도면을 첨부한 사업계획서를 보낸 다음 날 까사미아로부터 프랜차이즈 허가가 떨어졌고, 그때부터 건물주인 임형기 사장과 설계자, 까사미아 측의 의견 조율이 되면서 건물이 척척 올라갔다.
좁은 건물이 답답해 보이지 않도록 1층의 천장고는 5m로 높게 잡고, 외부에서도 내부의 디스플레이가 보이도록 전면에 통유리창을 부착했다. 노출 콘크리트로 모던하게 집을 짓되 원목 마감재를 추가해 친환경적인 건물이 모양새를 갖춰나갔다. 세련된 외관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고객에게 개방되는 오픈된 발코니와 2개의 화장실, 디스플레이를 위한 복층 공간을 갖춘 구조가 12평 건물 안에 알차게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공헌도가 컸던 것은 설계였다. 일반 상업 공간의 경우 설계비와 시공비의 비율을 2 : 8 정도로 잡고, 평당 총건축비를 2백30만원 정도 잡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건물의 경우 설계비의 비율을 건축비의 40% 정도로 잡고 평당 건축비(설계비+시공비) 역시 4백만원 정도로 잡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때문에 건물의 1/3을 차지하는 계단을 멋스럽게 살리면서 계단 사이 공간에 화장실을 넣고 원룸처럼 공간별로 디스플레이 할 수 있는 완벽한 컨셉트의 건물이 탄생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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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 디스플레이 원목 소재의 침대와 가구가 전시된 3층 전경.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모양을 살려 계단 아래 자투리 공간까지 디스플레이에 활용했다. 건물 뒤쪽에 위치한 계단 쪽 벽은 불투명 유리를 사용해 햇볕은 받아들이고 외부의 시선은 차단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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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좁은 공간이 넓어 보이는 아이디어 1층 현관에 들어섰을 때 보이는 매장 전경. 좁은 건물에 들어섰을 때 답답해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1층의 천장고를 5m로 높게 설계했다. 정면의 높은 창으로 햇볕이 들어오기 때문에 훨씬 밝고 넓은 느낌. 모자란 디스플레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복층 설계한 아이디어 역시 돋보인다.
3 4층 건물이 모두 쇼윈도의 역할을 하도록 설계된 건물 전경 12평짜리 까사미아 건물의 외부 전경. 노출 콘크리트의 전면에 통유리를 부착해 외부에서도 실내의 디스플레이가 보이도록 설계되었다. 마치 전시를 위해 꾸며진 4층짜리 쇼윈도를 보는 듯하다. 4 벽 자체가 장식이 되도록 고급스런 마감재 사용 꼭대기층의 벽면은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해 고급스러운 아트월처럼 연출했다. 콘크리트 위에 코팅된 송판을 조각조각 붙여 벽면에 가로줄무늬를 넣은 고급 시공 방법을 사용해 특별한 디스플레이 없이 오브제 하나만 놓아 여백의 공간감을 살렸다. 벽 뒤쪽으로는 손님용 화장실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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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따로 인테리어가 필요 없도록, 자체로 폼 나는 계단 만들기 전체 공간의 1/3을 차지하는 계단. 계단의 상부는 노출 콘크리트에 우레탄 코팅을 하고 측면에는 흑색 철판을 덧붙였다. 좁은 공간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공간이니 만큼 계단 자체가 인테리어가 되도록 했다. | |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