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파동이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될 모양이다. 미국이 동물성 사료를 강화하기로 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생후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 수입을 정당화하려던 정부는 코너에 몰렸다. 미국 정부는 오히려 완화했던 것이다. 미 정부가 우리를 속였다면 협상은 다시 진행해야 하고, 우리 정부가 무능해 파악하지 못했다면 상응하는 책임과 납득할만한 후속조치를 취해야 한다. 만일 시민들을 속이려고 했다면? 지금 상황으로 보아, 유권자의 분노를 잠재울 수준의 후속조처가 이루어져야 정국이 안정될 것 같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가 정권의 지지율이 떨어질 기미를 보이자 이명박 대통령은 닭고기를 먹는 자리에서 자신이 먼저 수입한 미국 쇠고기를 먹겠다고 기자들 앞에서 약속했다. 국회 쇠고기 청문회에서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이 미국산 쇠고기를 먹겠다고 국회의원 앞에서 확인했다. 빚을 내서라도 장관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사주겠다는 국회의원도 나타났다. 청문회에서 질문에 나선 한 의원은 10년 후에 보자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잠복기가 10년 이상이라는 광우병에 걸릴지 두고보자는 으름장이었다.
정부 말대로 광우병은 확률 문제인지 모른다. 로토 당첨된 사람이 돈을 찾으러 집을 나섰다 벼락 맞아 죽을 확률에 불과한지 아닌지 구체적인 조사 결과가 없어 알 수 없지만,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리는 사람에 비해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세금으로 중앙지 1면 하단에 광고를 낸 정부의 주장처럼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 MBC백분토론의 시민논객의 지적처럼 정부는 조심하라고 당부해야 옳았다. 수입에 앞서 조심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옳았다. 100만분의1의 확률이라고 치자. 아무데나 총 딱 한 발만 쏠 테니 안심하라며 체육관에 100만 명을 들어가라고 하면, 누가 자원할 텐가.
수입은 국가 아니라 업체가 담당한다. 맞다. 그렇다고 정부가 손 놓는 건 아니다. 마약도 업자가 수입하지만 정부는 눈에 불을 켜고 조사한다. 수입 농산물에 유해물질이 포함될 가능성 때문에 정부는 위생검역에 나선다. 납이 들어간 꽃게를 먹고 사망한 소비자는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통관을 즉각 보류하고 위생검역을 강화했다. 농약이 들어간 중국산 김치는 어떠했던가. 광우병은 치명적이다. 소수점 여러 자리 이하 그램의 변형 프리온이 포함된 살코기도 먹은 이를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다. 검역에 확률 논쟁은 있을 수 없다. 정부에서 확률을 거론한다는 사실은 주권국가의 시민으로서 아주 낯뜨거운 일이다.
한약재에 들어간 농약을 확률로 따지며 안전을 논하지 않았던 정부는 세계가 경계하는 미국산 쇠고기에 빗장을 풀었다. 그러면서 먹지 않으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 말은 시민을 위해 정부는 할 일이 없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그런 정부를 시민이 신뢰할 것 같지 않다. 어떻게 먹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인가. 미국산 쇠고기라는 사실을 누가 어떻게 구별할 수 있다는 건가. 텔레비전 토론회에 나온 외교관이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을 옹호했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위생검역은 절대 외교의 대상을 수 없다. 주권을 가진 어느 국가도 외교를 위해 검역을 포기하지 않는다.
정부는 쇠고기 협상에서 범한 ‘치명적 실수’를 어쩔 수 없이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협상은 없다고 고집한다. 혹시 ‘인위적 실수’는 아니었을까. 우리 정부에 화답한 미국의 수출업자는 한국에 팔 뼈와 내장을 선적할 모양이다. 한국에 쓰레기를 버리고 돈까지 받는다니 그처럼 미국 도축업자를 흥분되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미국인이 싫어해 남아도는 30개월 이상의 젖소, 송아지 낳다 지친 암소와 수소도 내다 팔 수 있다. 어디 그뿐이랴. 특정 위험물질도 돈 받고 버릴 수 있다.
이제 시민의 행동이 남았다. 미국산 쇠고기를 안 먹을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 표시제는 물론이지만, 미국 도축장을 우리 소비자가 투명하게 참관해야 한다. 무엇보다 신뢰를 바탕으로 안전한 쇠고기를 안심하며 살 수 있는 매장을 찾아야 한다. 안전보다 안심이다. 10년 뒤 나와 후손을 위한 정언명령이 그렇다.
첫댓글 오늘은 글이 늦었습니다. 이침 먹고 잠깐 누웠는데 점심 시간이 지났군요. 이것 참. 이 글은 인천의 한 일간지에 기고된 글입니다. 두 달 전, 광우병 파동이 생길 때입니다. 확률 이야기도 썼는데, 조금 정정합니다. 유럽 통계(가장 확실)는 다우너 소 1만마리 중 30마리 정도가 광우병이고, 정상 소 10만 마리 중 30마리 정도라더군요. 물론 광우병 소를 도축해 그 일부를 한 번 먹는다고 모두 광우병이 되지 않지만 그 한 마리를 여러 명이 여러 번에 걸쳐 싹 먹는다면 확률은 꽤 높아질 겁니다. 참고로 미국의 경우 1000마리 중 3마리 꼴로 다우너가 생깁니다. 문제는 그 소와 정상 소의 도축라인이 구별되지 않는다는 거죠.
미국산 쇠고기 유통을 시작했습니다. 구내식당 집단급식을 못믿겠으니 이제 도시락 싸가지고 출근해야겠어요.
고기 좋아하는 사람은 참 난감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