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중>탈출 작전 19 (3)
글 / 김광한
김구와 묘지기는 어떤 국수집에 들어가 국수 가락을 집어먹고 있는데, 노동자 차림의 젊은이와 경찰들이 서로를 눈을 맞추어 김구를 쳐다보았다. 수상쩍다는 표정들이었다.
이윽고 묘지기를 불렀다. 그리고 김구도 불렀다. 김구는 서투른 광동어로.
「나는 광동상인이요. 이곳에 초청을 받고 유람 차 나왔소.」
하면서 묘지기가 경찰에게 무슨 말을 하는가를 주시했다.
묘지기는 본 대로 들은 대로 이야기했다.
「해염 주씨 댁 큰아가씨가 산장에 모셔 온 귀하신 손님입니다.」
그러자 경찰들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대로 돌아갔다. 주씨의 세력은 그곳에서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산장으로 돌아와 김구가 묘지기에게 물었다.
「경찰들이 고분고분 돌아가는데 어쩐 일이오?」
「경찰들이 장 선생(김구)에 대해 묻기를, 광동인이 아니고 일본인이라고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죠. 주씨 댁 큰 아가씨가 일본인과 어떻게 동행하겠소? 일본인이라면 이를 갈고 있는데, 대갓집 아가씨가 일본인과 상대하는 걸 보았소?」
며칠 후에 안공근, 엄항섭, 진동손이 김구가 있는 산장으로 왔다. 그들은 응과정의 빼어난 경치를 구경하고 다시 가흥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진(鎭)에서 경찰이 김구에 대해 추궁한 후 산장을 비밀리에 감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별 단서를 잡지 못하자 경찰국장이 해염 주씨 집에 출장 나와서 산장에 머물고 있는 광동인의 정체(김구)를 조사했다고 한다. 저부인의 부친이 김구가 오게 된 사실 그대로를 이야기하자 경찰국장은
「오 그러십니까? 있는 힘을 다해 보호해 드리겠습니다.」
하고 경의를 표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시골 경찰이 보호하면 얼마나 보호해주겠는가, 김구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어서 다시 가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김구는 그 길로 해염현성에 들어가 청나라 건륭황제(乾隆皇帝)가 남쪽 지방을 순시했을 때 주연을 베풀던 누방(樓房)을 구경했다. 건륭황제는 청나라 6대 황제로 60여 년간 재위 하면서 청나라의세를 크게 확장했다. 외치(外治)뿐 아니라 사고전서(四庫全書) 편찬 등 문화사업도 벌인 황제이지만 순행(巡行)이 매우 사치스러웠다.
김구는 가흥으로 되돌아와 작은 배를 타고 매일 남호(南湖)로 나가 뱃놀이를 하기도 하고, 시골 가서 닭을 사다가 식도락을 즐기기로 했다. 김구의 나날은 이렇게 평화스러웠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조국이라는 두 글자가 각인돼 있었다.
「내가 과연 이대로 여기서 놀이나 즐기고 시간만 보내도 되는 것일까.」
김구는 빼어난 경치를 보면서도 이렇게 자책했다.
진동손은 손용보라는 농부는 상당히 친했다. 진송손의 소개로 잠시 김구는 엄가빈의 있는 손용보의 집에 묵게 되었다. 김구는 스스로 노인이 되어 그 집식구들이 모두 논밭으로 일하러 나간 후 빈집에 남아 아이가 울면 아이를 안고 논밭으로 아이 엄마를 찾아 주러갔다. 집과 농토가 멀리 떨어져있어 한참 동안 걸어야만 했다. 그러면 아이 엄마는 너무 송구스러워 고맙다는 소리를 몇 번씩이나 했다.
시골의 5, 6월은 양장업 시기이다. 김구는 양장업을 하는 집들을 돌아다니며 부녀들이 고치에서 실을 뽑는 것을 구경했다. 60여세쯤 된, 얼굴에 주름투성이인 노파가 물레 곁에 솥을 거고, 물레 밑에 발판을 달아 오른발로 눌러 바퀴를 돌리고, 왼손으로 장작불을 지켜 누에고치를 삶았다. 그리고 오른 손으로는 물레에 실을 감는 것이었다. 김구가 친근감이 나서 노파에게 물었다.
「할머니는 나이가 몇이오?」
「육십 좀 넘었소.」
「몇 살 때부터 이 기계를 사용했소?」
「6, 7살 때부터요.」
「그럼 60년 전 이전에도 이 기계였소?」
「물론이오. 이 기계는 어머니가 물려준 거요.」
김구는 머리를 끄덕였다. 아마도 이 기계는 수백 년 전부터 그들의 조상이 착안해 쓰여진 것이리라.
농가에 있으면서 농기구를 살펴보니 우리나라의 것보다 편리해보였다. 전답에 물을 대는 것만 해도 그렇다. 나무 톱니바퀴를 소나 말에 걸고, 여러 사람이 밟아 굴려 한 길 이상이나 호수 물을 끌어올려 물을 대니 어마나 효과적인가.
김구는 중국 농촌지방에서 묵으면서 농기구와 관련된 것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편리한 것들을 보고 배우지 않고 헛된 것만 받아들인 것 같다는 생각을 가졌다. 아무런 쓸모없는 망건이나 갓 같은 것을 받아들여 의관이라 해놓고 팔자걸음이나 걷던 양반들의 행세가 김구는 못마땅했던 것이다.
김구의 방랑은 또 시작되었다. 엄가빈에서 다시 사회교의 엄항섭의 집으로와 오룡교 진동손 집에서 숙식할 때였다. 낮에는 주애보의 작은 배를 타고 인근 운하로 다니며 여러 농촌을 구경하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가흥성 내에는 몇 개의 고적이 있었다. 고대의 부자로 유명한 도주공(陶朱公)의 집터가 있고, 암소 다섯을 기르던 축오자 바깥을 파서 만든 양어장이 있는데, 문 앞에 도주공 유지라는 비석이 있었다. 도주공이란 사람은 춘추 말에 월(越)왕 구천의 신하인 범려이다.
김구가 하루는 심심해서 동문(東門)으로 가는 대로변 광장으로 나가 보았다. 그곳에는 군대의 조련장(훈련장)이 있었다. 제식훈련을 비롯해 여러 가지 신식훈련이 흥미 있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련을 하던 군관 한사람이 부리나케 뛰어나오더니 김구의 얼굴을 유심히 아래위로 살폈다. 그 사람은 김구에게,
「어디서 온 사람이요?」
하고 물었다.
김구는 혹시나 이 사람이 정탐꾼이 아닌가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가만있자니 수상쩍게 생각할까봐,
「나는 광동사람이오.」
했다.
그러나 그 군관역시 광동사람이었다. 김구는 그 길로 보안대로 끌려가 취조를 받게 되었다. 취조관이 꼬치꼬치 캐묻고 험악하게 대하기에 김구는.
「사실 나는 중국인이 아니다. 당신의 단장을 면담케 해 달라. 그럼 내 신분을 밝히겠다.」
하고 말했다. 김구의 요구에 단장은 나오지 않고 부단장이 나왔다. 김구는 부단장에게 말했다.
「나는 한인(韓人)이요. 상해 홍구사건에 연루돼 거주가 곤란해 이곳 저한추의 소개로 오룡교 진동손의 집에 머물고 있소.」
부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경어를 썼다.
「존함은 어떻게 되시오?」
「장진구요.」
그러자 경찰은 그 길로 남문의 저씨 댁과 진씨 댁에 가서 신원조회를 해보았다. 네 시간쯤 뒤 진동이 와서 신원보증을 섰다. 그런 뒤 풀려났다.
저한추는 김구가 홀아비로 사고무친하게 혼자 쓸쓸히 사는 것이 안타깝게 생각되었는지 이렇게 권고를 했다.
「김 선생께서는 홀아비가 아니오? 나이도 어지간하신데 인생이 무척 쓸쓸하시겠소. 혁명도 좋지만 혁명을 하려면 가정이 있어야 하오. 마침 내 친우 중 과부가 된 사람이 있소. 중학교 선생으로 있는데 선이나 한번 보시고 마음에 맞으면 취함이 어떻소?」
김구가 고개를 저었다.
「중학교 교원이라면 지식인일 텐데 나의 비밀이 탄로 날 것이 분명하오. 차라리 여사공(搖船女)을 취함이 좋을 것 같소. 주씨(주애보)같은 일자무식이면 내 비밀이 보장될 것이오.」
김구는 그 후 선상생활을 계속했다. 오늘은 남문 호수, 내일은 북문강변에서 자고, 낮에는 땅위에서는 행보 할뿐이었다. 김구는 하루하루가 초조했고 한편으로는 허망한 시간이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이래서는 안 된다.」
다짐을 했지만 경치가 너무 좋고, 생전 처음 느껴보는 인간적인 시간들이 마냥 흘러가기만 했다. 문득 어머니의 실망하는 주름진 얼굴이 들어왔다.
⊙ 발표일자 : 1999년04월 ⊙ 작품장르 : 장편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