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고기장사’에 종사해 온 하나로축산 조종래 이사는 “한우도 기후에 따라 미묘한 맛의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
2008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함께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 시작된 지 6년이 지났다. 세간을 뒤흔들던 광우병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고 미국산 소고기는 호주산 소고기와 함께 우리 국민의 식탁을 책임지는 공신이 됐다. 그러나 아직도 언론에서 미국산 소고기나 기타 수입소고기에 대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꺼내기는 조심스러운 실정이다. 육류 수입과 유통의 현장은 어떨까. 현장에서는 “유통업자건 도매업자건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위화감은 잊은 지 오래”라고 한다. 하나로축산 조종래 이사는 지난 30년간 고기 수입과 유통, 판매업에만 종사해 온 현장 전문가로 현장에서 겪고 보고 들은 이야기를 《월간조선》에 전해 줬다. 그는 “이론이 아니라 순전히 내 오랜 경험에 따른 것”이라는 전제로 얘기를 풀어 나갔다. 30년간 ‘고기와 함께 웃고 울었다’는 그에게 일류 레스토랑이나 고급 정육점, 대기업 유통업체에서 듣기 힘든 생생한 ‘고기 이야기’를 듣고 문답식으로 정리했다.
수입소고기는 절반이 호주산
Q : 고기 중 국내에서 가장 소비량이 많은 고기는.
A : 돼지고기다. 돼지고기를 100이라고 봤을 때 소고기가 50, 닭고기가 50, 양이나 오리 등 기타 고기는 10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돼지고기 가격이 소고기의 3분의 1이라는 점에서 볼 때 한국인은 다른 국가에 비해 소고기를 매우 선호하는 편이다.
Q : 현재 한우와 수입소고기의 시장 점유율은.
A : 한우와 수입산이 50:50 정도다.
Q : 가장 많이 수입되는 소고기 부위는.
A : 갈비-등심-양지-앞다리-목심 순이다.
Q : 현재 국내 수입소고기의 원산지는 미국산이 가장 많은가.
A : 미국산 소고기는 2007년부터 수입되기 시작했고 그전에는 90% 이상이 호주 또는 뉴질랜드산이었다. 현재는 호주산이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미국산이 그 3분의 2 수준, 나머지는 뉴질랜드·캐나다·멕시코에서 수입된다. 현재 한국이 소고기를 수입하는 국가는 그 5개국이 전부다. 유럽산 소고기는 광우병 발병 이후 수출이 되지 않는다. 남미산 소고기는 생산량은 많지만 유통 기한과 냉장 문제로 수입되지 않는다. 그 외의 국가들은 소고기를 내수용으로만 이용할 뿐 수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Q : 수입육은 모두 냉동육인가.
A : 총 수입량의 5분의 1 정도는 냉장육이다. 냉장육은 신선도와 유통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다. 고기는 냉동과 해동과정을 거치면서 근육조직이 손상되고 조직내 영양분과 맛 성분이 빠져나오게 된다.
Q : 한우는 수출이 전혀 없나.
A : 돼지고기와 닭고기는 필리핀이나 베트남 등 일부 국가로 수출하지만, 한우는 수요가 모자라 수출은 없다.
Q : 한국인들은 애국심과 별개로 한우가 훨씬 맛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A : 일리가 있다. 소고기의 맛 성분인 ‘올레인산’이 한우 품종에 더 많다는 과학적 연구결과가 있다. 하지만 미국이나 호주산도 올레인산이 부족한 것은 아니며, 한국에서 자란 소의 풍미가 한국인 입맛에 맞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다.
미국산과 호주산의 차이는
마블링이 화려한 최고급 소고기 등심. |
A : 미국 소와 호주 소 모두 넓은 대지에서 방목해 키우기 때문에 운동량도 많고 건강하게 자라는 편이다. 미국 소는 곡물을 먹여 키운 그레인페드(grainfed)가 많고, 호주 소는 풀만 먹은 그래스페드(grassfed)가 많다. 소는 원래 풀을 먹고 자라는 동물이기 때문에 풀을 먹여 키운 소가 자연 그대로의 상태라고 볼 수 있지만, 곡물을 먹여 키우면 살도 빨리 찌고 지방분이 많아져 고기가 부드럽고 감칠맛이 좋아지기 때문에 곡물을 먹이는 일이 많다. 탄수화물이 많은 곡식을 먹고 자란 소는 초원에 방목돼 풀을 먹고 자란 소에 비해 기름기가 많이 돌아 육질이 훨씬 부드럽다. 고기의 등급은 곡식을 먹인 일수에 따라 차이가 난다. 120일 이상이면 프라임(prime)급이며, 300일 이상이면 최고급으로 분류된다.
Q : 그렇다면 호주산보다 미국 소고기가 더 맛있다고 볼 수 있나.
A : 고기의 맛은 용도와 입맛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일반적으로 마블링(빨간 살 속에 하얀 기름기가 그물처럼 촘촘히 박힌 형태)을 좋아하는 한국이나 일본 사람에겐 호주산보다 미국산 소고기가 더 맛있게 느껴질 수 있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그렇게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스테이크나 스튜 등 서양식 요리를 한다면 다소 기름진 미국산보다 호주산이 낫다고 레스토랑의 주방장들은 이야기한다.
Q : 호주산은 기름기가 별로 없다는 것인가.
A : 꼭 그렇지는 않다. 호주산 소고기라고 모두 같은 게 아니고, 호주 축산업계가 특화한 ‘와규(和牛·wagyu)’가 있다. 일본 고베에서 키우는 최고급 육종인 와규가 호주로 건너가 대규모로 생산되는 게 ‘호주산 와규’이며 와규에는 따로 표시가 붙어 있다. 와규는 곡물을 먹여 키워 한우나 미국산처럼 마블링이 많다. 호주와 뉴질랜드산 소고기의 품종 중 국내에 수입되는 것은 대부분 ‘호주산 와규’ 또는 ‘블랙 앵거스’ 종이다. 검정소인 블랙 앵거스는 흰 소나 누렁소에 비해 육질이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Q : 결국 국내에서 맛보는 한우와 미국산, 호주산 모두 기름기가 많고 부드럽다는 얘기로 들린다.
A : 소매로 정육점이나 마트에서 팔리는 고기는 국거리를 제외하면 대부분 집에서 구워 먹기 위한 것이다. 국내 소비자들은 부드럽고 기름진 고기를 선호하기 때문에 정육점이나 마트에서는 한우, 미국산 그레인페드, 와규나 블랙앵거스 호주산 등을 구비해 놓는다. 소비자들이 잘 구매하지 않게 되는 앵거스 등 일반 육종은 조금 더 싸고 외식업체나 급식업체에서 주로 소비된다.
고기의 맛과 등급
소의 각종 특수부위들. 등심이 가장 비싸게 팔려 소 한 마리 중 절반이 등심값일 정도여서 등심만을 고집하지 않으면 좀 더 저렴하게 고급 소고기를 맛볼 수 있다. |
A : 아니다. 갓 잡은 고기는 사후경직 현상 때문에 질기다. 하루 이상 숙성시켜야 부드러워지고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된다. 에이징(aging·숙성)이라 해서 스테이크용 부위는 며칠씩 냉장고에서 숙성시키기도 한다. 심지어 ‘고기는 썩기 직전이 제일 맛있다’는 말도 있다. 실제로 부패할 지경까지 두고 먹으면 안 되겠지만, 냉장고에 며칠 두었다 먹어도 괜찮다. 고기가 제대로 냉장된 경우 유통될 수 있는 시간은 60일 정도다.
Q : 한우와 수입육 모두 등급이 있다던데.
A : 한우 등급과 수입육 등급이 다르다. 한우는 1등급 투 플러스(1++), 1등급 원 플러스(1+), 1등급, 2등급, 3등급, D등급(등외) 순으로 매겨진다. 미국이나 호주산 앵거스는 프라임(PRIME), 초이스(CHOICE), 셀렉트(SELECT), 스탠더드(STANDARD) 순이다.
Q : 한우 등급의 기준은.
A : 근육내 지방도, 육색, 지방색, 조직감, 성숙도 등으로 판단한다. 이 등급은 고기가 얼마나 부드럽게 씹히며 즙이 많고 향미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으로 결국 맛, 즉 고객의 만족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Q : 수입육의 등급 기준은.
A : 등급 분류는 국가마다, 혹은 회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한우 등급 기준인 ‘근육내 지방도’, 즉 마블링 분포도가 그 기준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마블링 분포는 사료 비율 중 곡물의 비중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결국 곡물을 얼마나 오랜 기간 먹였느냐가 고기의 등급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 셈이다.
Q : 한우의 최고등급인 1++는 전체의 몇% 정도인가.
A : 도축한 소 중 5% 정도만이 1++ 등급을 받게 된다.
Q : 국내 각 지자체가 내놓은 한우 브랜드들이 많은데. 브랜드별로 어떤 차이가 있나.
A : 브랜드한우는 키우고 도축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공을 들이는 만큼 어느 브랜드 할 것 없이 맛이 뛰어나다. 일반인은 잘 못 느끼겠지만 한우를 많이 먹어 본 사람에게는 강원도 지역 브랜드한우와 경상·전라 등 남쪽의 브랜드한우는 다소 차이가 느껴진다. 강원도 지역은 기후가 서늘하기 때문에 좀 더 소들이 몸을 움츠리거나 지방을 축적하게 되고, 그래서 고기에 조금 더 기름기가 많다고나 할까. 물론 남쪽지역의 한우도 특유의 부드러움이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이 더 맛있다고 하기는 힘들다.
한국인의 고기 소비
한우고기는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고 공급이 한정돼 있어 수입소고기의 두 배 이상 가격에 팔린다. |
A : 작년 기준으로 소고기 50만t, 돼지고기 100만t, 닭고기 50만t 정도다. 1인당 연간 소비량은 소고기 10kg, 돼지고기 20kg, 닭고기 10kg 전후로 보면 된다. 10년 전보다 20% 정도 늘어난 수치로 육류 소비량은 꾸준히 늘고 있다.
Q : 한국인이 좋아하는 부위가 따로 있나.
A : 정육점이나 마트에서 소매로 판매되는 고기의 경우 소는 등심, 돼지는 삼겹살이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한다. 집에서 구워 먹는 부위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돼지 등심이나 안심 등 한국인에게 인기가 없는 부위는 주로 식당이나 급식업체에서 불고기 등으로 소비된다.
Q : 돼지고기도 소고기처럼 미국과 호주에서 수입하나.
A : 국내에서 소비되는 수입돼지고기는 미국산과 칠레산이 제일 많고, 캐나다와 유럽에서도 많이 수입한다. 프랑스, 벨기에, 헝가리, 덴마크, 네덜란드, 폴란드 등 다양하다. 작년에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벨기에에서 각각 1만t 이상씩 수입됐다.
Q : 닭고기는 어느 나라에서 수입하나.
A : 수입량의 절반은 브라질산이고, 미국과 덴마크산이 나머지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한국은 치킨집 수요가 많아 닭 수입량이 많은 편이다.
스테이크 고기는 대부분 수입산
Q : 레스토랑들이 스테이크에 수입육을 쓰는 이유는.
A : 가격 문제도 있지만, 한우는 일부러 스테이크용으로 기르는 경우가 거의 없어 스테이크용으로 기른 소처럼 등심과 안심 부위가 특별히 부드럽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외국인들은 한우 스테이크가 질기다고 이야기한다. 제대로 기른 소의 냉장 수입육은 한우보다 더 비싼 경우도 많다.
Q : 스테이크용으로 기른 소란.
A : 외국에서 소고기 중 가장 비싼 부위는 채끝등심, 안심 등 스테이크용 부위다. 이 부위에서 제대로 값을 받아야 소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외국의 육우 농가들은 스테이크용 부위의 마블링이 잘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연구를 한다고 한다. 한우 농가에서는 그런 일이 별로 없다.
Q : 스테이크를 레스토랑처럼 굽기가 쉽지 않은데, 주방장들은 고기가 얼마나 익었는지 어떻게 아나.
A : 대형 외식업체는 스테이크의 두께와 크기, 화력 등을 규격화해서 정확하게 구워 낸다. 베테랑 주방장은 눈썰미와 손가락을 이용한다. 익어 가는 색깔만 봐도 어느 정도 구워졌는지 알 수 있으며, 손으로 살짝 눌러 고기의 탄력과 느낌으로 가늠하기도 한다.
Q : 스테이크 굽기는 어느 정도가 가장 맛있는지.
A :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좋은 고기라면 레어(rare)나 미디엄레어(medium-rare)로 살짝 익혀 먹는 것이 고기의 원래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Q : 고기 수입량과 유통량이 어마어마한데, 대기업은 이 사업을 하지 않는 것 같다.
A : 대기업 계열사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규모가 작고 여타 분야처럼 대기업이 독과점을 할 수 없는 구조다. 육류 수출입은 컨테이너 단위로 이뤄지기 때문에 수요공급 예측이 조금이라도 틀리면 큰 손해를 보게 된다. 실제로 외환위기 전후, 미국산 소고기 수출허가 전후로 업계에 많은 부침이 있었다.
맛있는 고기 고르기
Q : 실패하지 않고 고기 고르는 법은.
A : 마블링이 섬세하게 골고루 잘 분포된 고기가 맛있다는 것은 대부분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육안으로 판별될 정도로 마블링이 훌륭하다면 당연히 엄청나게 비싸다. 적당한 가격대에서 좋은 고기를 고르려면 절단표면이 건조하지 않고, 색이 밝은 선홍색이며 광택이 있는 고기를 고르면 된다. 또 지방의 색으로 식별할 수도 있는데, 지방의 색이 하얗거나 우윳빛을 띠고 있는 것이 좋으며 누런 기가 도는 것은 신선도가 떨어지는 고기다.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지방이 누렇다면 늙은 소이거나 건강하지 못한 소일 가능성이 있다. 육질이 우수하고 등급이 좋은 고기라 해도 관리가 잘 되지 않았거나 오래 저장된 고기는 등급이 낮고 신선한 고기보다 맛이 떨어질 수 있어 고기는 신선도가 중요하다. 고기의 절단면이나 덩어리고기의 겉면이 선홍색이 아니라 짙은 적색이나 갈색, 회색 등을 띤다면 신선한 것이 아니다.⊙
출처 월간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