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6회 광주 빛고을 울트라 마라톤
전라남도에서 열리는 몇 안되는 울트라 마라톤 대회 중 가장 역사가 깊고 코스 난이도가 높다고 알려진 대회.
50km(정확히는 51.8km)와 100km 두 종목으로 나누어 치뤄지며, 광주시청을 출발 왼쪽으로 영산강을 따라 올라 시계방향으로 무등산 충장사, 담양 소쇄원, 안양산 자연휴양림, 그리고 화순 너릿재를 지나 다시 광주천을 따라 시청으로 복귀하는 코스이다. 총 상승 고도가 1355m 이며, 그 중 안양산 자연 휴양림은 거의 400 고지를 넘어가니 울트라 마라톤치고는 경사가 꽤 있는 편이다. 하지만, 영산 강변과 무등산 자락을 오르내리는 만큼 주로 풍경이 멋지다고 하고 무엇보다도 "반딧불"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빛고을 울트라 마라톤 코스도. 오리 모양. ^^
작년 가을 순천만 울트라 마라톤 100k, Trans-제주 트레일런 100k 이후 세번째 100km 도전이다. 사실 대회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참가 계획이 없었는데 (계획이 없었으니 훈련도 당연히 안했을 거고...ㅋㅋ) 왜 갑자기 신청하게 되었을까? 후기를 쓰는 지금도 동기가 모르겠다.ㅎㅎ 배고플때 시장을 가면 이것 저것 막 충동구매 하는 것처럼, 화대 종주 이후 가을까진 참가할만 한 마라톤 대회가 없다보니 아쉽고 어디라도 뛰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무 생각 없이 질렀나 보다. 근데 그게 100km.^^;;
거리가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굳이 100km를 신청한 이유는, 작년 순천 대회 기억이 너무 좋았고, 막판 80km 이후 퍼져서 포기해버린 12-언더 기록도 다시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고, 가장 결정적이였던 건 이 대회에선 "반딧불"을 볼 수 있단다. ^^
2017.09.09 순천만 울트라, 101km, 총고도 1104m, 12시간 23분
2017.10.14 트랜스 제주 트레일런, 100.8km 총고도 3400m, 18시간 10분
2018.06.09 광주 빛고을 울트라, 100km 총고도 1355m, ???
대회 3주전에 참가 신청을 했으니, 대회 준비 할 시간도 여유도 없다. 작년 첫 대회때는 사전주 개념으로 부주산 15바퀴 60키로 주를 했었는데, 올해는 대회 3주전 화대 종주 47k 한 걸로 퉁 치기로 했다. ^^ 마지막 두 번의 주말은 각각 30키로씩 LSD. 대회 준비를 마쳤다. 대회 하루 전날 배낭을 꾸리면서 가장 신경썼던 부분은 먹거리. 지난 동두천 대회도 그렇고 화대종주도 그렇고 대회 후반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던 이유가 대회 중간중간 충분한 보급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해서 파워젤과 초콜렛바를 넉넉히 챙겨넣고, 아미노바이탈 4개와 식염포도당 12알. 물론 햄버거도 두 개... 챙겼다. ㅎㅎ
6월 9일 토요일, 대회 당일
토요일 수업을 조금 일찍 마치고, 오후 3시경 광주행 버스.
광주 버스 터미널에서 다시 택시를 타고 대회장인 광주 시청 야외 음악당에 도착하니 4시 30분. 대회 출발까지는 아직 1시간 30여분 여유가 있다. 배번과 기념품을 받고 고히 모셔온 햄버거 하나를 꺼내 출발전 식사를 대신한다. 기온이 30도까지 올라간다고 해서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오후 들어 조금씩 비구름이 모여들어 햇볕이 따갑지는 않다. 대신 피부로 느껴지는 엄청난 습도.
출발전 대회장 모습
출발 시각 6시가 다가오니, 점점 많은 주자들이 대회장으로 모여든다. 올해 참가자는 50km 포함, 대략 200여명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훨씬 많았다고 하는데, 울트라 마라톤 인구도 점점 줄어드나 보다. 대신 트레일런 배낭을 맨 주자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사회자가 이번 대회 참가한 클럽들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주는데, 고맙게 목포 마라톤 클럽 이름도 들린다. 혹시나 목포 타 클럽 분들이 오셨나 둘러봐도 역시나 나 혼자.^^;; 유일하게 몇 번 대회에서 낯이 익은 광주 클럽 혜수씨가 아는 척을 해준다. 울트라 연맹 회원이자 이번 대회도 경험이 많은 모양. 연습을 많이 했다고 10~11시간을 목표로 한단다. (나중 기록을 보니 10시간 56분, 여자부 1위, 전체 5위. 대단하다.)
점심으로 짜장면 곱배기에 햄버거까지 먹었더니 배가 잔뜩 나왔다. 원래 나온건가? ㅋㅋ
이번 대회 급수대(CP)는 거의 10km 간격으로 되어있어, 최대한 물을 적게 가지고 뛰기로. 양쪽 500m 물병에 반만 물을 채우고 출발선으로. 6시 정각 200여명의 주자들이 초여름밤 250여리 길을 달린다.
얼굴이 자못 비장. ㅎㅎ 손에 쥔 건 땀에 젖을까 비닐로 싼 핸드폰.
출발~20km
시청 음악당을 나와 건널목을 건너 광주천 자전거 도로로 내려간다. 그리고 좌측으로...
로드 울트라 마라톤은 주로 자전거 도로와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지방 도로를 달리기 때문에 몇 군데 갈림길만 잘 기억하고 있으면, 알바할 걱정이 없다. 출발전 몇 번 숙지한 코스도에 따르면 초반 30km는 거의 평지. 출발 후 대략 2.3키로 지점에서 우회전, 영산강 상류쪽으로 달리기 좋은 자전거 도로를 따라 편안하게 달린다. 조금씩 빨라지는 페이스를 6분~6분 10초 정도로 맞추고, 몸 움직임을 최대한 줄이는 주법으로 초반 20km까지는 웜업이라는 생각으로 달린다.
잘 정비된 영산강 천변 공원에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나온 가족과 친구들이 한가로운 토요일 저녁을 즐기고 있다. 엄마 아빠 손잡고 나온 아이들의 웃는 모습을 보니, 집에 두고 온 가족들에게 사~알짝 미안한 맘도.ㅎㅎ 하지만 이왕 나온거 즐겁게 뛰다 가자! 저 멀리 선두권으로 보이는 두 개의 그룹이 크게 무리를 지어 500m 간격을 두고 달려간다. 그 와중에 내 속도가 늦는건지, 아니면 고수들이 많이 나온건지 계속 추월당한다. 신경쓰지 않고 내 속도로. 일단 1차 목표를 50km까지 5시간 초반으로 잡았다. 그게 가능하면 나머지 50km는 체력이 떨어지는 걸 감안해도 12시간 안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역시 기록 신경쓰지 않고 천천히 뛰는 것이 제일 즐겁다.
대략 10키로 지점. 벌써 상의와 하의가 땀으로 다 젖었다.
첫 CP인 호남고속도로 다리 밑은 물 보급 없이 그냥 지나친다. 이제 막 자리를 잡은 호흡이 끊기는 것도 좀 그렇고, 아직 초반이라 그런지 물이 많이 먹히지는 않는다. 14km 지점이였나, 어느 순간 자전거 길에서 올라와 강둑 위를 달린다. 안양에서 온 여성 주자 한 분을 포함한 한 무리의 주자들이 추월해 가더니 교각 밑을 지나 크게 우회전을 하여 달려간다. 어라? 아직 우회전 지점이 아닌데? 맨 뒤로 달리던 여성 주자가 아무래도 길이 잘못 든 듯 하다며 내게 길을 물어본다. 손목 GPS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직진. 두 번째 보급소까지 그 분과 같이 달렸다. 광주는 처음이지만 울트라 경험으로는 대선배. 날이 어두워지니 친절하게 내 가방뒤에 매달린 야간 경광등을 손수 켜준다.
0~20km 구간 랩 2:02:16 평균 페이스 6분 7초.
20km~40km
두번째 CP가 있는 고창 담양 고속도로 교각 아래를 지나, 5.18 국립 묘역으로 향한다.
이번 대회 첫 오르막이 나오는 지점. 22키로 지점에서 시작된 오르막이 대략 1km가량 지속된다. 아직 초반이라 꾸준한 속도로 달려 올라간다. 다행히 밤이 될수록 기온이 떨어져 달리기에 적당하다. 5.18 국립 묘역 정문을 지나 광주-담양간 도로를 만날 무렵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주자들이 있다. 반환점을 찍고 오는 51K 주자들이다. 그 주자들은 25키로, 난 75키로 남았다고 생각하니 깝깝~하다.ㅎㅎ 석곡동을 지나 제3 CP가 있는 제4수원지까지 가는 길이 은근한 오르막이다. 20~30K 구간의 평균 페이스가 6분 20여초로 떨어진다.
제 2 CP에서는 그러려니 했는데, 제 3 CP에서도 그게 없단다. 냉수. ^^;;
한 3시간 땀을 흘렸으니 슬슬 급수를 해주어야 하는데, 실온에 보관된 미지근한 물로는 도저히 갈증이 가시질 않는다. 심지어 함께 준비된 콜라도 미지근하다. ^^;; 밤 늦게 몇 시간씩 고생하시는 자원봉사자 분들께 뭐라 할 수도 없고... 하지만 난 알고 있었다. 이 CP 근처에는 시원한 콜라와 이온음료를 파는 자판기가 있다는 걸..ㅎㅎ 그리고 땀에 젖을까 비닐로 곱게 싼 (물에 젖으면 자판기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 ㅋ) 천원짜리 몇 장이 바지 호주머니에 있다는 걸. 이런 준비된 러너같으니..ㅋㅋ 자판기 앞에서 한 1000 번 고민하다 아직 대회 초반이고 시간도 아깝고 해서 미지근한 물로 물통을 채우고는, 무등산 충장사로 가는 긴 오르막을 올라간다.
광주 빛고을 울트라마라톤 고저도. 총 4번의 긴 오르막이 있다.
처음엔 은근한 오르막이였던 길이 33키로지점부터 급격한 오르막으로 바뀐다.
도저히 뛸 수가 없어 거의 걸어서 올라가는데, 이 길을 또 뛰어가는 주자들도 있다. 경사도 경사지만 굽이굽이 올라가는 왕복 2차선 산길이라 갓길이 거의 없고 늦은 시간임에도 차량 통행이 많아 위험하다. 차량 진행방향으로 걷는 것보다 마주 오는 차량을 피하는 것이 안전할 것 같아 반대편 차선으로 옮겨간다. 그래도 간간히 내려오는 차량중에는 창문을 열고 "화이팅"을 외쳐주는 관광객들이 있어 힘이 난다. 원효사로 올라가는 입구, 충장사에 도착하니 경사가 조금 순해진다. 원효사까지는 2.5km. 이번 대회에서 유일하게 반환 구간이며 원효사 입구에서 턴, 다시 충장사 입구까지 내려오면 4번째 CP.
원효사 가는 도중 혜수씨를 만났다. 벌써 반환점을 찍고 오는지, 나보다 대략 3키로는 앞서 가고 있다. 대단.
그리고 대회 후반부를 계속 엎치락 뒤치락 했던 A, B, C(어두워서인지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오직 유니폼과 배낭만 기억난다.) 세 선수들도 원효사 오르는 길에 만났다. 4번째 CP 약간 못 가서 40km 구간 표시가 보인다.
20~40km 구간 랩 2:19:32, 평균 페이스 7분.
40km~60km
제 4 CP에서 금곡 마을까지는 계속 내리막이라 오르막에서 까먹은 시간들은 보충도 할 겸, 쉼없이 달린다.
순천만 대회에서는 40키로 초반에 첫 힘든 고비가 있었는데, 이번엔 40km부터 내리막 구간이라 그런지 뛸 만하다. 생각보다 긴 내리막을 내려와 마을로 접어드는데, 희미한 가로등 사이로 하얗게 불 밝힌 24시간 편의점 간판이 목마른 주자들을 유혹한다. 나보다 300여 미터 앞선 여성 주자와 그 일행 분이 편의점으로 향한다. 아까 무등산 오르막때 끝까지 뛰어서 올라갔던 그 분들이다. 아마 시원한 음료가 필요했을 듯. 시원한 콜라 생각이 간절했지만 이번 아니면 추월할 기회가 없을 거 같아 가던 길을 계속 간다. 그런데...
마을 중간쯤이였나... 불꺼진 민가 사이로 빨간색 음료 좌판기 두 대가 눈에 확 들어온다. 아, 이번엔 못 참아...ㅎㅎ
마음이 급하니, 비밀봉지에서 천원짜리 한 장을 꺼내 투입구에 넣는데, 한 1년 걸리는 느낌이다. ^^;; 그리고 덜컹. 얼음처럼 차가운 콜라 한 캔이 손에 잡힌다. 세상에서, 내 평생 가장 맛있는 음료를 맛보았다. 작은 음료 캔에 온 몸이 리프레쉬되는 느낌. 그 힘으로 이번 대회 중간 지점인 제 5 CP까지 쉬지않고 달린다. 50km 지점 통과, 출발 후 5시간 30분 걸렸다.
간간히 내리는 비를 맞으며, 두번째 오르막인 유둔재 고개 초입에 자리잡은 CP 5에 도착했다.
무등산 오르는데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걸려, 50KM 통과 시간이 계획했던 것보다 다소 늦었다. 생각같아서는 물 보급만하고 출발할려고 했는데, 그럼 나중에 더 퍼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자원 봉사자분이 맛있게 말아주는 국밥 한그릇을 마시듯 삼켰다. 이미 소모한 파워젤, 아미노 바이탈 껍질들은 버리고 배낭에 남아있던 보급품들을 바지 주머니로 옮겨 넣었다. High5 에너지 소스와 제로정을 새 물통에 섞어 넣고 출발.
CP에서 나오자마자 급한 오르막. 잘 됐다. 소화도 시킬겸 조금 빨리 걷는다.
희미한 나무 그림자 사이로 저 멀리 고개를 오르는 듯한 주자의 헤드 렌턴 불빛이 보인다. 그런데... 그 움직임이 빠르고 불규칙하다. 마침 대회일이 음력 그믐에 가까울 때라 달이 없고 산속에 가로등도 없으니 오직 내 헤드랜턴만이 유일한 광원이다. 헤드랜턴마저 꺼버렸더니... 세상이 온통 까맣다. 완전한 어둠에서 보니, 아까 봤던 반짝거림이 한두개가 아니다. 길 양 옆 숲속에 마치 크리스마스 장식처럼 반짝거리는가 하면, 내 앞으로 날아드는 불빛도 있다. 반딧불이다. 장관이다라고 할 만큼의 큰 무리는 아니지만, 50km를 달려온 고단함을 순간 잊게 할 정도의 멋진 경험이었다. 이번 대회 참가 목표 중 하나를 근사하게 이뤘다.
반딧불들의 길 안내를 받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유둔재를 넘었다.
6번째 CP에 도착하기 위해선, 또 담양 고산리에서 또 다른 작은 고개 하나를 넘어야 한다. 고산리 가는 길, 잠깐 걷고 있는 사이 무등산에서 만났던 A 와 B 주자가 추월해간다. 아직 중반이니 이따 또 만나겠지 ^^ 고산리 삼거리 다와가서는 또 한 분이 내 옆을 빠르게 지나간다. 어두워서 배번과 얼굴이 잘 보이지 않지만, 배낭 모양으로 봐선 역시 무등산에서 내가 추월한 적이 있었던 C 선수이다.
고산리에서 화순 이서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는 짧지만 제법 가파르다.
가로등 하나 없는 고갯길이지만, 화순에서 넘어오는 도시의 불빛으로 산등성이의 실루엣이 뚜렸하게 보인다. 그리고 내 앞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깜박거리는 3 개의 빨간색 붙빛. 선행 주자들의 경광등 빛이다. 다들 걷고 있는지 불빛이 움직이는 속도가 느리다. 그 속도를 보니 잡을 만하다. 고개 정상에 못 미처 2명을, 그리고 내리막에서 1명을 재 추월했다. 이서면 다리를 지나 우회전, 제 6 CP까지 한번도 쉬지 않고 달려서 도착한다.
40~60km 구간 랩 2:30:10, 평균 페이스 7분 30초
60km~80km
이번 대회 하이라이트, 안양산 휴양림을 넘어가는 구간이다.
고갯길 정상이 해발 400m 정도이니 마라톤 코스치고는 꽤 높은 편. 6 CP에서 주는 시원한 오이 하나를 먹으며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다시 두 명의 주자들이 치고 나간다. 오르막에서 잡으면 되지 뭐...ㅋㅋ 몇 번의 장거리 대회 경험으로 볼 때 나랑 비슷한 기록의 주자들에 비해 내 단점은 평지와 약한 오르막 달리기. 여기에서 속도가 나야 하는데, 제대로 달리질 못한다. 대신 강점은 강한 오르막을 빠른 속도로 걷는 것. 평소에 많이 걷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본격적인 고갯길이 시작되는 안심제 저수지까지도 꽤 오르막이다.이제 대회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가는데, 생각보다 몸 상태가 괜찮다. 다만 오른쪽 발등의 통증이 조금씩 심해진다. 신발때문이다.
이번 대회 신발은 지난 순천 울트라때도 신었던 적이 있던 아식스 님버스.
바닥 쿠션이 좋아 체중이 많이 나갔을 때(지금도 썩 날씬한 편은 아니지만ㅋㅋ) 즐겨 신었던 신발로 요즘엔 장거리 대회나 LSD때 주로 신는데, 너무 오래 신었다. ^^;; 신발 밑창 바깥쪽이 거의 45도로 깍여 나갔다. 그러다 보니 안그래도 "O"형 다리가 더 벌어지고 발목과 발등 바깥쪽에 부담이 크다. 신발을 바꿨어야 했는데, 귀차니즘과 경비 문제로 너무 낧은 신발을 신고 나왔다. 앞으로 40km는 더 가야 하는데... 최대한 발 모양을 "11"자로 유지하며 조심 조심 걷. 뛰.
중-강-약-약-중
안양산 휴양림을 넘어가는 고개의 난이도가 이랬다. 첫 번째 고개에서 다시 두 명의 주자를 따라 잡고, 두 번째 길고 가파른 고개에선 거리차를 조금 더 벌렸다. 그런데... 경사가 가파라지고 호흡이 가빠질수록 알수없는 희열과 가슴속 뭉클함이 한없이 북받쳐오른다. 그분이 오셨다. ㅎㅎ 눈에 보이는 거라곤 밤하늘과 산의 희미한 경계선과 가끔씩 날아드는 반딧불. 대신 후각과 청각이 극도로 예민해지는데, 그 울창한 숲속의 싱그러운 향과 고요함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이번 대회 가장 힘든 구간이자 가장 짜릿했던 구간.
다섯개의 크고 작은 오르막을 다 넘어 내리막을 한참 내려오니 일곱번째 CP가 보인다.
CP 바로 못 미처 관광객들을 위한 화장실과 음료 자판기가 불을 환히 밝히고 있다.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이젠 끈적하다 못해 따갑다. 화장실에서 시원하게 세수 한번 하고, 두번째 "비상금" 찬스를 쓴다. 자판기에서 얼음처럼 시원한 이온 음료를 챙겨서 하나는 원샷, 또 하나는 물병에 담았다. 그 사이, 아까 열심히 추월했던 두 명의 주자가 다시 앞질러 간다. 이제는 무념무상. ㅋㅋ 멀어져가는 주자들의 불빛을 보며 남아있는 음료를 마저 털어 넣었다.
제 7 CP에서 화순읍까지는 어마무시한 급경사 내리막.
무려 목포에서부터 고히 모셔온 햄버거 하나를 손에 쥐고 천천히 달려보는데, 역시나 속도 내기가 어렵다. 내리막 막판에 또 한명이 추월해간다. 화순읍을 지나 이제 마지막 고개인 너릿재로. 구너릿재 터널쪽 도로로 오를 줄 알았더니, 안전상의 문제인지 도로 왼쪽 오솔길을 따라 너릿재 초입에 올라서니, 80km를 알리는 표지판이 반갑게 맞이한다.
60~80km 구간 랩 2:46:36, 평균 페이스 8분 20초.
80km~100km
80km 지점을 지나며 시계를 보니, 목표 시간이였던 12시간까지는 2시간 20여분 남았다.
남은 구간은 이 너릿재 오르막 2키로를 제외하면 내리막 2키로와 나머지는 뛰기 좋은 평지. 아, 또 고민이 된다. 딱 7분 페이스로만 뛰면 되는데, 몸이 자꾸 안될 것 같다고 신호를 보낸다. 이건 말할 것도 없이 훈련 부족 탓이다. 1분이라도 땡겨보고자 조금 빨리 걸어보는데, 앞에서 불빛 두 개가 나란히 걷고 있다. B 선수와 이번 대회에서 처음 뵙는 선배님. 빠른 걸음으로 추월, 간격을 벌려보는데 너릿재 정상 부근에서 다시 B 선수에게 따라잡힌다. 그리곤, 내리막에서 뒤따라 달려보는데, 점점 거리가 멀어지더니 결국 그 뒷모습이 마지막이였다. (이름이 기억에 남아 기록을 찾아보니 내 바로 앞 순위로 골인했다. 기록은 11시간 57분 30초)
너릿재를 다 내려와 8 CP에 도착하니 국수를 말아준다.
욕심이 조금 있는 선수라면 국수 안 먹고, 12시간을 목표로 함 달려 볼텐데... 난 또 그걸 거절 못하고 받아 먹는다.ㅋㅋ 한 그릇을 다 비울 무렵, 아까 너릿재에서 봤던 선배님이 CP에 도착한다. 그 후론 그 분과 동반주. 나보다 10년 선배고 풀 기록이 대략 3시간 20여분 대라 하신다. 아까 B 선수 얘기도 하는데, 그 분은 썹쓰리 주자라 한다. 어쩐지 빠르더라...ㅎㅎ 광주천에 접어드니 어느새 동이 트기 시작한다. 지난 순천만 대회때는 85키로 지점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은데, 이번 대회는 잘 먹어서 그런지 85키로 이후 힘이 살아난다. 동반주 했던 선배를 뒤로 하고 90키로 지점까지 거의 쉬지 않고 달렸다. 덕분에 또 한 명의 주자를 추월.
그리고 92km 지점인가? 마지막 9번째 CP.
여기선 시원한 수박 냉채 2잔을 연거푸 들이키고는 천변 반대편 자전거 도로로 건너간다. 주로가 지루하니 졸리고 지친다. 잠깐 걷고 있는 사이, 아까 그 선배가 자봉나온 지인이랑 동반주로 쏜살같이 지나간다. 마지막 힘을 내서 "가로등 뛰기"를 한다. 대략 50m 간격의 가로등을 4칸 뛰고, 한 칸 걷고. 결승점이 가까워질수록 힘이 나는지, 뛸 수 있는 칸 수가 늘어난다. 그리고 드디어... "광주 시청"이라는 커다란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마지막 스퍼트. 그 선배를 시청 입구에서 추월. 골인.
밤새 100km를 돌아,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왔다.
12시간 13분 30초.
13위/109명
아, 이제 숸한 맥주 마시러 가야지~^^
(거금을 내면) 멋진 기념패를 만들어 준다. ^^
무려 7190 칼로리 소모. 대회 직후 목욕탕에서 몸무게를 쟀는데... 출발전보다 200g이 늘었다.^^;;
체중 감량 실패 ㅋㅋ
초반 42km 지점까지 걸린 시간이 대략 4시간 35분. 첫 풀코스 기록보다 좋다.^^
이런... 사서 하는 고생이 재밌으면 안되는데... 안양산 휴양림에서의 감동이 자꾸 맴돈다.
일년에 딱 한 번씩만 할까??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