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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V이 최선의 번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
킹 제임스 성경이 현재 사용되는 최선의 번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
1. 나는 모든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성경이 무오하고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믿음과 삶에 대한 최종 권위임을 단언하고자 한다. 그렇지만 그 성경 어디에도 단 한 가지 번역 성경만 옳다고 말하고 있는 곳이 없다. 그 어느 곳에도 킹 제임스 성경이 최선이거나 유일한 ‘성경’이라고 되어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어떻게 보존하시는지 말해주고 있는 구절이 없기 때문에 킹 제임스 성경이 최고의 독점적인 권리를 갖는다는 주장이 성경적인 보증을 받을 수 없다. 따라서 이 주장은 다른 근거들을 기초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2. 킹 제임스 성경의 기초가 되는 헬라어 사본의 어떤 부분은 다른 사본에 비해 명백히 뒤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그 헬라어 사본의 편집자는 에라스무스(Erasmus)라는 고전학자였다.
그는 두가지 이유 때문에 최대한 빨리 사본을 출간해야 했었다. 첫째, 헬라어로 된 신약성경이 아직 출판되지 않았다는 것과 둘째, 몇몇 수도사들이 헬라어로 된 신약성경을 곧 출판 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던 것인데 그는 그들과 경쟁하고 있었다. 자연히 그의 사본은 모든 문서 중 가장 불완전하게 편집된 사본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그 사본은 수 백가지 오자 투성이였는데 아마 에라스무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두 부분은 특별히 언급할 만하다.
첫째 계시록 마지막 여섯 구절에서 에라스무스는 헬라어 사본을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그는 신약성경 전체를 편집하기 위해 당시에 만들어진 여섯 가지 사본만을 사용했다). 이 때문에 그는 라틴어를 헬라어로 번역하는 ‘역번역(逆飜譯)’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로 인해 그는 다른 어떤 계시록 사본에도 없는 17개의 변형된 구절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는 단지 어떤 헬라어가 사용되었을지 추측했던 것이다.
둘째, 요일 5:7-8에 대해 에라스무스는 ‘하늘에서 증거하는 이가 세 분이 있다. 성령과 물과 피이다’라는 당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사본들을 따랐다. 그런데 로마 가톨릭의 한 단체가 왜 ‘하늘에서 증거하는 이가 세 분이 있다. 성부와 말씀과 성령이다’라고 되어있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소동을 일으켰다. 에라스무스는 그렇게 되어 있는 헬라어 사본들을 본적이 없기 때문에 그 구절을 넣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이 은연 중의 항의-그가 만일 어떤 헬라어 사본에서건 간에 그러한 구절을 발견했다면 그의 사본에 삽입했을 것이다-는 부주의하게 지나쳐 가지 않았다(결국 에라스무스의 분별과는 다르게 요일5:7,8이 삽입되었다-역자주). 1520년에 Oxford의 Roy라는 서기관이 그러한 헬라어 사본을 만들었다(사본 #61로 현재 더블린에 있다.) 에라스무스의 사본 3판 때에 제2독회를 가졌는데, 그러한 비난을 충족시킬 그러한 헬라어 사본이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현재까지 요일 5:7-8 속에 삼위일체의 공식을 담고 있는 헬라어 사본은 극소수만 전해지며, 그것도 명백히 16세기 이전의 것이라고 할만한 것은 한 개도 없다.
그것은 무척 중요한 점이다. 이는 킹 제임스 성경의 배경이 된 원문 전승과 관련하여 무척 중요한 점을 시사해 준다. 아마 오늘날 대부분의 원문 비평가들은 삼위일체의 교리를 완전히 수용하고 있을 것이다(물론, 모든 복음적인 원문 비평가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요일 5:7-8이 삼위일체에 대한 분명한 가르침으로 보고자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 번역을 지나친 열성주의 필사가의 창작품이라며 거부하고 있다. 문제는 킹 제임스 성경 본문이 이 지나친 열성주의 필사가들에 의해 ‘창작된’ 많은 번역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극소수의 특별한 킹 제임스 성경 본문만이 분명하게 오래된 것이다. 대부분의 원문 비평가들은 가장 오래된 사본이 가장 믿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쓰여진 때와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필자 자신은 그 나머지 많은 킹 제임스 성경 본문을 즐겨 본다. 간음 중에 잡혀온 여인의 이야기(요 7:53-8:11)는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관하여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딤전 3:16에서 예수께서 하나님으로 불리우신 것은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나의 견해를 뒷받침해 준다. 요3:l3, 요일5:7-8 등을 참고하라. 그러나 원본상의 증거들이 다음의 두 가지를 보여준다.(개역에서 ‘그’로, 킹 제임스 성경에서는 ‘하나님’으로 번역되었음-역자주) 즉, 필사가들은 삭제하기보다는 첨가하는 경향이 무척 강하고, 첨가한 것들의 대부분은 오래된 필사본보다는 비교적 최근의 필사본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증거들로 인해 내가 감정적으로는 언제나 강조해온 구절들을 지성적으로는 받아들이기가 무척 어렵다.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이 좋아하는 구절들을 삭제하려는 것 같아 보이는 학자들은 악의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좀더 낫고, 좀더 오래된 필사본에서는 그러한 구절들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위의 구절들에 나타난 교리들이 위태롭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단호히 강조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나의 믿음은 딤전3:16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사실, 그것은 반복적으로 확증되어 왔고, 성경의 어떠한 교리도 이러한 원본상의 차이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킹 제임스 성경만이 유일한 성경’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마치 있지도 않은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친 것이며, 이제 더 중요한 복음 전도에 자신들을 드려야 할 것이다.
3. 킹 제임스 성경은 1611년에 처음 발간된 이후 100,000군데 이상 수정된 3차 개정판이 나왔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킹 제임스 성경이 영감된 것인가?
4. 킹 제임스 성경에 나오는 300개 이상의 단어들이 이제는 더 이상 그러한 의미를 갖고 있지 않는다. ‘suffer the little children to come unto me' (원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이지만 지금은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이 고통스럽다.”로 읽게 된다.)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분명히 이해되지도 않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실상 시대에 따라 오용되거나 왜곡된 언어를 사용한 성경을 과연 최선의 번역이라고 강조해야 할 것인가?
5. 킹 제임스 성경은 킹 제임스 성경의 주창자들도 인정하는 명백한 오류를 가지고 있다. 마23:24에서, 킹 제임스 성경은 ‘strain at a gnat and swallow a camel'(하루살이는 잡아당기고 약대는 삼키는)이라고 되어있다. 그러나 헬라어는 ‘strain out a gnat and swallow a camel'(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심키는)로 되어 있다. 최소한, 이것은 어떤 번역도 오류가 없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줄 분 아니라, 필사할 때 오류가 포함 될 수 있고 또한 포함되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비록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작성되었다해도 마찬가지이다(킹 제임스 성경은 50명 이상의 학자들로 구성된 대규모 위원회의 작품이다.)
6. 킹 제임스 성경이 처음 출판되었을 때 그것은 이해하기가 너무 쉽다는 이유로 심한 반발을 샀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킹 제임스 성경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존중한다. 나는 그들이 보내는 존중심의 일부가 교만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함께 덜 영적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자신들은 이해할 수 있다고 느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고전 2:13-16이 킹 제임스 성경과 관련하여 인용되고 있다.(‘네가 만일 신령하다면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인상을 주기위해). 그러나 성경 구절을 이렇게 사용하는 것은 성경에 대한 야비한 왜곡이다. 신약성경의 단어들과 문법, 그리고 어법 등 신약 성경에 사용된 언어는 1세기 당시의 보통 언어였다. 하나님께서 처음 의도하셨던 것보다 복음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께 큰 폐를 끼치는 것이다. 신령하지 못한 사람들이 성경을 이해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들이 알고자 하는 의지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지 지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고전 2:14에 나오는 ‘받다’, ‘환영하다’등의 단어가 보여주는 대로 말씀을 이해하는 것을 막는 것은 사람의 죄악된 의지임이 명백하다.)
7. 킹 제임스 성경만이 성경으로서의 독점권을 갖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언제나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다(보통 고집스러운 미국인들). 그러나 독일어로 번역된 마틴 루터의 뛰어난 번역본은 킹 제임스 성경보다 거의 100년이나 앞서있다. 하나님께서 영어로만 말씀하신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거만한 것이 아닐까? 루터의 성경과 킹 제임스 성경 사이에 중대한 모순이 있을 때(요일 5:7-8의 경우와 같이), 두 성경 모두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었다고 말해야 할 것인가? 그분이 거짓말을 지어내신 분인가? 우리의 믿음은 한가지 전승이나 지역성 위에 서있는 것이 아니다. 약동하는 성경적 기독교는 결코 지역주의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 만일 그렇다면 여러 가지 일들 속에 포함되어 있는 선교적인 열심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8. 다시 한번 먼저 언급했던 것을 반복해 보자. 대부분의 믿음의 기본 교리를 강조하는 복음주의자들은 킹 제임스 성경의 근간이 되는 원문 보다는, 다른 번역과 원문상의 기초를 선호한다. 사실, NEW SCOFIELD 주석 성경을 편집한 사람들도 다른 원문과 번역을 선호한다.
9. 마지막으로, 비록 현대의 번역들이 어떤 단어와 구절을 ‘빠뜨렸다’는 것이 사실일지라도 (반대로 보면 킹 제임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에 첨가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것은 흑백논리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사실 가장 최근에 편집된 헬라어 신약 성경은 킹 제임스 성경이 기초로 사용한 가장 오래된 사본들보다는 필사본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필사본에 기초를 둔 것들이다. 이 두 번역을 비교해 볼때 650개 이상의 단어와 구절이 삭제되었다. 그러므로 현대 번역 성경만이 성경 구절들을 빠뜨렸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한 것이 아니다. 킹 제임스 성경의 기초가 되는 사본 역시 빠뜨린 것들이 있다. 그러므로 문제는 현대의 번역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빠뜨렸느냐 아니냐의 여부가 아니라, 킹 제임스 성경이나 현대 번역본들 중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한 것이 있느냐의 여부에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나는 킹 제임스 성경이 다른 현대 번역본들 보다 훨씬 더 명백하게 성경을 변개했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해서 말하건데, 지난 250년간 대부분의 원문 비평가들은 이러한 차이에 의해 어떤 교리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킹 제임스 성경을 읽다가 구원받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NIV나 NASB 등을 읽다가 구원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킹 제임스 성경이 최선의 번역이 아니라는 데 대한 간략한 나의 의견이 그렇게 빨리 거부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모두는 과장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으며, 과장해서 만든 그것을 더욱 강화하고자 하는 경향이 또한 있다. 우리는 자주 참된 신앙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감정으로부터 나온 것들에 집착한다. 그렇게 함으로서 명확하고 강력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의 음성을 필요로 하는 멸망해 가는 세상에 대해 큰 해악을 입히고 있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SOLI-DEO-GLORIA)!
부록: 최근에 몇몇 책들이 현대어 번역본들을 헐뜯고, 그것들이 음모에 가득찬 동기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이런 날조된 이론들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그 책들은 헬라어나 히브리어에 대한 지식이 적거나 심지어 전혀 없는 사람들에 의해 지어진 것들이며 더욱이 사실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 나는 지난 25년간 원문 비평에 관한 책들을 읽어 봤지만, 요즘 나오는 책들처럼 비논리적이고, 문맥에 맞지 않게 구절들을 인용하며, 노골적으로 속이는 책들을 본적이 없다.
둘째로, 비록 이단들이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신약성경의 필사본 중 몇을 만들었다는 주장이 자주 있었지만, 실제 이단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 필사본은 단 한 개 즉 계시록에 대한 비잔티움 필사본 밖에 없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비잔티움 필사본이 킹 제임스 성경의 기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 필사본들은 초기 제사 의식에 사용된 신비스런 의식의 교본의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킹 제임스 성경 옹호론자들은 끊임없이 가장 초기의 필사본들 (알렉산드리안 필사본들)이 이단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혐의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그 필사본들이 자신들의 주장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셋째로, 만일 누군가가 킹 제임스 성경의 기초가 된 사본(THE TEXTUS RECEPTUS-T.R)과 현대 번역본들의 기초가 된 사본들 사이의 차이를 조사해 본다면, 두 사본의 차이점들의 대부분은 해석하기조차 미미한 것들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유동적인 ν(뉘)인데, 이는 마치 ‘WHO'와 'WHOM'과 같은 차이이다.
넷째로, 만일 누군가가 여러 필사본들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점들과. T.R과 가장 뛰어난 헬라어 사본 (witnesses)사이의 차이점들을 비교해 본다면 그것들이 무척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신약 성경 필사본들 사이에서는 40만 군데 이상의 차이점이 발견된다. 그러나 차이점들의 대부분은 번역할 수조차 없는 사소한 것들이다. 다시 말하면 T.R과 표준 원문 비평 사본(STANDARD CRITICAL EDITIONS)은 98% 이상 일치한다. 현대 번역본들과 그 번역본들의 기초가 된 사본을 비방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자료들을 조사해보지 않았다는 것이 명백하다. 그들의 주장은 증거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거의 감정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서 그들은 역사상의 기독교 신앙에게뿐 아니라, 킹 제임스 성경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부당한 짓을 하는 셈이다. 자신이 이루어 놓은 일들이 임시적인 것이며 완성된 것이 아님을 인정하는 학자들은 (머릿말을 보거나 8000개 각주를 통해 다른 번역을 적어 놓은-그들은 이러한 사실을 머리말에 써 놓았거나 8,000개 이상의 각주에 또 다른 번역을 적어 놓음으로서 그들의 태도를 밝히고 있다는 의미-역자주), 지난 150여년 동안 이루어진 필사본들에 대한 위대한 발견들을 전적으로 환영할 것이다.
Daniel B. Wallace, Associate Professor of New Testament Studies
Dallas Theological Seminary, Dallas, TX 75204
엠마오 성경학교 제공(emmausbible@hanafos.com)
<자료 : 대전대덕교회 박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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