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8일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소록도 가는 날이다. 사람이 모지란다는 나눔
대빵의 글이 여그저그 게시판에 도배로 장식을 하고, 마침 떴다에 짠~ 시동
상이 떴다. 은근히 나 울집있는디, 소록도 가요~ 엄마한테는 비밀로 해줘요."
했드만, 쫓아 오것단다. 말로는 "정말요? 힘들텐데, 정말 고마워요."했지만
서도 속으로 하는 말은 "옳거니, 머슴이 모자란다는디, 잘 만났다, 가서 고
상 좀 해 봐라. 흐흐~ " 강원도 평창서 달려온 시동생과 함께 성남서 오밤중
에 아그들 둘 데불고, 큰 가방 하나 꾸려서 지도책 펴놓고, 부천 원종동 꼴
짝으로 출발을 한다. 한참을 가다본께 부천은 부천인디, 비행기가 머리우에
날아 댕기는 것이 부천이 아니라 김포다, 나의 머리는 뱅돈다. "워메, 부천
으로 가야제 김포로 오믄 어쩐다냐?" 가만 있어보라는 총각말에 가만 있응
께 목양교회인지 어딘지로 차가 들어간다. 그렇게 고생하고 갔드만, 물 한모
금 주는 사람도 없다. 대빵은 엿봉다리를 내놓으며, 엿이나 묵으란다. 조금
있다가 11시되어 출발한다. 대빵 친구는 고속도로에서 엄청난 속도로 달려
불지만, 주암댐이 가까울수록 밤안개가 앞이 안보이게 깔린다. 보이는 것은
끝이 없는 하얗고 노란 주행선뿐... 그 속도는 슬슬 기어가는 속도로 변하고,
잠 한숨 못 자고, 애 안고 있는 팔이 마비될 즈음에 여덟 시간 걸려 녹동에
도착한다. 잠시 옷 가방과 애들을 외할머니 댁에 맡겨두고 내려오기로 하고,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모이는 집을 알아둔다. 부모님께 짧은 인사를 하고,
애들 몰래 뒷문으로 빠져 나오니, 그 차는 그새를 못기다리고 도망을 가부렀
다. 시동상과 둘이서 택시를 타고, 만나기로 한 횟집으로 가니, 사람들이 없
다. 택시아자씨는 밖에서 기다리는데, 내 지갑은 오간데가 없고, 사람들도
없으니, 그 심정을 설명할 수가 없다. 잘 찾아본께 옆식당 2층 유리창문으로
그집 아들네미가 보인다. 궁시렁거리믄서 2층으로 올라가 봤드만, 아! 그 실
상을 여기서 써야할지 말어야할지, 3박4일로 고민했지만, 정확한 후기를 위
하여 쓰기로 한다. 자오나눔 선교단체서 왔다는 사람들이 아침 시켜놓고, 막
간을 이용하야 네사람이서 머리를 맞대고, 진지한 토론을 하는디... 주제가
동양화라는 것은 죽었다 깨나도 말 못하것다. 밴댕인가 하는 놈으로 회를 쳐
묵고, 소록도행 배를타고 600M바다를 건넌다. 수면 위에 아침햇살은 눈이 부
시다. 나에게 소감을 묻는다. "아~ 조타" 외의 다른 말로 무엇을 말하랴.
동생리에서 마중 나온 차를 타고, 그 동네서 젤 큰 건물인 동성교회로 들어
간다. 쉴 시간도 없이 미리 보내둔 시설물을 설치하고, 동생리 주민들을 교
회로 불러모아서 예배를 드린다. 따분한 예배보다는 반짝이는 바다와 개펄의
유혹이 강해, 그곳으로 시동생과 데이트를 할라고 살짝 빠져 나오다가, 무서
운 큰샘물님(여자대장)한테 걸려서 강제로 끌려 들어갔다. 역시, 나눔부부는
무서운 사람들이다. 예배후에 회원에게 제공받은 빵을 한 분씩 나누어 드리
고, 협찬 받은 [왕]라면(중요함,밑줄 쭉~)과, 국수를 주민들게 나누어 드리며,
봉지를 모아두실 것을 당부한 뒤, 회비를 3만원씩이나 받아 갖고는, 아침에
싸구려 밴댕이회 에다가, 점심에 협찬 받은 라면으로 해결하는 나눔님의 비
리를 또 폭로할 수밖에 없다. 큰샘물님이 정성껏 담은 김치가 맛이 어쨌다고
도 말 못한다. 봉사자가 모자라서 어른 일곱이 세 팀으로 나누어 남자 둘이
한 팀이 되고, 밤손님과 이쁜아짐 미룡이가 한팀이 되어, 동네의 전기시설을
점검하러 돌아 댕긴다. 젊은 총각 둘이야 손발이 척척 맞겄지만, 띨빵한 조
수를 둔 밤손님은 고생 꽤나 했을 것이다. 라이터로 전선의 피복을 벗기는
불장난을 하고 지들끼리 손잡게 하믄 전기가 통한다. 여기서 밤손님과 띨빵
한 조수는 남녀노소를 불문, 불장난 끝에는 전기가 통한다는 사실을 체험한다.
살아있는 전선을 이용하여 수리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조명이 필요한 곳에
전선이 없을 경우에는 밖에서 직접 끌어 쓴다. 정말 위험한 작업이다. 조수
는 생각한답시고, 두꺼비집을 내려놓지만, 쓰잘데 없는 짓인 것을 안 것은
밤손님이 맛난 전기를 몇 차례 드시고 나서였으니... 내 용량의 한계여...
사람은 모자라고, 시간도 없고, 전기재료도 부족하다. 넉넉하게 준비한다고
했지만, 어림도 없다. 계속 천장을 쳐다보며, 의자나 사다리 위에서 하는 작
업은 어깨, 허리, 팔, 다리 안 아픈 곳이 없지만, 할 일이 많아 쉴 수가 없
다. 휠체어를 타고 감시하러 다니는 대빵이 우리들 뼈빠지게 일 할 때, 뜨신
햇볕아래서 바다 바라보며 틈틈이 자고 있었다는 것도 말 못한다. 7명이서
라면 15개를 끓여 묵은 탓에 배가 불러터질 것 같은디, 동네 할머니들은 못
멕여서 한이다. 집집마다 끝도 없이 먹을 것을 제공 하는디, 안 처묵으믄 할
머니들이 서운해 하실까봐 착한 미룡이는 꾸역꾸역 묵었다. 저녁 5시 할 일
은 태산같지만, 캄캄하면 작업을 못하기에, 그냥 돌아와서 회원이 제공한 생
고기와 녹동에서 사 갖고 온 불쌍한 생굴을 숯불에 굽고, 먹고 살것다고 굴
을 바닥에 패대기를 쳐가면서 시커먼 손과 입으로 까묵는 자오 회원들을 굴
보다 더 불쌍하게 귀경 하다가 6시가 되어 마지막 배를 타기 위해 장로님의
차를 얻어 타고 선착장으로 와서 남편과 집에 전화를 하고, 컴컴한 길을 20
분을 걸어 집에 들어가 그제서 부모님과 또 한차례의 저녁을 먹고, 이야기
할 시간도 없이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든다. 밤을 새우고, 낮을 피곤하게
보내고서도 밤새 잠 못이루고 뒤척이다 겨우 세 시간쯤 자고 나서 친정엄마
가 새벽부터 차려주시는 밥상을 받아 먹고, 또 애들 모르게 뒷문으로 빠져나
가 아빠의 오토바이에 매달려 선착장으로... 밤새 기침하던 딸년 때문에 애
가 타신 아버지는 약 한 봉다리를 지어주신다. 소록도에 도착한 시간 8시 대
빵 전화도 안되고, 시동생전화도 안되고, 114에 물어 전화한 동성교회도 안
받고, 혈압이 어느 정도 오른 다음에 다시 시도하니, 대빵이 받아 한 분이
식사 중에 나와 주신다. 걸어 갈라믄 갈 수도 있겄지만, 4Km거리를 걸어갈
자신은 도저히 없다. 밤새 뭔 일들이 일어났는지, 내 눈으로 보지 못하여 더
이상은 말을 못 하것고, 모두 잊지 못할 밤들을 보낸 것만은 사실인 듯...
커피한잔을 마시고, 다시 전기작업의 마무리를 시작한다. 11시가 넘어서야
대충 마무리를 마치고, 아직도 남은 곳은 다음으로 미룬 채, 주민들을 동성
교회로 다시 모셔 국수를 삶아 대접해 드리고, 늦게 온 우리들은 남은 국수
에 김치 비벼서 밖에 앉아 맛있게 먹고, 기념 촬영 후 어르신들이 모아주시
는 호박이며, 유자며, 온갖 시골 먹거리들을 차에 싣고 서둘러 출발한다.
자오 회원들은 역시 무서운 사람들이다. 사전에 [사양]이란 단어는 아예 없
는 듯하다. 받지 않으면 서운해 하신다는 핑계를 달고, 사람 앉을 자리가 없
어도 전부 받아서 차에 쌓는다. 엄청난 양의 늙은 호박을 즙을 내어 팔아 다
시 동생리에 보내겠다는 큰샘물님은 욕심도 많다. 돌아오는 길에 뭉그러진
손으로 강제 동원되어 만들어 진 소록도 중앙공원을 돌아 감금실(강제 수용
된 감옥)과 종을 멸하기 위한 정책으로 사용되었던 단종실과 현재 사용중인
화장터(소록도에서는 돌아가시면 무조건 화장을 한다.-경험을 얻기 위해 들
어가 본 화장터는 역겨운 냄새가 배어 있다.)를 돌아 설명하기 어려운 착잡
한 심정에 쌓인 채 소록도를 뒤로 하고 철선을 타고 녹동항으로 도착한다.
집에 들러 아이들을 돌려 받고, 애들 보면서 두 노인네가 밭에서 오전 내내
고생하며 수확하였을 유자 두 상자와 몇 가지 농산물들을 싣고, 돌아오는 길
에 대빵의 손에 들린 맑지만 쓴 물(이것또한 밝히지말 것을 협박받음)을 마
시기 위해 안주거리를 갖고 오라는 명령을 거역할 수 없어, 마른 문어 몇마
리와 과자를 몇 개 훔쳐들고, 차에 오르는 딸년은 역시 도둑녀~ㄴ 임을 실감
할 수밖에 없었지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어쩔 수가 없었다. 다시 고속
도로를 달려 기사식당의 싸구려 백반(4천원짜리)를 맛있게 먹은 것은 아마도
꼬록거리는 배를 움켜잡을 만큼 시장한 상태에서 그것을 반찬으로 제공한 기
사님과 나눔님의 속보이는 배려였을 것이다. 엄청나게 막히는 고속도로를 타
고 부천에 도착하여, 마지막까지 짐꾼으로 부려먹은 후에 교회에 세워둔 시
동생과 함께 호박 몇덩어리 얻어 돌아 와 씻지도 못하고, 게으르다고 궁시렁
대는 남편의 잔소리를 자장가로 하여 잠이 든다. 아홉시가 넘어 일어나서 대
충 씻고, 또 라면을 끓여묵고, 후기를 쓰기 시작한지 세 시간이 훨씬 넘어
불었다. 시동생은 집에서 가져온 유자를 나눠 갖고, 얹혀 살고 있는 부모님
집으로 돌아 갔다. 나는 얼른 마무리하고 자고있는 남편을 위해 또 점심을
준비해야 한다.
이번 후기는 쓰지 않겠노라고 굳게 맘 묵었지만, 돌아오는 길에 받은 협박으
로 인해 쓰지 않으면 나의 신변에 뭔 일이 생길 듯 한 불길한 예감으로 인하
여 이 힘든 작업을 또 할 수 밖에 없음을 독자에게 호소한다. 아울러 이런
후기를 써서 나의 생명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오로지
정확한 후기를 써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어렵게 써내려간 것임을독자에게 밝
히며...
암튼 다들 수고 해부렀소~ 편히들 쉬어 부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