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하다
네이버 국어사전에는 ‘애틋하다’를 ‘섭섭하고 안타까워 애가 타는 듯하다’, ‘정답고 알뜰한 맛이 있다’로 풀이했다. 유의어에 ‘다정하다’, ‘서운하다’, ‘슬프다’가 있다. 『토지』에는 무당의 딸 월선과 가난한 농부 이용의 애틋한 사랑이 있다.
월선과 이용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혼인을 올리려 했으나 월선이 무당의 딸이라는 이유로 이용의 어머니가 반대를 했다. 결국 월선은 가난하고 늙은 봇짐장수에게로 버려지듯이 시집을 갔고, 이용은 강청에 사는 키가 작은 처녀와 혼례식을 올렸다. 십여 년이 지난 후 월선은 돌아와 하동에서 주막을 차렸고, 이용과 다시 만났다. 어깨너머로 보듯이 거리를 두고 만난 두 사람은 오광대굿이 있은 날 밤, 눌렀던 사랑의 욕정을 불사른다. 이후 이용은 부끄러운 마음에 월선을 찾지 않자 월선이 평사리로 이용을 찾아와서 월선의 옛집에서 두 사람이 만났다.
희열과 고통스러움, 절정이 지나가고 어둠과 정적이 에워싼다. 용이는 여자 가슴 위에 머리를 얹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어둠 속에는 신위도 제물도 없고 월선네의 힘찬 무가(巫歌)도 없고 용이 모친과 강청댁의 얼굴도 없었다. 마을도 없고 삼거리의 주막도 없었다. 논가에서 울어 쌌는 개구리 소리, 뻐꾸기 소리뿐이었다.
“월선아!”
“……”
“아무데도 가지 마라.”
“……”
“와 니가 무당이 될라 카노.”
“안 될 기요.”
“그래, 되지 마라.”
용이는 미끄러져내리며 여자에 팔베개를 해주고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나는 체모 없는 몸이다.”
“……”
“니를 술청에 내어놓고…… 그래놓고 밤에 니를 찾아가는 내 꼴을 생각해봤다. 자꾸자꾸 생각해봤다. 부끄럽더라. 그, 그래서 못 갔다. 니가 눈이 빠지게 기다릴 것을 알믄서 니가 밤에 잠을 못 자는 것을 알믄서. 영팔이가 그러더마, 내 안부를 묻더라고. 간장이 찢어지는 거 같더마. 천분만분 더 생각해봤제. 다 버리고 다아 버리뿌리고 니하구만 살 수 있는 곳으로 도망가자고. 안 될 일이지, 안 될 일이라. 이 산천을 버리고 나는 못 간다. 내 눈이 멀고 내 사지가 찢기도 자식 된 도리, 사람으 도리는 우짤 수 없네.”
“우찌 저리 뻐꾸기가 울어쌌겄소.”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월선이 말했다. 머리칼을 더욱더 쓸어주며 용이는
“날이 가물라고 그러는 갑다.”
“올 적에는 나릿선을 탔는데 강바람이 실없이 찹디다.”
“밤이니께.”
“지가 잘못 왔소?”
“아니다. 잘 왔다. 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꿈인가 싶었지. 구신같이 니가 서 있더마.”
“낼 새북에, 첫새북에 갈라요. 봉순네는 찾아볼 수도 없소. 무슨 낯으로 만나겄소. 마님도 아시믄 얼매나 욕하시겄소.”
“……”
“욕하시겄지요?”
“욕을 묵어야지. 욕만 묵고 될 일이라믄……”
“보, 보소. 가봐야…… 가보시요.”
별안간 월선이는 날카롭게 말했으나 손은 오히려 용이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용이 팔이 파르르 떨린다.
“와?”
“어 가시요. 이자 나는 마음놓고.”
움켜쥐었던 옷자락을 놓으며 월선은 일어나 앉으려 했다.
“머할라꼬.”
“불 킬라요.”
“키지 마라. 이대로 좀더 있다가.”
어둠 속에서 용이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자거라, 니가 잠들믄 갈 기니.”
잠들 리도 없지만 월선은 잠든 척하고 용이는 한숨을 죽인다. 자정이 훨씬 지났을 것이다. 용이는 여자 머리에서 팔을 빼고, 일어나 앉아서 오랫동안 월선의 숨소리를 듣다가 이윽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1권 175~177쪽.)
이용은 월선이를 술청에 내놓고 밤에 몰래 찾아가는 자신의 꼴이 부끄러웠다. 그렇다고 다 버리고 둘이만 살 수 있는 곳으로 도망갈 만큼 용기도 없었다. 부모님이 묻힌 고향 산천을 떠날 수 없었다. 아이는 없지만 조강지처 강청댁도 버릴 수 없었다. 이용에게 이 모든 것은 자식 된 도리, 사람 도리에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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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무척 덥다. 오월 중순인데 여름 날씨다.점심으로 혼자서 국수를 삶아 먹었다. 오후 2시, 졸린다. 서른 살이 조금 넘은 월선과 이용을 생각한다. 애틋하다. 이용보다 월선의 사정이 더 안타깝다.
어쩔 수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