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에서 만난 구름 위의 세상
— 돌과 안개, 사람과 시간이 함께 빚어낸 풍경
새벽 다섯 시, 우리는 아직 잠에서 덜 깨어난 도시를 뒤로하고 호텔을 나섰다.
하늘은 잿빛 구름으로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은 아마 산 위에 올라가도 아무것도 보지 못하겠구나.”
사실 나는 황산이 어디에 있는 산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이곳까지 왔다.
뉴욕에서 가족들과 한국 휴가 계획을 세우다 우연히 여행 웹사이트에서 황산이라는 이름을 보게 되었고, 한국과 가깝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음이 움직였다.
그저 막연히 아름다운 산이겠거니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준비 없이 찾아간 사람에게 오히려 더 큰 감동을 주는 곳이 있는 법이다.
버스는 긴 시간 구불구불 산길을 달려 황산 입구에 도착했다.
우리는 케이블카에 몸을 실었다.
창밖은 온통 안개였다.
산인지 하늘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는 희뿌연 세상 속에서 케이블카는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정상에 가까워지는 순간, 마치 누군가 하늘의 장막을 걷어내기라도 한 듯 안개가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믿을 수 없는 풍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천 개의 봉우리들이 구름 바다 위로 솟아 있었다.
산들은 마치 땅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떠다니는 섬처럼 보였다.
나는 순간 내가 사람이 아니라 한 마리 새가 되어, 구름 사이를 날며 이 산 저 산을 지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가이드는 말했다.
“이제 시작입니다. 앞으로 더 멋진 곳이 많으니 사진은 그만 찍고 갑시다.”
하지만 나는 쉽사리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눈앞의 풍경은 사진 몇 장으로 담기에는 너무 거대했고, 너무 신비로웠다.
금수강산이라 불리는 북한의 금강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 순간의 나에게 황산은 인간이 볼 수 있는 가장 장엄한 자연의 얼굴처럼 느껴졌다.
길은 좁고 가팔랐다.
하루 최대 5 만명만 입산을 허락한다는 말이 이해되었다.
한쪽은 절벽이고, 다른 한쪽은 안개 아래로 끝없이 떨어지는 계곡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쉼 없이 올라오고 내려갔다.
대부분 중국인 관광객들이었다.
그들 사이를 걷다 보면 중국이라는 나라의 또 다른 얼굴도 보게 된다.
사람들은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큰 목소리로 이야기했고, 담배 연기는 산속 바람을 타고 흘러다녔다.
호텔 안에서도 흡연이 가능한 것을 보며, 아직 이곳에는 과거의 생활 방식이 깊게 남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황산에서 내가 가장 오래 눈길을 떼지 못한 것은 산의 풍경만이 아니었다.
바로 짐꾼들이었다.
그들은 양쪽 끝에 무거운 짐을 단 기다란 지게를 어깨에 메고 가파른 돌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빈몸으로 걷는 것조차 숨이 차는 길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물과 음식, 생필품을 산 정상의 상점까지 나르기 위해 온몸을 앞으로 숙인 채 땀을 흘리고 있었다.
어떤 이는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었다.
굽은 허리와 떨리는 다리로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딛고 있었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힘든 노동 중 하나가 아닐까.
우리는 정상의 카페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고, 비싼 가격의 음식을 사 먹으며 아름다운 풍경을 즐긴다.
그러나 그 편안함 뒤에는 누군가의 무거운 어깨와 휘어진 허리가 숨어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뉴욕에서 병원 일을 하며 바쁘게 살아간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나는 온실 속 화초처럼 너무 편안한 삶에 익숙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산은 풍경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비추어 준다.
내려오는 길에 원숭이 한 마리를 보았다.
배가 불룩하게 나온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평화로워 보이기도 했다.
관광객들이 주는 먹이에 익숙해진 탓인지 경계심도 별로 없어 보였다.
그 원숭이는 바위 끝에 앉아 마치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는 산의 주인처럼 구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황산은 단순한 산이 아니었다.
1억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화강암이 솟아오르고 깎이며 만들어낸 거대한 지질의 역사였다.
그리고 인간은 그 험준한 바위를 뚫어 길을 만들고 계단을 놓았다.
나는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해 본다.
자연은 인간의 손길 없이 그대로 두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어느 정도 훼손을 감수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그 아름다움을 함께 누리는 것이 옳을까.
정답은 알 수 없다.
다만 그 순간의 나는 철학적 고민보다도 눈앞의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있었다.
결국 인간은 아름다움 앞에서 이기적이 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황산의 여운은 산에서 끝나지 않았다.
오후가 되어 우리는 툰시 옛거리(Tunxi Old Street)를 걸었다.
천 년의 시간을 품은 거리였다.
흰 벽과 회색 기와, 붉은 등이 길게 이어졌고, 오래된 목조 건물들 사이로 차 향기와 음식 냄새가 흘러나왔다.
나는 어린 시절 고향 장터에서 보았던 물건들과 비슷한 물건들이 진열된 모습을 바라보며 이상한 향수에 젖었다.
역사를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건물을 남기는 것이 아니다.
그 시대의 냄새와 사람들의 숨결까지 함께 보존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저물 무렵 거리에 하나둘 불빛이 켜지기 시작했다.
붉은 등불은 마치 오래전 시간들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듯 흔들리고 있었다.
밤이 되자 우리는 샹밍 대극장(Xiangming Grand Theatre)으로 향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뉴욕에서 브로드웨이 공연과 오페라를 수없이 본 내게 지방 공연장은 소박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공연이 시작되자 나는 완전히 압도당했다.
무대는 살아 움직였다.
빛과 영상, 전통 무용과 현대 기술이 어우러지며 후이 문화의 역사와 계절을 환상처럼 펼쳐냈다.
배우들은 하늘을 날았고, 무대는 강이 되었다가 산이 되었으며, 어느 순간에는 안개 낀 마을로 변했다.
극장 안에는 한국어 자막도 나왔다.
그만큼 한국 관광객이 많다는 뜻이었다.
나는 공연보다도 문득 사람들의 표정을 바라보게 되었다.
국적은 달라도 모두가 같은 순간에 웃고, 놀라고, 박수를 치고 있었다.
문화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연결하는 또 하나의 언어인지도 모른다.
그날 밤, 우리는 캄캄한 산길을 버스로 달려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창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는 아직도 황산의 봉우리들이 구름 위에 떠 있었다.
살아가다 보면 사람은 끊임없이 더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간다.
돈을 위해서, 성공을 위해서, 명예를 위해서.
하지만 황산은 내게 다른 것을 가르쳐 주었다.
때로는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안개 사이로 드러나는 산 하나를 조용히 바라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인간의 삶 또한 저 산들처럼
수많은 비바람과 세월 속에서 깎이고 다듬어지며
비로소 자기만의 형상을 만들어 간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