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은 부덕한 몸이어서 본디 천자의 대임이란 가당치도 않았으나 사세부득으로 잠시 맡고 있었을 뿐이오
이제 비로소 13기는 오랜만에 삼모전이 잘 진행되고 있어 천하의 기대가 크오. 이럴 때에 삼모전이 더욱 중흥을 맞기 위해서는 마땅히 덕 있는 사람을 세워 천하의 으뜸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소
천학비재한 몸으로 무거운 짐을 지었으니 작게는 한 몸을 망치고 크게는 대사를 그르친 것 같아 하늘을 대하기 두렵소. 어찌 더 이상 종묘와 사직에 죄를 지을 것인가
이에 짐은 길게 말할 것 없이 선양을 하기로 결단하였소. 짐은 이에 따른 혼란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아 제위의 계승에 관한 사항을 칙령으로 정리하였으니 이에 따라 제위 계승의 절차를 진행하면 혼란은 있지 않으리라
짐은 임강왕 육항을 제위 계승 회의의 첫번째 후보로, 파서후 비류연을 제위 계승 회의의 두번째 후보로 지명하는 바이오
천자의 자리는 본래 하늘이 내리는 것이니 어찌 짐이 지명한 후보가 제위에 오르리라는 법이 있겠는가. 실로 덕 있고 현명한 이를 선제후들이 모여 회의에서 잘 알아서 결정하리라 믿소. 짐이 옥좌를 등지고 물러나는 몸으로서 남길 말은 아니나 어리석은 생각으로 몇 마디 유조를 남기고자 하니 후임 천자께서는 부디 헤아려 살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오
대저 작금의 진행과 관련하여 짐은 한편으로는 선계의 이벤트 진행에 의하여 압박받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벤트 진행에 의하여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분에 의하여 압박받아 운신의 폭이 좁았소. 이렇게 천자의 역할을 사전에 결정할 바에야 무엇 때문에 삼모전에 천자를 따로이 둔단 말인가. 아예 선계에서 이벤트로 칙령을 내려주면 되는 것이 아니겠소
이에 짐이 물러나기로 마음을 품은지는 오래되었으나 이대로 이 문제를 매듭짓지 않고 물러날 경우 후임의 천자에게 황실의 대권을 온존히 넘겨줄 수 없을까 두려워 감히 돌아가지 못하였소. 다행히도 선계에 강력히 항의하여 앞으로 선계에서는 황실의 권위를 침해할 수 있는 일체의 이벤트는 이를 하지 않기로 약조하였소
후임 천자께서도 그와 같은 약조를 기억하셔서 이벤트에 의하여 마땅히 황실이 가져야 할 권한이 침해당하는 일이 없도록 유념하여 주시기를 부탁하오
여하간 짐은 선계의 이벤트에 의하여 자신이 성격이 결정되었다고 주장하는 분 또한 어찌보면 이벤트의 피해자라, 이에 대하여 불리하게 처신할 수 없어 대부분 원하는 바를 용납하였소. 이에 오히려 어떤 제후와 세력이 피해를 보게 되었으니 물러남에 있어 그저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을 뿐이오. 어찌 짐의 본심이었겠는가. 예의를 갖추어 황실에 늘 공손한 상주를 올린 분을 이유 없이 부당하게 대하였으니 실로 짐이 늘 천하를 걱정하였던 여러 선제를 뵐 낯이 없음이라
황실이란 실로 어려운 자리라 천하의 일은 천하에서 결정되는 것이므로 함부로 황실이 나서려 하면 문제와 같은 폭거를 저지르게 되기 쉽고, 한편으로 천하에서 이르는 바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평제의 공평함을 취할 수 없게 되기 쉬우니 늘 중용의 길을 취하여 하는 자리라 이를 늘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이오
또 한편으로 작금의 진행에 있어서 한중의 유가공에게는 짐이 아무 것도 베푼 바가 없소. 한 주를 평정하면 마땅히 조정에서 은상하리라는 한 마디에 따라 말없이 익주 평정을 위하여 저 거친 남중에까지 병력을 보내는 유가공의 마음씀에 짐은 큰 감명을 받았소. 익주는 실로 큰 주라 평정하기가 쉬운 바가 아니오. 마땅히 남중이 마저 평정되면 익주목에 봉할 것이나 실로 짐이 이를 행하기 전에 퇴위하게 되었소. 후임의 천자께 뒷일을 배려해 주시도록 부탁하는 마음 뿐이니 이는 짐이 후임의 천자께 올리는 부탁이라 생각하고 헤아려 주시오
바야흐로 황실의 세는 외롭고 황실을 진정으로 생각해 주는 이는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오. 후임 천자께서는 오로지 황실의 권위를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오. 지금에 이르러 어느 정도 천하에 자리를 잡은 이를 들어 말하건데 작위 없는 자가 드물어 수 가지 작위를 겸병하고 있는 상황이오
짐은 또한 작위를 정리하여 이를 해소하고자 하여 선계에서 황실의 작위까지 겸병하고 있는 것은 부당하며 명백한 월권이므로 이를 빼앗고 몇몇 고작위를 정리하였으되 아직도 미흡한 바가 많소
황족, 선제후 등을 통하여 다시 황실의 번병으로 삼고자 하였으나 뜻한 바가 이루어졌는지는 실로 의문이오. 후임 천자께서는 부디 작위를 수여하실 때에는 그 신중하기를 수여할 작위의 인수 모서리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만지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여야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하셔야 할 것이오
부덕한 몸으로 실천하지도 못한 바를 후임 천자께 유조로 남기니 실로 곧 신민의 몸으로 되돌아갈 처지로서 참람되기 짝이 없으나 천자의 자리는 시행착오가 용납되지 않는 자리라 쓸데없는 이야기를 길게 남기니 현명하고 밝으실 후임 천자께서는 부디 헤아리셔서 취할 바는 취하고 버릴 바는 버리시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