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봄에 <한겨레21>이 주관한 "21세기를 바꾸는 교양" 행사에서 했던 강의 내용을 한겨레측에서 녹취해 정리한 것입니다. 내용이 길어서 강의 뒤에 이어진 질의 응답 내용은 답변글로 따로 올렸습니다. 함께 올린 파일에는 강의와 질의 응답 내용이 모두 포함돼 있습니다. 나중에 출판된 책에 실린 내용과 거의 같습니다.)
너희가 노동문제를 아느냐?
<한겨레21> 특강 "21세기를 바꾸는 교양" 7인7색
<사회자> 오늘은 말하자면... 비인기 종목입니다. "너희가 노동문제를 아느냐?" 제목이 상당히 도발적입니다. 하종강 선생님은 노동문제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그 동안 상당히 왜곡돼 왔다고 말해왔습니다. 오늘은 그러한 것들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내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과거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 노동문제라고 하는 것이 모두가 공감하고 있었던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약자의 문제, 억압받는 사람들의 문제, 내 이웃과 가족의 문제, 내 자신의 문제로 생각했는데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이게 '비인기 종목'이 된 것 같습니다. 일각에는 노동자가 더 이상 약자가 아니라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사회적 활동을 통해 강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까지 퍼져 있습니다. 이게 과연 온당한 생각인지 그런 생각에 담겨 있는 함정은 뭔지 등등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하종강 선생님 모시겠습니다. 간단히 인사를 해주시지요.
<하종강> 방금 노동문제가 '비인기 종목'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엄중한 시기에 광화문에 가시지 않고 여기로 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죄송한 말씀을 하나 드리자면, 한 시간쯤 전에 사회자를 만났더니 "우선 나를 이해시켜 보라"고 하시는 바람에 열변을 토하고 오느라고 목이 좀 잠겼습니다. (청중 웃음) 평소 목소리는 지금보다 훨씬 낫습니다. (청중 웃음) 좀 길게 인사해도 되지요?
지금 우리는 정치적 격동기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그 와중에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TV를 보니까 재래시장에서 수십 년 생선을 팔아온 할머니는 탄핵 때문에 손님이 확 줄어서 "새벽 네 시에 나와서 오후 네 시 넘도록 개시도 하지 못했어. 나는 나이가 많아서 손님이 더 안 붙어."라면서 눈물을 훔칩니다.
이번 산불로 삶의 터전이 완전히 잿더미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겐 구호와 자원봉사자의 손길이 끊겼습니다. "없는 사람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으라는 거 같아요." 아주머니가 말하면서 웁니다.
지난 폭설로 축사가 붕괴된 농민들도 하루 70~90명씩 지원 나오던 전경이 전부 서울에 올라가서 한 명도 오지 않는다고 원망 섞인 말을 합니다. "탄핵에 찬성한 국회의원들 신변 보호를 해야 되고 집회도 많아졌으니까 그렇게 됐겠지요. 축사 무너지는 거 보면서 저 울었습니다." 말하면서 그 사람이 또 웁니다.
국회에서 탄핵이 의결된 이후에 노조간부, 공무원, 지방자치단체 예술단원들에게 노동문제 강연을 몇 차례 했습니다. 반응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풀어내기가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중대한 정치적 사안들 때문에 노동문제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엷어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태가 어떤 식으로든 우리 사회를 보다 전진시킬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가 그렇게 변화한다 해도 절대 달라지지 않을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조금 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은 이 사회의 소외된 소수자들.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 이라크 파병이 철회되지도 않을 겁니다. 지난번에 개악된 집시법이 합리적으로 개정되지도 않을 겁니다. 노동조합에 대한 경영자들의 그릇된 혐오감도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노동운동에 대한 시민들의 그릇된 인식도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이 격동을 겪은 이후에 어떤 사회를 지향할 것인지, 최소한 이 자리에 모이신 분들은 그 걱정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조금 전에 말씀드렸던 별로 달라질 것이 없는 사람들, 사회적 소수자들, 이주노동자들, 장애인들, 이런 사람들이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이루어지는 것, 그것이 아마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정치적 격동기 다음에 정신 차리고 지향해야 할 사회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동문제도 그러한 문제와 거의 같다, 그런 생각으로 보시면 됩니다. 왜 그런지 차차 설명하겠습니다.
<사회자> 하종강 선생님께 "너희가 노동문제를 아느냐?" 강연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노동문제는 과연 소수의 문제인가
강연의 제목을 "너희가 노동문제를 아느냐?"라고 다소 교만하게 붙인 이유부터 설명하겠습니다. 몇 년 전에 항공기 조종사들이 파업한 적이 있습니다. 국내선 항공편이 거의 백 퍼센트 결항됐습니다. 언론은 '엄청난 항공 대란'이 발생했다고 보도했고 한 항공사의 운임 손실액만 6백억 원이 된다는 보도를 읽은 기억도 납니다. 그 파업을 앞두고 다섯 차례 조종사들을 교육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런 질문을 해봤습니다.
"여러분이 이제 곧 파업을 시작합니다. 파을 앞두고 있는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만 물어봅시다. 여러분들 중에서 이 항공사에 조종사로 취업하면서 자신이 노동조합 깃발 아래서 파업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고 짐작한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십시오. 인생의 미래를 조종사로 설계하면서, 조종사가 되겠다는 푸른 꿈을 안고 사관학교 입학하면서 내가 노동조합원이 될지도 모른다고 짐작한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십시오."
수백 명의 조종사들에게 물었지만 한 명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맨 앞줄에서 저와 눈이 마주친 조종사가 "어휴, 조종사까지 노동조합 설립해야 될 거라고 어디 짐작이나 했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그 조종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여러분들은 조종사라서 그걸 짐작 못했다고 합시다. 여러분들은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고 있고 자신을 노동자로 생각하기가 어렵고 뭔가 노동이란 단어가 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조종사라서 짐작 못했다고 합시다. 그럼 다른 노동자들은 짐작했을까요? 전통적인 개념의 노동자들, 제조업체 생산직입니다. 작업복 입고 자신들 표현대로 기름밥 먹으면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 자기 자신을 기꺼이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짐작했을까요?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의 위원장을 지낸 사람이 처음에 건설 현장이나 은행에 취업하면서 자신이 노동조합 활동을 하게 될 거라고 짐작했을까요? 여러분들만이 특별한 조종사라서 짐작 못한 게 아닙니다. 우리나라 1천3백만 노동자들은 대부분 짐작 못하고 살았습니다. 잘못된 제도권 교육에서 절대로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 잘못된 제도권 언론이 올바로 전달하지 않았으니까..."
조종사들이 파업하는 바람에 저도 하루에 18시간이나 운전을 했습니다. 항공편이 전부 결항돼서 광주에 있는 병원을 거쳐 포항에 있는 한 대학교 강의를 마치고 올라왔더니 운전한 시간만 18시간이었습니다. 저는 도로에서 18시간 동안 운전하면서도 '내가 불편하고 피곤해도 잘 참을 테니까 여러분 열심히 파업해서 권리를 찾으십시오.' 그렇게 이해하려고 애썼습니다. 우리사회에서 노동운동 물 먹은 지 20년 넘은 사람이니까... 그나마 명색이 노동문제연구소 소장이니까... 우리 사회에서는 저처럼 유별난 사람들만 그 상황을 이해하면서 자신의 불편을 참습니다. 그러나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에서는 그것이 보통 시민들의 정서입니다. 특별히 몰지각한 소수의 사람들만이 파업을 이해하지 못하고 불평을 합니다. 노동자들이 파업한다고 비난하면 몰상식한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그러한 많은 예들은 시간이 없어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정상적인 사회의 정상적인 노동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우리는 지금까지 노동조합, 노동운동, 노동문제, 노동자의 권리, 노동법 이런 것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다른 나라들과 다르게 봉쇄 당한 채 살아왔다는 겁니다. 요즘 고등학생들 중에 70~80퍼센트가 상급학교에 진학합니다. 20~30퍼센트는 바로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상급학교로 진학한 70~80퍼센트의 대부분이 나중에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겁니다. 최소한 노동자의 가족으로 살아갑니다.
우리 사회는 국민 대부분이 노동자이거나 그 가족으로 구성된 사회입니다. 그런데 노동문제를 소수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도권 교육과정에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 노동법의 내용과 노동조합의 역할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합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이제 곧 가르치게 될 겁니다. 작년에 노동부 산하기관이 '선진 5개국 노동교육 실태조사 보고서'를 냈습니다. 그 보고서를 보니까 독일에는 초등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노동문제에 대해 공부하고 모의 노사교섭을 하기도 합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다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여러분에게 지금 설명하는 내용들을 이미 초중고등학교 과정에서 숙지한 상태로 노동자가 됩니다. 최소한 그게 정상적인 사회입니다.
노동자의 권리에 관한 한 우리 사회는 비정상적인 사회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속에서 수십 년을 살아오는 동안 그걸 느끼지 못한다는 겁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무원 노동조합의 주장에 따르면, UN의 국제노동기구(ILO)에 가입해 있는 176개 나라들 중에서 공무원이 노동조합을 설립하면 불법이 되는 나라가 몇 개나 될 것 같습니까? 때려 맞추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확률이 176분의 1밖에 안됩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두 번 만에 맞춥니다. 두 나라밖에 없으니까요...우리나라는 그 두 나라에 포함됩니다. ILO가 세계 주요 36개국 노동시간 통계를 발표했습니다. 장시간 노동 항목에서 한국이 몇 위했을까요? 확률이 36분의 1로 높아져서 맞히기 한결 쉬워졌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한 번만에 맞춥니다. 1위했습니다. (청중 웃음)
우리 사회는 노동자의 권리 분야에서 세계 최고, 세계 최장, 세계 최저 그런 통계들이 많은 나라입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는 겁니다. 국민의 대부분이 노동자인 사회이니까 노동자의 권리에 관한 이러한 통계는 곧바로 국민의 기본권에 관한 통계로 연결됩니다. 자살율이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세계 4위라지만 자살율 증가속도가 세계 1위니까 이대로 내버려두면 곧 세계 정상이 되고 맙니다. 이혼율 역시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결혼 대비 이혼율이 세계 2위입니다. 작년 말에 이미 세계 최저를 기록한 통계도 있습니다. 아시는 분 계시죠? 네, 출산율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세계에서 아이를 가장 적게 낳는 사람들이 됐습니다. 한 언론이 원인을 분석하기를 한국 여성들이 몸매 관리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최근의 몸짱 풍조 때문에 아기 낳기를 꺼리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기사를 쓴 언론인 역시 사회 현상을 그 정도의 시각으로밖에 분석할 수 없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통계가 뜻하는 사실은 아기를 낳아 기르기가 겁나는 사회가 됐다는 뜻입니다. 다른 나라와 어떤 차이가 있기 때문일까요?
TV 뉴스에서 몇 차례 보도한 사건이 있습니다. 인큐베이터에서 자라는 조산아들, 경험 있으신 분들 아시겠지만 한 달 병원비가 대략 2천만 원 정도 나옵니다. 처음에 한 두 달은 아기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빚을 내고 전세 보증금도 빼내면서 그 병원비를 감당하던 산모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니까 의사한테 각서를 한 장 써주고 아기를 퇴원시킵니다. 아기들이 대부분 그 다음 날 사망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오늘도 수없이 생기고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불평등입니다. 조선 사회에서 '양반'과 '상놈'으로 인간을 차별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불평등입니다. 똑같은 상태로 아기들이 태어났는데 부잣집 아기는 살고 가난한 집 아기는 죽어야 합니다. 이걸 우리가 계속 용납하고 살아야 됩니까?
자유경쟁사상이 우리보다 더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일본에서조차 - 자유경쟁사상이란 똑똑한 사람은 경쟁에서 이겨서 잘살고, 못난 사람은 경쟁에서 져서 못사는 것이 용납되는 사고방식이란 뜻입니다 - 모든 아기들은 태어난 뒤 2년 동안은 정부가 치료비 전액을 지원합니다. 최소한 그렇게 해야 정상적인 사회입니다.
제가 조종사들에게 "미리 짐작한 사람 있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아무도 손들지 않았다고 했지요? 그런데 그날 강의 끝나고 한 조종사가 저에게 와서 말하기를 "소장님, 아까 질문하셨을 때 손들지 않았지만 나는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조종사가 되면서 언젠가 노동조합 활동하게 될 거라고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조종사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제가 조종사노조 간부에게 물어봤더니 그 사람은 외국에서 조종사가 됐다는 겁니다. 학교를 외국에서 다녔다는 겁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우선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지금 노동조합에 대해서, 노동문제에 대해서, 노동운동에 대해서,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서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정상이 아닐 수 있다는 가정을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다음에 바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들의 노동법
노동법을 예로 들어볼까요. 우리는 어릴 때부터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배웁니다. 법을 공부하시는 분은 알 겁니다. 그것은 시민법 체계에서만 원칙입니다. 시민사회가 건설되면서, 중세 사회 신분제도가 철폐되면서, 모든 사람들이 신분상 평등해지면서, 해방된 농노나 몰락한 영주가 모든 시민이란 동등한 자격을 갖게 되면서, 시민계급이 만들어지면서 시민법이 체계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사회가 점차 발전하면서 시민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얘기해봅시다. 저는 1980년도 5월에 수배된 학생이었습니다. 부천에 있는 원미동이라는 곳으로 피신했습니다. 양귀자씨가 쓴 소설 <원미동 사람들>에 나오는 바로 그 동네입니다. 석유가게에 취업해서 두 달 반 동안 석유 배달하다가 잡혔는데, 석유 배달을 다니니까 그 지역 사람들과 아주 친해집니다. 주로 식당, 중국집, 양복점, 다방 종업원들 같은 사람들과 친해집니다. 다방에 석유 배달 가서 석유난로에 석유 한 통 부어주고 차도 한 잔 얻어 마시고 농담도 몇 마디 나누고 나옵니다. 굉장히 친해집니다. 그러나 다방 입구에 붙어 있는 수배 전단에 있는 얼굴이 저일 거라고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합니다. 두 달 동안 잡히지 않았더니 사진도 두 배로 커지고 현상금도 두 배로 늘었습니다. 그런데도 짐작을 못합니다. 그래서 제가 일찍이 깨달았어요. 전단으로 체포하는 건 불가능하다. (청중 웃음)
그때 그 수배 전단에 제 사진 밑에 써 있던 세 글자가 있었는데 그게 우리 가문의 전설로 남아있습니다. 혹시 짐작하시는 분 계십니까? '미남형', 그렇게 써 있었습니다. (청중 웃음) 제 여동생은 아직도 얘기해요. "아, 그때 그 전단을 하나 떼어서 보관해야 되는 건데 그랬어. 정부가 인정한 미남이었는데..." (청중 웃음) 그게 거의 25년 전 일이니까 지금보다 한결 보기 나았겠죠.
석유가게 주인은 제가 수배된 학생인 것을 알면서 저를 받아줬습니다. 제가 참 사람 복이 있었던 거지요. 생면부지의 사람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나중에 그 사람에게 들었습니다. 그 사람이 국민학교 4학년 때 자기가 봐도 너무 세상이 불평등하더라는 겁니다. 부자는 어마어마하게 부자인데 가난한 사람들은 너무 가난하더라는 겁니다. 부잣집 아이들과 가난한 집 아이들은 먹는 음식도, 입는 옷도, 쓰는 학용품도 다릅니다. 학교에 가면 어떤 선생님은 대하는 것도 달라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더랍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가장 높은 곳으로 찾아갔어요. 그곳이 군청입니다. 군수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졸랐지만 국민학교 4학년짜리 꼬마 이야기를 누가 귀담아 들었겠어요? 공책을 찢어서 투서를 한 장 써서 군청에 던지고 돌아왔는데 그 투서의 첫 줄이 이렇게 시작했답니다. "백성은 도탄에 빠졌다." (청중 웃음) 다음 날부터 정보과 형사들이 집에 들이닥치기 시작하더니 배후를 대라, 이것은 4학년짜리가 쓸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런 일을 4학년 때 겪었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저를 이해해주셨던 거예요.
4학년짜리 꼬마가 보기에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도록 우리 사회에 불평등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신분상 차별이 철폐됐지만 또 다른 불평등이 생기기 시작한 거지요. '아, 새로운 법체계가 필요하구나.' 그래서 사회법 체계가 마련됐습니다. 사회법은 불평등하게 적용함으로써 평등을 구현하는 법입니다.
노동법은 대표적인 사회법입니다. 직장인들은, 정확하게 표현하면 '노동자'들은 모두 근로계약 해지의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회사에 다니기 싫으면 사표 내고 안 나오면 그뿐입니다. 회사가 각종 복잡한 인사관리규정을 만들어 사표의 효력을 부인하려고 해도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똑같은 근로계약 해지의 권리를 기업에게는 절대로 보장하지 않습니다. 보장하면 큰일 납니다.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같은 권리일지라도 노동자에게는 보장하고 기업에게는 규제해야 합니다. 불평등하게 적용해야 평등해지는 겁니다.
같은 사건을 시민법적 관점으로 판단하느냐 사회법적 관점으로 판단하느냐에 따라 거의 반대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계약이 있습니다. "당신이 내 돈을 다 갚지 못하면 당신의 살을 1파운드 베어 가지겠소." 시민법적 관점으로 판단하면 계약자유원칙에 입각하여 당사자들 사이에 맺어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계약입니다. 그러나 그 똑같은 약속을 사회법적 관점에서 판단하면 사회정의에 반하여 자동적으로 무효가 돼버리는, 전혀 지킬 필요가 없는 계약이 됩니다.
우리 사회에서 국민들은 어릴 때부터 시민법에 대한 훈련을 받습니다. 유치원 들어가면서부터 배우는 게 있습니다. 교통신호 지키기입니다. "초록 불은 가시오. 빨간 불은 서시오." 대표적인 시민법 원칙입니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똑같이 지켜야 합니다. 그 훈련이 평생 동안 지속됩니다. 그러나 사회법 원리에 대해서는 익힐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서 지금 법과대학을 다니고 있거나 과거에 다녔는데 "노동법을 필수 과목으로 배웠다"고 말하는 분이 계시면, 그 분이 어느 대학 출신인지 제가 바로 맞힐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동법을 필수과목으로 가르치는 대학이 한 곳밖에 없으니까... 최근에 한 대학 또 늘어서 두 대학이 노동법을 필수과목으로 가르친다고 들었습니다. 학생들이 노동법을 많이 선택하지 않습니다. 왠지 아시죠? 우리나라 사법시헙에 노동법이 출제된 적이 없습니다. 1차 시험에서 노동법을 선택하면 노동법 과목을 시험 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법은 기업법에 비해 공부해야 할 분량이 열 배가 넘습니다. 고시원에서 몇 년 동안 열심히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공부해야 할 분량이 열 배가 넘는 노동법을 선택할 리가 없습니다. 거의 선택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굳이 노동법을 선택한, 세속적 기준에서 보면 "거의 정신 나간" 수준의 변호사 몇 사람이 지금 민주노총이나 제가 있는 연구소 같은 곳에서 일하고 있는 겁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이 공부하는 사법연수원에서도 노동법은 선택과목입니다. 거의 선택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법조인으로 출세하거나 돈을 많이 벌겠다는 야망이 있는 사람에겐 노동법이 거의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법연수원 노동법 세미나에서 몇 차례 노동법을 강의했습니다. 첫날 근로기준법을 강의했는데 강의 끝나고 평가회 하면서 그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연수원생이 하는 말이 "소장님, 저희들이 뭔가 알 거라고 짐작하지 마십시오. 오늘 소장님 강의 들은 연수원생들 중에서 90퍼센트 이상이 근로기준법을 오늘 여기서 처음 보는 사람들일 겁니다." 곧 판․검사 변호사가 되어야 할 사람들인데... 연수원 1기생이 약 천 명 가까이 됩니다. 그 중에서 제가 강의한 노동법 세미나를 수강한 사람이 40~50명 됩니다. 노동법을 공부하겠다고 마음 막은 참 기특한 소수 50명, 그 중에 90퍼센트 이상이 근로기준법을 그 날 거기서 처음 봅니다. 그리고 남은 평생 동안은 거의 볼 일이 없습니다. 이것은 거의 공포영화에 가까운 상황입니다.
호러영화의 주인공, 한국의 직장인들
한국의 직장인은 거의 호러영화의 주인공처럼 직장생활 하고 있는 겁니다.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지 않는 일이 일어납니다. 노동자들이 헌법에 보장된 단체행동권을 사용해서 회사에 재산상의 손실을 끼친 것에 대해서 회사가 그 노동자를 상대로 법원에 가압류와 손해배상을 신청하면 법원에서 인정해줍니다. 최소한 OECD 가입한 30개국 중에서 이런 유사한 일이 발생할 것 같습니까? 제가 만난 노동자 중에 가장 많이 가압류 당한 노동자는 혼자 102억 원을 가압류 당했습니다. 그것이 계속 지속되면 그 사람 평생 자기가 번 모든 돈을 그 빚을 갚는 데 써도 모자랄 겁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두산중공업에서 배달호씨가 분신했을 때 그 사건에 대해서 한 방송사의 제작진이 한 명문 대학교 교수에게 가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가압류 당한 노동자가 분신 사망한 이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교수님이 말하기를 "돈을 빌려준 채권자와 돈을 빌려간 채무자가 있다고 합시다. 채무자인 노동자가 그 빚을 갚지 못한 것이 부담이 돼서 자살한 사건에 대해서 채권자인 회사가 왜 책임을 져야 합니까? 나는 그 사건을 그렇게 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 교수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나는 참 무식한 사람입니다" 하고 고백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가장 사회법적인 사건을 가장 시민법적인 기준으로 판단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문제를 올바로 판단할 수 있는 인력을 어느 곳에서도 양성하지 않습니다. 노동자들의 파업이 불법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노동자들이 법이 보장하는 범위 내에서 합법적으로 투쟁하면 국민들이 욕하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합법적으로 파업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사회입니다.
철도노조의 파업을 정부가 불법이라고 규정하니까 언론은 전부 불법 파업이라고 보도하고 국민들은 아무 의심도 없이 불법파업이라고 받아들입니다. 그 파업이 왜 불법이었을까요? 여러분들 중 많은 사람들은 철도노조의 파업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피해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컸기 때문에 불법파업이라 생각할 겁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그 사회에 손실을 발생시키면서 하는 파업은 대한민국 헌법 제33조가 보장하고 있는 권리입니다. 그 파업이 그 사회에 끼치는 손실의 양에 따라서 합법․불법이 판단되는 게 아닙니다.
철도노조 파업이 불법이 된 이유는 "철도의 민영화는 정부의 정책인데 노조가 감히 정부의 정책을 놓고 교섭하자고 요구할 수 없다"는 겁니다. "단체교섭 대상의 범위를 벗어났다"는 겁니다. 그러나 노동자들 입장에서 생각해보십시오. 철도사업이 민영화되면 조합원들 신분이 공무원에서 민간인으로 바뀝니다. 각종 복지제도와 연금제도, 퇴직금제도가 다 바뀝니다. 신분상 중대한 변동이 생기는 상황에서 노동조합이 그 문제에 대해 교섭하자고 요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까? 우리 사회는 합법적인 요구사항, 단체교섭의 범위를 굉장히 좁게 해석합니다. 합법적인 파업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배경들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들의 권리가 더욱 확대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라고 다들 생각합니다. 여성의 권리가 지금보다 신장되는 것이 사회의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권리가 지금보다 더 확대되는 것은 사회 전체에 해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는 지금보다 확대되는 것이 한국사회에 상당히 해롭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 중에서 자신이 대기업 직장인이거나, 가족 중에 대기업 직장인이 있거나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나 가족의 소득이 증가하기를 바라는 그 순간부터 한국 사회에 해를 끼치는 존재가 됩니다. 어떻게 이런 엄청난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동결하는 것이 한국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구국의 결단인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합리적으로 따져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노동조합에 대한 몇 가지 오해
노동조합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한번 풀어봅시다. 사회가 점점 발전할수록, 지식기반사회가 될수록, 정보화사회가 될수록, 미래 사회가 될수록 노동조합은 그 사회에서 점점 덜 중요해질 거라고 보통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우리 사회에 이미 조합원의 대다수가 석․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는 노조가 수십 개입니다. 지식기반사회의 노동조합이 바로 그거예요. '지식기반사회'란 단어가 뭘 의미하는지 찬찬히 생각해보십시오. 지식인이 열심히 일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사회라는 뜻입니다. 이제는 학교 좀 다녔다고 특권층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노동자들의 학력이 아무리 높아져도 노동조합은 그 사회에 계속 필요합니다.
정보화사회와 노동자들은 별 관계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보화사회의 상징인 IT 산업의 한국지사 노동조합을 가보면 조합원 150명 가량이 전원 토익 900점 이상입니다. 토익 만점자가 수십 명인 노동조합들이 생기는 겁니다.
선진국에선 경찰도 노동조합을 설립한 나라들이 있습니다. 경찰의 파업을 국민들이 지원합니다. 프랑스의 경찰노조가 파업하면서 자크 시라크 정부에게 요구한 것은 핵실험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붓지 말고 그 비용으로 국민의 복지를 개선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그렇게 안 될 것 같습니까? 대한민국 경찰노조 반드시 만들어집니다. 여러분과 내기해도 자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경찰노조가 정부에 국방비를 0.1%만 줄이고 그 비용으로 모든 소아암 환자의 치료비를 전액 지불하라고 요구하면서 파업한다면 여러분은 지원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날이 반드시 올 겁니다. 판․검사 변호사가 노동조합을 조직한 나라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판․검사 변호사들도 노동조합 깃발 아래 모이게 될 겁니다. 똑똑하고 정의로운 판사들부터 노동조합 깃발 아래 모이게 될 것입니다. 제 말이 틀리나 두고 보십시오. 아무리 늦어도 여러분들이 죽기 전에 보게 될 겁니다.
노동조합은 사회가 점점 발전한다고 해서 중요성이 희석되는 조직이 아닙니다.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노동조합이야?" 이런 거짓말을 우리는 수십 년 동안 들어왔습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한국의 노동문제가 왜 비정상적일까요? 그 이유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강연하신 분들이 다 설명했습니다. 한홍구 선생이 제가 하고픈 얘기 3분의 1쯤 했습니다. 박노자 선생이 또 3분의 1쯤 했습니다. 홍세화 선생님이 절반 정도 얘기했을 겁니다. '나는 무슨 얘기를 해야 되나?' 고민하면서 왔습니다. 제 얘기 중에 새로운 내용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기 모이신 분들은 혼자 알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우리 사회에 공론화해야 할 사명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이 다 아는 얘기일지라도 '내가 다 아는 사실을 저 사람은 어떤 식으로 표현하고 설명하는지 참고해보자'는 생각으로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한홍구 교수가 정치적인 측면에서 우리 역사의 파행적 과정을 열심히 설명했습니다. 박노자 교수는 근대화라는 측면에서, 홍세화 선생은 진보라는 측면에서 설명했을 겁니다.
역사 발전 과정과 사회 정체성
그 왜곡된 역사 발전 과정을 다른 시각으로 보면 곧 자본주의 사회가 건설된 과정입니다.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 체제인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자본주의 사회 - 대한민국이 건설된 과정이 다른 나라와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중세 사회의 모순을 스스로 깨닫고 자신들의 손으로 계획을 세우고 뜯어고치면서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했습니다. 신분제도가 철폐되면서 시민이라는 계급이 형성됐습니다. 다양한 출신이 시민 계급을 형성했습니다. 해방된 농노, 몰락한 영주, 숙련된 수공업 노동자, 소생산 자영업자, 중소 자본가가 다 시민계급으로 모였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를 건설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와 중세 사회의 가장 큰 차별성, 근대와 중세의 차별성, 유럽을 중심으로 설명하면 봉건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의 차이입니다. 여기서 근대라는 개념은 우리가 박노자 교수의 강연을 듣고 머리가 복잡해지기 전에 그냥 막연히 생각하던 근대라는 개념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가 최소한 근대적 합리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게 있습니다. 형식적, 제도적으로는 신분상의 차별이 철폐됐다는 겁니다. 지금은 조선시대의 양반과 상놈처럼 태어날 때부터 사람 신분을 구별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더 큰 차별이 생기긴 했지만. 그것이 우리가 최소한으로 인정할 수 있는 근대적 합리성입니다.
시민계급이 형성되는 과정은 바로 그 이전의 사회와 달리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 평등한 자격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시민적 권리들이 존중되어야 하는지'를 깨닫는 과정입니다. '각자에게 어떤 권리들이 존중되어야 그 공동체가 올바로 평등하게 발전할 수 있는지'를 깨닫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시민혁명을 거친 곳도 많습니다. 거의 대부분 그랬습니다.
우리는 역사 발전 과정에서 그 중요한 단계가 생략돼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계획과 전혀 무관하게 일제 식민지라는 기형적 방식으로 어느 날 갑자기 자본주의에 편입됐습니다. 조선 사회의 양반과 상놈이라는 신분제도를 우리 손으로 무너뜨린 것이 아닙니다. 그 중요한 과정이 역사 속에서 사라져버린 겁니다. 사람들이 그 불평등이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고 "양반과 상놈으로 사람을 태어날 때부터 차별하는 제도를 없애자." 그렇게 요구하면 당연히 반대하는 사람들이 생기겠죠. "반상의 법도가 엄연하거늘..." 지금 호주제 하나 없애기 위해서 몇 년 동안 씨름하는 거 보십시오. 처음에는 반대하는 의견이 훨씬 많았을 겁니다. 진보는 처음에 항상 소수의 생각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제도가 바뀔 때마다 사회 각 세력이 갑론을박 주고받으면서, 싸움도 벌이면서, 이합집산하면서, 시민혁명도 거치면서 우리 사회를 우리 손으로 뜯어고친 게 아닙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일제 식민지라는 방식으로 자본주의에 편입됐습니다.
일제시대에 사회 상층부에 진입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점령세력인 일본에 협력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친일파'라고 불리는 민족반역자들이 그 뒤 줄곧 진행된 근대화 과정에서 전혀 처벌받지 않고 사회의 주역으로 행세합니다. 경제와 정치와 언론과 교육과 문화에 대한 거의 모든 권한을 다 가지게 됩니다. 그 자손들 역시 공부 많이 하고 해외 유학도 다녀오고 기업을 물려받음으로써 우리 사회 지도자가 됩니다. 그러나 독립투사의 자녀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십시오. 민족문제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독립 운동했던 사람들의 자녀들 절반 이상의 학력이 중졸입니다. 독립유공자 60퍼센트가 극빈자로 살았습니다.
그 전통을 이승만 정부가 고스란히 이어받습니다. 그 이후에 군사 독재 정권이 역시 고스란히 이어받습니다. 근대화가 진행되는 백 년의 세월 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세력은 도덕적 우월성을 상실한 집단이었습니다. 식민지 부역 세력이 해방된 뒤에도 그 사회의 근대화 과정을 지배한 나라는 전 세계에 거의 없습니다. 대한민국과 월남이 그 드문 예에 속합니다.
도덕적 우월성을 상실한 세력이 사회를 지배한다는 것은 그들의 개인적 비도덕성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근대적 합리성과 이성적 상식이 자리 잡지 못하는 비극이 초래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교육, 언론, 경제, 정치, 각종 제도를 결정할 권한을 가진 부도덕한 사람들이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들은 절대로 실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정한 방식으로 재산을 모으거나 부당한 수단으로 권력을 탈취한 사람들에게는 국민의 대부분이 노동자이거나 노동자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사회에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올바른 관점이 형성된다는 것이 거의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자신들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내용을 어떻게 국민들에게 가르칠 수 있었겠습니까?
정상적인 사회가 가지고 있어야 할 법과 제도
사회법 마인드가 정상적으로 형성된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의 차이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세계에서 휴대폰을 가장 많이 생산 판매하는 회사가 있습니다. 어느 회사입니까? 네, 삼성이라고 답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대학 교수들 모인 데 가서 물어봐도 삼성이라고 답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삼성은 세계 3위입니다. 4위가 LG, 아마 곧 세계 1위가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 대단한 나라지요.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세계 최대의 휴대폰 생산 판매 회사는 핀란드의 '노키아'라는 회사입니다. 이 회사의 부회장으로 '안시 반요키'라는 40대 후반의 남성이 있습니다. 그 나이에 취미로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제한 속력 50킬로미터인 도로를 75킬로미터로 달리다가 단속에 걸렸습니다. 과속 스티커를 한 장 받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그 사람이 단 한 번 과속하다 걸려서 내야 했던 범칙금이 우리 돈으로 1억 3천만 원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됐을까요? 어떻게 과속 한 번 했다고 1억 3천만 원의 범칙금을 내는 일이 가능할까요? 이것이 세계의 많은 정상적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법과 제도입니다. 그 사람의 재산과 수입에 비례해서 벌금을 부과합니다. 참 이상한 나라라고 생각합니까? 그 사람들이 볼 땐 우리나라가 이상한 나라입니다. "월드컵 4강씩이나 올랐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는 한 달에 수억 원 버는 사람도 과속하다 걸리면 3만 원 내고, 한 달에 100만원 버는 노동자도 과속하다 걸리면 똑같이 3만 원씩 낸다더라, 뭔 세상에 그런 불공평한 나라가 다 있어?" 어느 나라가 정상적인 사회에 가깝다고 생각합니까?
우리나라는 실체를 깨달으면 거의 밤에 잠이 오지 않습니다. 모른 채 살고 있는 겁니다. 재벌 회장들은 재산이 수천억 원 혹은 수조 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재벌 회장을 꼭 지칭해서 공격하는 거 같으니까 고칩시다. 나중에 편집해주세요. (청중 웃음) 재산이 수천억 원, 수조 원 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도 맥주 한 병 마실 때 600원 정도의 세금을 냅니다, 여러분들처럼 학생이나 노동자도 똑 같이 맥주 한 병 마실 때마다 600원 정도의 세금을 내야 합니다. 이걸 지금 정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다른 나라들도 그럴 것 같습니까? 가장 전형적인 자본주의 국가 미국도 이렇지 않습니다.
노동자의 권리는 헌법이 보장한다
한 가지만 더 얘기해봅시다. 대한민국 헌법 제33조가 보장하고 있는 것이 이른바 노동3권입니다. 노동자에게 보장된 세 가지 권리.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입니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조직을 만들 권리를 가지고 있다.' - 단결권입니다. '노동자들은 아주 작은 문제라도 같이, 한꺼번에, 단체로 요구할 권리가 있다.' - 단체교섭권입니다. '노동자들은 그렇게 요구하다가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국민에게 불편을 끼치고 사회에 막대한 손실을 발생시키면서 파업할 권리도 갖고 있다.' - 단체행동권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살벌한 권리가 어디 있습니까?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는 권리. 어쩌자고 전 세계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이것을 노동자들에게 신성한 권리로 보장했을까요? 왜 그렇게 해야 국제기구에 가입시키고 있을까요? 우리나라도 노동법을 개정하겠다고 약속하고 나서야 OECD에 가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 권리는 참으로 막강한 권리이기 때문에 갖고 싶어 하는 다른 조직이 많습니다. 그러나 다른 조직에게 그 권리를 보장하면 큰일 납니다. 만약에 조폭한테 보장해줘 보세요. (청중 웃음) '폭력배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조직을 만들 권리를 갖고 있다.' - 단결권, 그 권리를 얼마나 갖고 싶겠습니까? '조폭은 떼거지로 몰려가서 요구할 권리도 가지고 있다.' - 단체교섭권,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갖고 싶을 겁니다. 그러나 조폭은 조직을 만들고 아무 짓도 안 해도 법에 걸립니다. (청중 웃음) 그 똑같은 권리가 노동자에게는 보장돼 있는 겁니다.
제가 어디 가서 이렇게 강연했더니 한 노조간부가 질문하기를 "조폭은 왜 노동자가 될 수 없습니까?" 그렇게 묻습니다. 제가 다시 물었어요. "도대체 무슨 소립니까?" 그 간부가 말하기를 "그 사람들도 고생 많이 합니다." (청중 웃음) "추운 겨울에 길거리에서 우유하고 빵만 며칠 동안 먹어보십시오. 한 달 동안 자장면만 먹어보세요. 고생 많이 합니다. 조폭은 왜 노동자가 될 수 없습니까?" 그래서 제가 또 물어봤지요. "실례지만, 어디서 오셨습니까?" 어느 노동조합의 간부가 그렇게 질문했을까요? 보안경비업체입니다. 전 조합원이 무술유단자인 회사에요. 아마 자기 친구가 조폭이거나 자기도 조폭 똘마니 경험을 했거나 그래서 그런 질문을 했겠죠. 그러나 그런 사람도 노동조합을 만듭니다. 노동조합은 직종을 불문합니다. "당신 같은 사람들이 무슨 노동조합이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노조에 대한 그릇된 인식에 수십 년 동안 길들여졌기 때문입니다. 공무원들이 무슨 노동자야? 신성한 교사가 무슨 노동자야?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죠. 노동조합에 대해 그릇된 인식을 수십 년 동안 훈련받은 사회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본주의
얼마 전에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정부에게 비정규직 숫자를 축소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한국 비정규직 노동자가 너무 많다, OECD 30개국 중에서 가장 비율이 높다, 비정규직화 속도가 세계에서 제일 빠르다, 숫자를 줄여라. 국제 금융자본이 왜 그런 요구를 했을까요. 한국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제게 마이크를 설치해주느라 수고한 방송사 직원에게 물었습니다. "정규직이세요?" "네 저는 그렇습니다." "오신 분들 다 정규직입니까?" "아뇨, 계약직도 있습니다." 관심을 가지면 보이는 겁니다.
얼마 전에 비슷한 일이 또 있었어요. 국제금융자본이 한국 정부에게 재벌을 개혁하라고 요구합니다. 아니 어떻게 그런 기특한 요구를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신자유주의'라고 하지요. 정확하게 '신보수주의'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자신들은 스스로 '순수 자본주의'라고도 하고 학자들은 '시장경제주의'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보수적 이데올로기의 원조인 국제금융자본이 한국 사회에 들어오면 진보 세력이 됩니다. 어떻게 이런 코미디가 가능할까요? 한국 자본의 행태가 얼마나 비정상적인지를 보여주는 겁니다. 이 경제 체제가 유지되는 데에, 정상적으로 발전하는 데에 해로울 정도로 우리 자본의 행태가 비정상적인 겁니다.
대영백과사전이나 가장 큰 영영 사전 찾아보면 거기 나오는 항목이 있습니다. 'Jae-bul:' 또는 'Chae-bul:'로 표기합니다. 그 뒤에 설명하기를 "한국에 존재하는 대기업 집단의 독특한 기업 소유 경영 형태로서..." 다른 나라엔 재벌이 없다는 뜻입니다. 일본이나 미국의 수많은 대기업 집단은 재벌 아닙니까? 라고 물으시겠지만 그 기업들은 그냥 대기업 집단일 뿐 재벌이 아닙니다. 일본의 재벌은 전쟁 이후에 전범으로 처벌받으면서 다 해소됐습니다.
역사는 비가역적이어서 '만일'이 무의미하다지만, 만일 우리 역사 속에서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일본군 장교를 했던 박정희씨가 대통령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사람을 형님이라고 부르던 사람들이 그 이후에 계속 집권할 수 있었겠습니까? 친일파 청산은 열 번을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그 전통을 계속 이어받았던 세력들이 최근 근대화 백년의 역사 속에서 최초의 위기의식을 느낀 겁니다. '아, 다시는 우리 시대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처음 겪어본 위기의식이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는 겁니다. 그것이 우리가 최근에 보고 있는 국회의 대통령 탄핵 사태입니다.
TV마다 일요일 아침에 정치 토론 프로그램이 있는데 한 야당 국회의원이 나와서 "불법 정치자금 규모가 우리의 10분의 1을 넘지 않았습니까?" 언성을 높이니까 우리집 아이도 TV를 보다가 "야, 너네들이 지금 그 말이 나오냐?"고 합니다. (청중 웃음) 우리집 아이는 이런 문제에 관심이 좀 적은 편이에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그룹사운드 밴드에서 기타를 쳤습니다. 기타를 끼고 삽니다. 일본의 '엑스저팬'이라는 락 밴드의 멤버 '히데'가 사용했던 모델을 구입했다고 얼마나 감격해 하는지. "다른 멤버들 기타에는 다 싸인(sign)이 있는데요, '히데'는 일찍 죽어서 싸인(sign)이 없어요." 정말 섭섭해 합니다. '아, 얘가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까, 그 길로 나간다 해도 할 수 없지...' 각오하고 있었는데 고등학생이 된 어느 날 "이게 내 길은 아닌 거 같아요." (청중 웃음)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대학교 대 여섯 곳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강연을 했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제 아들과 비슷한 머리 모양이 없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3개월 동안 빡빡머리가 자란 채 그냥 두는 겁니다. '저 놈이 참 순진한 녀석인가보다.' 생각했는데, 웬걸, 어떤 스타일로 할지 3개월 동안 결정을 못한 겁니다. (청중 웃음) 하루는 아주 희한한 퍼머를 하고 왔습니다. 누구 머리랑 비슷하냐면 가수 전인권씨하고 옛날 양동근씨를 합쳐놓으면 그게 우리 아들 머리입니다. (청중 웃음) 얼마 전에는 드디어 속속들이 하얗게 블리치를 넣었어요. 집에 들어가다가 웬 사자 새끼가 한 마리 있는 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청중 웃음) 아들 아이가 어떤 모임에 가면 "어떤 악기 연주하시냐?"고 바로 질문이 나온답니다. 그런 젊은이조차 정치에 관심을 가지도록 한 겁니다. 이 사람들이 이번에 정말 큰일 한 거죠. (청중 웃음)
우리 시대의 노동자
제가 주로 만나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하기 어려운 결단을 한, 쉽게 설명하면, 자신과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 만나면서 느끼는 신기한 공통점은 그 사람들의 어린 시절이 상당히 불우했다는 겁니다.
서울시의원 중에 민주노동당 출신 의원이 딱 한 명 있습니다. 여성입니다. 전 그 사람이 원래 활달하고 분위기 밝고 표정이 주는 인상도 그래서 고생하지 않은 줄 알았어요. "어릴 때 별로 고생 안 했지?" 무심코 물었더니 이렇게 답합니다.
"나 되게 어렵게 자랐어요. 내가 결식아동이었어요. 아버지는 저 세 살 때 돌아가셨구요. 딸만 넷인 집안을 어머니가 혼자 다 키우셨어요. 식당 일을 하시는 엄마한테서 항상 냄새가 났어요. '엄마한테서는 이상한 냄새가 나.' 그렇게 말했다가 엄마 얼굴이 빨개지신 적이 있었는데, 그게 엄마 가슴에 얼마나 못을 박는 일인지 나중에 철이 들고 나서 깨달았어요. 난 하도 굶어서 '서른 살 되기 전에 죽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난 그게 고생인지도 몰랐어요."
한 통신회사가 부정한 방식으로 수천억의 매출을 달성한 것을 언론사에 알려서 그것을 바로잡도록 한 노동자가 있습니다. 정보통신위원회가 그 회사에 법으로 부과할 수 있는 최고의 벌금을 부과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면 휴대폰 판매사업을 법인 분리시키겠다고 경고까지 했을 정도였습니다. 아마 우리나라 경제에 큰 유익을 주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 노동자 어떻게 됐겠습니까? 해고당했습니다. 청와대와 정통부 앞에서 하루 4시간씩 1인시위를 4개월 동안 벌였던 그 노동자를 만났어요. "어릴 때 기억나는 거 아무거나 얘기해봐요." 라고 물었습니다.
"가난했던 기억밖에 없어요. 학교에 돈을 못 내니까요, 교감선생이 아이들을 운동장에 모아놓고 벌을 줬어요. 언제 낼 거야? 개별적으로 물어보고... 나는 엄마가 항상 얘기하던 대로 말했어요. 고추 다 따서요, 다 말려서요, 다 팔리면 낼 거라고... 중 3 때 수학여행 가는데 돈 없어서 못 갔습니다. 그랬더니 중 1 소풍 가는 데 따라가래요. 어머니가 선생님 드리라고 4홉들이 소주를 한 병 주셨어요. 소풍 가서 보니까 다들 맥주를 꺼내는 거예요. 나는 쪽팔려서 못 꺼냈어요. 그날 집에 오다가 소나무숲 속에 들어가서 제가 다 마셔버렸어요."
그 중학생이 혼자 소나무숲에서 4홉들이 소주를 다 마실 때까지 어떤 생각했을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한 사람 얘기만 더 하겠습니다. 인쇄노동자입니니다. 학교 어디까지 다녔어?라고 물어보았습니다.
"중학교는 졸업했구요. 고등학교에 가지 말라고 했지만 가족들 몰래 시험을 봐서 붙었어요. 교복값, 책값, 등록금이 나왔는데 그 돈 벌겠다고 공장에 취업했어요. 중학교 졸업식에도 못 가고 열심히 일했는데, 등록금 마감날까지 내가 그 돈을 못 벌었어요."
그날 이후 지금까지 20여년을 노동자로 삽니다. 그런 사람들이 여기 오신 많은 분들보다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남은 평생을 계속 불우하게 살아야 하는 것. 이걸 우리가 계속 용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이러한 문제를 우리 사회에서 누가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노동운동입니다. 노동운동은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집단이기주의적인 운동이 절대로 아니에요.
제가 기업체의 임원을 만났습니다. 자동차회사입니다. 영업 파트를 책임지는 고위관리자입니다. 영업사원 한 사람이 보통 한 달에 차를 서너 대씩 파는가 본데 이 사람 하는 말이 "한 달에 차를 한 대도 팔지 못하면서 그냥 월급만 받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영업사원의 자격이 없는 무능한 사람들입니다. 노동조합이 이 사람들을 보호하기 때문에 해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조 없었으면 이 사람들 다 해고했습니다. 대체 노동조합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겁니까?" 저에게 아주 공격적으로 질문을 합니다. 제가 말했어요. "이사님 생각하시기에는 백해무익한 노동조합을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서, 대한민국도 헌법 제 33조에서 왜 노동자의 가장 기본적인 신성한 권리로 보장하고 있을까요? 그것에 대해 학교에서 배운 적 있습니까? 그 이유에 대해서 먼저 공부하시고 나중에 다시 물어보십시오."
제가 여러분에게 노동조합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유익한 역할에 대해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옛날에는 학자들이 대학에서 해직 당하고 감옥에 갇히면서 주장하던 것들을 요즘은 민간 경제연구소에서 서서히 주장하기 시작하고 있어요. 주의 깊게 찾아보면 그 속에서 설명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의 예로, 구제 금융 때를 생각해보십시오. 정리해고제도가 도입됐습니다. 한국 직장인의 30퍼센트 정도가 구조 조정을 당해야 한국 경제가 살아날 거라고 했습니다. 당시 직장인들은 상여금을 대부분 반납하고 임금은 삭감됐습니다. 그렇게 절약하며 사느라 노력하고 있는데 TV에서는 여성 코미디언이 등장하는 이상한 공익광고가 나옵니다. "국민 여러분 지나친 절약은 경제에 해롭습니다. 똑똑하게 소비하십시오." 아니 이게 무슨 소립니까? 경제위기 상황이에요. 경제위기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수십 년 세월 동안 절약이 미덕이라고 배웠어요. 그 광고의 내용은 이런 뜻입니다. "여러분, 자동차 한 4-5 년 탔으면 새 걸로 좀 바꾸십시오. 전자제품 2-3 년 썼으면 빨리빨리 버리고 새 걸로 바꾸세요. 아무리 살림이 어려워도 철따라 옷도 좀 사 입으면서 사세요. 우리 기업이 다 망하게 생겼습니다."
국민의 다수가 노동자인 사회에서 저임금 경쟁력에 기반한 경제발전정책이 반드시 초래할 수밖에 없는 결과였습니다. 그걸 이십여 년 전부터, 정부가 세계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자랑할 때부터, '한강의 기적'이라고 했을 때부터 계속 지적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대학에서 쫓겨나고 감옥에 갇히면서... 20여 년 후에 거의 정확히 그 사람들 예언대로 된 겁니다. 요즈음은 심심찮게 그런 주장들을 볼 수 있습니다.
다수가 노동자인 사회에서 노동자의 소득이 증가하는 것은 우리 경제에 유익합니다. "그러면 기업에는 인건비 부담이 생기지 않습니까?" 당연히 생깁니다. 그 인건비를 부담하면서 기업을 경영해야 하는 것이 경영자들의 사명입니다.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 저임금을 유지하는 것, 노동비용을 줄이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경쟁력이 되는 회사는 빨리 바뀌어야 합니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 중 하나는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그 기업이 반드시 살아남아서 한국의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선 퇴출당하는 것이 한국 경제에 유익한 기업도 있습니다. 그래야 새로운 건전한 기업이 고용을 창출하고 우리의 경제를 이끌어가는 겁니다. 소수의 부자들만이 소비를 창출하는 구조는 그 경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없습니다. 건전한 소비는 다수의 국민, 즉 다수의 노동자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은 빨리 철폐해야 합니다. 그러나 정규직의 소득을 동결하거나 낮춤으로써 차별을 철폐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한국 경제에 매우 해롭습니다.
결론적으로, 제가 오늘 여러분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노동운동․노동조합․노동문제에 대해 갖고 있던 막연한 생각들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구나 한 번쯤 생각해봐 달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옳게 보기 위해 노력해 달라는 겁니다. 다른 나라의 예들을 많이 참고해 달라는 겁니다. 이제 자유롭게 토론하면서 이야기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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