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놉티콘 (PANOPTICON,일망一望 감시시설)
“ 벤담(Bentham)의 ‘일망(一望) 감시시설’은 주위에 원형의 건물이 에워싸고 있고 그 중심에는 탑이 하나 있어서 중앙의 탑 속에 감시인을 한 명 배치하고, 각 독방 안에 있는 광인이나 병자, 죄수, 노동자, 학생 등 누구든지 감시할 수 있는 시설을 말한다. ‘일망 감시시설’은 아주 다양한 욕망으로부터 권력의 동질적 효과를 만들어내는 경이로운 기계 장치이며, 인간에 관한 실험을 할 수 있고, 또한 인간에게 적용되는 변화를 확실하게 분석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공간이다. ‘일망 감시시설’은 일종의 권력 실험실로 운용되는데 권력은 분리하고, 고정시키고, 분할의 관리방식을 취한다. 이것은 이상적 형태로 압축된 어떤 권력 메커니즘의 도식이고 정치 기술의 형태로서 공간 속의 신체 배치, 개개인 상호간의 비교 분배, 위계질서적인 조직구성, 권력의 중심부와 전달부분의 배열, 그리고 권력의 도구와 관여 방식의 규정 등 하나의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이러한 형태들은 병원이나 공장,학교, 그리고 감옥에서 이용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도시의 중심부에는 그 도시를 오랫동안 유지시키기 위해서인 듯, ‘권력의 중심’이나 세력의 핵심체가 아니라 다양한 요소들-벽, 공간, 제도, 규칙, 담론- 의 복잡한 조직망이 있으며 이것들은 다양한 성격과 수준의 요소들을 대상으로 한 전략적 배치로서 복잡한 권력 관계의 결과와 도구, 다양한 ‘감옥’ 장치들에 의해 예속화된 신체와 힘, 그러한 전략의 구성요소인 담론의 대상들 사이에서, 곧 중심적이고 중앙권력 지향적인 사람들 틈에서,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의 톱니바퀴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결국 우리들 스스로가 이끌어 가는 권력의 효과에 포위된 채 일망 감시장치 속에 있다.“ (감시와 처벌, 미셸 푸코, 오 생근 역, 재 인용)
올해는 우리 수도회가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한국 진출 50년이 되는 해이며 내가 입회한지 30년 그리고 서품 20년이 되는 해이다. 이 뜻깊은 해를 맞으며 나는 수도자와 사제로서의 정체성을 재 정립하고자 노력을 기울였다. 이 사진작업은 나의 정체성을 재고하고자 하는 나의 철학적, 신앙적 여정에 도구가 되었다.
수도원에서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 순명, 엄격한 규율, 독방생활, 학습과 노동으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수련과정에서 정작 문제가 되어 나 자신을 관통하는 끊임없는 ‘토마스’의 회의는 ‘주체적 자유’의 범주였다.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 순명이 ‘주체적 자유’인가? 아니면 ‘주체적 자유’라고 느끼는 ‘동굴의 우상’에 불과한 것인가?
미셸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분석한 권력의 정치형태는 현대 사회의 어떤 구조기관이든지 전부 수도원의 원초적 권력 통치형태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감시하고 분리하고 시간표를 작성하고 시험을 치루고 정렬을 하는 것 자체가 권력이 개인을 통치하는 정치형태의 기술이며, 그 구조기관은 대표적으로 감옥, 학교, 군대, 병원, 공장 등이다. 이곳에서 “규율은 집단 다수의 유용한 규모를 확장시키면서 동시에 다수를 참으로 유용하게 만들어 놓기 위한 것으로서 다수를 지배해야 하는 권력의 장애요소들을 감소시키는 세밀한 기술적 창조의 집합이며, 다수의 인간과 생산 장치의 다양화를 조정할 수 있는 기술로서 이해되어야 한다.”(감시와 처벌, 미셸 푸코, 오 생근 역, 일망 감시방법 참조) 미셸 푸코는 거의 모든 저작에서 개인을 주체화시키는 역사적 배경과 그 과정을 분석하여 현상을 보여주지만 ‘주체적 자유’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는 제시하지 않고 문제 해결은 오로지 독자인 ‘주체’에게 맡긴다. 때문에 나는 사회를 끊임없이 분석하며 인간의 한계를 신앙으로 극복하려는 영성적 삶에의 의지와, 이러한 철학적 사유를 통하여 내 삶을 ‘자유로운 주체’로서 우주 안에서 자연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사는 삶의 여정이 결국은 나를 강인한 삶의 의지로 이끄는 하느님의 은총과 섭리임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다.
이번에 작업한 사진들은 미셸 푸코가 분석한 권력의 통치형태인 구조기관들인데 전부 나와 관계가 있는 곳들이다. 내가 다닌 학교, 군대, 공장, 병원, 그리고 내가 사목하고 있는 감옥, 나환자 정착촌이며 내가 살았거나 살고 있는 수도원 등이다. 나는 이 모든 권력의 통치형태에 의해서 오늘의 내가 만들어졌으며 나의 영육이 현존함을 직시한다.
“여러분은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갈라 5,13)
김 대아
일 시 : 2008년 7월 23일(수)~29일(화)
장 소 : 평화 화랑(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1층)
초대일 : 2008년 7월 26일(토) 오후 5시
김 대아 신부님의 전시를 축하드리며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김 대아 신부님의 소식을 물어오면, 저는 신부님께서 교도소 가셨다고 말을 합니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 무슨 일로 그 거룩한 신부님께서 교도소까지 가게 되셨느냐고 물어오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설명을 하면 한바탕 웃음으로 끝날 일이지만, 저는 신부님께서 들려주셨던 일화를 그들에게 소개 합니다.
신부님께서 교도소 사목을 가셔서 많은 죄수들 앞에서 하신 말씀이 이러셨답니다.
“여기, 30년 이상 복역한 사람 손 들어봐!
없어?
그럼 니들은 다 나보고 앞으로 형님, 그것도 큰 형님이라고 불러.
교도소하고 수도원은 생긴 것도 시스템도 똑 같애. 교도소는 본래 수도원을 그대로 옮겨 놓은거니까.
그리고 나는 수사로 수도원에 산지 30년이 넘었어. 30년 복역한거나 다름없잖아? 그러니 큰 형님이지?
그리고 어렵고 힘든 일 있으면 큰 형한테 이야기 하듯 상의하고 그래. 알았지?”
이제 눈치 채셨겠지만 김 대아 신부님은 교도소에서 일하십니다. 교도소에 갇혀 인생을 보내는 형제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함께 나눌 기쁨이 있으면 기쁨을 나누는 일에 헌신하고 계십니다.
부산 기장군 일광면에 있던 삼덕 성당에서 교도소로 자리를 옮기신 뒤 이런 에피소드를 들려 주셨습니다. 그 때 그 일화는 단순한 희화거리가 아닌 ‘파놉티콘’의 이중적이며, 중의적인 의미에 대한 통찰을 저에게 일부 전해 주시고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의 전시로 이어진 것이라고 봅니다.
신부님께서 일우에 사진 공부를 하러 오신 것은 약 3년 전이었습니다. 사진 집단 일우의 10기 기수였었지요. 공부 하시는 6개월 동안 소년처럼 눈을 반짝이며 사진 수업에 몰두 하셨습니다. 아직 물을 머금지 않은 솜처럼 사진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이셨지요. 일우 10기를 마치고 난 뒤에도 저는 신부님께서 대학에서 정식으로 사진을 공부 하셨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이전에 대학에서 정식으로 사진 공부를 하셨던 분이 젊은 선생의 강의에 겸손함을 다해 들어 주시던 태도를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붉어집니다.
저는 진리라는 말을 순리라는 말로 잘 옮겨 씁니다. 진리는 멀어 보이나 순리는 가까워 보이기 때문일 지도 모릅니다. 진리를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할 바가 되어 단단하고 접근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순리는 순응하는 삶의 자세를 보이는 것 같아 한결 부드럽습니다.
김 대아 신부님의 ‘파놉티콘’이 저에게는 중의적이며 이중적인 의미로 다가 오는 것도 진리와 순리가 하나이나, 나의 편의에 따라 나누어 생각하는 이중적 사유구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신부님께는 신으로 가는 자유의 계단이자 인간의 세계로 들어가는 구원의 형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부디 구원과 자유가 함께 하는 신과 인간의 세계를 우리 앞에 구현해 주실 것을 당부 드리며, 사진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김홍희/사진가
http://blog.naver.com/rac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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