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스 레싱의 <런던 스케치>는 단편집입니다. 런던을 공간으로 많은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미혼모 출산에 대한 이야기 이혼한 쌍들이 서로 얽히는 심리 등을 보여주는 작품도 있습니다. 현대적 삶의 문제적 상황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봅니다.
알렝 로브그리예의 <질투>는 참 묘한 작품입니다. 누보 로망이라는 이야기는 대학시절부터 들었지만 작품으로 접한 경우는 빈약했는데 이 글을 읽고 오늘날 서사기법이 어디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펼쳐져 왔는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질투하는 남편의 시선, 끊임없이 되돌아 오는 반복적 속삭임을 통해 질투라는 감정에 사로잡힌 영혼의 고통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아아, 우리에게 이러한 잔은 피하게 하소서. 오델로의 무어인이 이미 겪은 그런 고통.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삶을 파멸의 구덩이로 몰고간 그런 오욕칠정의 탐욕.
지금 D.H. 로렌스의 <채털리부인의 연인>이라는 작품을 읽고 있는데 참 탈도 많고 말도 많은 그런 작품이지요.
읽다보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플로베르의 <보봐리부인>이 주는 느낌과는 다소 다른 것 같네요. 결혼의 평상적 궤도에서 일탈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작품의 성격이 달라보입니다. <보봐리부인>은 개인의 일탈이라는 차원에서 해석가능하지만 <채털리부인의 연인>은 성에 대한 인식, 사회에 대한 전반적 인식이 실존주의나 모더니즘적인 관점의 선구적인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작품의 경우는 작가의 사회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불편해 보입니다. 아마 영국이나 많은 검열 당국에서는 이런 작품의 성격을 고분고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물론 노골적인 성적 묘사도 당시로는 파격적이겠으나 오늘 기준에서 보면 큰 충격은 아니겠지요. 이 작품을 외설적인 그 무엇으로 받아들이기에는 편편찮은 비판의 날이 보입니다.
많이 읽으면서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문학에 관한 한 백문이 불여일독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침묵하면서 좀더 수양을 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