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도 여름
나에겐 큰 시련의 시기가 되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병원에 입원 한적이 없었던 난
7월 중순경에
처음으로 수술대 올랐다.
대 수술은 잘 끝마쳤다고 하는데
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여
회사에 휴가를 더 사용했다.
이렇게 7월은 흘러
7월말
아이들은 방학을 하였다.
아이들은 내가 아파 그런지
방학이니 어딜가자 소리는 않고
둘째딸 다은이가
"선생님이 방학동안에 얼굴 까맣게 태워오는 것이 숙제래"^^
그리고 주섬주섬
누구는 섬으로 가고 누구는 펜션으로 가고
아쉬움을 나타내었다.
8월 회사에 출근하여
상처부위의 통증을 참고 통원치료를 다녔다.
나의 남은 휴가 일수를 알아보니
그간 틈틈이 휴가를 사용하여 2일이 남았다.
그래도 아이들 방학인데...
아내에게 아이들과 시골에 갔다오라하니
싫다하며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달력을보니
8월15일이 징검다리여서
8월14일하루 휴가냈다.
8월11일 저녁
가족들에게
아빠는 차에서 자고 라면 끊여먹고
그저 아무곳으로 무전여행을 갈려고 하는데
같이 가고 싶은사람은?
큰딸 화은이는 좋아라 하고
둘째딸 다은이는 갸우뚱 ,
아내는
" 난 집에 있을래 고생하기 싫어"---근데 어딜가는데...
나 "바람따라 구름따라 ㅎㅎㅎ"
8월12일 토
마침 어머니가 동생네 집에 올라오셔
동생식구와 엘지인화원 수영장으로 갔다.
오전에 빈손으로 동생에게 가서
무전여행을 이야기하니
동생이 텐트 , 쌀 , 김치 코펠등등 챙겨주었다.
난 블루스타에 노란 양은냄비에 라면 12개짜리 1박스만 준비했는데...
수영장에서 가족들과 어머니등과 잘 놀고 헤어질때
어머니는 발길 닿는대로 여행을 간다니
걱정이 태산이었다.
(나이드신분을 걱정하게 해야 치매가 예방됩니다.^^)
아내와 둘째도
계속하여 어디로가는데....연거퍼 묻더니
같이 동행하기로 결정
동생네와 헤어지고
문득 서해에 가고싶어
중등부 수련회 장소가 기억나
태안반도로 차를 몰았다.
가족들은
걱정 반 , 기대 반,
날이 어두워져서 만리포에 도착
우선 텐트 칠 곳을 찾으니 비용이 2만원
그리고 억수로 시끄러워
근처 민박을 할려니 6만원
이곳 저곳 찾다보니 다른 해수욕장이었다.
안내판을 보니 천리포였다.
바닷가 백사장에 텐트를 치고 있어
물어보니 그냥 치고 자면 된다함.
도로가 백사장 옆이라 텐트를 치고
저녁으로 라면4개 먹었다.
8월13일 일
일요일 아이들은 아직 텐트에서 자고 있고
나는 도의적 책임을 느껴
밥을하고 참치 김치찌게를 끊였다.
서해의 아침은 참으로 고요하고 잔잔했다.
천리포는 모래가 좋은데 아직 뚜렷하게 개발을 하지 않아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
아침을 맛있게 먹고
아이들은 드디어 본격적인 해수욕
썰물과 밀물이 심한 서해에서
아이들은 모래갯벌에서 게를 잡고 조개를 줍고
난 그늘을 찾아 잠자러 ...
아내는 물빠진 곳에서 다시마라며 채취
여름 퇴약볕 아래
우리 가족은 태양을 무서워 하지 않고 놀았다.
너무 태우는 것 같아 오후4시경
샤워를 하고 주변 탐색을 갔다.
조금 더가니 백리포가 있었다.
조용하면서 아름답고
주민들이 잘 꾸며 놓았다.
입장료가 5천원이다 해수욕장 입장요 ㅎㅎㅎ 목욕탕도 아니고
다시 화려한 만리포에 와서
아이들이 할머니에게 받은 용돈 3만으로 딜을 했다.
너희들 용돈으로
조개구이 먹을래 아니면 유람선 탈래...
역시 아빠를 닮아 유람선을 선택했다.
서해 일몰과 함께 유람을 타고
텐트로 오니 텐트가 이상했다.
아내가 서해바다에서
채취한 다시마를 말리려 텐트에 널어놓았는데
이로 인하여 텐트 폴때가 부러졌다. 에고
난 "텐트를 뭐 콘크리트로 만들었는 줄 아냐"하며 화를 내었다.
(그 다시마를 끝까지 집에까지 가지고 왔는데 그게 다시마인지 미역인지 '
아님 해잡풀인지 지금도 결정이 안되 먹지 않고 있다^^)
그럭저럭 알콩달콩 하루가 가고
별을보고 잤다.
8월14일 월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겨 백리포로 갔다.
무너진 텐트 뽈대는
절연 테잎사서 보완을 했다.
백리포는 텐트비를 받았지만
솔밭에 텐트를 치니 시원했다.
아이들도 좋아하고
가족물놀이 등등 ---
아이들은 소라게을 잡아 키우겠다고 우겨
자연은 함부로 손대는 것이 아니라며 안된다 하니
꼭 잘 키우겠다 하여
5마리씩 채취 허가를 해주었습니다.
(결국은 집에 오자 마자 장사 지냈습니다.)
아내는 텐트 주위를 이름모를 해초
말 많은 자칭 다시마를 주위에 걸고 있었습니다.
참 아이들이 소라게 먹이를 굴을 준다며
굴을 페트병에 같이 넣어서
어디서 굴을 땄을까 하며 걷다가
물빠진 바닷가 바위에서
조개껍데기 같은것이 있어 돌을 들어 깨어보니
와 " 심 봤 다"
자연산 생굴 완젼히 우유같은 물기를 머물고
바닷물로 간이 된 아주 맛있었다.
나는 굴 따먹는 재미에 푹빠졌을 때 의문이 생겼다.
사람들이 많은데 왜 나만 굴을 따먹지 ?????
아내에게 물어도 ???
마침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으니
여름에 굴먹으면 식중독 걸립니다.^^"::
"꽥" "왝"
난 갑지기 여름굴엔 독소가 있다는 사실을 감지 했습니다.
" 퇴근시간이어서 끝"
그후로도 많은 사건으로
여름휴가의 추억을 가족들 가슴속에 가득 담고 있다.
다시 업무시간 중 짬을 내어 끝까지
이번휴가때는 난 3가지를 생각었다.
첫번째 : 무계획
두번째 : 무비용
세번째 : 헝그리 정신 ^^
그래서
내 지갑엔 카드 1개 와 현금 15,000원 (기름,고속도로비용,그리고 과자로 탕진)
아 지갑에 2만원 (사워비 1회 텐트장소비)
아이들 용돈3만원 (태안반도 유람선비)
그리고
횡재 큰딸(복덩어리)이 바다에서 1만원 횡재 (사워비 및 아이스케키)^^
백리포의 멋있는 경치와 바다에 푹 빠진 후
점심을 맛잇게 먹고
연이어 라면+ 김치찌게에 지쳤는지
오후에 둘째딸 다은이가
조개구이가 먹고싶다고 했습니다.
나 "돈 없어"
둘째딸 "카드 있잖아"
나 "안돼"
둘째딸 "집에가서 내통장에서 돈 줄께" ^^::
나 "안돼 그거 너들 대학교 가면 용돈으로 써"
첫째딸과 아내
"우리도 조개구이 먹고싶다."
나 "안돼" "참 형님에게 한번 전화 해봐라"
(서울에 일 때문에 형님(아이들 외삼촌)은 비어있는 우리집에 있음)
아내가 전화하여
경치 좋은데 쉬러 오라하니 온다함
5시경에 형님이 네비게이션을 믿고
과일을 사들고 잘 찾아 왔습니다.
우선 남은 김치찌게에 식은밥을 차려주고
텐트에서 쉬시라 했습니다.
형님은 저녁을 사준다고 하니
갑자기 세명이 "조~개~구~이~" ^^ 사양이 없습니다.
그래서
형님차에 모두 몸을 싣고
만리포로~~~~~
만리포는 해수욕장 여름철 장사를 위해서인지
물가가 비쌌습니다. 멍게 1접시 3만원
우리는 조개구이를 대자를 2번 먹었습니다.
아이들이 굶주린에 지친 것처럼
주위를 무시하고 너무 잘 먹었습니다.
형님이 불쌍했던지 ^^::
추가로 대자를 더 주문했는데....
아이은 조금먹더니 배가 부른지
나에만 주는 것입니다.
조개구이로 배를 채운것은 처음입니다.
배가 불러
조개구이 먹고 난 다음에 먹을려는
맛있는 바지락 칼국수는 결국 포기했습니다.
(전 아이들이 원망스럽습니다.)
형님은 텐트가 싫은지 약속있다며
어둠속을 네비게이션에 의지하며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아름다운 서해 백리포
난
아이들에게 별보러 가자하며
돋자리를 들고 바닷가로 갔습니다.
바닷가에는
몇몇가족들이 팀을 이루고 왔고
젊은이들도 한 무리지어 와서
폭죽을 밤하늘에 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족은 누워서 폭죽을 즐기고
드디어 별 이야기시작
딸 "아빠 저게 무슨 별자리야 "
나 "어 어 북두칠성이 어디있더라 ~~~~~~"
서해하늘은 달랐습니다.
별자리 중 제가 아는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아
두개만으로 별이야기를 때울 준비를 했는데...
딸 "헤라클스자리가어디야 양자리가 어디야 전갈자리가 어디야///"
(에고 북두칠성아 ~~~~~~~~~~`)
나 (드디어 남쪽으로 느껴지는 곳에 국자모양 )" 야 저게 북두칠성이야
북쪽을 가르키는 별이지 ^^"
우리 가족의 밤하늘의 별이야기는
서로 다른생각으로 채워 갔습니다.
휴가를 마치고 출근
직원들 : 어디 갔다온거여 일주일 휴가 갔다온사람보다 더 타서 왔네...
아주 쌔까맣네 ~~~~~~~~
오후가 되니 얼굴 피부가 벗겨지기 시작 ~~~~
몇 사람이 찾아 왔습니다.
나는 챙피하여 30분에 1번씩 화장실에 가서
얼굴을 물에 적셔 얼굴이 벗겨지는 것을 은폐했습니다.
퇴근하여 집에오니
아이 얼굴도 벗겨지고 조금 심한 것 같았습니다.
난
우리집에 있는 감자를 갈아 온몸에 붇혔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우유로 마사지
모두 같이 누워서 천정을 보고 밤을 지새었습니다.
결국
그 다음날 병원에 가서 화상연고를 받아 바르며
여름날의 추억의 상처를 치유해 갔습니다.
별을 보고 자라는 우리 중등부가 되었으면 합니다.
윤동주님의 .......
별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차 있읍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하나에 추억과
별하나에 사랑과
별하나에 쓸쓸함과
별하나에 동경과
별하나에 시와
별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든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짬,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읍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우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읍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