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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류시화 독서
2019. 12. 15.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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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유시화 산문집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저자 류시화|푸른숲 |2009.05.07
페이지 233|ISBN 9788971847879|판형 A5, 148*210mm, 9,800원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
일상의 삶과 인도 기행에서 보고 듣고 사색한 산문집이다.
저자의 첫 산문집으로 내면 세계가 많이 드러나 있다. 몽롱하면서 사색적이기도 하다. 50여 편의 글을 단편 소설 읽듯이 재미있고 감명있게 읽었다. 비유적 문장이 신선하고 내면의 감정이 섬세했다. 명상적 사념과 독특한 일화들이 어울려 신비로운 분위기를 이루었다.
시간의 흐름에 대한 인식, 자연 현상에 대한 직시, 어린 시절의 경험, 아버지에 대한 회상, 인도에서의 스승과의 만남, 여행과 만남과 헤어짐, 삶을 찾아 끊임없이 헤매다닌 긴 여행길의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표현했다. 밤하늘의 별을, 때로는 풀잎에 맺힌 이슬을 바라보며 깊은 마음에 빠져 든 것을 감명 깊게 이야기했다. 어느 길로 접어들면 시공을 초월한 맑은 정수리로 돌아갈 수 있는지 끊임없이 제시하고 있다. 삶이 가르쳐 준 것들을 생각해 보게 했다.
“불쌍한 신부여, 나는 조금전까지 편안한 마음으로 자연이 나에게 드리는 기도를 듣고 있었다. 모처럼 개구리들의 순수한 기도에 귀를 즐겁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너는 너의 욕망과 바람을 나열하는 그 순수하지 못한 주문으로 내 귀를 어지럽히기 위해서 개구리들을 침묵하게 했다.” -14~15(‘나에게로 떠난 첫 여행’ 중에서)
“신을 체험하려면 네가 사라져야 하고 네가 있으면 신이 네 안에 들어올 수 없는데, 네가 어떻게 신과 하나가 되는 체험을 할 수 있겠는가? 가장 큰 방해는 세상의 소음이 아니라 바로 너 자신다.”-16 (‘나에게로 떠난 첫 여행’ 중에서)
내가 나를 잊게 하던 피리의 가락과 현의 울림, 살아온 날들이 쉽지 않았음을 위로하고 내 안의 바람을 잠재우던 그 음들, 눈부신 손가락이 만들어 내는 저 회한과 떨림, 나를 괴롭혔던 만남과 헤어짐들 사이로 파고드는 피리의 현란한 곡조, 아아, 살아오면서 때로,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 견디지 못했고, 때로는 서로 멀어져 감을 두려워하지 않았던가? -18 (‘귀 속의 바람’ 중)
낚시꾼이 아니라 명상가였던 아버지, 마을 사람들의 눈에 낚시에 미친 양반으로 비쳤지만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어떤 존재의 무게를 지녔던 아버지, 자주 나는 그가 그립다. -26(‘아버지’ 중)
“너희는 은밀한 중에 기도하라. 기도할 때 너희는 절대로 위선자처럼 행동하지 말며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거리 어귀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지 말고 이방인들처럼 중언부언하지 말라. 다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하나님을 만나라” -31(‘눈을 감고 세상을 보다’ 중)
“신은 내가 신을 바라보는 바로 그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중세의 신비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32(‘눈을 감고 세상을 보다’)
랍비 아브라함이 한 부랑아를 초대해 식사를 했다. 식사 도중에 신의 뜻과 은총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자 부랑아는 신에게 욕설을 퍼부면서 은총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정했다. 화가 난 랍비 아브라함은 그 무신론자를 식사 도중에 쫓아냈다.
그날 밤 기도 중에 신이 랍비에게 나타나서 말했다.
“나는 지난 오십년 동안 그 친구가 퍼붓는 욕설을 참으면서 날마다 그에게 먹을 것을 제공했다. 그런데 너는 그에게 한 끼의 식사도 줄 수 없단 말인가?” -36(‘시인의 여행’ 중)
나는 가끔 정원에서 거미를 바라보며 서 있곤 한다. 거미는 더없이 명상적이다. 바깥의 움직임에 깨어 있으면서 내면을 응시하는 단단한 시선이 있다. 거미에게 가끔 말을 걸지만 그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그의 침묵을 방해할 뿐이다. -66(‘이상하다, 내 삶을 바로보는 것은’ 중)
모든 씨앗은 그 속에 하나씩 태양을 간직하고 있다. 이 내면의 태양이 바깥의 태양빛을 받는 순간 생명이 탄생한다. -68(‘이상하다, 내 삶을 바라보는 것은’ 중)
성급함은 나비를 죽게 만든다. 나비가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나비의 삶을 사는 것이 애벌레의 길인 것이다. -73(‘저 정원의 세계’ )
탄진이 죽음을 맞이한 방식 또한 그가 살았던 방식처럼 남달랐다. 생애 마지막 날 그는 친구들에게 예순 장의 엽서를 보냈는데 그 내용은 이러했다.
오늘 나는 세상을 떠난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이다.
타잔
1892년 7월 27일
여행을 마치고 이 삶을 마치는 날, 우리에게 엽서를 보낼 예순 명의 친구가 있다면 그것은 더없이 좋은 일이다. –85(‘좋은 친구들’ 중)
책들은 잘난체 하는 인간으로 만들뿐 결국 허무한 것이었다. -89(‘구름 위를 걷는 사람’ 중)
별들은 언제나 변함없는 우리의 친구다. 어둠을 어깨로 밀쳐내면서 달려가는 초저녁의 고속버스 안에서 나는 생각했다. ...별들이 우리에게 전해 주는 것은 참으로 많으리라. 산란되는 빛과 그 빛 속에 포함된 서로 다른 빛의 파장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 -96(‘별’ 중)
‘네가 가장 완벽한 스승을 찾고 있듯이 나 역시 가장 완벽한 제자를 찾고 있노라 너는 내가 바라는 완벽한 제자 타입이 아니다.’ -104(‘코요테, 그 밤의 이야기’ 중)
위대한 사람과 하찮은 사람은 없다. 다만 위대한 일과 하찮은 일이 있을 뿐이다. 위대한 사람은 하찮은 일까지도 위대한 일로 만든다. 그가 하는 모든 하찮은 행동, 모든 하찮은 몸짓에서 그의 위대함이 흘러나온다. -오쇼 라즈니쉬, 『장자, 도(道)를 말하다』에서) -126(‘문 없는 문’ 중)
두 발로 걷게 된 사람에게 목발은 필요 없는 것이다. 강을 건넌 사람이 배의 고마움을 생각하고 늘 머리 위에 배를 짊어지고 다닐 필요는 없는 것이다. -138(‘마음의 강’ 중)
알베르 까뮈는 이렇게 탄식했다.
“누가 우리의 삶을 증언해 줄 것인가? 예술인가, 혁명인가? 아니다 오직 사랑만이...... 그러나 사랑은 침묵이다. 우리는 모두 남모르게 죽어간다.” -155(‘우리는 한때 두 개의 물방울로 만났었다’ 중)
사랑의 아름다움은 순결한 영혼에 있다. -159(‘소울메이트’ 중)
“나는 직업이 화가였으며, 화가로서 최선을 다했소. 내가 알건데 하나님은 용서하는 것이 직업일진데 내가 최선을 다했듯이 그 역시 그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겠소? 나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소”-177(‘존재의 눈을 뜨고’ 중)
진정한 삶이란 불꽃처럼 사는 삶이다. 감히 말하건데 그것이 곧 종교다. 무엇을 향하여 그 불꽃을 태울 것인가? 무슨 목적을 위해 내 삶을 태울 것인가? 삶 자체가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리라. -178(‘존재의 눈을 뜨고’ 중)
이곳에 삶과 죽음이 함께 있다. 계절의 변화가 가져다 주는 무상함이 있다. 삶과 죽음이 맞물려 돌아가는 이곳에 우리가 집착할 거이 무엇이며 굳이 초월할 것이 또 무엇이겠는가? -186(‘영원을 꿈꾸는 시간’ 중)
죽음에 대해 말하지 않고서 우리가 어떻게 삶을 말할 수 있으랴. 삶은 어쩌면 죽음이라는 저 절대 명제 앞에서 훌륭하게 처신하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 랍비 번함이 임종을 맞이한 자리에서 그의 아내가 슬피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랍비 번함이 잠시 창밖을 바라보고 나서 그의 늙은 아내에게 말했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우는가? 나의 전생에는 오로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배우기 위한 것이었는데!” -194(‘영혼이 새처럼 날아가 버리다’ 중)
어떤 점치는 여인이 있었다. 하루는 제우스신인가가 그녀에게서 좋은 점쾌를 받고는 소원 한 가지를 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점치는 여인은 제우스신에게 죽지 않게 해 달라고 했다. 제우스신은 두 손으로 발밑의 모래를 한 줌 집어들어 공중에 뿌리면서 말했다.
“이 모래가 전부 사라질 때까지 너는 삶을 계속하리라”
그래서 점치는 여인은 소원대로 죽지 않고 끝없이 살게 되었다. 그런데 그녀가 잊었던 것이 있으니 그것은 늙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계속 늙어갔으며, 그래도 육체는 죽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를 마귀라 하여 큰 항아리 속에 거꾸로 매달아 놓았다. 그래도 그녀는 죽지 않았다. (....) 그래서 지금도 그 항아리 속에서 점치는 여인은 외치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죽고 싶다! 나는 죽고 싶다! 나에게 죽음을 다오!” -196(‘영혼이 새처럼 날아가 버리다’ 중)
어떤 왕이 있었다. 하루는 그가 잠을 자는데 지붕 위에서 죽음의 사신이 걸어다니는 소리를 들었다.
(....) 왕은 가장 빠른 말을 골라 타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 이쯤이면 되겠지 하고 말에서 내린 왕의 어깨에 순간 서늘한 손이 느껴졌다. (...) 죽음의 사신은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말은 정말로 훌륭한 말이오. 그토록 빨리 달릴 수 있는 말은 세상에 없을 것이오. 덕분에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소. 당신은 바로 이 시간, 이 자리에서 죽게 되어 있었소.” -198(‘영혼이 새처럼 날아가 버리다’ 중)
중국의 장자는 임종을 맞이했을 때 성대한 장례절차를 의논하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나는 하늘과 땅으로 나의 관을 삼을 것이다. 해와 달은 내 곁에 걸려 있는 한 쌍의 옥(玉)이 될 것이며, 혹성과 별무리들이 내 둘레에서 온통 보석들처럼 빛날 것이다. 그리고 만물이 내 장례식날 조문객들로서 참석할 것이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 -200(‘영혼이 새처럼 날아가 버리다’ 중)
우리가 어짜피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면 과연 어느 날이 그날로 적당할 것인가?
삶과 죽음에 초연했던 한 선사가 있었다. 하루는 그가 시를 쓰는 친구를 방문했더니 시인은 마침 한 편이 시를 썼다면서 그것을 읽어 주었다.
오늘은
새해의 일곱째 되는 날
죽기에
참으로 좋은 날이 아닌가!
시인이 시읽기를 마치자마자 선사는 고개를 떨구고 죽어 있었다. -205(‘죽기에 참으로 좋은 날’ 중)
짐승들은 밖의 것에서 두려움을 느끼지만 인간은 자기 안에 있는 것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다. -214(‘달팽이에게 길을 물어’ 중)
어쨌거나 우리는 결국 이 지구라는 별에 여행을 온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이 별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동식물들도 우리와 다를 것이 없는 여행의 동반자들이다.
우리가 여행 온 이 별은 모든 면에서 다른 별들에 비해 특별하다. 바다와 산이 있는가 하면 대도시들이 있고 가슴 뛰는 인간의 사랑이 있다. 그런가 하면 대규모 전투기들을 동원한 파괴와 살상이 있고, 정치인들의 광적인 집착이 있다. 또 종교인들의 어리석음이 있다.
그러나 어쨌든 그들도 우리와 함께 여행하는 여행자들이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는 그들도 사랑할 수밖에 없다. -222(‘늘 떠날 수밖에 없는 것’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