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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28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 설교
제목 : ‘Pray or Nothing’ - 4. 나를 넘어 공동체를 위하여
본문 : 마태복음 6장 11절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시고 <새번역>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께 드린 기도를 복사해 와서, 내 삶 가운데서 그대로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를 Copy 하는 것, 즉 예수님의 언어 복제로, 예수님의 'imitation'이 되는 것에 조금도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무엇인가 나만의 언어로 독창적인 기도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가장 좋은 기도는 바로 예수님의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기도를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 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이렇게 예수님께 간청했습니다.
예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는데, 기도를 마치셨을 때에 그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그에게 말하였다.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준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그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누가복음 11장 1절, 새번역>
그래서 예수님이 알려 주신 기도가 무엇입니까? 바로, ‘주기도문’입니다. 가장 완벽한 기도문입니다. 사실 모든 기도는 이 기도문에서 파생되어져 나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기도문’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너무 짧게 기도하는 것 같아 그저 주기도문의 길이를 늘이는 것이 우리의 기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마태복음 6장 9절A, 새번역>
우리는 기도에 관해서 이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라 하셨으니 주기도문의 내용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다른 기도문은 필요 없습니다. 이 ‘주기도문’만으로 이미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특징이 바로 오늘 우리가 다루어야 할 ‘Pray or Nothing’의 네 번째 주제이기도 합니다. 바로, 다른 기도문과는 다른 주기도문의 가장 큰 특징, ‘우리’라는 주어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마태복음 6장 9절B, 새번역>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시고, <마태복음 6장 11절, 새번역>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마태복음 6장 12절, 새번역>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마태복음 6장 13절A, 새번역>
이와 같이 주기도문의 주어는 ‘우리’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지극히 당연히 하나님의 뜻에 부합합니다. 개인의 기도가 아닌 공동체의 기도를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방법대로 나도, 나 외에 다른 그리스도인들도, 교회도 ‘우리’라는 영역 안에서 함께 기도하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계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기도를 개인적인 무엇인가를 구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이기심을 뛰어 넘어 누구와도 하나가 될 수 있는 은혜의 방법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그 누구와도 연합할 수 있음을 먼저 보이셨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계신 것입니다. 스스로가 가진 악의 요소를 통해 지극히 이기적이고, 나에게만 필요한 기도를 충분히 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각 자의 ‘나’라는 사실을 하나님은 너무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각각 다른 직업을 가진 두 아들을 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한 아들은 우산을 팔고, 다른 아들은 짚신을 파는, 그렇게 두 아들을 둔 어머니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였습니다. 얼마나 간절히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는지 많은 사람들이 이 어머니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어줄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어머니는 기도하면 할수록 걱정거리만 쌓여 갔습니다. 우산을 파는 아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비가 많이 내리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도를 간절히 하다보면 다른 아들에게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어 비가 그치고 햇빛이 쨍쨍 내리기를 다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도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첫째 아들을 위해서는 비가 와야 하지만, 둘째 아들을 위해서는 비가 오지 말아야 하니, 도무지 어떻게 기도해야 할 지 몰라 더 슬퍼하며 고민하는 모습이 사람들에게는 기도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 속의 어머니가 충분히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기도가 공동체가 아닌 개인을 향할 때 우리는 사실상 기도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방향을 잃고 슬픔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개인의 뜻을 구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구하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마태복음 6장 33절, 새번역>
마치 두 아들을 둔 어머니에게 그 어떤 날씨에도 감사하며 만족할 때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기쁨의 소식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날씨는 하나님께 맡기고, 비가 오면 첫째 아들이 장사가 잘 되고 바쁘니 둘째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날이 좋으면 둘째 아들이 장사가 잘 되니 첫째 아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면 그 어떤 어머니보다 행복한 어머니가 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맡기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믿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이 평안의 축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먼저 구해야 할 하나님의 나라와 의는 이 땅에서 회복해야 할 ‘사랑’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회복하셨던,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살리신 그 사랑이, 우리를 통하여 더 많은 이들에게 흘러가게 하는 것이 우리가 받은 소명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그리스도인들부터 하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의 마음, 하나의 생각, 하나의 언어를 가지고 ‘내’가 아닌 ‘우리’가 되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셨던 새 계명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복음 13장 34절, 새번역>
그렇다면 이 말씀을 주셨던 상황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바로 최후의 만찬을 하다가, 유다가 예수를 팔고자 자리를 비우고 나간 후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개인 유다는 듣지 못했고, 공동체 제자들은 함께 들은 말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개인 유다는 다시 공동체와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고, 제자들은 다시 공동체로 회복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만 생각하고 예수를 팔러 나갔던 유다의 마음에 더 이상 공동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자신의 욕망과 자신의 이익만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주신 것이 새 계명, ‘서로 사랑하라’ 라는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먼저 다른 이가 아닌 제자들끼리 사랑해야 했습니다. 너무도 달랐고 도무지 하나가 될 수 없는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로 하나가 되는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각 자 개인으로서의 제자가 아닌 예수님의 제자로서 하나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 하나가 되게 하는 방법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통하여 모든 사람이 제자들을 ‘제자’라는 하나의 공동체로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 13장 35절, 새번역>
사랑은 결코 혼자 할 수 없습니다. 혼자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자신만을 사랑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악’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 외에 다른 이를, 처음엔 하나님을, 그리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하나 되고, 이웃과 하나 되어 한 하나님 아버지를 모신 교회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가 되어 드디어 함께 고백하는 것이 ‘주기도문’이라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제야 비로소 ‘나’로 시작하는 주어가 아닌 ‘우리’로 시작하는 주어가 되는 기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공동체’가 되어 하나된 목소리로 드리는 기도, 이게 진짜 기도입니다. 나를 위한 기도는 그저 바람과 간구에서 머물러 하나님의 나라와 뜻까지 이르지 못할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일 중에 개인적인 것들이 이루어지는 것은 너무도 드문 일입니다. 하지만 공동체를 위한 기도는, 나 외에 다른 이를 위한 기도는, 우리가 함께 드리는 기도는 이미 그 자체로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포함하고 있기에 속히 이루어짐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함께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의 기도 제목을 두고 ‘우리’가 함께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응답은 더욱 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충분히 빨라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두고 기도해야 할 지 모를 때 우리가 자주 인용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로마서 8장 26절입니다. 그런데 이 로마서 8장 26절의 주어에도 주목해 보셔야 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로마서 8장 26절, 새번역>
나의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의 약함,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는 성령님이십니다.
혹시라도 저는 지금 ‘개인적 기도 제목’을 두고 기도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 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기도하셔도 됩니다. 개인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경험하는 것도 너무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개인적 기도 제목이 마실 것, 입을 것, 먹을 것 등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 줄 다 알고 계신 것에 대한 기도라면 이제 그 기도를 넘어 ‘공동체를 위한 기도 제목’으로 나아가자고 말씀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더욱 더 기도이기에 진짜 기도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청하고 싶은 것입니다. 나 혼자 기도해서, 나 혼자 누리는 축복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 속한 나와 우리 모두가 축복을 누리는 것을 함께 경험하자고 여러분을 초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기도가 바람에 나는 겨가 아니라 하나님 품에 전해질 편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주어를 바꾸시면 됩니다. ‘나’에서 ‘우리’로 업그레이드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기도에 대한 모든 것이 확장됨을 경험하게 되실 것입니다. ‘나의기도’에서는 보이지 않던 하나님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중보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매일 매일 경험하게 되실 것입니다. 교회가 함께 기도할 때, 그것도 사랑으로 하나 되어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주목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자리, 거기에 내가 그들 가운데 있다. <마태복음 18장 20절, 새번역>
너희가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요한복음 15장 7절, 새번역>
이 확실한 약속 앞에 우리가 서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결정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를 통하여, 우리 교회를 통하여, 우리 교회가 사랑으로 하나 되어 함께 드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역사를 보여주실지 마음껏 기대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기도 앞에서 ‘나’를 내려놓고, ‘공동체’를 위하기를 소망합니다. 나를 넘어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교회만을 위한 기도를 뛰어 넘어 사회와 나라와 세계를 위해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간절히 갈망해 봅니다!
결단 찬양 - 아버지여 구하오니 &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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