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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30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효자농원~~ 북한산둘레길 내시묘역구간 원효봉 갈림길~~ 서암문(시구문)~~
원효암~~ 원효봉~~ 상운사~~ 원효봉, 백운대 삼거리~~ 산성계곡길~~ 서암사~~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북한산성 상가
얼큰 병천순대국밥으로 속을 다스리고.
2주 만에 다시 알현(謁見)을.
오늘
오를
원효봉.
북한산둘레길 코스로 간다
목련 새끼 봉오리
새가 나뭇가지에 올라앉아 있는 듯한 이런 장관(壯觀)도 있다.
효자농원을 지나며 원효봉으로 향한다
시구문 500미터 전방
산성을 빙자한 벙커
서암문(시구문)
서암문(일명 시구문),
시구문이라 불렸던 연유는
아래쪽 백화사 근처 인근에 내시묘역을 포함한 공동묘지가 옛날부터 있었던 까닭으로 추측된다.
꽤 경사가 급한 오름질이 한참이나 계속된다.
산성과 콘크리트의 만남
어느 한쪽은 진달래가 만개했어도
이 새끼 봉오리 진달래는 아직도 철없어 좋구나
원효암 입구
원효암 마당에 서있는 안내 표식
원효암에서 본 맞은편 의상봉과 의상능선
원효암에서 나오다 오른쪽으로 처음 터지는 염초봉과 백운대 조망
원효봉 산성
원효봉(元曉峰) 505M
징글맞아도 처음 오르는 봉(峰)이라 원 샷을 안 할 수 없다.
원효봉에서 마주 본 의상봉과
의상능선(의상봉 용혈봉 용출봉 증취봉 나한봉 나월봉 문수봉 )
원효봉에서 올려다 본
염초봉(영취봉)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
원효봉 강아지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간식을 가져와 주려는데,
던져주는 것만 받아먹고
사람 가까이 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가출한 지 오래된 놈인 듯하다.
잘 생기고 다행히 아직까지는 깨끗한 놈인데.
한참을 놀았다.
냥이들도 여러 마리 보인다.
문루(門樓)가 없는 북문
하산
약사여래불 3대 성지중 하나 상운사.
(팔공산 갓바위, 경주 백률사, 그리고 이곳)
염초봉 바로 아래의 상운사(祥雲寺)
고려시대 석탑과 향나무
부처는 도처(到處)에 있다!?
(영문으로도 함께 써놓은 정성이 세계의 붓다이길.)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백운대 원효봉 삼거리
오늘은
계곡길로
귀한 옛날 사진들.
갈 곳이 또 한 군데 생겼다 '산영루'
산성 내에 있었던 행궁
원효봉을 내려와 다시 올려다보다.
걷다 쉬다 보다 앉았다 찍다 먹다 놀다 걷다.
1시간에 1킬로미터를 걸었다.
북한산성 계곡 골짜기를 수 차례 내려 다니면서도 벼르고 벼르던 원효봉을 오늘에서야 올라 내려왔다.
백운대를 향하는 산성계곡을 중간에 놓고
좌측 능선을 원효봉 능선,
우측 능선을 의상봉 능선이라고 명명(命名) 한 것은
아무리 빨라도 북한산성을 축조한 때가 숙종 37년(1711년)의 일이니 그 근간을 기준으로 이전 이후 일 것이리라.
지금으로 300여 년 전쯤의 일로 여겨진다.
원효는 신라시대 617년에 태어나,
원효(元曉)와 의상(義相)은 8살 차이로 원효가 의상보다는 그 위라 하여도
그 둘은 친구처럼 지내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로,
원효와 의상이 당나라로 유학을 함께 가는 길에
목마름에 해골바가지 물을 마시고 난 후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깨달은
원효는 유학을 포기하고 신라로 회귀하였고,
의상은 당나라에 유학 후 신라로 돌아와 화엄종을 발상했다고 알고 있다.
원효는 일반 대중에게 널리 불교를 전파하면서도 학자로서의 불교적 저술을 많이 남겼고,
의상은 영주 부석사의 창건은 물론 수많은 제자를 양성하여 그 제자들로 하여금
많은 사찰을 짓게 하여 그 당시 불교를 융성하게 한 것으로.
그 둘의 불교에 대한 공적의 우열을 가리기가 너무 삐까삐까하여,
누군가가
북한산 이 산성 골짜기를 서로 마주하여 원효봉 의상봉이라 하였음직 하다.
원효가 의상보다 8살 먼저 태어났다고 하여 그렇던가?
원효봉의 높이가 505미터이고
의상봉의 높이가 502미터이다.
삐까삐까하면서도 이렇게 조화(調和) 로우니 더 이상 아름다울(善) 수가 없다.
원효봉을 내려오며,
맞은편에 줄지어 나란히 서있는
의상능선의
용혈봉 용출봉 증취봉 나한봉 나월봉이 의상대사의 제자들인 것처럼
산 봉우리의 이름을 명명한 자(者)의 재주도 가히 경이롭다는 생각을 해본다.
산(山)은 과연 사람(人)을 아름답게(善) 하는가!

첫댓글 가보고 싶게 만드는 생생하며 볼게 많은 산행기 네요. 글을 통해 산에대해 많이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나라의 산치고
절이나 암자가 없는 산이 없고
그 절이나 암자에는
또 산과 사람의 역사가 있어 그러하지않나 하는 생각이 들죠.
그래서
좋은 산이란
산격(山格)도 있어야 하지만
그 산속에서 사람이 살았던 훌륭한 역사가 함께 어우러진 산이
진정 좋은 산이 아닐까 싶어요.
보리아빠님,
오늘도 희망찬 하루 보내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