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한 노력으로 같은 학교에 발령를 받았다.
짐을 주섬주섬 자기는 밥솥 나는 숟가락 전기장판.......... 우리집에서 화물차를 출발할테니 준비하고 있어..화물차 한대에 이불, 1회용 가스렌지, 전기 밥솥 등을 챙겨 목포를 향했다. 목포에 들어서니 어디서 나는 냄새인지 모르지만 처음 맡아보는 냄새 갯냄새가 코에와 닿는다. 지금 여수를 들어갈 때 느끼지 못하지만 그당시는 상당히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처음 여객선을 타서 멀미나 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날은 날이 너무 좋아 자동차보다 훨씬 덜 움직인다. 좀 지나면서 저기 보이는 섬이 우리가 가는 섬이겠지 아니다 아직이란다.
배를 타고 4시간 가량 가니 목적했던 섬 신의면에 도착했다. 배에서 만난 여러선생님들과 소주도 한 잔했다. 그곳에서도 선배 선생님이 불러준 화물차에 보따리 네개을 싣고 40분쯤 가니 아담한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학교가 보였다. 첫 발령지가 저기란 말인가. 그래도 함께 평생을 같이 할 사람이 함께 왔으니 걱정 될 것은 없었다.
어떻게 준비 했는지 저녁을 선배 선생님들과 함께먹고 숙직실에서 교장선생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농촌에 살았기에 섬일지라도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함께한 사람은 광주에서 생활하다 이런 곳에 처음 왔으니 얼마나 귀막힐 일인가 밤에 울어대는 이름 모를 새 울음소리는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더욱더 슬피 울어댄다.
얼마 시간이 지났을까 선배로부터 교장선생님께서 나를 분교로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으신단다. 분교는 본교에서 걸어서 1시간, 차가 다닐 수 있는 길 40분과 차가 갈 수 없는 산길로 20분 어찌할 수 없었다. 내일 대답 하겠노라고 말을 전하고 숙직실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그 학교는 6학급인데 4명의 교사가 발령을 받았다 그 중에 분교가 2학급 2명의 교사가 필요 하고 부부교사가 있다가 간 곳이라 함께 가는 것이 좋겠다는 말이다. 우린 여기서 있으나 분교에 있으나 함께라면 상관이 없겠다 싶어 '신의남국민학교 - 심암분교'에 근무 하기로했다.
그 곳의 분교에서 주사분께서 통통배를 손수 몰고 와서 우리는 그길로 5학년 7명 3학년 2명 1학년 3명의 그 중 주사님 애들이 3명 학생이 있는 학교에서 첫 교직을 시작한다. 지금도 그 아이들 전교생의 이름을 기억한다 대남, 인석, 갑수, 옥경, 은혜 , 명자, 기호, 대진, 명순, 대민, 승삼, 미진이 이학생들이 지금은 25세 정도 되었을 것이며 첫 발령지 첫 학생이라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7-8년전 TV에 이 중 학생 한 명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 시골 선생님을 정말 다정하 대해 주셨던 '이팔균' 그분 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홀로 계신 노모를 몸이 불편하지만 부양하느라 고생이 많다는 아타까운 말을 전해 듣기도 했는데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