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의 자리)
1. 두 번째 죽음의 단계에서 수행자는 신묘한 능력을 지니게 되나 그것까지도 놓아 버려야
할 경계 중의 하나이니 오신통이 오면 오는 대로 자기 근본에 놓고 가게 된다. 이미 무엇이
다가오든 무심으로 놓아 버렸으므로 흔히 말하는 영통자와는 다르다. 수행의 결과로서가
아니더라도 소위 신통력을 지니는 경우가 있으나 영통자들은 둘 아닌 도리를 모를 뿐 아니
라 근본에 놓아 버리는 데도 익숙치 않으므로 '이거야말로 보물을 지니게 되었구나.' 하게
된다. 결국 점쟁이나 미치광이가 되고 말 뿐이다.
2. 천리 밖에 있는 찻잔을 보았다 해도 그게 무슨 대단한 일안가. 내 앞에 놓인 찻잔을 들
어 한 모금 마시는 것만 못하다. 천리 밖의 소리를 듣는다 해서 무슨 소용인가. 듣고도 해
결 못할 줄만 안다면 일없이 오고 가는 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러기에 나 아님이 없이 나툴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니 확철대로를 이름이다.
3.'모든 것이 결국 내 마음인 줄 '알아 신통력까지도 자심으로 돌려 놓으면 무심이 된다. 마
음이 없는 무심이 아니라 있기는 있으되 스스로 고요하니 무심인 것이다. 이 무심의 경지가
깊어지면 이미 내가 있느니 없느니 하는 문제가 붙질 않는다. 그때의 나는 중생들이 생각하
는 것과는 아주 다른 나이므로 차라리 없고, 그러면서도 생활하고 있으니 있는 그런 상태가
된다. 말하자면 무신하다는 그것마저도 없는 텅 빈 상태,아무것도 없어서 텅 빈게 아니라 스
스로 자재로워 텅 빈 상태인것이다. 그야말로 무심까지 녹은 공이라 그대로 누진통인 것이
다.
4. 두번 죽고도 다시 또 죽어야 한다. 그리고 비밀을 지켜야 한다. 여기에 이르면 너와 나
는 분명히 있으면서도 너와 나가 없이 너가 내가 될 수 있고, 내가 너가 될 수 있는 그러한
막강한 나툼의 도리를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은 본래로 마음은 체가 없어
서 수천 수만의 모습으로 나올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백억 화신이라고 하는 것이다.
5. 크게 죽고 난 뒤에야 나툼의 경지가 열리는데 그야말로 묘용인 것이다. 부처님께서 오
백 개의 일산을 모아서 한 개로 만드셨다는 경전의 이야기는 전설이 아니라 사실이다. 그
우산에 삼천 대천 세계가 두루 비쳤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때에는 고요히 앉으면 부처요,
일단 생각을 일으키면 보살이 되어 중생을 보살피고 삼계를 어루만지니 그런 경지는 감히
이야기 할 바가 못된다.
불법이란 귀로 일체 중생의 원을 세세하게 손 없는 손으로 일체 중생을 알뜰하게 제도하는
묘법이다. 홀홀히 자기한 몸이나 생사 해탈하는 것이 불법의 궁극은 아니다. 그리고 물질
계에 대해서도 항상 자재할 수 있는 게 불법의 힘이다. 중생의 보기에는 물질계의 원리가
분명하다고 하지만 그 또한 부처님의 손바닥 안에 있다. 부처님께서 응하시지 않는 일이
현상계에 일어날 수 없으니 그 크나큰 뜻은 헤아리리가 지극히 어렵다.
6. 크나큰 죽음의 끝에서 마침내 온 우주가 한마음임을 증험하게 된다. 그때에 비로소
높고 낮음도 없고 닿지 않는 데가 없으며 이루지 못할 일이 없는 대용이 발현한다. 일체
와 더불어 크게 죽은 뒤에야 더불어 희비애락을 함께 나누는 묘법이 발현케 된다.
7. 아무것에도 걸림이 없는, 나투고 응해 주고 불바퀴를 굴릴 수 있는 절대적인 자유, 한
생각에 삼천 대천 세계를 녹일 수도 있고 한 생각에 삼천 대천 세계의 업을 짊어질 수 있
어야 이름하여 열반이라 한다. 그러나 그 열반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생각조차 놓아 버렸
을 때가 무여 열반이니, 무여 열반에 이르러야 유여 열반으로 돌아올 줄도 아는 것이다.
뼈도 없도 살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자리, 그 자리를 증득해야 한다.
8. 열반아라 함은 이 몸이 늙고 젊고간에 이 몸을 지닌 채로 자재권을 가지고 생각 있는
중생, 생각 없는 중생을 다 포함해서 둘 아니게 나툴 때, 그 어떤 것으로 나툰 것을 꼬집
어 나라고 세울 수 없으니 그것이 열반하는 게 아니다. 육신을 살려 놓은 채 이승 저승을
회전할 수 있어야 열반 경지라 이름할 수 있다.(육신 떨어지면 말 떨어지고 입 떨어지는데
살아서 못한 것을 어떻게 죽어서 하겠는가.)
9. 자루 없는 도끼로 뿌리 없는 기둥을 다듬어 하늘을 받칠 수 있어야 한다.
* 견성(見性)
우리 불자님들이나 일반 모든 사람들이나 이 견성이라는 말을 들어보지 않은이는 없을 것
입니다. 자 그러면 견성이라고 하는것이 무엇일까요?
견성은 글자그대로 우리 인간의 본래 마음(참나)을 본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본
다는 것인가요, 육안으로 보는것이 아니고 마음의 눈(영안)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또한 본
래 마음(참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을 이르는 것입니다. 이것 또한 육신의 귀로 듣는 것
이 아니고 마음의 귀로 듣는것을 이르는 것입니다. 즉 견성은 불가의 신통력(육신통) 중 2가
지가 열리는것을 이르는것입니다. 여기서 둘(눈과귀)중에 하나만 열리는것을 1차 견성 또
는 초견성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견성이 어떠게 되는지 알아보겠읍니다.
"참나가 드러날 때 '나 여기 있다.' 하고 드러나는 게 아니다. 자기 마음으로 스스로 느끼고 알
고 대답하고 대답을 듣는 것이다. 참 나가 마음속으로 말을 하고 말을 듣는 그때에 비로소 나와
참 나가 서로 상봉하게 된다. 그러면 참 나가 나를 지도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참 나를 따
르다 보면 나가 나를 지도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참 나를 따를다 보면 나와 스승.제자의
차이가 없어진다. 참 나가 비서도 되고 의사도 되고 신장도 되고 무엇이든 다 하게 되니 이름하
여 천백억 화신인 것이다" 위에서 보다시피
참 나가 처음 발현이 될 때는 암시 비슷하게 옵니다. 즉 여러분들이 보통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죄책감같은 것을 느끼듯이 암시비슷하게 시작이 되다가 조금 진보되면 참나(자성불)가 하
는 소리가 들려오게 됩니다. 이것도 또한 처음에는 어떠한 것이 진짜 내 목소리인지 감이 잘
않옵니다. 여러번 반복을 하다보면 스스로 본인이 아 이것이 자성불의 소리구나 하고 느낌이
옵니다. 이 때가 이제 안정기에 들어온것 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처음은 참선 중에만 느낄 수
있읍니다. 그러다 조금 진보가 되면 일상생활(밥을 먹을때나, 걸을때나, 일을 할때등 행주좌와
어묵동정)도중에 참나와 언제나 대화가 가능하게 되는것입니다.
비유하면 여러분이 자전거를 처음 배울때와 같은 것입니다.
처음 자전거를 접하는 이는 의자에 앉는 것도 힘이 듭니다. 그러다 조금 안정이 되면 이제 앞으
로 전진을 합니다. 조금 굴러가다가 이쪽으로 쿵, 또한 저쪽으로 쿵 이와같이 수 없이 넘어지고
일으서고를 반복하며 서서히 안정을 찾게 됩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자전거를 본인의 마음먹은
대로 굴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자성불(참나)를 처음접할 때도 이와같은 과정을 거쳐
간다고 보시면 됩니다.
"보기만 하고 듣지 못한다면 텔레비젼 화면은 나오는데 말이 안 들리는 것과 같고, 듣기만
하고 보지 못한다면 소리만 들리고 화면은 나오지 않는 것과 같으니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보고 듣는다 하더라도 마음을 모른다면 한마음이 될 수 없다. 상대가 돼지라면 돼지의 마음
그릇하고 똑같이 되어야 되고, 물이라면 물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한마음이 된다.
태양,혹성,식물,무정물 할 것 없이 일체가 다그러하니 '심즉시불'이라 한 것이다. 꺼내도 줄지
않고 넣어도 두드러지지 않는다 한 것이다"
위에서 보면 보기만 하고 듣지 못한다는것은 천안(눈)만 열린것이며, 듣기만 하고 보지 못한
다고 하는 것은 천이(귀)만 열린것이며 또한 보고 듣는다 하더라고 한마음이 될수 없다 이말은
신통력만 있고 자성불이 발현이 되지 않는 것을 이르는 것입니다. 상대가 돼지라면 돼지의 마
음 그릇하고 똑같이되어야하고 이말은 내 의식을 상대방과 맞추는 것 즉 타심통이 열린것을 이
르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 알아야 하는것이 있읍니다. 즉 먼저 마음(자성불)의 대한 공부부
터 하지 않고 호흡이나 기타의 수행법으로 신통력이 먼저 열리는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아마 여러분은 모를것입니다. 자세한 것은 다음에 알려드리겠지만 이 단계에서 신통력
이 열리면 100%로다 옆길로 샌다는 것입니다. 즉 자성불이 발현이 되면서 신통력 또한 같이
열려야 하는데 신통력부터 열리면 이 능력을 전부다 자기 개인의 이익에 사용되고 만다는것
입니다. 그러면 자성불이 발현이 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이익이 아닌
남을 도와주는 이타행이 행해지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알고 나서부터 참 공부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주인공(자성불)을 잡고 나가다가
자기를 찾고 나면 그때부터 만행이 시작된다. 일체 만생과 더불어 함께 구르고 생활하는 육
도 만행이 시작된다. 이 과정은 마치 어린아이에게 누가 장난감을 갖다주면 그것을 뜯어 보
고 맞추고 하다가 다 알고 나니 시시하여 손을 떼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처음 견성하기 전에는 오직 한 주처에 모으는 공부를 해야한다. 주처란 본래 공하여 지팡이
다, 주머니다, 주인공이다 이름하지만 한군데로 몰고 들어가 마침내 그 하나까지 놓게 될 때
라야 비로소 견성이 되는데 견성하고 나서도 보이는 중생,보이지 않는 중생, 보이는 국토, 보
이지 않는 국토를 다 보고 행하고 시공이 없는 자리에서 일체와 더불어 화하여 나투는 공부를
하여야 한다"
자 여기에서는 여러분들이 자성불을 발견(보고,듣고)한 것은 무엇보다 큰 기쁨이랄 수 있읍니
다. 그러나 복과 화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항상 따라다닌다고 했읍니다.
자성불은 여러분에게 복(견성)을 주는 대신 또한 화도 따라 주는 것입니다. 이 화가 무엇일까
요? 바로 이때부터 보이지 않는 영가가 따라 붙는 것입니다. 이 영가가 왜 올까요?
그것은 이제 보이지 않은 세계를 볼 능력이 생겼고, 또한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그 세계의 중생들까지 건져 주라는 자성불의 배려인것입니다.
이 단계에서 이제 영가의 대한 실상을 알게 됩니다. 바로 영가는 살아생전의 잘못된 생활로
인하여 사후에는 사후의 세계가 엄연이 있는데 가질 않고 원한이나 집착등의 의해서 이 세상
을 떠도는 이 우주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중생들이라는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여기서 한가지 알아볼것이 있읍니다. 그러면 마음공부를 하지 않고 먼저 호흡이나 기
타의 방법으로 신통력이 먼저 열렸을때입니다. 마음 공부는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내 마음
을 비우는 것입니다. 여기서 비우는 마음은 번뇌 망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번뇌 망상
중에 하나가 두려움이라는것이 있읍니다.
두려움이라는 것이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제 경험담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여러분들이 상념을 일으키면 곧 바로 그 세계와 연결이 됩니다. 즉 제 같은
경우 사람형상의 중생은 무서운것이 없었는데 동물 그 중에 뱀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칩
니다. 즉 수행을 시작하면 두려움을 극복하기 까지 계속해서 뱀만 들어오는 것입니다. 몸을
감는것은 기본이고 몸의구석구석까지 예를 들면 입안까지 꽉 들어차는 것입니다. 이럴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읍니까? 모를 때는 그냥넘어가지만 눈이 열리면 이것이 무엇인지 아
니까 그때부터 정상적인 생활을 할수 없는것입니다. 바로 이와같은 것입니다. 즉 마음이
성숙하지 못한 이들은 신통력이 바로 화가 되는 경우인것입니다.
"두 번째 죽음의 단계에서 수행자는 신묘한 능력을 지니게 되나 그것까지도 놓아 버려야
할 경계 중의 하나이니 오신통이 오면 오는 대로 자기 근본에 놓고 가게 된다. 이미 무엇이
다가오든 무심으로 놓아 버렸으므로 흔히 말하는 영통자와는 다르다. 수행의 결과로서가
아니더라도 소위 신통력을 지니는 경우가 있으나 영통자들은 둘 아닌 도리를 모를 뿐 아니
라 근본에 놓아 버리는 데도 익숙치 않으므로 '이거야말로 보물을 지니게 되었구나.' 하게
된다. 결국 점쟁이나 미치광이가 되고 말 뿐이다."
자 여기서는 신통력에 대해서 알아보겠읍니다. 여러분은 신통력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바로 신통력은 자성불이 가지고 있는 능력인것입니다. 즉 이것은 마음을 완전히 비울때
남을 이롭게 하는곳에 사용이 되는 것입니다.
먼저 견성은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불가의 신통력 중 2가지를 구비하는것이 견성이라고
하는것입니다. 그러면 왜 수행인들은 이 단계에서 더 이상 진보를 못하고 옆길로 빠져
버릴까요??
흔히들 신통력 또한 버려라고 많이 합니다. 그러면 이것을 버린다고 버려질 성질일까요?
저는 이것을 다른 쪽으로 돌리라고 권하고 싶읍니다. 즉 자성불은 이 신통력의 단계 또한
뛰어넘어라고 이 단계부터 보이지 않는 영가들을 우리에게 보내줍니다. 이 보이지 않는
영가들을 구하는데 신통력을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즉 천도를 애기하는것입니다.
천도에는 2가지 방법이 있읍니다. 즉 자기 몸 밖에서 이루어지는 방법이 있으며, 그 다음
으로 내 몸안으로 끌여 들여서 천도시키는 방법이 그것입니다. 저는 내 몸안으로 끌여들여
서 천도시키는 방법을 권하고 싶읍니다. 왜 일까요? 먼저 몸 밖의 방법을 한 번 살펴보겠
읍니다. 이 것또한 이타행은 이타행이지만은 능력이 있음이 알려지면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어 있읍니다. 자의든 타의든...... 이 때부터 수행은 뒷전이 되어버리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 단계에서 마음속의 아상이 자리잡게 되는것입니다. 스승이나 은사님이 계실경우는 문제
가 되지 않지만 혼자 일 경우는 대단히 위험한 방법이라고 저는 여겨집니다.
2번 째의 방법이 바로 몸안으로 끌여들여 행하는 방법이 있읍니다. 이 방법은 처음부터 고
통을 감수하고 행하는 방법입니다. 즉 영가가 내 몸안으로 들어오면 내 몸과 마음이 엄청 고
통을 당합니다. 그러나 최고로 안전하고 또한 그 다음단계로 진입하는데 제일 빠른 방법이기
도 한것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여러분들이 의아해 하는 것이 있을겁니다. 즉 영가가 들어오면
내 몸을 빼앗기는 것이 아닌가 하고?? 여러분들은 모르겠지만 각을 이루고 나면 내 몸에 태양
보다도 밝은 빛이 존재하는것과 같은 것입니다. 영가들이 어둠이라고 가정하면 내 자성불은
바로 빛과 같은 것입니다. 이때는 들어온 영가들이 도리어 그 밝은 빛에 마음이 정화되어 나
가는것과 같은 것입니다. 또한 영가들을 거두어 주는 것은 공덕중에도 제일 큰 무량공덕인
것입니다. 이때부터 바로 불,보살의 가피가 있게되는것입니다. 천도와 같은 것을 행할때는 지
장보살님의 가피가 있게되고, 지금과 같이 글을 쓰는 작업은 문수보살님의 가피가 있게 되며,
남의 병고나 어려움이 닥칠때는 관세음보살님의가피가 또한 덕을 실천하는 일에는 보현보살
님의 가피가 있게 되는것입니다 . 이것또한 다음단계로 진입하는 과정중에 하나일 뿐 입니다.
여기서 유의 해야 하는것은 이 4대 보살님과 나를 둘로 보면 않된다는 것입니다. 즉 불,보살
또한 내 자성불의 나툼이고, 이 불, 보살을 보내 주는 것 또한 자성불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단계가 지나고 나면 세 번째 죽음의 단계로 진입하고 곧 바로 내 자성불이 직접 모든 행을
하는 단계로 진입하게 됩니다.
"몰락 한꺼번에 깨우치기는 매우 어렵다. 왜냐? 갖가지로 살아오면서 짊어지게 된 습이
너무도 많아 한꺼번에 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꺼번에 놓는다는 생각도 말고 닥쳐
오는 대로 그냥 놓음으로써 체험하고 보임할 줄 알아야 한다. 주인공에 맡겼다 하면 벌써
업이 녹고 습이 떨어져 놓고 또 놓는 중에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홀연히 깨우쳤다
해도 깨우쳤다고 일 만들지 말고 경계와 더불어 둘 아님이 없이 또 죽을 줄 알아야 한다고 하
는 것이다."
앞에서 죽어야 "참나를 보리라"를 읽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이 단계가 보통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이 한 50:50의 비율인것입니다. 즉 악한 마음이 많이 없어졌지만 아직 까지 50이나 남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 단계에서 여러분들은 또한 큰 위험의 단계에 직면하게 되는것
입니다. 바로 그것이 신통력을 어떻게 슬기롭고 지혜롭게 헤쳐나가는가 하는것입니다.
이것을 뛰어넘기 위해서 불가에서는 이때부터 만행이 행해지게 되는것입니다. 만행을
행하는 근본적인 것은 아직 남아 있는 아상 즉 욕심에서 벗어나는 것도 이유가 있지만
저는 신통력의 단계를 벗어나는 것이 더 큰 이유중에 하나라고 여겨집니다. 즉 한곳에 정착했
을시 바로 사람들이 보여 들기때문입니다. 그래서 옮겨 다닐수 밖에 없는것입니다.
제가 권하는 몸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방법은 이것을 슬기롭게헤쳐 나가는 방법입니다. 또한
지금은 생활선 즉 직업을 가지고 수행을 하는 이가 많이있읍니다. 저 또한 그중의 한 사람이
고요, 먼저 이방법은 남에게 나를 내세울 필요가 없읍니다. 즉 내가 그 사람을 생각(상념)
만 해도 그 사람몸에 있는 영가가 바로 내 한테로 옮겨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행해보면
아시겠지만 상념 뿐아니라 전화를 받아도 또한 텔레비젼을 봐도 지금과 같이 컴퓨터를 통
해도 이것이 매개체가 되어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나 몸 밖에서 행하는 것은 처음은 이타행
이 목적이었지만 자꾸 반복하다 보면 남에게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 사람은 나에게 의지하
는 이러한 현상이 일으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이 모여 들고 사람들이 모여들면 내
마음속의 아상과 아집과 아만이 자리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불가에서 만행을 하듯이 직업을 가지고 있는이는 생활을 꾸려가면서도 이와같은 엄청
난 시련의 시기가 있게 마련입니다. 제 경우는 돈으로 무수히 많은 마음의 고통을 겪게 되었
지 않나 생각합니다. 즉 이과정에서 흔히 사람들이 직업으로 꺼리는 3가지 직업을 거쳐가며
엄청난 인내의 고통을 감수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달마대사
에 얽인 일화 한 가지를 소개해 올립니다.
달마대사가 출가하기 전에는 속세의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속세에서도 수행을 하였고, 또한
이제는 출가해서 본격적으로 수행의 길을 걸어보고 싶어서 같이 공부하고 있는 절친한 친구에
게 출가할 의사를 표시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친구는 지금은 경제력의 측면에서 아직 안정
이 되지않았고 한 집안의 가장이 없어도 살림을 꾸릴 수 있기 까지는 몇년만 고생하면 되니 집
안이 안정을 찾고 난 후 출가할 뜻을 비추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달마 대사는 이 친구의 권고를 무시하고 곧 바로 출가해서 승려가 되었읍니다. 그러나
남아 있던 가정의 식구들은 집안의 경제력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출가를 해버리고 없으니 이
때부터 엄청난 시련의 생활을 하게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가장 즉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은 말
할것도 없으며 ....... 이후 출가한 달마대사는 일생의 수행기간 중에 이 때의 일을 참회하는 기
간이 있었으며 그 시간이 9년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제가 이 글을 읽고 이후부터는 이 글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은 것이었읍니다. 즉 나 또한 과거
에 이와 비슷한 일을 하였다고 하면 지금의 결혼생활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읍니
다. 이때부터 집을 꾸려가느냐 아니면 수행이냐(이당시는 수행이 산속에 들어가야만 수행하는것
인줄 알았읍니다)이것으로 엄청난 마음의 고통을 감수해야 했읍니다. 이와중에 한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읍니다. 즉 과거의 내가 이와같은 과정을 거쳤으면 지금 이생에는 아내가 나를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아내를 버리지 않겠다고 하는것이었읍니다. 이와중에 돈을 벌자니
남들이 꺼리는 직업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이와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또한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바로 자성불이다 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욕심(아상,아집,아만)이
녹아내리게 됩니다. 즉 손오공이 아무리 날고 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안이라는 이 말이 주는
의미를 깨닫게 되리라 여겨집니다. 여기서 손오공은 여러분은 욕심이고 부처님은 바로 여러분의
자성불이 됩니다.바로 이단계에서 바로 내 번뇌 망상이 2번 죽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모르고
죽었고, 2번째는 본성을 만나서 지도를 받아가면서 크게 또한번 다시 죽는것입니다.
바로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자성불이 직접 모든 것을 행하게 됩니다. 이것을 바로 공심을
얻는다 ,무심법행,공의 나툼 등으로 불리는것입니다.
제 경험담입니다.
견성이 되고난 후에는 신통력이 굉장히 재미가 있읍니다. 즉 영가들을 보기도 하고, 또한
대화도 하고 천도가 굉장히 재미가 있읍니다. 그렇지만 이것도 계속 반복하다보면 우리
가 하루에 일상생활중에 만나는 사람이나 크게 별반 다를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즉
이 다음부터는 대화는 크게 없고 그냥 마음을 비운상태에서 관(바라보는것)을 중심으로 천
도를 행하는 것이 일상생활화 되는것입니다. 또한 이 단계 쯤 오면 내가 행하는것이 아무것
도 없다는것을 조금씩 때달아가고 있는 단계인것입니다. 즉 무슨일을 행하고 싶어서 자성불
에게 불어보면 하지말라고 하는것이 있읍니다. 주로 이것은 욕심에서 나오는 일입니다. 그
러나 저는 꼭 부딪혀 보는 것을 택하니 할때마다 될것같으면서도 틀어지는것이 한 두번이 아
니고 수 없이 경험하다보니 내 자신이 하는것이 아무것도 없다는것을 깨닫게 되는것입니다.
이와같은 반복된 생활을 하든 어느날 이날도 명상 중이었는데 자성불이 직접 영가들에게
말을 거는것이었읍니다.(이때까지 내가행하는 유일한 일이 바로 천도라고 알고있고, 이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때였읍니다. 결국 이 일을 계기로 천도도 자성불이게 빼앗겨 버렸지만)
물론 나는 굉장히 신기한 일이었읍니다. 지금까지는 나와 자성불이 직접 대화를 주고 받았지
만 자성불이 이렇게 영가들에게 말을 하는것은 처음 겪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때론 자성불이 관만하기도 하고 또는 꾸짓기도 하고 타이러기도 하며 또한 인과설을 설해주기
도 하며 천도를 행하는 것을 보고 느낀것이 지금까지 내가 배워왔던 지식들이 아무 필요가 없
음을 느낀것입니다. 즉 계란이 부화할 때 안에서 쪼아대고 또한 밖에서도 어머닭이 쪼아주며
알을 깨뜨리는 현상과 같이 자성불은 영가가 무엇이 필요한지를 다 알고있으며 그 영가에게
맞는 것을 찾아서 행하는것을 보고 제 마음은 이제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상태에 들어가는것
이었읍니다. 흔히 여러분이 애기하는 자포자기라고 하는것입니다. 이것이 있고서 부터는 모
든것을 자성불에게 맞겨버리게 됩니다. 천도도... 글 쓰는 작업도.,.. 수행도 .....기타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그냥 내가 행하는것이 없으니 자성불이 알아서 하라고 내 마음을 맏겨버리
는 것이 행해집니다. 이 때부터 벽암스님이야기에 나오는 무심법행을 알게됩니다.
무심법행(無心法行) .....
이 말이 무엇일까요?? 말 그대로 무심은 자성불을 일컫는 것입니다. 즉 내가 자성불의 마
음이 되어서 법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알아야 하는 것이 있읍니다.
내가 자성불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바로 내 마음을 자성불의 마음과
일치 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을 불가에서는 타심통이라고 애기하는 것입니다.
즉 내 의식을 돼지에게 맞추면 일 순간 나는 돼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타인과 의식
을 맞추는 일순간 나는 바로 의식을 맞춘 그 사람이 되는것입니다. 또한 식물 중 소나무에 의
식을 동조시키면 나는 일순간 소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의식의 동조라고 하는
것입니다. 영가천도에서 내 마음안으로 끌여 들여서 행하는 방법이 바로 이 의식의 동조를
가장 빠르게 터득하는 방법인것입니다. 왜 일까요? 그것은 천도를 행하지 않으면 내 육신
과 마음이 엄청 고통을 겪으니 어쩔수 없이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천도를 행하는 과정
에서 그 대상과(영가) 내가 하나가 되고 나도 모르게 엄청 눈물이 나오는것입니다.
또한 자성불이 어떠한 것인지 알아야 하고 또한 자성불이 우리 신체의 어떤곳에 있는지 알아
야 의식의 맞추든지 할것입니다. 바로 "선정법"에서 보았듯이 내 의식을 상단전(인당-불성
의 문, 자성불이 거하는 곳)에 맞추고 마음의 눈으로 불성의 문을 바라보는 방법이 나온것입
니다. 또한 자성불이란 이 대우주를 창조한 창조주(천조원시지존 줄여서 천존)의 마음이
나툰것이 여러분의 자성불이며 무심법행을 행한다는것은 이 우주를 창조한 창조주와 내가
하나가 되는것을 일컫고 이과정에서 창조주의 무한한 힘과 능력이 이 육신을 통해서 잠시
사용되는 것이라 여기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있고 난후에 제 생활의 몇가지 변화가 있게 됩니다.
첫째는 지금까지는 하나를 보내고 나면 또 하나가 들어오든 것이 통례인데 자성불이 행하
는 일이있고부터는 집단으로 들어오고 집단으로 나가는 현상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지금까지와는 없든 업장(원령)이 들어오기 시작하는것입니다.
경험담입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있게 됩니다. 즉 이단계부터 아마
제가 우리나라의 여러곳 특히 강원도 지역으로 많이 돌아다닌것이 아닌가 합니다. 즉 자
성불이 나를 이끌고 간 곳이 여성들이 가게 되는 제일 마지막 장소(흔히 티켓 다방이나 성
을 돈을 주고 파는곳)로 나를 이끌고 간것입니다. 제가 제일처음 업장을 알았는것은 지금
으로 부터 몇년 전입니다. 이당시는 지금과 같이 저는 과일장사(차량에 실고 이동판매)를 하
고 있든때 였어요. 낮은 장사를 하고 밤에는 일을 맞치고 동료들과 모여서 이야기도 하면서
커피를 먹고 하든때였읍니다. 이 와중에 마음이 많이 가는 아가씨가 있었으며 당연히 말도
많이 하게 됩니다. 그 날밤부터 연 이틀동안이나 담이 걸린것과 같이 온몸이 마비가 되어
서 움직일수가 없는 것입니다. 처음엔 원인이 무엇인지 몰랐죠.! 하루가 지나고 오후가 경
과 하고 나서야(원령들의 원한이 많이 누거르지고난후) 이것이 무엇인지 알았읍니다.
여기서 한가지 우스운 일이 이 아가씨가 생강차도 갔다주며 그곳(다방)에서 밥도 사가지
고 와서 주는 것입니다. 왜 이것을 주냐 물어니깐 객지에 와서 아파서 들어 누워있는모습
이 가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성불에게 고맙다고 하고서 씩씩하게 먹었읍니다.
또한 번은 성을 돈을 주고 파는곳에서의 일입니다. 주로 장사가 늦게 한 10시 경이 늦어서
그 곳에서 장사를 하러 갑니다. 제가 가는 제일 마지막 장소가 바로 이곳이기 때문입니다.
그 곳의 여인들은 저녁에 늦게 나와서 새벽까지 밖에서 이렇게 생활을 하고 있읍니다. 시
간이 않가고 무료하니까 캔 맥주를 빨대로 조금씩 조그씩 먹고 있었으며 이것이 술이 늦게
까지 깨지 않는 방법이랍니다. 제가 마음을 열고 또한 상대방이 마음을 열어야 업장이 나한
테 넘어오니 먼저 제가 캔 맥주를 몇개 사다주면 그 다음날에는 종이 커피(500원)을 제게
사다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이 열리면 어김없이 업장이 무더기로 들어오기 시작합니
다. 이 생활을 한 3년 이상하고 났더니 제게 한가지 별명이 붙었읍니다. 바로 다방 조합장
이라는 별명이 붙었어요. 즉 아가씨 들이 어디있는지 모르면 나 한테 물어보면 다 아니까 이
러한 별명이 붙은것입니다. 저는 이당시 영덕 부터 저 속초 넘어 통일 전망대의 끝동네까지
왔다가 갔다가(장사하기 위해서)하는것이 일이었으니 말입니다. 또한 다방이란 다방은 무조
건 들어가고 보는 것입니다. 그 때는 이것이 참으로 재미있었읍니다. 아마 제가 이 당시에 출
가를 했어면(승려의 신분이였으면) 아마 파계승이라는 딱지가 하나 붙어있을건데 전 승려의
신분도 아니고 또한 영가를 몸안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을 쓰니 남에게 나를 내세울 일도 없으며
단지 내 자성불과 내 혼자만 아는 것 뿐입니다. (제 외관상 제 모습은 햇빛에 시커뭐캐 그얼린
얼굴 이며 여러분들이 시골장에가면 흔히보는 장꾼들이 바로 제모습이니깐 전 처음부터 제
외관상의 모습은 포기한지 오래입니다) 이 당시에 참으로 많은것을 깨달은 것이라 봅니다. 동
해안의 바닷가는 주로 횟집이 많읍니다. 횟집을 지나치면 어김없이 고기의 영가들이 들어오고
이 영가들은 사람들이 자기를 죽인데 대한 원한과 죽을당시의 공포가 그대로 제게 전해져 옵니
다. 그때는 무조건 비는 수밖에 없읍니다. 즉 저 사람을 대신해서 무조건 잘못했다 미안하다
이렇게 하면 원한이 눈물로 바뀌어 집니다. 또한 제 눈에는 눈물이 비오듯 쏟아지고요, 그 다음
은 그 마음의 생을 바꾸어 줍니다. 즉 고기에서 다른것으로 태어날 수 있도록 자성불에게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현상들이 두번째 죽음 즉 세상모든 일이 자성불의 마음에 의해서 돌아간다는것을
깨달아 가면서 일어나면 현상들입니다.
이 세번째 죽음의 단계는 이것을 행한것은 얼마되었지만 이것이 경전상으로 또한 응용면에
서 알았는 것은 바로 얼마전 미륵진경을 올릴 당시였읍니다.
미륵진경을 올리고 의견을 달리 하는 독자분들이 있었으며 또한 이분들에게 뜻을 전해줄
방법이 없을까 하고 찾아본것이 불교의 관계된 책입니다. 여기서 세번째 죽음의 단계가 어떠
한것인지 또한 이것을 응용하는것은 어떻게 하면 되는것인지를 깨달은 것입니다. 그 때까지
는 영가천도에 관계된 것만 알고 있었으며 다른 행은 하지않은 때였읍니다. 지금은 이글을
쓰는것도 비록 작업(몸)은 제 육신을 이용하지만 마음은 자성불과 맞추고 당신이 하고 싶
은 글을 쓰라고 하면 이와같은 글이 쓰여집니다. 다 쓰고 나서 제가 읽어봐도 정말 감탄이
발해집니다. 아마 여러분은 이 재미는 겪어보지 않은이는 느낄수 없는것입니다. 두번째의
신통력이 생겼을때도 재미는 있지만 그것과 이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인것입니다.
또한 지금은 영가천도나 글쓰는작업이지만 법문을 들려주는 일에도 또한 지금까지 내가 살
아오면서 가슴을 아프게 했는사람을 마음으로 불러서 참회하는 것도 또한 내가 남을 도와
주고 싶은 사람이 생길경우 마음으로 행할수 있고 더나아가 보호령이나 산신과 같이 지역에
묶여 있는 고급영들에게도 도움을 줄수있을것이며 또한 비,바람과 같은 자연령들에게도 명
령해서 운행을 바꾸는것 또한 가능하겠고, 벽암스님이야기에서 보듯이 보이지 않은 성 즉
전쟁을 일으키고자하는 왜군의 수장을 불러서 전쟁을 못하게 막을수도 있으며 또한 그 육신
에서 마음을 빼어버리는 것 또한 가능할 것입니다. 대의를 위해서는 소의 희생은 감수하는것
입니다. 여러분은 죽음이 무엇이라 보시나요?? 죽음은 바로 자성불이 내 육신을 버릴려고
마음을 먹을 때 죽음이라고 하는 형태로 찾아오는것입니다. 이것은 형상이 있는 사람의 경우
이지만 모습이 없는 영가들에게는 이 보다 더 한 벌도 내려지고 있읍니다. 그것이 바로 무엇
일까요?? 바로 자성불이 그 영혼까지도 버리려고 하는 때입니다.(이것은 다음에 '불보살의 자
비'에서 알아보겠읍니다) 즉 살아생전에 온갖 나쁜 짓만 일삼으며 죽어서 까지 사람에게 붙
어서 육신있는 중생을 괴롭히고 고통을 주며 때로는 그 대상(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영가들을
일컫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영가들은 참회하는 자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만 잘못을 모
르는 이에게는 그 영혼까지도 소멸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지금은 육신의 세상은
잘모르지만 마음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으로 수행에 관한 것들을 제 경험에 비추어 실어드렸읍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이러한
것을 믿기지 않을 겁니다. 저는 그것또한 좋은것이라 여겨집니다. 어떻게 생각하면은
이러한 것을 모르고 있을 당시가 행복한 것인지도 모르겠읍니다.
-나무 무테불미륵(머리에 보이지 않은 테(면류관=왕관)을 쓰신 미륵부처님이란 뜻)
여러불자님에게 미륵부처님의 자비가 함께 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문수.
카페 게시글
여시아문(대승불교)
벽암스님이야기(견성=참나와의 상봉-2)
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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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0.11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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