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부화일로 올렸으면 좋겠는데.. 잘 모르겠네요.
늘 밑바닥에서 부터 스물거리는 화두입니다. 잘 모르지만..
그래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려고 노력해야 할 것 같아서 직접 말할 능력은 안되고 넘 이야기를 눈에 띄는대로 옮깁니다. 우리가 열심히 경계선을 향해 달려 가고는 있는 것 같은데..
말하는 사람에 따라 선이 바뀌기 때문에 너무 집착은 하지 마시고 생각해 보는 빌미로만 여겨 주세요.
0. 상품화와 오리엔탈리즘의 사이에서
최근 문화예술 담론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이 우리문화의 상품화와 더불어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경계이다. 즉, 세계화 시대에 자국의 독특함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과 서구인의 눈으로 본 동양에 대한 관점을 극복하자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견해는 일견 매우 상반되어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 저변에는 서구화되어 있는 한국의 문화예술계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응방식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상품화가 세계적인 시장구조에 대한 생존방식의 문제라면, 오리엔탈리즘의 경계는 자신의 눈으로 현재의 문화를 직시하자는 비판적 의식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상품화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부분은 '전통의 현대화와 대중화'이며, 오리엔탈리즘의 비판에서 제기되는 것은 '삶의 한 부분으로서의 예술의 문제'이다.
필자는 이 두 가지 논의를 중심으로 해서, 최근 벌어지고 젊은 국악인의 동향이 갖는 의미에 대해 다시금 짚어 보고자 한다. 이들 국악출신의 젊은 음악가들은, 근년에 들어 공연과 음반을 통해 예전의 국악인들에 비해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펴면서, 때로는 메스컴에서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또한 이들이 조성해 놓은 이른바 '젊은' 분위기는 국립국악원같은 기존의 국악단체에도 영향을 주어, 국악을 소재로 한 현대 음악 중심의 이벤트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올해는 '한국방문의 해'를 맞이해서 전주세계소리축제를 비롯해서 우리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자는 각종 행사가 홍수를 이루고 있는 데, 주요 초청인사로 이들 젊은 국악인들이 한켠을 장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식의-무엇이 우리 것이고 남의 것인지의 가치 판단도 안되어 있는 조건에서-켐페인만이 난무하고, 실제적인 면에서는 사람들과의 별다른 소통이 없는 분열적인 상태에 대한 돌아봄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그간 우리의 생활 깊숙히 잔재해 있었던 역사적 유산들이 오히려 더 왜곡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과연 우리의 음악유산들은 오늘날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으며, 서구화의 모델에 의해 운영되는 사회체계와 어떻게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사실 서양음악이냐 국악이냐를 넘어서 모든 음악가들이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음악언어를 개발하고 연계성을 찾아 나가는 과제를 떠안게 된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이 중에서, 30대를 전후한 국악출신의 음악가들이 음악의 과정으로서 어떻게 자기 자리를 만들어 나가면서, 스스로에게 상품적 가치를 부여하면서 삶과 밀착될 수 있을 계기를 만들려고 하는지 간단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1. 서구적 체계에 의한 국악 훈련을 받은 세대, 이들에 의한 본격적인 사회화의 시도
어느 사적인 자리에서 90년대 이후에 국악과 입학한 한 학생에게 누구처럼 되고 싶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이 때 그는 "원일이나 허윤정 선배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국악계에 이들보다 훨씬 연륜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어른들을 제치고 이들이 국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모델로 거론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무엇보다 그들과 자신이 갖는 존재조건의 비슷함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을 낳게 한다. 여기서 말하는 '존재조건의 비슷함'이라는 것은, 대학으로 대표되는 근대적인 교육체제를 밟으면서, 한국의 음악유산을 흡수함과 동시에 도시중심의 생활여건에서 보다 서구화 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젊은 세대에게 있어서, 고전화되어 있는 음악유산과 함께 이를 현재에 적용하는 것도 중요한 능력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기실은 국립국악원을 정비하고 서울대학교 국악과를 비롯해서 각 대학에 국악관련 학과를 신설하거나, 서양 오케스트라 체계를 빌은 국악관현악단을 창단한, 즉 1960년대 이후 급속한 근대화 과정이 배태한 산물인 것이다.
1960년대를 전후해서 국악인들에게 절실한 생존방식은 대학교육을 통해 보다 안정적인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는 것에 맞춰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인맥 중심의 전근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음악유산을 통합한 교육이 행해진 것이 아니라, 그 잔재의 토대 위에 만들어진 결과를 낳았다. 정악과 민속악은 양반과 상놈처럼 한자리 있을 수 있는 음악이 아니었으며, 그에 따라 사람도 분리된 상태에서 자신의 이익에 맞는 집단을 만들어 나갔다. 정악 중심의 국악사양성소(이후 국악고)와 서울대, 민속악 중심의 국악예고와 중앙대 국악과 등이 그 대표적 예라 할 수 있겠다.
국악의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이런 태생적 한계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유연성을 갖게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활과 결합된 민요의 발굴과 정리도 아직까지 제대로 안되어 있는 현 상황은, 외형상의 근대적인 시스템의 지향에도 불구하고 실제적 관계에 있어서는 전근대적이라는 이율배반의 모순을 몇십년간 되풀이 해올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십년간 '신(新)' 또는 '현대'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국악 분야의 여러 활동들은, 황병기, 김덕수 사물놀이, 창작국악 작곡가 등을 양산했고, 이들에게 영향받은 많은 국악인들을 양성해 냈다.
다시 말하면, 이들에게서 교육받은 다음 세대들은 지난 몇백년동안 내려온 음악 뿐 아니라 근대화의 과정에서 등장한 선배나 스승도 또 다른 전통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이들 세대들에게 있어서, 생존방식은 문화재 보호의 안에서 일정한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 이상으로, 현실 사회에서 자신의 입지를 넓혀 가는 것 역시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배들과는 좀 더 다른 방법이나 이미지로 자신과 같거나 아랫 세대에게 호응받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모습이 필요했던 것이다.
2. 창작과 연주의 결합을 통한 소리에 의한 현대화
창작 타악 그룹 '푸리', 가야금 앙상블 '사계', 한국현대음악앙상블, 가수 김용우, 트리오 '상상' 등이 앞서 말한 바 있는 국악과 학생들이 모델로 삼는 선배들이 만든 앙상블 팀들이다.
이들의 특징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통점이 음악적 베이스가 연주라는 것이다.
'푸리'는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며, 국악을 대중화하는데 막대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받는 김덕수 사물놀이를 부분적으로 계승했다고 할 수 있다. 또 가야금 앙상블 '사계'는 황병기와 80년대 서울새울가야금 3중주단의 맥을 잇고 있다. 또한, 거문고, 해금, 철현금으로 이루어진 트리오 '상상'은 시나위적인 즉흥성을 아방가르드적인 현대음악으로 풀어 나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으며, 가수 김용우는 민요의 자원을 현대적인 이미지로 탈바꿈하려는 노력을 현대적인 매체를 통해 지속해 오고 있다.
지금 열거한 이들 국악 연주가들의 시도는 상대적인 다양성을 띠고 있어서, 하나로 '이것이다'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것은 각 팀의 성격 뿐 아니라 한 팀 안에서도 여러 가지 측면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이들의 음악은 몇 가지 측면으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서구를 정확히 알자는 것이다. 이는 교육과 음악의 기록 등이 서구적 체계에 의해 유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매우 불안정하고 부정확한 비체계성에 있다는 데에 있다. 1960년대 신국악이라고 명명된 이후 오늘날까지 재생산되고 있는 창작국악과 오선보에 의한 음악유산의 기록이, 전통음악을 정리하는 도구적 역할을 하면서도, 본질적인 성격을 상당 부분 파기해 왔다는 것이다. 이럴 바에는 아예 이도저도 아닌 상태를 탈피해서, 서구의 체계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에 기반한 음악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 이들 젊은 국악팀의 활동에서 드러난다.
이것은 이들의 앙상블이 전통합주나 시나위적인 즉흥성과 같은 유산을 계승할 필요성에 대한 기본 관념을 밑에 깔고 있으면서도, 현실적으로 개개의 역할이 소통이라는 틀을 통해 나타나는 서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푸리'의 경우 전통음악의 관습적 호흡에 의지하기보다는, 리듬과 음색의 수학적 분할에 의해 분명한 자기 역할을 갖고 있다. 또한 가야금 앙상블 '사계'는, 비슷한 음색의 악기들이 각각의 성부를 맡고 있는 서구의 4중주와 크게 다르지 않는다. 한국현대음악앙상블과 트리오 '상상'은 현대 음악언어를 구사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20세기 서구 현대음악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음색찾기에 가까워 보인다.
두 번째로 이들 팀에 나타나는 측면은, 음악자원의 시야를 넓히겠다는 시도이다.
'푸리'는 전통장단은 물론, 아프리카를 비롯한 여러 지역의 리듬을 자신의 음악에 끌어들인다. 또 김용우의 경우에는 지금까지 나온 2집 앨범까지를 보면, 재즈와 다성합창 등을 이용한 민요 편곡을 싣고 있다.
가야금 앙상블 '사계'는 창작곡 이외에도 4중주의 역할을 시험해 보기 위한 방식으로 비발디, 바흐, 피아졸라의 곡들, 그리고 김순남의 가곡까지도 편곡의 대상으로 스스럼없이 연주하고 있다.
한국현대음악앙상블은 기존에 창작국악 레퍼토리에서 탈피해서, 20세기 이후의 현대음악 일반으로 넓혀가는 양상을 보인다. 이들의 활동은 서구 현대음악이 이룩한 성과와 이를 기반으로 한 작품 연주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현대음악앙상블이 일정한 텍스트를 갖고 있는 작품을 택해 연주한다면, 트리오 '상상'은 연주자들 자신이 과정 자체를 텍스트화 시키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어떤 면에서 존케이지 이후 나타난 아방가르드의 흐름을 국악기에 적용시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3. 상품화를 통한 사회화의 문제
그렇다면 이들의 연주활동을 보는 음악계나 청중의 입장은 어떤가.
기존의 국악계 특히 앞서 언급한 신국악과 대학 음악교육을 주도해온 음악가들의 경우에는 대체로 음악(국악)의 다양화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청중들의 경우에는 각 팀의 성격에 따라서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되고 있다. 하나는 이들이 갖는 서구적인(현대적인) 이미지가 전통음악을 좀먹는 행위라는 반응이 있는가 하면, 국악계의 활성화를 위해 과정으로써 필요한 작업이라는 입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견해는 '국악'과 '계'에 지나치게 협소화되어 있으며, 서구화가 일반화되어 있는 문화의 현실상황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일면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들의 활동은 먼저 양악계와 비교된다. 양악계에서 서구음악의 근대적 특징의 하나인 연주와 작곡의 분리는, 우리의 양악 연주자들에게는 작품에 대한 진지성과 작곡가들에게는 소리와 멀어지면서 지식으로서 음악을 쌓아 나가기만 하는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의 결과로 양악 연주계는 몇몇 타입의 연주가들만을 양산함으로서 창의력을 상실하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작곡가들은 구체적인 음향을 통해 끊임없이 청중과 소통함으로서 청중과의 접점을 넓히는 일을 등한시 했는데, 일차적인 원인은 작품의 표현력을 겸비한 연주층이 형성되지 못했다는데 그 원인이 있다. 이것은 대중음악이 서구음악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면서도 어떤 식으로든 생산되고 소비되는 양상과는 매우 대조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의 양악계는 해외에서 활동하는 몇몇 스타급 연주가들을 제외하고는, 음악이 사회화되는데 필수적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공연이나 음반의 유통 경로를 밟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유통시장에 적극저기면서, 창작을 기본으로 하는 이들 국악 연주자들의 활동은, 대학이라는 울타리에서 한발짝도 나오지 못하면서 연주가와 작곡가로서의 본연의 임무를 하지 못하는 양악계에 비해 음악적인 주목을 끌 수 있는 충분한 여지를 갖고 있다.
또한, 문화재 보호나 우리 것이라는 명분 속에서 안주하는 '늙은' 국악계에 청신한 분위기를 수혈한다는 면에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여지를 갖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기되는 문화상품화 논리는 안주의 늪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음악계의 상황에서 차라리 진보적으로 보이기조차 한다. 그러나 문화상품화 논리는 앞서 제기한 우리 음악의 현실문제를 외면한채, 세계시장이라는 환상에 의한 백일몽이 될 위험성도 있다. 우리가 현실 속에서 항상 해왔던 것, 잘 할 수 있는 것을 떳떳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지역적인 색깔만을 우선적으로 보여주려는데 주력하게 된다는 말이다.
결국 이렇게 될 경우, 단기적으로는 전통문화에 좀 더 많은 지원이 행해지게 될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 문화의 중앙집중화되어 있는 관료적 성격을 해소하고, 지역문화를 활성화시키는데 일조하는 결과를 초래할까. 오히려 그 반대로 경제적 편중이 서울로 몰려 있기 때문에, 이른바 '도시화'된 국악만이 살아남고 지역문화는 대규모 행사를 위해 일시적으로 '창작'될 뿐, 생활문화에 대한 지속적인 발굴과 육성은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더욱더 외면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돈많은 외국인들을 위한 '한국적인' 상품이 있을 뿐이지, 우리가 일상적으로 즐기고 느끼는 문화는 역으로 더 서구화되어 버릴 극단적인 전망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요즘은 우리에게도 여러 매체들을 통해서 서구 이외에 비서구 음악에 눈을 돌리는 층이 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 음악을 만들어낸 비서구 음악가와 그 음악가를 낳은 문화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경우를 목격하게 된다. 우리 자신이 서구인들이 자신의 이국적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동양문화를 이용했던 것과 마찬가지의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4. 서구화를 넘어서
앞서 언급한 젊은 국악 연주가와 앙상블 팀들은, 아직까지 국악의 상품화에 내재한 오리엔탈리즘과 우리의 현실에 좀 더 다가가려는 적극적인 몸짓의 어느 경계점에 서 있는 듯하다.
인도 사람들은 자신의 민속악기로 스스럼없이 바이올린과 어코디언을 얘기한다고 한다.
음반을 통해서나마 이들 음악을 접해보면, 인도의 바이올린에서 나오는 소리는 분명 유럽의 바이올린 음악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제 우리에게도 그것이 어디를 통해서 들어왔건 우리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음악자원으로 적극 활용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 글에서 언급한 젊은 국악인들은 이런 면에서 작곡가들이나 양악계의 연주가들 보다 분명 한발 앞서서 서구를 자기화하려하며, 그것 자체가 오늘 우리에게 전통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것은 현실적인 체계에서는 서구에 기대 있으면서도, 음악재료가 국악이라는 이유 때문에 배타적으로 자신을 주장하는 전 세대들보다는 솔직하고 적극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현실의 문화상황을 기준으로 볼 때 기량면에서도 음악을 소화하고 표현하는 수준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이들의 생명력은, 서구적인 이미지로 자신을 치장하면서 거기에 이국성을 가미하는 오리엔탈리즘에 복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음악현실에 발목을 더 깊게 딛을 때 길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활동이 이벤트가 아닌 낯설지 않게 우리 삶에 부분이 되는 날이 있기를 바래보는 것이다.
첫댓글머리보담 가슴 뜨끔해옵니다. 우리가 함께 고민할 일들이 참 많아지네요. 고민하고 나누어야 할 일이라면 주저없이 시작해야겠죠...첫공연을 끝내고 지금부터 자근자근 해야할 일들...송호인샘께서 물꼬를 열어주신 듯 싶습니다...공연연습과 함께 이런 이야기들 소리마루에서 빼곡하게 나누길 바래봅니다...
첫댓글 머리보담 가슴 뜨끔해옵니다. 우리가 함께 고민할 일들이 참 많아지네요. 고민하고 나누어야 할 일이라면 주저없이 시작해야겠죠...첫공연을 끝내고 지금부터 자근자근 해야할 일들...송호인샘께서 물꼬를 열어주신 듯 싶습니다...공연연습과 함께 이런 이야기들 소리마루에서 빼곡하게 나누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