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길성
편안한 여유로움이 머무는 풍경속
호이안 Hoi An
베트남의 옛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무역상들의 도시
베트남의 아침은 매우 일찍 시작된다. 베트남의 아침은 마술 같은 힘을 발휘한다. 동남아시아 땅에서는 으레 게으르게 산다는 편견이 여기선 통하지 않는다. 빠르고 가벼운 자전거 굴림이 고요한 아침을 깨운다. 짠 내가 진하게 나는 시장에 가든, 밀림속에 놀라운 고대유적에 발을 들여놓든. 하루 중 가장 생기 있고 힘찬 시간은 해가 떠오르는 그때다.
당신이 길쭉하게 늘어선 베트남 어디에 있다면, 다음날 아침은 베트남식 설렘으로 맞게 될 것이다.
한국의 70년대를 겪은 세대는 베트남에 와서 당시 한국의 모습을 곱씹어본다 했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베트남 사람들은 가장 먼저 새벽을 여는 민족이 됐다. 이곳 사람들의 근면함으로 베트남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언뜻 봐선 잘 보이지 않는 익숙함이 베트남 곳곳에 숨어 있다. 하루를 머무는 것보다 이틀을 머물 때, 이틀보다는 일주일을 들여다 볼 때 친근함이 배가 되는 곳이 베트남이다.
매략적인 고도시, 호이안
호이안은 다낭에서 남쪽으로 30km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마을로 일찍이 외국 무역상들의 출입이 빈번했던 국제 항구 도시였다. 이러한 이유로 호이안은 도시 자체가 유럽과 중국, 일본 등 여러 나라를 압축시켜 놓은 듯한 느낌을 주는 건축물들로 가득하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은 언제나 풍성하다. 민물과 짠물이 온갖 해산물을 가져다주고, 배를 댈 수 있는 항구가 있어 오고 감이 잦다. 호인안은 실크가 오갔던 바닷길에 한 길목이었다. 일본인들은 여기에 지붕이 있는 나무다리를 세우고 떠났고, 중국인들은 다섯 개나 되는 화교회관을 남겼다. 프랑스풍 테라스를 묘사한 건물은 호이안에 퍽 어울리는 건축양식이었다.
호이안은 휴식을 위해 찾아오는 장기 체류자가 많다. 게으른 배낭족은 베트남 중심부에 있는 호이안에서 재충전의 휴식을 취한다. 보행자 중심의 도로와 곳곳에 여행자에게 손짓하는 노천카페가 있어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여기 서라면 지루하지 않을 듯하다.
자전거를 빌려타고 호이안 였거리를 흘러다니는 유럽인들은 거리 풍경과 잘어울려 마치 그네들의 동네에 있는 것인 양 보였다. 언뜻 보면,호이안은 동양적인 맛이 깃든 유럽 같다. 냉정하게 말해, 호이안은 과거 영화를 잃고 쇠락한 도시다.
바닷길이 번영하던 시기 호이안에는 파란 눈에 상인과 흑발의 중국상인이 말을 섞었다. 활발한 교역의 증거는 호이안 구시가의 도자기 박물관, 바다실크로드박물관에서 엿볼 수 있다. 일본과 주요 교역물이이었던 도자기가 호이안에는 넘쳐났다. 최고급 실크 옷감을 쉽게 구할수 있었고, 각종 차와 사치품을 싣고 들어온 배는 호아안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바다 교역이 점점 쇠퇴하고, 호이안을 연결하는 투본강(Thu Bon)에 토사 퇴적이 쌓여 더 이상 항해가 불가능해지면서,호이안은 30km 거리의 다낭(Danang)에 상업지 역할을 내주었다.
그러나 전쟁 통에도 온전히 살아남은 호이안의 옛거리는 과거의 영화를 머릿속에서나마 그려보고자 하는 관광객들로 활기를 되찾아간다.
한국인에게는 친숙하지 않지만 호이안이 인도차이나에서 가장 매력작인 도시로 유명세를 떨친 건 어제 오늘 애기가 아니다. 호이안이 관광객들에게 베푸는 평온함은 호텔을 나서면 정신없는 오토바이 행렬과 어김없이 마주치게 되는 호치민시나 하노이같은 타 도시의 혼잡함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시간이 멈춘곳 엣거리를 걷다
호이안 옛거리는 기외지붕에 이끼가 그득한 중국식 집과 아치형 현관, 테라스로 대변되는 서양식 건물이 교차해가며 메워져 있다.건물은 하나같이 노란 톤이다. 낡음에 정도에 따라 노란색의 명도와 채도가 달라진다.
세월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신비로운 색의 조화에 누구라도 반할만 하다.
매력적인 옛거리에 60% 가량은 맞춤복, 맞춤신발 전문점인 듯 보였다.
눈길을 한번 줄라치면 줄자를 들고 뛰어나와“Your Size"로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호이안 재단사 애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던 터다. 온 시내가 재봉틀 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 호이안이라는 게 과장된 설명은 아니었다.
호이안에서 요즘 가장 인기있다 는 양정점“ YALI“는 수많은 가게 중에서도 가봉을 위해 긴 줄을 서야하는 유일한 집이었다. 깔끔한 불랙 칵테일 드레스는 US $ 60정도, 코드로이 자켓류는 US$ 60-70 선이였고, 최고급 실크 정장도 US $ 200을 넘지 않았다. 해외 패션잡지가 테이불 마다 가득하고. 파란 눈에 고객들은 돌체나가바나의 최신 디자인을 가리키며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다. 디자인과 옷감을 고르고 넉넉하게 1박2일이면 내 몸에 꼭 맛는 슈트를 손에 넣을수 있다. 베트남에 재봉기술은 아시아에서도 알아주는 것이거니와, 베트남 정부에서 관광 수입 창출을 위해 정책적으로 뒷받침 해주고 있다.
1년 내내 외국인 관광객이 끊이지 않기에 옛거리는 테일러 숍을 비롯해 대 부문 기념품점으로 점철되어 있다. 관광객이 혹할 만한칠기 공예품과 색색의 등갓, 농 베트남 전통 모자를 이용해 만든 관광용 상품, 중국에서 건너온 듯한 찻잔 세트가 주를 이루고 있다. 어느 가게를 가나 특히 다른 특색은 없는데도 그저 그런것임을 알면서도 가게를 기웃거리게 되는건 관광객의 관성인 듯 싶다.
1999년 유네스코 세게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 특히 강주변에 형성된 구시가의 풍경과 독특한 명물 요리, 화려한 등불축제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포인트, 덕분에 호이안은 전 세계 여행자들이 드나드는 제2의 번영의 길을 맞고 있다. 낯에는 골목 구석구석을 탐험하며 도시의 매력에 빠지고 저녁에는 알록달록 등불축제가 있어 다른 도시로 가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고 그저 오래오래 머물고 싶어진다.
음력 15일에 보름달이 뜨면 호이안의 거리는 형형색색의 등불 축제가 시작된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늘어서 있는 옛날식 목조건물 베란다에 달린 등(燈)은 모양도 다양하고, 종이의 재료와 색에 따라 불빛도 다양하다. 등불과 달빛이 어우러진 호이안을 흐르는 투본강에도 소원을 비는 등이 별처럼 떠다닌다.
저녁에는 아름다운 등불을 구경하면서 식사하고 휴식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면 된다.
An Hoi An Specialty
호이안의 특색 있는 먹을거리는 완뜬(WonTon)이다. 바삭바삭하게 투긴 만두띠에 각종 야채와 소스를 올려먹는 음식이다. 살사맛과 비슷한 매콤한 소스와 새우, 소고기의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밑받침 처럼 놓여있는 만두피가 이색적이다. 반박(Banh Bac)은“White Rose"라 불리기도 하는데, 하늘거리는 쌀피 만두의 모양에서 착안해 붙여진 이름이다. 새우를 넣고 부드러운 쌀피로 감싼 만두위에 고추양념을 얹고, 노릇하게 튀긴 쌀 피를 잘게 부숴 넣어 먹는다. 기름기가 없이 담백한 맛이다. 간단한 간식거리로 한끼 식사를 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길거리에서 가장 많이 보는 음식으로는 반세오(Babh Xeo)이다. 베트남식 부침개이다. 프라이팬에 새우,숙주나물, 각종 야체를 뿌리듯 넣어 같이 익힌다. 기름기가 흥건해서 더운 날씨에 구미가 당기지는 않지만 이 지역 특산물인 만큼 한번쯤은 시도해보자.
다체로운 역사의 산 증인
수많은 숍들 사이로 호이안에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귀중한 건축물들이 촘촘히 자리해 있다. 다채로웠던 역사를 대변하듯 그 종류도 제각각이다.
옛거리에 사적을 돌아보는데 좀 복잡하지만 유적지를 고루 본 후에는 박물관중 추천할만한 곳은 도자기 박물관이다. 내부에 전시된 도자기도 진귀하지만 박물관 건물이 매우 아름답다. 새까만 목조 건물인 도자기 박물관은 단순하면서 강한 기운을 풍긴다. 내실을 지나면 안마당이 나오고 같은 크기에 건물아 연이어져있다. 2층으로 올라가 난간에서 내려다보는 호이안 거리는 다른 시각으로 다가온다. 박물관을 지나 몇 걸음만 옮기면 퓨젼화교회관이 보이고 중국의 영향을 엿볼 수 있는 관음사 관운장 사당이 눈에 들어온다. 옛길 걷기에 지루해질 쯤이면 활기찬 중앙시장에서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내도 좋다.
호이안 구시가의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중안시장은 이른 아침일수록 매력이 배가 되는 곳이다. 중앙시장은 각종 잡화, 기념품을 파는 곳이자, 이 지역 최대의 수산시장이다. 바다와 강에서 잡아올린 물고기는 매일 매일 이중앙 시장을 짠 내로 가득채운다. 목청좋은 상인들은 십수년간 그래왔던 듯 왁자지껄하게 아침을 알려왔다. 아침행렬이 시장입구에서부터 물가까지 이어지고 거칠게 흥정하는 목소리가 소란하다가 정오가 되기 전에 상황은 종료. 이곳만의 활기찬 아침 푸닥거리를 보고 싶거든 반드시 중앙시장으로 가야한다. 해가 뜨건 해가 지건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사적은 우선 제처두고, 부지런한 여행자게만 주어지는 특권을 누려보자.
해가 중천에 뜨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상인들은 달콤한 낮잠에 빠져 든다. 게으른 관광객은 그제서야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가 내일을 기약할 따름이다. 여행까지 와서 웬부지런이냐 싶겠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이곳은 활기찬 아침의 나라 베트남, 그중에서도 호이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