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31일 연중18주일 (루카12,13-21)
“여러분은 현세적인 욕망을 줄이고 저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선진교육을 실천하는 스웨덴 교과서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고 합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소유욕’과 ‘존재욕’이 있는데
여기서 ‘소유욕’이란 것은
‘얼마나 가졌느냐’ 하는 <경제적 욕망>을 말하고,
‘존재욕’이란 인간과 인간이, 혹은 인간이 주변 자연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고자 하는 의지>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존재욕을 희생해가면서까지
소유욕을 채우려 하는 것은
‘병적인 사회’라고 그들은 가르칩니다.
그러면 우리 한국사회는 어떠할까요?
우리는 그런 식으로 배우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성공은 돈’이란 것...
‘돈 없으면 사람 구실도 못 하고 무시당한다’는 것...
인간과 인간끼리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경쟁에서의 낙오는 곧 ‘인생의 실패’라고 배우며 자랐습니다.
이런 논리는 ‘교육’이라기보다
그저 ‘경제 논리’로 무장된 일종의 ‘협박’과 ‘회유’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끝줄에 서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서로를 경계하며
두리번거리고 눈치를 보는
왜소하고 불안한 낱개(개인)로 살 뿐,
‘자기가 생각하는 인생 방식’대로 살지 못하고
또 그런 인생은 시도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그저 최소한 남들만큼,
아니면 남들보다 조금 더,
아니면 남들 하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평균적 삶이 그렇습니다.
전에 그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아버지와 중학생 아들이 함께 TV를 보는데,
노동자들이 단체로 거리로 나와 시위를 하고
일부 노동자는 뜨거운 날씨에 철탑 꼭대기에 올라
1인 시위하는 모습들이 화면에 나오자
아버지가 아들에게 그랬답니다.
“저딴 거 다 필요 없다.
넌 그저 열심히 공부해서 저런 꼴 안 당하면 된다.“
신과 맘몬을 구별하려면
그 사회를 작동시키는 동력기제가 무엇인지
파악하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우리들 태도를 보면,
‘떵떵거리며 잘 먹고 잘사는 것’이
마치 인생의 최대 목표인양 사는 것 같습니다.
또 그렇게 권력과 돈을 좇으며 사는 사람들을 보면,
겉으로는 심하게 욕을 하면서도
나 역시 거기에 편승해 또 그렇게 사는 건 아닐까요.
그런데 오늘 독서와 복음말씀 모두
분명 그게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제1독서인 코헬렛(전도서) 말씀,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그리고 제2독서에서는
“여러분은 현세적인 욕망을 줄이고
저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십시오”라고 가르칩니다.
즉, 우리 삶의 중심을 헛되고 헛된 세상의 권력과
부의 추구에 둘 것이 아니라,
저 위의 것을 생각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요 근래 가슴 아픈 일이 있었습니다.
경남 거제의 대우조선의 하청노동자가
임금 4.5% 인상을 요구하며
이 더운 날 무려 31일 동안
1㎥짜리 철제 감옥에 스스로 몸을 가둔 기사를 보고,
중학생 하나가 툭 하니 이런 말을 내뱉었다고 합니다.
"저런 비참한 꼴 당하지 않으려면 열심히 공부해야죠."
임금 올리자고 철제 감옥에 스스로를 가둔 것을 두고
‘비참한 꼴’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지금껏 불법이 자행되는 구조를 묵인하고 방치해온
원청이나 정부의 부당함 같은 것은 아예 쳐다보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글쎄요, 물론 현실적으로 참 풀기 힘든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복음의 이 교훈을
내 자식들에게는 어떻게 가르쳐야 할 지...
“저딴 거 다 필요 없다.
저런 비참한 꼴 당하지 않으려면 오로지 공부 열심히 하라.”고
가르쳐도 되는 것인지 고민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지상의 것보다는
보다 의미있고 영원한 쪽으로
눈을 돌리라고 할 것인지,
아니면 세상엔 돈이 최고고
그것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 것인지....
그러나 이것 또한 ‘꼰대 소리’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우리나라가 점점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은 이 때,
오늘 말씀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