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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종수교수와 함께 하는 행복한 풍수산행 계획
1. 일시 ; 2009년 8월 29일(토요일) 08시~19시
2. 출발장소 ; 잠실역 3번출구 롯데호텔앞(너구리상앞)
3. 답사지 ; 경기 용인, 안성지역
1) 김대중 전 대통령 선영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묘봉리
2) 해주 오씨 선영 ;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덕봉리 산47번지
3) 모박사 부대찌게 ; 경기도 안성시 대덕면 신령리 513번지
4) 칠장사 ; 경기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764번지(경기문화재자료 제24호)
5) 현대농장 ; 경기 안성시 미양면 산9-24
* 답사순서 ; 1)김대중 전대통령 선영 -> 해주오씨 선영 -> 중식(모박사 부대찌게) -> 칠장사 -> 현대농장 -> 귀경
4. 답사안내 및 설명 ; 서경대 모종수 교수
5. 답사지 내역
1) 김대중 대통령 선영
김대중 전대통령 선영은 손석우 선생이 자리 잡은 곳으로 대통령을 배출하였다고 하여 이름 난 곳이다. 여기를 한번 보고 나중에 동작동 국립묘지의 김대중 전대통령 묘역을 보게 되면 많은 도움이 되리라 본다.
이곳에 대한 소개는 97년 12월의 대통령 선거를 1년 6개월 앞둔, 1996년 5월30일 시사 주간지 뉴스플러스에 실린 내용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이 묘역은 풍수지리에 관한 소설 ‘터’의 저자요, 지관으로 유명한 손석우 옹이 잡아준 자리다. 손 옹으로부터 그 경위를 들었다. 손옹에 따르면 김총재의 가족 묘역은 풍수지리상 ‘天仙下降: 신선이 내려오는 자리’ 지세라고 한다. 천선하강의 터는 첫째로 천선이 내려오니 흩어졌던 인재들 이 다시 모이고, 둘째로는 좌절됐던 일이 다시 복구되는 특성이 있다는 것으로, 여기에 묘를 쓰면 자손 중에 반드시 큰 인물이 나며 하기에 따라서는 대통령이 될 가능성도 열려 있는 자리라고 손옹은 말했다.
손옹이 이 묘역을 잡아주게 된 경위는 이렇다. 95년 초 친지 한명이 손옹을 찾아와 ‘누가 명당을 구하는데 그 발복으로 남북통일 을 완수할 영도자가 날 자리를 찾아 달라’ 고 부탁 했다. 이에 손옹은 북한산에 봐둔 ‘上帝奉朝: 상제가 신하의 조회를 받는 형상’의 터를 권했다고 한다. 거기는 7000만명에서 1억명을 다스릴 제왕이 날 터로, 오늘날로 치면 대통령이 되는 자리라는 것. 얼마 뒤 다시 찾아온 그 친지는 묘 터를 찾는 장본인이 김총재임을 실토하면서 ‘북한산은 국립공원이라서 묘를 쓸 수가 없다고 하니 다른 자리를 봐 달라’고 했다.
마침 손옹의 지인 韓모씨가 소유한 땅 중에 ‘상제봉조’만은 못하지만 괜찮은 명당 이 있어서 그곳을 쓰기로 하고 손옹의 주선 하에 500여 평 정도를 매입, 조성한 것이 현재의 용인 묘원이라는 얘기다. 손옹은 ‘중간에 김총재의 차남 홍업씨가 찾아와 예의를 갖추고 부탁하기에 흔쾌히 응했다’며 ‘홍업씨에게 이 자리는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고, 지도자로 부상할 수 있는 터라고 말해줬다’며 소개했다.
가족묘원이 화제에 오르자 김총재는 측근을 통해 ‘천주교 신자인 나로서는 미신이 나 풍수설에 연연하지는 않지만 양지바른 곳에 부모 묘를 쓰고 싶은 것이 한국인의 보편적 정서가 아니냐’고 말했다. ‘이름난 정치인과 대재벌 치고 내 신세를 지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손옹의 말을 듣노라면 우리나라 사람에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런 보편적 정서가 있는 것 같기는 하다.
풍수지리이론은 크게 理氣學과 形氣學으로 구분되는데, 이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기학은 글자와 공식에 의한 패철의 사용을 중요시하고, 형기학은 패철보다는 산의 실질적인 형상을 우선시 한다는 점이다 (형기학은 物形論 혹은 形局論과는 다른 것임) 양측의 궁극적인 목적은 혈을 찾는다는 하나이지만, 서로가 접근하는 방법이 다르다보니 때때로 상반된 주장과 결론이 나오기 일쑤이다. 바로 이점이 많은 사람들에게 풍수는 10인 10색이라고 지탄 받는 바인 것이다.
이곳도 풍수인들 사이에 각양각색의 평가가 있는 곳인데 오늘 직접 현장을 보고 각자 평가해 보기를 바란다.
2) 해주오씨 선영
해주오씨 묘역은 해주오씨 문중산으로 조선초 오정방 장군의 묘를 비롯하여 해주오씨가 번성했던 시기의 선조들의 묘가 집중되어 있는 곳이다. 60년대 2번이나 대통령후보를 지낸 전 국회의원 오재영의
묘소도 있는데 아직까지 선조들의 숨결이 살아 있는 곳이다. 특히 이곳은 풍수를 조금 공부하신 학인들은 반드시 답산하여야 하는 곳으로 오사겸, 오상, 오빈, 오사겸의 처의 묘를 보고 어렴풋한 형태라도 와겸유돌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공부하기 좋은 곳이다.
* 가계도 : 오수천(?)-오정방-오사겸-오숙(오빈,오상)-오두인-오태주-오원-오재소.....
3) 모박사 부대찌게
모박사 부대찌게는 안성의 대표적 명당터 중 하나로 서경대 1기생 주효석사장의 가게다. 모박사 부대찌개, 칠장사, 현대농장에 대한 자료는 다음카페, 서경학파-올미(http://cafe.daum.net/allme1) 답사기란 118번, 119번란에 이미 상세하게 게시되어 있다. (게시자; 주효석사장)
모박사 본점은 갈룡음수형국으로 하천(물)이 우백호 역활을 하고 정방,계방,유방 등 180도가 물(논) 득수명당이다.
모박사는 20년동안 외길 김치 없는 부대찌개로 차별화된 맛과 가족기업 창업의 성공사례로 김문수 경기도지사상을 수여 받은 발명특허 부대찌개 체인의 본사다 ,안성한우 육수, 안성배로 맛을 낸 백김치, 안성 최고급 쌀로 맛을 낸 전국구 맛집이며 SBS해결 돈이 보인다 대박집, 그리고 부대찌개 전수 창업대학이다. 현재 코엑스점외 다수 체인점이 성업 중이다(홈피 ; http://www.madoctor.com)
4) 칠장사
1983년 9월 19일 경기도문화재자료 제24호로 지정되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말사이다. 창건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10세기 경에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 1014년(현종 5) 혜소국사가 왕명으로 중건했다는 설이 있다. 사찰의 이름은 혜소국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일곱 명의 악인을 교화하여 현인으로 만들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고려시대 1383년(우왕 9)에 충주 개천사에 있던 고려역대실록을 이곳으로 옮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389년(공양왕 1)에 왜구의 침입으로 전소된 것을 조선시대 1506년(중종 1)에 흥정이 중건했다. 1623(인종 1)에 인목대비가 아버지 김제남과 아들 영창대군의 원찰로 삼아 크게 중창했다. 1674년(현종 15) 권력자들이 장지로 쓰기 위하여 사찰을 불태웠으나 초견이 다시 중건했고, 1694년(숙종 20)에 다시 불에 탔으나 1704(숙종 30)에 석규가 대법당과 태청루 등을 지었으며, 1725년(영조 1)에 선진이 원통전을 세웠다. 1726년(영조 2), 1751년(영조 27)에도 약간 이축·증축했고 1877(고종 14)과 이듬해에 중건했다.대웅전, 사천왕문, 원통문, 명부전, 나한전 등을 비롯하여 12동의 건물이 있으며, 혜소국사탑, 탑비, 철제당간 등의 유물이 남아 있다. 혜소국사는 속성은 이씨이며 이름은 정현인데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하여 10세 때 광교사 총회에게서 구법하고 17세에 영통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28세에 왕명에 의하여 대사가 되었으며, 칠현산에서 아란탑(阿蘭塔)을 세워 홍제관이라 하고 좌선하였다. 1054년 83세로 입적했다.
칠장사는 국내 풍수가들이 극찬한 천하 명당터로 사부대중이 불사 건립한 사찰이 아닌 왕실이 직접 불사한 왕립사찰로, 지금도 많은 분들( 왕,왕비,왕자,공주 위폐)가 모셔져 있는 곳입니다. 인목대비가 폐비가 되어 칠장사에 피신해 기도 참선 후 다시 대비로 복귀된 역사적 장소이고, 궁예,임꺽정,혜소국사,나옹선사 등 영웅호걸과 도인들이 기거, 활동 했던 곳. 풍수의 교과서적 명당으로 지강주지스님은 연꽃명당이라고 한다.
3대정맥의 심장부 펌프 역활을 하는 칠현산의 풍요로움과 칠장사의 영웅적 기운이 분출되는 보물 혜소국사비와 임좌 와혈명당 산신각은 경제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혈맥이다. 국보 오불회괘불탱, 국보급 불상 (꺽정불,임꺽정스승 가파치,병해대사 화신),어사 박문사가 기도 후 장원급제한 나한전, 보물불상 등 수없이 많은 문화유산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혹자는 이곳을 사업기운을 주며 사업확장을 돕는 전국 몇 안 되는 명당이라고들 한다.
풍수적 특징은 국사가 머무는 사찰은 일자 안산이 있다고 하는데 이곳 칠장사에서 볼 수 있고, 득수명당으로 물이 마르지 않는 계곡수와 약수, 기가 막힌 사격과 대웅전 뒤 입수 취기는 사찰 양택명당의 진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나한전의 수험기도 영험은 대단해서 실제 주효석 사장 큰 아들은 이곳에서 기도하고 전교수석을 하였다고 한다.
5) 현대농장
박경준사장의 현대농장은 효심과 착함 그리고 열성노력으로 일군 대한민국 대표 축산업 성공사례로 수만평의 농장에 3천여마리의 소를 볼 수 있으며, 농장풍수를 체험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6. 해주오씨 선영 답사기(올미) ; 2008년 4월 27일
대표적인 와혈의 교과서라고 하는 해주오씨 오빈의 묘소를 몇차례 답산하고자 하였으나 오늘에야 비로소 가 보게 되었다. 이곳 해주오씨 선영은 교과서적 와혈, 겸혈, 돌혈을 다 볼 수 있다고 하는 곳인데, 우선 오빈의 묘소에 당도해 보니 과연 이곳을 와혈의 대표적 교과서적 명당이라고 해야 하는지 의문이 되는 곳이다.
와혈의 필수적 구성요건(선생님의 가르침)
1.혈을 감싸주는 두 개의 능선은 활처럼 감아줌이 분명해야 한다.
2.두개의 능선의 높이는 반드시 균등해야 한다.
3.좌우능선의 중심점으로 내룡의 흔적이 있어야 하며 그 맥은 평탄하게 머물면서 당판을 형성해야 한다.
4.맥을 받아서 정상적인 당판을 형성하였다면 남은 기운이 전순을 형성해야 한다.
이상의 4가지 요건 중 과연 어느 것을 만족하고 있을까? 우선 봉분에 잔뒤가 살지 못하여 다시금 봉분과 앞쪽으로 잔뒤를 입혔다. 너무 깊게 내려 파서 물이 스며들고 맥을 받은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백호는 잘 감아 주고 있으나 청룡은 달아났고 자연적인 모습은 청룡백호가 맞물려 있어 형제간에 다투는 격이다. 뒤에 돌이 박혀 있어 석맥으로 이끌어져 있다고 하나 박은 돌 같고 설사 박은 돌이 아니더라도 뜬 돌이다. 석맥으로 형성되지 못하고 자연석이라고 해도 뜬 돌로 의미가 없다.
이어서 겸혈의 대표작, 오사겸의 처, 정경부인 전주 이씨묘를 둘러 보았다. 얼마전에 가 본 의왕의 김인백의 처 안동 권씨묘, 김인백의 묘와 매우 흡사한 오목풍수의 전형을 볼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청룡자락을 유심히 살펴 보았다. 좌청룡은 오무려 진 것 같이 보이나 밖에서 보면 도망을 가고 있다. 겸혈은 대추 떨궈 논 덩어리가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맥을 타지 못 하였고 계곡이며 매우 습하며 모양만 겸이다.
그 다음 들린 곳이 오두인 묘, 용이 봉우리에서 출맥하지 못하고 과협처에서 파생된 곳이다. 주산이 약하면 인물이 나기 어렵다. 청룡백호가 높고 과협처에서 파생되어 석물이 바람을 맞아 검게 변한 모습이다.
산 꼭대기에 위치한 오상의 묘, 돌혈의 대표작이라고 한다. 분위기가 추부의 태실과 비슷하다. 해좌사향, 봉우리에 묘를 썼다. 정상적인 당판을 형성하지 못하고 용은 계속 내려가고 있다. 사격이 잘 보이고 전망이 좋다. 산봉우리가 올라온 모습도 유심히 살펴 보았다. 과협에서 역삼각형으로 치고 올라가야 하는데 지그재그 좁아지고 차돌이 보인다. 박환이 잘 안 된 곳이다. 다시 오상묘 앞이 솟구쳤으니 돌혈과 관계가 없고 과룡에 불과한 곳이 아닌가? 혈이 맺히는 곳과는 거리가 멀다. 산 꼭데기인데 왜 묘 봉우리에 습기 있는 풀이 있고 잔뒤가 못 사는가? 셈이 솟거나 바람을 타는 곳이다. 해주오씨 선영에는 백여기의 묘소가 있는데 소위 말하는 와겸유돌의 교과서적 명당이라기 보다는 문중묘역 중 하나로 보아야 할 것만 같다.
7. 공지사항 ;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첫댓글 잘 다녀 왔습니다...고생이 많았습니다,,,늘 고생하신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현장 답사에 수고 많으셧습니다. 바쁜 중에도 참가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