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가의 돌이 바둑돌처럼 반지르르하다는 뜻에서 유래했다는 기포라는 지역은 추사 김정희(金正喜)가 동해 바닷가 차성현(지금의 기장군 기장읍)의 남쪽에 지명이 기포라는 한적한 해변을 거닐다가 희고 검은 바둑알을 주워 가지고 그 생긴 모양에 감탄하면서 '자연기(自然碁)'라는 시를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옛 기록을 찾아보면 동해안에는 여러 포구가 표시되어 있는데 이 중 基浦는 기록에는 碁浦로 나와 있으며 검은 바둑알이 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조선시대에는 기포나 두모포(豆毛浦)와 함께 해안을 방어하는 군사기지와 수륙(水陸)물산을 수송하는 포구로서의 구실을 했다.
현재 이동" 이라는 이름은 일광 이천의 동쪽에 있는 마을" 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천리 이동마을이다.
바둑 돌은 소모품인데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좋은 바둑판, 좋은 바둑돌에 대한 애착이 지극했다.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좋은 바둑돌을 만들기 위해 어린애들을 저임금으로 혹사했던 일도 있었나 봅니다., .
조선시대 효전 심노숭의 <산해필희>에 '기장 바둑돌이야기'가 나오는데 좋은 바둑돌을 위해 어린이들을 착취하고 혹사했던 일이 있었단다. 그러니까 조선시대로부터 부산 기장바둑돌이 유명했다고 한다. 심노숭의 산해필희에 다음과 같이 기장 바둑돌이야기가 있다
< 지금의 이동마을 해변 한켠에 있는 바둑돌들 입니다.>
"요사이 관아 아이들이 혹 나를 찾아오는데 모두 손톱이 닳아 문드러져 있었다.그 까닭을 물으니 바둑돌을 가느라고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검정 바둑돌은 읍의 십리포구( 기포, 현 이동마을)에서 나오고, 흰바둑돌은 동래의 수영포구에서 나오는데, 밥을 싸들고 가서 줏어 모아 돌에다가 간다고 한다.
관아 아이들이 이 일을 맡는데 그 가는 솜씨가 익숙한 아이일지라도 하루에 불과 수삼십 알 밖에 못 만든다. 흑백 각 200알이 한벌이 되는데 한 관아에서 바치는 것이 1,000벌을 넘는다. 그리하여 관아 아이 20명이 바둑알을 갈지 않는 날이 없다.
한 관아 아이가 손에 흰 바둑돌 수십개를 가지고 마치 순백의 옥처럼 다듬는데 그 본(本)이 되는 돌에 맞지 않으면 버려진다. 이른바 본(本)이란 것은 뿔을 각아 만든 것인데 마치 주조한 것 같다. 빛깔과 모양이 이에 비교해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쓰지 않는다. 이것이 뉘 집에서 나온 분부인지는 모르겠으나 관의 받들어 행함이 이토록 근실한 것을 보면 분부한 이가 귀인(貴人)임을 알수있다. 아~, 이것이 참으로 무슨 마음인가! 하나의 놀이기구에 심지어 본까지 만들어 멀리 천리하읍(千里下邑)에서 징발하여 그 가부(可否)를 점검한 후에 들이고 때로 물리친다. 귀인이 이런 일에나 마음을 쓰고 있으니 백성과 나라를 위한 계획은 어느 겨를에 하리요! 바둑돌에 이러하니 다른것도 유추해 볼수있다. 사대부의 잘못된 한 생각의 폐해가 백성들에게 미치니 기장(機張) 관아 아이들의 손톱의 닮아 문드러짐에 그칠뿐이 아닌 것이다.
귀유공자가 어려서부터 좋은 옷과 좋은 음식으로 놀이나 일삼고 독서는 하지 않는 것이 진실로 궁벽해진 산과 바다의 밭 갈고 고기잡고 소몰고 다니는 아이와 무슨 관계가 있으리오마는 필경 이 이아들은 저 귀유공자들 때문에 망하리니 한 터럭도 용납치 않을 것이다. 예전의 선배어른들이 자제를 가르침에 조목과 규율을 엄하게 세웠던 것은 대개 자기 한 집안을 위한 계책일뿐 아니었던 것이다."
이동(기포)은 현재 전국 최대의 다시마 집산지이다.하지만 이곳 역시 포구는 거의 매립된 상태다. .
이곳 이동방파제는 대변항과 학리포구와 더불어 "명방파제100선"에 들 정도로 이름있는 곳이며 영화 " 복면달호":퐐영지이기도 하다. 기포(碁浦)는 현재 전국 최대의 다시마 집산지이자 특구로 지정된 곳이다. 이 날도 다시마종균을 넣기위해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이 바닷가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밧줄에 다시마 종균을 붙여 어장에 살포해 두었다가 설 전후해서 다시마를 솎아준다고한다. 그런 후에 잘 키워 내년 5월경에 수확 한다고 했다. 날씨가 싸늘해서 일하고 있는 분들에게 자꾸 물을 수도 없어 물음을 그냥 머리에 담아서 걷고 또 걸었다. 동백리까지 걸었다. 지금의 삶이 바둑돌을 갈아 삶을 영위하던 그 때보다 조금은 나아진것일까. 그분들의 손은 그 아이들의 손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