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숨바꼭질 ◇
"숨바꼭질"은 표준말이지만, 지방에 따라서는 "숨바꿈질"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소꿉놀이"를 "바꿈살이"라고 하는데,
거기에서 "숨바꼭질"을 "숨는 놀이하는 바꿈살이"라는 뜻으로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 빙혼 어렸을 때 우리 동네에서는
"빠끔살이, 빠꿈살이, 까끔살이 등"으로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숨바꼭질"은, "순바꿈질"에서 바뀌어간 말이라 봄이 옳을 것 같다.
즉 순(巡)을 바꾸어 나가는 놀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놀이는 달리 또 "술래잡기"라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술래"라는 숨은 아이를 찾아내는 역을 맡은 아이가 있는 것에서 살펴
"술래"와도 관계가 지어진다.
순(巡)을 바꾸어 나간다는 "순"과 "술래"와도 관계가 있다.
술래는 "순라"(巡邏)에서 왔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순라"가 글자로는 "순라"지만, 말하고 읽기로는 "술라"로 되는 것이고
그 "순라"가 다시 "술래"로 되었다고 하겠다.
그래서, 지난날의 순라꾼과 관계되게 되는 숨바꼭질이며 술래잡기이다.
"순라잡기"가 "술라잡기→술래잡기"로 되어 간 것이다.
("질"이라는 뒷가지는 이름씨 아래 붙어서 "노릇"이나 "짓"이라는 뜻을 가지고 쓰이고
"손질"·"발질"·"서방질" 같은 그 "질"이다).
봄·여름에는 오후 여덟 시, 가을·겨울에는 오후 일곱 시에 종로의 보신각(普信閣)에서
종을 치게 되고, 그를 신호 삼아 사대문(四大門)을 닫으면서 통행 금지가 시작되던
조선 왕조 사회였다.
이는 오전 0시 직후에 다시 종을 쳐서 통금을 해제했던 것인데,
밤 종소리가 나면서부터 치안을 맡은 좌우포청(左右捕廳)의 엄중한 경계는 시작되었다.
포교(捕校)와 나졸(邏卒)들이 장안을 샅샅이 순회했는데, 이 순회를 "순라"라 하고
이 순라하는 사람들을 "순라꾼"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술래잡기나 숨바꼭질은, 이러한 순라꾼이 도둑 잡는 일에 빗대어진 것으로서
"순라"가 "술라 →술래"로 된 내력을 알 만해진다.
*출처:<박갑천의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