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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시계에서 두 개의 하늘을 보았다
서울은 전체 면적 약 605㎢ 가운데 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60% 이상이다. 인간의 삶과 문화, 역사가 곧 산과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지형적 조건이다. 조선시대 겸재 정선이 그린 서울 진경산수화도 산 안에서 삶을 영위하는 인간의 모습을 조화시키고 있다.
가장 높은 곳에서 서울과 경기도 시계를 볼 수 있는 산성길을 등산객들이 가고 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서울지역으로 뻗어나온 산줄기의 흐름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남쪽으로 500~600리 달리다가 양주에 와서 자잘한 산으로 되었다가, 다시 동쪽으로 비스듬하게 돌아 돌면서 갑자기 솟아나 도봉산의 만장봉이 되었다. 여기에서 동남방을 향해 가면서 조금 끊어진 듯하다가 다시 우뚝 솟아 삼각산 백운대가 되었다.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 만경대가 되었는데 한 가지는 서남쪽으로 뻗어갔고, 다른 한 가지는 남쪽으로 뻗어 백악산이 되었다. 백악산은 형세가 하늘을 꿰뚫는 목성의 형국으로 궁성의 주산이라고 한다. 동·남·북쪽은 모두 큰 강이 둘렀고, 서쪽으로 바다의 조수와 통한다. 여러 곳 물이 모두 모이는 그 사이에 백악산이 서리어 얽혀서 온 나라 산수의 정기가 모인 곳이라 일컫는다.’ 서울의 진산 도봉산(3구간)과 북한산(4구간) 주능선으로 종주하는 코스와 비슷하다. 시계종주 전체 10구간 중에 완전히 산으로 걷는 코스는 3·4구간뿐이다. 서울시계종주의 하이라이트인 것이다.
2구간에서 헤어졌던 도봉산역 그 자리에서 정확히 오전 10시에 다시 모였다. 이번 참가자는 2구간 때보다 조금 줄었다. 2구간을 원체 세게 한 탓인가.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쉬지도 못하고 불암산과 수락산을 GPS 거리만으로 18.3㎞ 오르락내리락하며 종주했으니 질릴 만도 할 것이다. 그래도 참가한 역전의 등산꾼들은 일제히 도봉산으로 향했다.
용출봉·의상봉 등이 펼쳐진 능선을 따라 가는 길이 서울시경계다.
도봉산은 등산객들로 평일에도 북적거렸다. 요즘은 정말 ‘등산이 국민 레저활동’임을 실감케 한다. 도봉산역 앞 3번 국도를 지나 즐비한 음식점과 상가 사이가 아닌 시계를 걷기 위해 의정부 방향으로 나아갔다. 조금 가다가 공영주차장을 왼쪽으로 끼고 돌았다. 정확한 시계는 조금 더 올라가 하천 쪽이지만 길이 없는 관계로 이곳에서 방향을 틀었다. 차 두 대가 오르내릴 수 있는 제법 넓은 길이다. 큰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다른 길로 빠지기 십상이다. 도봉산 (평화)양봉원 앞에서 오른쪽 좁은 등산로로 접어들어야 한다. 다락능선까지 등산코스는 거의 외길 수준이기 때문이다. 본격 등산로가 시작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군시설물인 화생방 방공호가 나왔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듯 잡초만 무성하다. 그러고 보니 날씨가 꽤 풀렸다. 낮 최고 기온이 13도까지 올라간다는 일기예보도 있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은 모처럼 따뜻한 기온에 녹아 질퍽거렸다. 신발과 바짓가랑이에 진흙이 연방 튀었다. 봄이 오기는 오는가 보다.
우이동에서 3구간 출발 직전 서울시계종주팀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다락능선이 서울과 의정부 경계 그 옆으로 만장봉, 선인봉이 연달아 우뚝 솟은 모습이 위엄을 더했다. 화강암의 희고 큰 바위벽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 만장봉이 되었고, 높은 산봉에 붉은빛의 아름다운 구름이 걸리니 자운봉이라 했다고 전한다. 뜻있는 지사들이 학문을 연마하고 민생을 구제하고자 도(道)를 닦았다고 도봉이라 붙였다고 한다. 실제로 도봉산에 있는 천축사, 회룡사 등 사찰에는 이성계의 왕조 창업과 관련하여 무학대사의 중창 기록이 있다. 경관이 뛰어난 계곡에는 조선 중기 조광조를 모시는 도봉서원이 건립되어 국사를 논하기도 했다. 이 서원은 서울 지역에서 유일하게 남은 서원이다. 결국 도봉이란 이름은 두 가지 의미를 다 내포하는 셈이다. ‘←0.8㎞ 도봉탐방지원센터, 자운봉 3.2㎞↑’라고 이정표에서 안내하고 있다. 다락능선까지는 약 2㎞ 더 가야 한다. 바로 앞에 높은 암벽길이 떡 하니 막아섰다. 우회로가 있지만 자신 있는 사람은 암벽으로 올라갔다. 안전한 산행을 위해서 왼쪽으로 우회해서 갔다. 올라가는 길 중간쯤 불과 몇 미터 옆에 은석암이 자리 잡고 있다. 다락능선이 서울 도봉구와 의정부시 호원동과의 경계다. 다락능선 위 조그만 마당바위에선 사방 조망이 가능하다. 뒤(북)쪽으로는 망월사가 산 중턱에 파묻혀 있고, 앞(서남)쪽으로는 도봉산의 3개 주봉이 바로 눈앞에 있는 듯했다. 성냥갑 같은 서울의 빌딩 모습도 발아래 펼쳐져 있다. 도봉산역에서 출발한 지 2시간을 훨씬 지나 포대능선 바로 밑 휴식처에 도착했다. 포대능선은 대공포대가 있었던 649봉에서 자운봉과 마주보는 신선대까지를 말한다. 지금은 포대능선 정상에 있는 포대 벙커가 그 자취를 전하고 있다. 도봉산의 포대능선은 한국전쟁 때 수락산과 방어진지를 구축해 남침하는 세력들을 막는 역할을 한 천연 방어선이었다. 일방통행을 실시하고 있다. 이 계곡을 통과하면 곧바로 자운봉과 신선대 사이에 도착한다. 몇 번을 탔지만 그래도 긴장되는 건 마찬가지. 발 딛는 바위틈에는 아직도 눈이 녹지 않아 미끄러웠다. 있는 힘을 다해 올라섰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건 어찌할 수 없다. 가장 난코스를 넘어서니 신선대와 만장봉이 마주보고 있다. 이 봉우리들이 우이능선으로 이어지는 도봉주능선과 포대능선을 이어준다. 도봉산 주능선은 신선대·자운봉에서 출발해서 종착지인 우이암까지를 말한다. 이 구간의 암릉은 뜀바위, 피바위, 칼바위, 기차바위, 오토바이바위 등이 있다. 대부분의 등산객은 우회해서 가기 때문에 뜀바위를 접할 기회가 별로 없어 생소할 것이다.
1 하루재 고개에서 종주팀이 백운산장을 향해 방향을 가리키며 가고 있다. 2 종주팀이 산성을 따라 시계를 걷고 있다. 3 철제 사다리를 잡고 올라가고 있는 시계종주팀. 4 시계종주팀이 도봉산 전망대에서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망월사와 도봉산 능선을 보고 있다.
도봉주능선은 암릉에 갖가지 바위 널려 암릉이 마치 칼처럼 양쪽으로 날카롭게 서 있어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 우이암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모양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원래는 소의 귀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남성의 성기처럼 생겼다는 사람도 있다. 지리산과 월출산의 통천문과 조금 비슷하게 생겼다면 전부 통천문이라 부른다. 도봉산 지나온 길에서만 두 번이나 그런 바위가 있었다. 또 웬만한 산에는 전부 통천문이 있다. 통천문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건 아닌지. 우이암 능선은 도봉산과 북한산을 연결하는 가교 능선이다. 북한산으로 접근성이 좋고 길도 좋아 대부분 그쪽으로 간다. 덕분에 우이암능선 등산로는 한적하면서 푹신했다. 바위의 정중앙을 뚫고 올라온 소나무 한 그루가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마치 바위가 소나무를 품고 있는 형상이다. 일행 중 한 명이 신기한 듯 말했다. 나중에 소나무가 이길지 바위가 이길지 모르겠지만 소나무가 이겨 저 바위를 갈라버릴 것 같아.” 마침내 우이동에 도착했다. 참나무바베큐집이 하산로 바로 옆에 있다. 우이동 방향으로 조금 내려오니 ‘한정식 백란’이란 거창한 집이 있다. 4구간은 그 집을 거쳐서 북한산으로 올라간다고 한다. 도봉산역에서 다락능선을 거쳐 포대능선~도봉주능선~우이동까지 무척 길 것 같은데, GPS로 측정한 바로는 9.8㎞밖에 안 된다. 알바한 거리나 출발지와 목적지까지의 접근 거리를 포함하면 전부 걸은 거리는 15㎞ 이상이 될 것 같다. 오전 10시에 출발해서 오후 4시30분쯤 끝났다.
(좌)종주팀이 도봉산 마당바위에서 자운봉과 신선대, 만장봉을 배경으로 환호하고 있다. (우)도봉주능선에서 암릉 위로 걷고 있는 종주팀들.
[4구간] 오전 9시 우이동 그린파크 앞에서 일행이 모였다. 3구간 종주 때보다 참가자가 다소 줄어 10명 남짓이었다. 봄이 오니 각종 행사도 많아져 빠졌다고 한다. 날씨가 추워도 봄은 오고, 구간종주는 계속된다. 오전 9시5분쯤 바로 출발이다. 오크밸리 카페를 거쳐 육모정고개로 갔다. 원래 서울시계는 우이령고개를 넘어 상장능선에서 육모정고개로 이어지지만 자연휴식년제와 통제구역 등으로 우이동으로 우회하는 것이다. ‘육모정고개 1.1㎞’란 이정표가 나왔다. 등산로는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계곡이라 바람도 없고, 길도 푹신하다. 가로·세로 7m는 족히 될 것 같다. 바위 앞에 선 사람이 손바닥만 하게 보일 정도다. 이 바위를 아는 산악회는 매년 여기서 시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능선으로 오르려니 그럴 것 같았다. 육모정 고갯길에 올랐다. 육모정고개는 사거리지만 북쪽으로 가는 길과 상장능선 가는 길은 통제된 상태다. 고개 오른(북)쪽 능선이 상장능선과 우이령으로 이어진다. 왼쪽으로 완만한 오르막길로 헬기장을 지나 능선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계속 가면 해발 604m의 영봉이다. 영봉에서는 백운대와 인수봉의 웅장한 모습과 도봉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포대능선 Y계곡의 바위틈엔 아직 눈이 녹지 않고 미끄러운 상태라 종주팀이 힘겹게 오르고 있다.
주요 봉우리와 9개 성문 지나 왼쪽으로 내려가면 도선사 주차장으로 하산하고 곧바로 능선으로 올라가면 북한산 인수대피소가 있는 깔딱고개를 지나 백운산장에 이른다. 시각은 11시26분. 출발한 지 2시간30분 가량 지났다. 휴식을 취하고 중식을 해결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에 따르면 ‘삼각산은 인수·백운·만경 세 봉우리가 우뚝 솟아 세 개의 뿔과 같이 생겨 붙여진 이름이며, (중략)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비류와 온조가 남쪽으로 내려와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가 살 만한 땅을 찾았다는 산이 곧 이 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 후기 북한산성이 축성되고 그 내용을 기록한 <북한지>가 발간됨으로써 북한산이란 이름이 자연스럽게 산이름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위문까지 올랐다가 이제부터 북한산성으로 둘러싸인 북한산의 주요 봉우리를 거쳐 북한산성탐방안내소를 지나야 한다. 갑자기 갈 길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이 성문은 북한산 중심인 행궁과 중흥사지로 통하는 길목으로 시민들이 찾는 주요 등산로이기도 하다. 북한산은 성곽을 쌓기 전부터 천연의 요새로 기능을 해왔다. 북동쪽 하늘을 가로막고 있는 백운대·인수봉·만경대·노적봉, 그리고 북서쪽의 원효봉·염초봉, 남서쪽의 문수봉·나한봉·증취봉·용출봉·의상봉의 험준한 산 능선이 연결되어 요새를 만들어놓았다. 서울시계는 북서쪽의 봉우리를 빼고는 전부 다 거쳐 지나간다. 백제가 위례성에 도읍을 정할 때 도성을 지키는 북방의 성으로 축조한 것이다. 고려시대 들어서도 북한산은 중요한 기능을 했다. 11세기 초 거란이 침입해왔을 때 현종은 고려 태조의 재궁을 북한산 향림사로 옮기고 성을 증축했다. 우왕 13년(1387년)엔 왜구에 대한 방비책으로 최영 장군에게 노적봉을 중심으로 중흥석성을 수축하도록 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을 거치며 산성 축성 논의가 계속되다가 조선 숙종 37년(1711년)에 이르러서야 대대적인 북한산성 축성공사를 벌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암릉이 펼쳐진 도봉주능선을 가기 위해 나무계단길로 내려가고 있다.
그 수많은 역사와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산성을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걸어야 한다. 역사를 되새기는 건 아무리 해도 좋지만 육체적으로는 녹초가 될 것 같다. 위문부터 산성 출발이 시작됐다. 위문에서 노적봉까지는 거리가 불과 600m 정도밖에 안 되지만 철난간을 잡고 가야 하는 다소 거친 길이다. 그만큼 우뚝 솟아 있다. 가파른 등산로로 인해 등산객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0.9㎞ 백운대, 대동문 2.1㎞ ↑’ 이정표가 방향을 안내하고 있다. 북한산대피소를 거쳐 동장대를 지나 대동문에 도착했다. 종주능선은 별로 힘들지 않은 무난한 길이다. 쉬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산성에서 지축역까지 평지 4㎞ 걸어야 그것도 가장 높은 지대에서 산성을 따라 걷는 길은 두 개의 하늘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다. 서울의 하늘은 약간 흐리긴 했지만 그나마 시야가 어느 정도 확보돼 있었다. 반면 경기도의 하늘은 눈이 내려 은색의 세계로 변해 있었다. 딱 중간 지점에서 한쪽은 갠 하늘, 다른 쪽은 눈 내리는 하늘, 즉 두 개의 하늘을 동시에 보는 것이다. 삼각점 위에서 주변을 살펴본 후 대남문으로 향했다. 대남문과 문수봉을 지나 청수동 암문, 부왕동 암문, 용혈봉, 용출봉까지 왔다. 암벽 위로 오르는 다소 위험한 코스에 안전을 위해 철제 난간을 설치한 것이 오히려 화근이었다. 벼락이 그 철을 찾아 내려와 때린 것이다. 지금은 사고지점 조금 위에 피뢰침을 설치했다. 의상봉 정상에서는 북한산성의 전체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북한산의 주요 봉우리와 주요 성문의 위치까지 가늠할 수 있다. 너무 힘들었지만 북한산의 전체 지세를 한결 수월케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날씨는 비가 올 듯 말 듯, 눈이 올 듯 말 듯한 상태였다. 밧줄을 잡고 내려가는 코스가 많고 매우 미끄러운 길이다. 겨우 절반쯤 내려가니 포근한 등산로가 이어졌다. 하산했지만 4구간 끝은 여기가 아니다. 평지를 걸어서 지하철 지축역까지 무려 4㎞를 더 걸어야 한다. 산길을 걷는 것보다 평지 걷는 게 역시 더 힘들다. 오히려 천천히 걸었다. 지축역으로 가는 길은 산성 입구 바로 앞에 있는 창릉천을 따라 곧장 가면 된다. 공사 자재가 여기저기 널려 있고, 거리는 아직 정돈되지 않은 상태였다. 완공된 아파트에 입주민도 별로 없는 듯했다. 저녁이 다 돼 날이 어둑어둑했지만 불이 들어온 집은 몇 집 안 돼 보였다. 이제 바로 저 앞에 지축역이 보이고, 지하철이 지나갔다. 마침내 끝이다. 시계를 보니 오후 6시30분. 오전 9시에 출발했으니 무려 9시간30분을 걸었다. 빨리 밥을 먹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우이동에서 육모정고개~영봉~하루재~위문~용암봉~문수봉~의상봉~북한산성탐방안내소~지축역까지 무려 19㎞였다.
(좌)우이암 전망대에서 종주팀이 안내판에서 오봉와 자운봉, 신선봉을 확인하고 있다. (우)우이암에서 우이동으로 내려가는 마지막 난코스를 종주팀이 힘들게 내려가고 있다.
[서울시계종주 3·4구간 가이드] 1·2구간이 그렇고, 이번 구간도 마찬가지다. 3구간은 지하철 1·7호선 도봉산역에서 모여 출발하니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3구간 끝지점이자 4구간 출발지점인 우이동은 지하철과 버스 환승을 하든지 택시를 타야 한다. 지하철로는 4호선 수유역에서 내려 우이동이나 도선사행 버스를 타면 된다. 지하철 내리는 지점이 버스 승강장과 바로 연결된다. 수유역에서 택시를 타도 5,000원 내외다. 간단한 도시락과 간식을 챙겨 가면 되지만 4구간은 3구간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19㎞기 때문에 도시락과 먹거리를 제대로 챙겨야 한다. 특히 4구간은 평지를 4㎞ 이상 걸어야 하기 때문에 워킹용 신발 밑창을 까는 것도 괜찮다. 여성들은 장거리 도보로 발바닥이 아프면 가끔 생리대를 신발 밑창에 깔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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