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단(좌측) 영문은 에는 " 군산의 맨 처음 교회 " - 라는 전킨의 사인이 있다 .
군산최초의 군산교회인 궁멀교회(현,군산구암교회) 의 사진을 ,
개복교회는 자기교회 사진이라고, 둔갑 시키고 있다.
◈군산선교부의 일명"군산교회(=궁멀교회,
군산구암교회)"성도들의 모습◈
※득병하여, 1901년에 영구 귀국한 드루 선교사가 사진에 없다는 것과.구암교회
양응칠 장로 와 1899년 궁멀에 안착한
불(부위렴)선교사가 있다는 것은 -
즉 군산선교부 가 시내쪽에서 ,궁멀로 이전(1896년 궁멀에
먼저 와 사역중이던,데이비스 여선교사와 합병) 후인 것으로,
궁멀의 군산선교스테이션(구암동산 자리) 내의 궁멀교회 성도들 모습을
촬영한 기념사진.(전킨이 전주로 발령 되기전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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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앞줄 좌측:전킨의 어린3자녀들/중앙:전킨(군산구암교회1대목사,구암교회 양응칠 장로,
불선교사(1899년 궁멀에 안착-전킨을 잇는 군산 선교스테이션의 차세대 주자) /
맨뒷줄 우측:간난아이 안고있는 엘리자벳 앨비(1900년 궁멀 안착,1901년 불과 결혼함)
,검은모자 쓴 메리 레이번(전킨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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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5년에 최흥서 장로( 만자산교회 장로,현 군산 대야 지경교회:1900년 설립) 의
헌신적 조력과 어아력 선교사 에 의해 설립 된 - 귀중한 선교역사 인
"군산개복교회 1대 목사인(어아력 선교사)사진는 왜 없는가~! "
참 안타까운 일이다.
전킨이 안식년으로 미국에서 내한 후 -
1902년 1월에 군산에서 작성한 The Missionary 에 기고한 글에는 예배장소 5곳 중4곳에 대해선
통사동(현,군산 개정동) / 만자산(현,군산 대야지경) / 남차문(현,익산남전) / 송지동(현,김제송지) 라는
부락명을 구체적으로 명명하지만, 군산선교부 의 궁멀교회에 대해서는 지역명 인" 군산 "으로 만
명명 했는데, 이것은 곧 전킨선교사 자신이 일명 "군산교회"로 도 불려진 군산선교부 전신인
궁멀교회를 군산교회 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음을 알수있다.
또한 일부 의견대로, 선교부가 옮겨진 것이지, 교회가 옮겨진 것이 아니요,
남아 있는 교인들(소멸된것이 아니라고)에 의해 일명 "군산교회로도 불려진
교회 교인이" 존속되었다고 주장 한다면-
자신의 몸을 돌볼겨를 없이 복음사역에 몸을 불살렀던 43세의 젊은나이에 생애를 마친 전킨 선교사 의
선교헌신의 열정상 ,분명히 일명 군산교회 라고 불리운(군산선교부) 가 소멸되지 않고. 일부 남아있던
교인들이 있었다고 한다면 왜 그곳에 계속해서 작은 기도처소나 작은예배처의 형태로라도 당당히 유지시켜
,전킨 자신이나,장인택 조사로 하여금,어떻게 해서라도
관리유지하여서, 존속케하여 아름다운 복음사역의 첫열매의 명맥을 이어갔을 것이 아닌가.
한영혼 한생명이 천하보다 귀한것인데,그리쉽게 사명감없이 내팽개쳐 버리는 사역은 신앙의 양심상
본인이 허락지 아니하였을 것이기때문이다.
또한 ,선교초기에는 한국인 스스로가 자생력을 가질수없던 영적 유아기 였기에 - 젖을먹고 자라야만 할
어린여아였기에 엄마격인 영적 지도자 가 되는 선교사를 따르지 않을수가 없었음을 잊지말아야 한다.
첫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뼛속 깊이스며있는 복음의 사역지 였기에 더욱그렇다는 것이며 ,1900년
만자산교회(현,군산 대야에 있는 지경교회) 설립의 주축이됐던 최흥서. 본인교회일도 벅차기 이를때 없는
시기에, 최흥서조사(만자산교회/현,군산 대야지경교회) 로, 하여금 첫복음의 씨앗이 뿌려졌었던 군산시내
전도를 맡아 사역 초석이 되어,1905년(9년후) 에나, 더디지만 개복동교회 가 설립이 되었다는 것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남아있었다고 주장하는 교인이 소멸
되었기 때문임 을 반증한 것이다.
1904년 군산에 부임하여,군산개복교회를 설립한 1대목사인 어아력 선교사 기록에는,
군산개복교회가 설립 된 1906년의 교인이35명으로 시작되었고, 이때궁멀교회(=군산교회)교인은
250명 이었다, 보고 기록하고있다.
또한1920년 무렵에는 미약한 미자립의 개복교회가 재정이 않돼,단독으로 목사청빙을
할수없어 궁멀교회 (군산교회)현,군산구암교회 와 함께 목회자를 청빙해야만 했다.
군산개복교회 2대 장로인 홍종필(후에 목사가 됨)이 필진으로 참여한 1928년"조선 예수교
장로회 사기와 1917년 남장로교 선교 25주년 기념식 준비위원으로 홍종필이 작성한
"군산 스테이션 설립에 관한 보고서 " 에서도
군산개복교회 설립이1906년 으로 기록하고 있는데,이기록마저도 부인하고 선교역사를
왜곡하고 있으니 개복교회 출신의, 산증인 홍종필 목사가 곡할노릇이 아니겠는가 ?
군산선교부 가 군산시내에서,운영하던 - "예수교 책방" 의 임주환 장로 가
군산통신을 전하면서 개복교회 설립이 1906년임을 "예수교회보" 에 여러차례에
걸쳐 증언해 주고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셨던 군산 선교역사 를 잘못된 이기주의적 교세를 앞세워,
억지주장, 왜곡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질서의 하나님 앞에 순결한 성도,
교회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