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딧
어떤 책인가?
토비트 다음에 나오는 성서.
하느님께 대한 신앙과 민족애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시대나 주인공, 지리를 임의로 꾸며낸 흥미진진한 역사성서이다.
유딧이란 성서 이름은?
아시리아군에게 포위당한 요새 베툴리아를 구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여주인공 유딧의 이름을 따서 책이름이 붙여졌어요.
누가 썼나?
예루살렘과 성전을 중시하고 성전과 연관된 각종 희생제사와 봉헌물을 강조하며, 기도와 단식 등의 제사를 올리는 모습으로 보아서는, 마카베오 시대에 시행되었던 바리사이즘을 연상케 됩니다.
또한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사거너이 팔레스티나에서 펼쳐지고 그곳의 지리가 다른 곳의 지리보다 정확한 것을 보면, 팔레스티나에 사는 바리사이가 썼을 것으로 보여요.
언제 쓰여졌나?
유딧서 안에는 헬레니즘적인 요소가 여러 곳에 언급되고 있어요.
화환이나 올리브로 만든 관을 쓰는가 하면(3,7;15,13), 식사할 때에도 비스듬히 기대서 먹어요(12,15).
왕을 신으로 받들어 모시면서 왕에게 예배드리게 하구요(3,8).
제도적인 측면에서도 대사제가 정치적·군사적인 권력을 쥐고 있을 뿐만 아니라(4,6), 예루살렘 원로들이 다른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4,6.8; 11.14)에서 마카베오 시대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어요.
그런데 사마리아와 그 지역에 대한 예루살렘의 태도가 우호적이며(4,4.6), 사마리아 일대에 우상숭배가 완전히 뿌리뽑혔다고 단언되는 것(8,18-20)을 보면, 기원전 107년 그리짐산에 있는 사마리아 성전을 완전히 파괴하고 사마리아 지역을 유다의 통치권 아래에 편입시킨 요한 히르카누스 1세(기원전 135-104) 이후에 쓰여졌을 거에요.
하지만 알렉산더 얀네우스(기원전 103-78) 시절에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이 학살된 사건이 반영되어 있지 않을 것으로 보아, 이 시기 이전에 집필되었을 것으로 보여요.
더군다나 사두가이파나 에세네파에 반대하는 듯한 내용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아요.
따라서 바리사이즘이 형성되던 초기 시절에 해당되는 요한 히르카누스 시절에 집필되었을 거에요.
왜 썼나?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약소국으로서 멸망하지 않고 생존해 나가기 위해서는, 남다른 비상한 노력과 자기 몸을 아끼지 않는 헌신이 필요하지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종교 박해에 맞서 싸운 결과로 생겨난 하스모니안 왕조에 있어서, 사람들의 이러한 노력과 헌신은 그 어느 시대보다도 절실했습니다.
강대국 안에서 벌어진 패권다툼을 잘 이용해서 유다 왕국의 입지를 더욱 강화시키는 한편, 닥쳐온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야 될 시대적인 요청이 절박했던 것이죠.
따라서 이방인 군대에 포위되어 함락될 날만 기다릴 수 밖에 없었던 베툴리아 주민들을 구해내기 위해, 일신상의 작은 위험을 무릅쓰고 나섰던 유딧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기 위해서 쓰여졌어요.
어떤 이야기가 쓰여 있나?
유딧은 모두 16장입니다. 외국의 침략 앞에서 고통을 겪는 하느님 백성의 삶과 신앙이 한 여인의 용감한 행동에서부터 승리의 기쁨에 이르기까지 박진감 있게 폎쳐지고 있다.
내용에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물줄기가 끊긴 이스라엘 백성의 처절한 갈등(유딧1,1-7,32)
아시리아의 왕 느부갓네살은 그의 적인 메대와 싸울 때에 여러 나라에 지원을 요청하였으나 거절 당합니다.
싸움은 느부갓네살 왕의 승리로 끝나고, 왕은 총사령관 홀로페르네스에게 명령하여 지원을 거절한 모든 나라를 정복하라고 했습니다.
영토와 신전를 약탈하고 느부갓네살 왕만을 신으로 받들도록 강요하는 위협 속에서 유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제일 먼저 하느님을 찾습니다. 성전 앞에 엎드려 참회와 기도를 드리면서 주님께서 보살펴 주시기를 열렬히 애원하고 아시리아 군에 저항할 자세를 취한다.
한편 홀로페르네스는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짓지 않는다면 공격하는 것은 무리 라른 암몬의 지휘관 아키오르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베툴리아 골짜기에 진을 치고 수로와 수원지를 점령한다.
이에 주민들은 목말라 지쳐 쓰러져 항복하여 목숨을 건지자고 울부짖었고 지도자 우찌야는 닷새를 기다련 본 후에 백성들의 말을 받아들이겠노라고 괴로운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유딧의 손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유딧8,1-13,20).
한편 이 소식을 들은 과부 유딧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여종을 데리고 홀로페르네스를 만나러 적의 진지로 들어간다.
오로지 하느님만이 이스라엘을 보호해 주신다는 강한 믿음을 안고 그녀는 홀로페르네스를 만나 이스라엘이 범죄할 때에만 공격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기도로써 그때를 알려주겠다고 한다.
유딧은 날마다 산골짜기로 올라가 하느님의 백성이 다시 일어서게 해달라고 주 하느님께 기도를 올린다.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홀로페르네스는 유딧을 유혹할 기회만 엿보다가 어느날 연회를 베풀어 유딧을 초대하고 술에 취해 곤드레 만드레가 되어 골아 떨어진다.
유딧은 그때를 틈타 그의 목을 베고는 하녀를 시켜 곡식자루 속에 넣게 한다음 베툴리아 진지로 돌아온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신다(유딧14,1-16,25)
유대군은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망대 위에 걸어 놓고 아시리아 진영을 공격한다.
총사령관을 잃은 아시리아 군들은 패전할 수밖에없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승리의 기쁨 속에서 모두 유딧을 찬양하였고 유딧은 그들 앞에서 하느님께 감사의 노래를 드린다.
유딧은 정절을 지키며 백오세까지 살다가 남편 므나쎄의 무덤에 합장되었다.
유딧이 죽은 후에도 오랫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은 평화롭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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