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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은의 루트' 한 조각
'은의 루트'를 향해 갈리시아를 떠나던 어젯밤엔 운이 좋았다.
메리다(Merida)행 버스를 타려고 인야가 비고(Vigo) 터미널에 갔을 때, 이미 표는 매진된 상태였다. 일요일 저녁이라 다음 날 학교에 가야 할 고향에 왔다가 돌아가는 학생들이 많았던 것이다.
까미노를 다 끝내고 비고에서 한 시간 거리인 빌라 노바 데 아로우사의 친구 마놀로 처갓집에서 며칠을 쉬다가 떠나온 인야는 참으로 난감했다.
그렇다고 마놀로 처갓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마드리드로 나갔다가 다시 남쪽으로 빙 돌아서 내려가는 번거로운 방법도 있긴 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나라의 여섯 배나 되는 나라를 가로질러 가야 하는 먼 여행이었다.
비고에서 하룻밤 호텔 신세를 지는 방법도 없지는 않았지만, 까미노를 마쳤던 인야에겐 어딘가에서 쓸데없이 정체돼 시간을 보낸다는 건 못 견딜 일이었고, 가뜩이나 쪼들리던 그에겐 호텔비도 문제였다. 그러니 밤 10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는 길밖에 없었는데, 네 시간 여를 더 기다려야만 했다.
인야가 산티아고 까미노를 다 끝내고 굳이 메리다행 버스를 타려는 것은, 까미노 초엽에 '에우나떼'에서 만났던 마리루스가 꼭 이 길 '은의 루트'를 한 번 걸어보라고 추천했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더구나 까미노 막바지에 다다르면서는, 어쩐지 자신이 자꾸만 까미노를 두 번씩이나 걷고 있다는 것이... 조금은 진부하다거나 싱겁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는 은근하면서도 충동적인 만용까지 생겼던 것인데, 그래서 까미노 막바지에 인야는 일정을 변경하면서까지 피치를 올려가며 걸었다.
순전히 이 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욕심으로, 다소 무리한 여정을 이어갔던 것이다.
원래 이 길은 세빌랴에서 출발해야 하는 게 원칙일 것이었지만, 인야가 이번에 산 가이드북의 안내가... 앞 부분이 빠진 메리다부터 시작되었기에, 거기를 출발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안내도 없이 모르는 길을 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풀코스를 다 걸을 만한 충분한 시간도 없었기에, 총 천 km의 길 중 엑스뚜레마두라 지방의 메리다에서 까스띨랴 지방의 살라망까까지 약 300km 구간을... 열흘 안팎으로 걷기로 했다.
원래 계획에 없던 충동적인 일이라 어설픈 점도 없지 않았지만, 이미 천 km의 까미노를 끝낸 자신이 이 길이라고 못할 게 없을 거라는 자신감은 충만했었으니까.
우두커니 터미널 대합실에 앉아 있는데 문득, 여섯 시 오 분에 떠난다는 메리다행 버스 출발 장소에라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빈 시간을 보내는 건 마찬가지일 테니까.
그래서 주섬주섬 배낭을 짊어지고 지팡이를 챙겨 인야는 그 곳으로 가 보았다. 그랬더니, 이미 버스 출발 시간이 가까워져 있어서... 승객들은 차에 오르고 있었다.
여기는 운전기사가 직접 표를 챙기는 시스템이어서, 우두커니 서서 그 걸 바라보다가... 인야는 그 기사에게,
“저 기사님, 사실 나는 이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오늘이 일요일이라 표가 매진됐다더군요. 메리다까지 가야만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어떤 다른 방법이거나 가능성은 없을까요?” 하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이 바로 전 뽄떼베드라 역에서 한 사람이 예약을 취소했었는데, 아마 좌석 하나가 남을 겁니다. 그걸 타면 되겠네요."
'아니, 이럴 수가!'
어떤 상황에서건 뭔가 노력은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절감하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인야는 행운을 잡아, 돈을 더 쓸 일도 없이 메리다행 버스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버스는 밤새 달렸다.
중간에 두 곳에서 쉬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빨리 도착해서(새벽 4시 넘어) 오히려 시간이 남아... 인야는 버스터미널 대합실에서 날이 새기를 기다려야만 했고, 두어 시간 동안 추위에도 떨어야 했다.
7시가 되어서야 버스 터미널에서 나왔는데, 찬바람이 센 맑은 날씨였다.
그런데 출발지점이 어딘지를 몰라 거기 다리를 건너오는 행인들에게 물어보았는데, 어째 이상하게... 여기 사는 주민들도 ‘은의 루트(La Via de la Plata)’를 잘 모르고 있었다.
'뭐, 이런 일이 있어?'
참, 이상한 일이었다. 몇 사람에게 물어봤는데, 누구는 저 쪽이라 하고 또 누구는 다른 쪽이라고 해서... 인야는 아침부터 버스터미널에서 시가지로 이어진 긴 다리를 세 번씩이나 건너며 헤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차가운 강바람이 불어오는 딱딱한 콘크리트 다리를 오가는데, 나중에는 짜증이 났다.
'이해 할 수가 없네! 어떻게 이 곳 주민들마저 은의 루트가 어디인지를 모르나?'
심지어는 택시기사도 그 걸 모르고 있었다.
나중에 얻은 결론이지만, 그만큼 이 길은 까미노보다 대중에게 덜 알려진 길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이른 아침부터 이리저리 왔다갔다 시간만 허비하다가, 결국은 다시 버스 터미널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거기 표 파는 안내소 직원이 출근한 뒤에야, 겨우 길을 찾아갈 수 있었는데......
어차피 다리를 건너야 했고, 한참의 도심을 걸은 뒤에야 인야는 노란 화살표를 발견하고는... ‘은의 루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밤 버스를 타고 오느라 발이 퉁퉁 부어 있었다.
아무래도 잠을 못잔 후유증이겠지만, 발이 피곤하니 걷는 것 역시 수월치만은 않았다.
그래도 여기 ‘은의 루트’, 엑스뚜레마두라 지방의 조금은 색다른 풍광은 생각보다는 덜 황량했다.
더구나 메리다 시내를 벗어나 완만한 경사의 구릉을 거쳐 언덕에 오르니, 눈앞에 펼쳐지는 드넓은 들판 풍광에...
"이야!"
인야는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 황량은 고사하고 오히려 부드럽고 깨끗하기까지 한 풍광에 마음이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더구나 3월도 말로 가는 지금, 들꽃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는 풍경엔 저절로 흥분까지 되어 어리벙벙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이 꽃들을 보고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떠나온 게 너무 잘한 일이야!'
어느새 피로감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 대신 만족감으로 인야는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비록 바람이 불어 조금 쌀쌀한 감이 없진 않았지만, 인야 개인적인 취향으론... 차라리 오늘 같은 고기압 상태의 맑고 시원한 바람과 깨끗한 하늘이 함께 하는 것이, 더없는 행운이기도 했다.
더구나 맑은 호수를 낀 아름다운 길로 접어들면서부터 인야는 다시 길을 걷는다는, 그러니까 생명이 붙어있는 것 같은 행복까지 느껴지는 것이었다.
'아, 어쨌거나 이런 들길에 들어서야만 뭔가 느낌이 살아난다. 길 떠나는 나그네......'
인야 자신은 무작정 길을 떠나는 나그네 같았다.
'어디까지 갈 것인가. 나는 어디까지 떠돌아다닐 것인가......'
그 당시의 기록에 인야는 이렇게 적어두었다.
생각해 보면, 물어볼 일도 없습니다만... 나는 매일 묻는 걸 반복합니다.
나는 어디로 떠나는 것인가?
아무도 대답해줄 수 없는 그 물음의 대답은 자연히 내 몫입니다만, 나는 아직까지 시원한 대답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게 분명합니다.
그저, 가는 곳은 있습니다.
어떤 곳인지는 몰라도 어디까지는 가야겠다고 마음 정해 놓은 곳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가 왜 떠나는 것인지를 매일 같이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생각해 봐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내가 왜 떠나는 것인지를.
3 . 22
첫 알베르게가 있는 알후센(Aljucen)에는 정오쯤 도착했다. 천천히 대자연과 함께하며 걷기도 하고, 걷는 기계처럼 아무 생각 없이 걷기도 했다. 날씨가 좋으니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어중간했다. 첫 마을에 너무 일찍 도착했던 것이다.
오후 내내 혼자 그 마을의 알베르게에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았던 인야는, 20km를 더 가야 하는 다음 알베르게가 있는 마을까지 가기로 마음을 바꿨다.
과일과 초콜릿만 사고 물병을 채워 다시 길을 떠났다.
알께스까르(Alcuescar)에 이르는 길은 몹시 멀고 지루했다.
도토리나무들로 듬성듬성 숲을 이룬 완만한 산등성 길이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시야라도 확 트였으면 좋겠는데, 나무들에 가린 변화 없는 산길은 그저 지루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집 몇 채가 나타나자 인야는 생각도 없이 바로 마을로 들어와 버렸다. 오늘의 목적지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마을에 들어와도 화살표는 보이지 않았고, 찾아간 성당 비슷한 곳은 알베르게가 아니었다.
때마침 골목에서 나온 한 주민이 오던 길로 되돌아가서 아스팔트를 타고 4km 이상을 더 가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앞이 캄캄했다.
'다리도 아프고 몸도 지쳐있었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길에서 마주쳤던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갈 것을...... 그랬다면 지금쯤은 알베르게에서 편하게 쉬고 있을 텐데.'
그래도 어쩌랴.
이를 악물고 딱딱한 아스팔트길을 따라 걸었다.
겨우 도착한 알베르게는 수도원이었다.
가이드북에 저녁을 제공하는 곳이라고 나와 있었는데, 접수하는 곳에 있던 젊은 수도자의 어투는 친절했지만, 인야 혼자 텅 빈 숙소에 짐을 풀고 나니 어쩐지 정이 붙지가 않았다.
저녁 식사 시간은 9시라고 했다.
배는 고팠지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방에서 글 나부랭이만 끼적이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 몇 번을 졸았는지 모른다.
그저께도 네 시간, 어젯밤은 버스를 타고 오느라 자는 둥 마는 둥하다가, 오늘 40km 정도를 걸었으니 너무 피곤했던 것이다.
9시가 되어 아래층에 내려가니 이 성당의 사제들과 수도자, 관리자들이 모두 저녁을 먹으러 모여 들었다.
족히 25명은 되어 보였다.
인야는 배정된 자리에 앉아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한국에서 온 순례자'라는 소개와 함께 목례로 인사를 했는데, 검은 옷을 입은 그들 틈에 섞여 있는 게 영 불편하기만 했다.
가능하면 음식에만 시선을 모은 채 먹는 일에만 열중했는데, 점점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만 들었다.
공짜로 저녁을 얻어먹었다는 사실도 자꾸만 찜찜해졌다.
차라리 딱딱한 빵조각으로 보까딜료를 만들어 먹었던 게 훨씬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굴뚝 같았다.
'맘 편한 게 제일이다. 이런 식으로 떠돌아다니는 나에게는......'
오렌지 하나를 후식으로 집어 먹고는 접시에 스픈과 나이프를 가지런히 올려놓고, 고개를 숙여 예의를 표한 뒤... 인야는 서둘러 그곳을 나와 버렸다.
그날 밤은 그래도 잠은 잘 잤다.
이튿날 새벽, 인야는 일찍 일어나 조용히 짐을 챙겼다. 새벽에 일어나 잠깐 글을 썼는데도 시간이 남아, 다시 한 시간쯤 자다가 일어났다.
천천히 용변을 보고, 간단하게 엠빠나다로 아침까지 먹었다.
갈리시아 음식으로 구운 만두 같은 것으로, 며칠 전, 마놀로 집을 떠나올 때 까르멘이 손수 싸준 것이었다.
그 손길이 새삼 고마웠다.
수도원 사람들도 일어나긴 했을 텐데, 아직 아무도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어서... 조용하기는 처음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였다. 인야 역시 조용히 수도원을 나서기로 했다.
혹시 기부금 넣는 통이라도 있으면 성의로 단 돈 얼마라도 넣으려고 입구에서 찾아보았는데,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고맙다는 말도 없이 도망쳐 나오는 것 같아... 자꾸만 찜찜한 기분이긴 했다.
허지만 어쩌랴. 아직 수도원의 아침 식사 시간 전이라, 수도원 사람들과 마주칠 일도 없었다.
그렇게 길을 걸으며, 인야는 까세레스(Caceres)의 한 인터넷 카페에 들렀다.
메일이 몇 개가 와 있었는데, A한테서 온 것이 마음에 걸렸다.
서울에 있는 아파트는 이미 사람이 나가 비어있고(A가 열쇠를 받아놓았다고 했다.), 임대 계약 기간이 만료되어 재계약을 해야 했는데, 힘들게 연락이 닿은 누님이 그 일을 대신 처리했다는 것이었다.
'하필이면 내가 없을 때 그런 일이 생기다니.'
기분이 묘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몽상?에서 서울 아파트로 이사를 해야 한다는 사실도 인야를 초조하게 했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인야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 우비를 챙겨 뒤집어쓰고 나왔다. 중심가로 올라가 사진 몇 컷을 찍는 것으로 까세레스를 본 것으로 하고, 길을 물어 다시 길을 떠났다.
며칠 뒤, 인야가 까르까보소(Carcaboso)에 도착한 것은 늦은 아침이었다.
숙소를 알아보니, 마을 축구장의 선수대기실이 그날의 잠자리였다. 화장실 샤워실에 조그만 나무 탁자 하나가 있을 뿐인 곳이었지만, 긴 나무 의자에 깔판을 깔고 슬리핑백을 펴면 충분했다.
저녁 무렵, 핸드볼 경기를 마친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왔다.
처음엔 인야가 있는 줄 모르고 문을 열었다가 미안한 듯 닫고 가던 그들이, 차츰 알은체를 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노크를 하더니 접시 하나를 내밀었다. 초리소였다.
"이거 우리가 먹는 건데, 같이 드실래요?"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는 맥주도 권했는데, 인야가 마시지 않는다고 하자 잠시 후 다시 노크를 했다.
이번엔 환타리몬 캔 하나였다.
"이건 드시겠죠?"
웃으며 그렇다고 하자, 그는 더는 귀찮게 하지 않겠다며 편히 쉬라고 인사하고 나갔다.
그런데, 얼마 뒤에 다시 노크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덩치가 큰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 춥지는 않느냐고 묻기에, 나는 슬리핑 백이 있어 그런대로 괜찮다고 했는데...
그는 벽을 살펴보더니,
"어? 여기도 전기코드가 있네!" 하면서, 조금 기다리라고 하며 나갔다.
그러더니 금방 조그만 전기 스토브를 가져왔다. 전기 코드에 꼽더니,
"작동되는군!" 했다.
고마웠다.
그래서 내가 고맙다고 인사를 했더니,
30분 쯤 뒤에 자기들이 다 끝내고 가면, 열쇠로 안에서 문을 잠그고... 편히 쉬었다 잘가라며 그들은 갔다.
얼굴 자체가 매우 선량한 사람이었다.
사실, 스토브가 없어도 잠을 잘 수는 있었다.
낮잠을 자 보았더니 별 문제가 없었으니까. 설사 춥다고 해도. 옷 하나 정도 더 껴 입어도 될 터였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 씀씀이가 나를 더 포근하게 했다.
난로는 금방 선 두 개가 달아오르면서, 열기가 제법 느껴졌다.
'이렇게, 오늘도 따뜻하게 잘 것 같네! 그 사람이 갖다 준 환타 리몬도 마셔야 겠다.'
경기가 끝났는지 난로를 가져왔던 사람이 '이제 문을 잠근다'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바깥에서 문을 잠그면서 편히 쉬라며 돌아갔다.
그렇게 갑자기 조용해지니, 오히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내 성당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열 번.
열 시였다.
전기 스토브의 붉은 두줄이 있으니, 나는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내일, 이 여정의 마지막 장거리를 걸어야 한다.
40 km 정도.
그저께 같은, 예기치 않게 숲에서 자는 일이 반복되지는 않겠지만... 서둘러 나가야겠다.
3 . 27
다음 날, 까빠라(Caparra)의 로마시대 유적 아래서 비를 피하며 보까딜료를 만들어 먹던 인야에게, 한 순례자가 다가왔다. 갈리시아 출신(Gallego. 가예고)으로, 세빌랴에서부터 걷기 시작해 산티아고까지 간다고 했다. 알베르게마다 남겨둔 한글 메시지를 보며 누군가 했다는 것이었다.
이 '은의 루트'에서 처음 만난 순례자였다. 인야는 너무 반가워서 그와 동행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의 눈치가, 어째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 역시 떠들썩하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싫어하지만, 그래도 정에는 약한데... 더구나 이런 길에서 처음으로 만난 동료인데, 그렇게 헤어져야만 하다니......'
여간 아쉽지 않았지만, 그는, 인야와는 또 다른 사람이었다. 더구나 그가 갈리시아 사람이었기에, 인야의 아쉬움은 더욱 컸다. 동행이 되었다면, 자신과 갈리시아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얘기할 게 너무도 많았는데......
괜스레 머쓱해진 채, 먼저 떠나는 그를 아쉬운 듯 보내고 말았다.
깔사다 데 베하(Calzada de Beja)에서는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마을에 도착하니, 마침 중심 광장에서 마주친 여자가 민박집을 알려주었으나... 인야는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거기 마을 회관에 잠 자리가 있다는 가이드북의 안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장이 열어준 곳은 생각했던 것 보다는 훨씬 깨끗하고 괜찮았다. 굳이 민박이나 호스텔에 갈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약간 두툼한 합판이 있어서 그걸 깔고 그 위에 깔판을 깔고 그 위에 슬리핑 백을 펴면, 잘 수 있었으니까.
샤워도 필요 없었다. 이미 그 상황을 예측하고 그날 아침에 하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착각한 게 있었다. 그 마을엔 가게가 없었다. 언뜻 심볼기호로 표시된 가이드 북에는 가게가 있는 것 같았는데......
그런데다가 바뇨델 몬떼 마요르를 지나오면서는 그 사실에 의심도 없이 먹을 걸 준비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하는 수 없이 바에 가서 음식을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오후 네시(여기는 이미 섬머 타임 적용)에 가서 모처럼 사 먹는 음식을 먹었다.
첫 접시엔 콩요리 스프가 나왔는데, 맛은 괜찮았는데 조금 짰다. 그것만으로도 배가 차 오는 느낌이었다.
두 번째 접시엔 달걀 후라이 하나에 비스텍 한 쪽이 약간의 야채 튀김과 함께 나왔다.
가능하면 다 먹어야 했는데 인야는 조금 남기고 말았다. 게다가 비노를 주기에 마셨더니 조금 술기운이 오르기도 했다. 후식으로 오렌지와 배를 고르라기에 배를 달래서 먹지 않고 가지고 나왔다. 7 유로였다.
숙소에 돌아오자 마자 양말 세 켤레를 빨아 전기 라지에이터에 널었다. 성능은 좋지 않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리고 일기를 쓰다가 졸았다......
누군가 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깨었더니 문을 열라고 하는 소리였다. 문을 열었더니, 한 여자 순례자였다.
의외였다.
어제 가예고가 얘기했던 길을 걷는 독일여자인가 보았다.
나는 그녀에게 여기는 침대도 없고 지금은 나 혼자 있다고 얘길해 주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망설임 없이, 웃는 낯으로 안으로 들어왔다. 묵고 가겠다는 것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방에 동양 남자 혼자 묵고 있는데......
아무튼, 나는 그녀를 위해 합판 한 장을 내 주고 책상도 반절은 비워 주었다.
모르는 외국여자와 같은 방에서 잔다는 일.
여기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녀도 아무 생각 없이 그런 방에 들어올리는 없을 터였다.
물론 여태까지도 그렇게 지내왔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뭔가 마음이 불편하긴 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인가?
다시 한 여자 순례자가 들어왔다.
알고보니 그녀가 바로 독일 여자였다.
그렇다면 아까 왔던 여자는?
나중에 얘길 해보니, 그녀는 영국여자였다.
독일 여자는, 여기에 들어오기 전에 마을 광장의 한 집에 민박 같은 방이 있는데... 15 유로를 한다며, 그 방이 훌륭하니, 거기 가서 부담을 나누어 사용하며 오늘 밤을 지내는 게 어떠냐는 제의를 했다.
나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이미 내가 잘 잠 자리까지 준비해 놓은 상태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 영국여자 역시 자기도 그러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독일 여자는 상황을 파악하고는(자기가 잘 공간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알았다며 나갔다.
혼자 자리라고 여겼는데, 이런 상황이 발생하다니......
나는 점심에 마셨던 술이 다 깨는 기분이었다.
3 . 29
그 다음 날, 비 내리는 길 위에서 인야는 영국여인 E와 동행이 되었다.
알고 보니 그녀도 인야와 거의 같은 거리를 걸은 셈이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을 끝냈고, 이 '은의 루트'를 걷다가 살라망까(Salamanca)에 가면 끝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이 길에서 만난 것이었다.
다른 사람과 하루 일정 전부를 동행한 일이 거의 없었는데, 인야는 그녀와는 그렇게 했다.
비가 내려 불어난 개울을 몇 개나 건너야 했는데, 인야가 부축해 주지 않았다면... 그녀에게는 더 힘든 길이었을 것이다.
그 다음 알베르게에서 둘은 다시 독일 여자와 만났다.
셋이 비노를 곁들여 저녁을 먹으며, 그날 길을 걸으며 있었던 이야기를 떠들썩하게 나누었다.
다음 날도 비가 내렸다.
그날부터는 셋이 함께 걸었다.
살라망까가 멀리 보이기 시작한 구릉에서의 풍경은 좋았다.
몸은 피곤했지만, 그날로 이 걷는 일도 끝이라는 생각에 마음은 가벼웠다.
그러나 살라망까는 보기보다 훨씬 멀었다. 마치 마지막으로 장애물이거나 속임수를 설치해 놓은 것 같다는 불평이 솟구칠 정도로.
독일 여자의 불평이 특히 심했고, 모두 지쳐서 별 대화도 나누지 않은 채 걸었다.
힘겹게 살라망까에 도착한 뒤, 셋은 대성당을 지나다 점심을 먹었다.
인야는 바로 마드리드행 버스에 오르고 싶었지만, 두 여자가 그냥 헤어질 수 없다며 점심이라도 같이 먹고 가자기에... 한 중국집에서 싸고 깨끗한 음식을 먹으며 모두가 대만족했다.
물론 이별의 비노도 한 잔씩 했다.
약간 술기운이 오른 채로 인야가 그들과 헤어져 버스정류장으로 걷고 있는데, 신시아 할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에 산티아고 가는 길을 같이 걸었던 마드릳 사람들끼리 만나기로 했다며, 인야가 올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해두었으니... 마드릳에 들르라는 것이었다.
약속대로 '후안 마(J Ma)'는 버스터미널에 나와있었다. 한 달 보름 만에 다시 보는 것이었다.
그는 피로에 지치고 거지꼴이 된 인야를 껴안았다.
그랬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만났던 사람을 다른 곳에서 다시 만나면, 그런 반가움이 생기는 것이다.
같이 고생했기 때문일 것이다. 편하고 쉬운 여행을 했다면 그런 정이 안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힘든 길을 걷고 걸어, 먹는 것 자는 것도 부실한 상황을 이겨내면서 걷다 보면... 그런 끈적끈적한 정이 붙는 것이다.
J Ma 부부는 인야를 위해 특별히 음식을 준비해두고 있었다.
인야가 비노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라 리오하' 한 병도 준비했다는 것이었다.
인야는 파일에 남아있던 판화 한 장을 그들에게 선물했다.
그들은 너무 좋아하며 바로 액자를 하겠노라고 했고, 인야는 J Ma 집에서 하룻밤을 편히 잤다.
다음 날, 그가 인야를 신시아 할머니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런데 그는 인야가 건물에 들어갈 때까지 건너편 차선 자신의 차 안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혹시 일이 잘못되어 인야가 다시 밖으로 나올 경우에 대비해 5분 정도 더 기다릴 거라고 했었다. 그렇게 된다면 다시 자기 집으로 데려가겠다는 것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그런 면(속정)이 있었다.
신시아 할머니도 너무 반가워하며 인야를 맞아주었다. 방 하나를 비워 정리해 놓은 상태였다.
그날 밤, 인야는 할머니와 함께 산티아고 즈음에서 같이 걸었던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 갔다.
호세는 물론, 다른 일행을 포함해 여덟 명의 옛 길동무들이 모였다.
마치 어제도 보았던 사람들처럼 친근하게 느껴지며, 얘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실 인야의 입장에서는, 걸을 때는... 신시아 할머니와 호세 말고는 그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산티아고가 얼마 남지 않았던 그 시절, 날마다 늘어나는 사람들 때문에 오히려 그들을 피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보름 여 만에 이렇게 다시 모이니, 그때의 무관심이 미안하기까지 했다.
언제 어디서건, 그리고 그 누구라 할지라도 사람들 하나하나는 다 저마다 소중하다는 것을, 인야는 새삼 깨닫고 있었다.
맛있는 비노에 음식을 떠들썩하게 즐겼다.
여행 끝에 이렇게 마음 훈훈하게 그들과 다시 만날 줄은 몰랐다. 인야는 마치 먼 외국에서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생긴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다음 날, 인야는 바르셀로나행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알고 보니, 신시아 할머니는 2년 전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친언니마저(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 살았다고 함) 잃고, 이제는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의 피붙이조차 없이 홀로 살아가는 일흔여섯 살의 노파였다.
떠나오던 날, 굳이 길까지 따라나오던 신시아 할머니는 점심값이라도 하라며 지폐 몇 장을 건넸다.
깜짝 놀라며 사양했지만, 아일랜드 할머니는 그 돈을 인야의 손에 꼭 쥐어주기까지 했다.
마치 한국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