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떠난다
노동숙
누군가가 세월을 잊고 사는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언제 40여년을 보내고 이제 교단을 떠나야 한다는 시점에 다 닫고 보니 행복하였다고 하기 보다는 가슴 어딘가에 뻥 뚫린 느낌을 갖으며, 노자 44장에 '명예와 자기 몸 중에 무엇이 친하며, 자기 몸과 재물 중에 무엇이 더 귀한가? 탐욕을 버리는 것과 탐욕을 채우는 것 중에 무엇이 더 큰 병이 되는가’에 비추어 인생 여정을 더듬어 본다.
무슨 연유에서 인지 ‘사람이 사람답게 살자’로 정했고, 그 줄기로 꼭 ‘박사가 되자’, 그리고 ‘남을 돕자’, ‘좋은 인간관계를 맺자’로 어염프시나마 정했던 것 같다.
이와 같은 생각은 농부인 선친께서 간간이 들려주신 말씀과 사람 냄새 물씬 묻어나왔던 농촌 생활환경이 가르침 이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니까 전주에서 열렸던 농민교육에 선친께서 참여했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책장 넘기는 소리가 그렇게 가슴 저리더구나!” 하시며 “세상사는 다 때가 있는 법이다. 공부할 때 성심․성의 것 배워야 한다.”는 말씀 끝에 “나는 학교 문턱에 가지 않았지만, 한글은 물론 천자문, 사자소학, 명심보감 등을 익혔다.”고 하셨다.
지금도 귀에 선하지만, 낭랑한 목소리로 춘양전과 심청전 등을 동네 분들에게 읽어 주셨고, 악보를 보고 시조를 읊거나 비료포장지로 노트를 만들어서 몽당연필로 시를 지어 놓은 것을 보아온 나였기에 배움은 나에게 즐거움 그 자체였다고 생각된다.
그래서인지 학교에 다니면서 부모님으로부터 공부하라는 말씀은 한 번도 듣지 않았었다. 오히려 학교 가지 말고 오늘은 집안 일 도와야 한다는 말에 아침도 먹지 않고 일찍 학교로 피신했던 적도 생각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교육의 기본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생각을 한다. 비록 제도권 교육을 받지 못한 부모님이었어도 밥상머리에서 기본예절 교육을 받았었고, 사회생활의 기본도 배웠다. 이제 그런 일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져 보면서 비록 석사학위까지만 왔지만 앞으로도 독서와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연수를 통해 박사학위까지 획득해야 하지 않겠는가.
남을 돕는 것은 결국 자신을 살찌우는 것임을 제법 나이가 들어서 터득했다. 여기서 ‘남’이란 ‘나’가 아닌 ‘모든 사람’임을 뜻하며 ‘돕다’는 나와 남까지를 포함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남이 필요로 한 일을 도움으로써 자기 자신도 돕게 된다는 것임을 체험하였다는 말이다.
그 시절 누구나 가난했음은 다 안다. 그래도 우리 집은 부모님의 덕으로 보리가 조금 섞인
쌀밥을 먹을 수 있었으며, 보따리 장사들이나 바다 고기를 팔려 다녔던 사람들이 제일 나중에 우리 집에 와 숙식을 제공 받거나 남은 고기 다 주고서 밥을 먹고 쌀 몇 되박 받아갔던 일이나 보릿고개 때이면 양식을 빌려간 이들을 보아왔었다. 어렸었지만 왠지 가슴이 따뜻함을 느꼈었기에 남을 돕고 살고 싶었다.
지금 뒤돌아보니 돕기보다는 더 많은 도움을 받아왔고, 오히려 알게 모르게 피해를 입힌 적도 많이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애당초 돈을 벌어 남을 돕는다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바로 사업이 아니고 교직이기 때문이다. 태평양에 물 한 방울 정도의 도움도 도움이겠는가만 항상 물질적으로도 도와야 겠다는 생각은 언제나 가지고 있었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본질적인 차이는 돈이 있고 없음이 아니고, 많은 돈이 있어도 가난한 자의 줄에 서 있는 사람은 계속해서 가난한 사람으로 남고, 반대로 돈은 부족하나 부자의 줄에 서 있는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부자가 된다고 하니까 이제 부자의 줄에 서서 돕기가 실천해야 할 몫이다.
세상사가 다 사람에 의해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좋은 인간관계가 사람살기 좋은 세상을 줄곧 만들어 왔고, 또 만들어 가게 될 것이다.
나를 중심으로 부부간, 부모자식간, 형제간의 삼친이 제일 중요한 인간관계며 이 관계가 잘 이루어지면 다른 모든 이와도 항상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아왔다.
부부간은 인생 최후의 동반자이면서 무촌 간인데, 돌아서면 남이 되는 관계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서로를 잘 알고 싶어서 그냥 사랑한다고 해놓고 막상 한 이불속에서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내면서 영역 다툼이 시작되었고, 자녀의 끈으로 이어지다가 서로 알만치 알게 되어 이해의 폭이 커지면서 서로가 편안함을 취하게 된다. 언젠가는 내가 먼저 떠나게 되겠지만 서로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건강을 유지하고, 나아가 홀로서기 연습도 필요함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부모자식간의 관계는 품안에 자식이라는 어른들의 말씀에 통감해 진다. 내가 그러했듯이 그들 또한 마땅히 그러리라고는 생각하지만 왠지 마음 놓기에는 서운함이 앞선다. 혹자는 지금의 우리 세대를 부모님께 효도한 마지막 세대이고, 자식에게 버림받는 첫 세대라고도 한다. 받은 은혜는 잊지 말고(受恩不忘), 베푼 은혜는 마음에 두지 않는 것(施恩不念)이 정신적으로 건강을 유지하는데 좋을 성 싶다. 따지고 보면 자식들에게 받을 효도는 키울 때 이미 다 받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형제간의 관계는 부모님 때문으로도 일년에 몇 차례는 의례 것 만나는데 어쩐지 서먹했다는 생각이 들고 별 대화도 없이 각자 바쁘다는 핑계로 헤어졌었다. 철이 든 후 우리 형제는 “아우, 너 왜 그러느냐?”고 “형, 왜 그렇게 살아요?” 등 조금이라도 서로에게 신경 쓰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걸 자랑처럼 말하곤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아닌 것 같다. 너무 무심한 소치였다. 부모님이 세상을 뜬 후에는 가슴에 형제간의 정이 더더욱 그립고 할 얘기가 없어도 그냥 만나고 싶다. 그런데도 실상은 그렇지 못하니 왜 그럴까? 먼저 보낸 아우 생각이 때마다 절로 절로 나서 ‘있을 때 잘 해라’는 말이 가슴을 쓸어내린다.
친구간의 관계도 나이가 들수록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진정한 스승 한 분, 형처럼 돌봐 줄 선배 두 사람, 그리고 마음이 통하는 벗 셋 ‘일사이형삼붕(一師二兄三朋)’만 있으면 행복한 삶이라는 뜻을 가진 중국 속담이 있다. 새 친구를 사귀는 것도 좋지만 깨복장이 친구 잃지 않는 것이 더 소중함으로 자리 잡는다. 그저 대화가 없어도, 눈빛으로 정겨움이 피어오른다. 함께 모두를 동감하고, 이해관계 없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영혼이 맑은 친구이기 때문이다.
친할수록 더욱 예절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다. 그래서 나는 친구라고 생각되면 말을 놓지 않는다. 이는 아홉 번 잘하다가도 한 번 잘못하면 정을 끊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는 배려로 사람의 냄새가 피어나는 정을 함께 하는 벗이 진정한 벗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남은 삶이 늘 배우려고 노력하고, 주어진 몫에 대하여 불평불만을 하지 않고, 노욕을 스스로 자제하며, 처한 현실에 대하여 감사드리고, 적시 적소에 돈도 쓰며, 기왕이면 늘 웃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놀 때는 세상 모든 것을 잊고 놀고, 일 할 때는 오로지 일에만 전념하며, 나 자신을 알고 겸손하게 처신하고 그래서 살아 있을 때보다 죽었을 때 기억되는 삶을 지금부터라도 실행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