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창세기 6:9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창세기 6:9 KRV)
오늘의 현실에서 과연 하나님과 동행한 삶을 산다면 이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지금은 오히려 대홍수의 사건보다 더욱 악이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고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상이라고 모든 사람들이 말하곤 합니다.
지금 이 세대는 악이 세상을 주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현실이 어려울 수록 눈앞에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더 좋은 직장과 비지니스
더 좋은 집과 윤택한 생활,
그곳에는 하나님이 함께 계실 자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놓치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신앙 생활이란 무엇입니까?
믿음의 영적인 눈을 뜨고 새로운 하나님의 세계를 통한
삶의 관점이 달라지는 것을 신앙생활이라 합니다.
닭과 독수리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닭은 온순합니다. 우리는 닭과 독수리의 예화를 잘 알고 있습니다.
독수리의 알을 닭이 품게 되면서 다른 닭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동안
하늘의 맹금류인 독수리가 닭의 삶을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삶이 그렇치 않은가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기록된 말씀 속의 주인공인 노아의 일생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잣나무로 방주를 짓기 시작하면서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미친 사람으로 보여지지는 않았는지,
일가 친척들에게 권면의 말들을 전할 때 그 친척들이 풋대접했던 일들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묵히 순종으로 준비하는 것을 봅니다.
6:22절의 말씀의 후미에 보면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라고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순종의 삶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을 다 준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언약이며 동행하는 삶의 비밍입니다.
눈 앞에 있는 현실에 만족하지 말고 이제 그 눈을 멀리 보며 혜안을 하나님의 시야로 넓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보면 니고데모의 현실과 질문에 대하여 당황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영의 눈이 열리지 않은 사람의 사고를 니고데모를 통해 보여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녀도 영의 눈이 열리지 않으면 자신을 올 바르게 알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영의 눈이 열리는 사람입니다.
목사님의 설교중에서 인용한 예화를 소개합니다.
외국의 교회에서 질문하는 한 사례를 보면
외국인은 이렇게 질문한다고 합니다.
당신은 예수를 믿습니까?
그렇다면 거듭났습니까? 라고 질문하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다릅니다.
어느 교회를 다니며 어느 교단이며 이런 것에 관심이 있을 뿐 구별되고 거듭남에 대한 관심은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세상을 뒤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끌어 가는 크리스천이 되어야 한다. 성령의 거듭남은 영원한 세계가 열리는 안목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영의 눈이 열리지 않아 육의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엄청난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노아의 방주를 생각하면서 그의 현실적인 일상을 넘어 하나님의 명령에 육으로 본 것이 아니라 영의 눈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결과는 노아는 우리 인간에게 새로운 시작을 제공해 주신 것입니다.
영의 눈으로 바라본 노아의 믿음과 순종을 통하여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누렸던 성경속의 거장입니다.
영의 안목이 열리면 세상이 달라진다.
노아의 믿음은 우리의 일상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우리도 이 악한 세대에 노아의 믿음을 본 받아 하나님과 동행하느 삶을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포항 성결교회 유승대 목사님 말씀을 들으며...
첫댓글 나는 가치를 어디에 두는가?
그가치가 나의 세계관이며 나의 정체성 입니다.
주님의 관심이 나의 관심이길 오늘도 구하지 않으면 무너지는 나의 존재를 오늘도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