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개요
ㅇ 언 제 : 2023. 2. 22(수) / 701차
ㅇ 누 가 : ‘계룡’수요산악회원 24명 / 40,000원
ㅇ 어 디 : 용봉산(충남 홍성군 홍북읍 소재)
ㅇ 날 씨 : 맑음
ㅇ 여 정 : 자연휴양림주차장 - 용봉사 – 뫼넘이고개 – 용바위 – 병풍바위 – 산내음식당
(4km, 3시간)
산행앨범
신춘산행
입춘(立春)과 우수(雨水)가 지났건만, 여전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네요.
오늘은 ‘계룡’수요산악회 회원들에겐 꽤 의미 있는 날입니다.
산악회에서 산행 중 좋은 일만 생기길 기원(祈願)하는 산제(山祭)를 지내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닥칠 불행에 대비하려는 산악인들의 의식인데요, 어쩜 소망을 저축해뒀다가 위기 시 조끔씩 인출할 요량인지도 모릅니다.
유난히 추워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겨울이었건만, 아랫녘서부터 봄소식이 들립니다.
개인적으로 한 달을 넘겨 만나는 산우들이기에 반갑게 봄맞이 인사를 나눕니다.
산제가 있는 날이라 모두들 정갈하게 치장해서인지 버스속이 봄 향기로 가득합니다. ㅎ
생일을 맞은 산우도 있군요.
무심하게 흐르는 세월인 것 같지만, 다 계획이 있습니다.
시간이 하는 일들이 언제나 그렇듯 말입니다.
용봉산행
용봉초교 앞이 들머리입니다.
백 코스(Back course)를 택한 굼벵이(^^) 3명이 선행 팀을 배웅합니다.
자연휴양림 쪽에서 시작하여 백제고찰인 용봉사와 마애석불을 친견하고는 병풍바위를 거쳐 하산할 요량입니다.
몇 번 올랐지만 병풍바위 쪽은 처음이기에 설렙니다.
홍성의 진산인 용봉산은 가야산, 덕숭산과 함께 덕산도립공원 창립멤버입니다.
홍성읍내에서 십 여리 떨어져 북방을 막아주는데요, 어디로 오르나 볼거리가 많아 지루하지 않습니다.
높이가 400m도 안되지만 산 전체가 기묘한 바위들로 이루어져 충남의 금강산이라 불릴 만큼 아름답습니다.
용의 몸집에 봉황의 머리를 얹은 형상을 닮아 지어진 이름이니 오죽하겠어요.
구룡대 매표소를 통과하여 사부작사부작 자연발생적인 소나무 군락을 지납니다.
우습게 봤다가 큰 코 다친다는 ‘언저리’산행이 시작됩니다. ㅎ
누군가 인생은 숲을 통과하는 여정과 같다고 했습니다.
울창한 계절이 있는가하면, 이렇게 앙상한 계절도 있습니다.
오랜만에 접하는 산 내음이 콧구멍을 휭~ 뚫으며 스칩니다.
용봉사(마애불)
일주문을 거쳐 입구의 마애불(磨崖佛)과 인사 나누고, ‘용봉사(龍鳳寺)’와 대면합니다.
백제말기에 창건된 사찰로 추정된다는데, 조선후기까진 수덕사 못지않은 대찰이었다는군요.
숙종 16년(1690년)에 조성했다는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보물 1262호)가 유명합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병풍바위도 일품입니다.
절위엔 조선중기 세도가였던 평양 조씨 묘가 있는데, 명당에 자리한 절을 헐어낸 후 그 자리에 무덤을 썼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인근에 대원군이 ‘가야사’를 폐사한 후 부친(남연)의 묘를 이장한 거와 닮았습니다.
참 기가 막히는데요, 그저 웃습니다.
산기슭 바위에 새겨진 고려시대의 ‘마애석불(磨崖石佛, 보물 355호)’도 친견합니다.
돌출된 바위 면을 파서 불상이 들어앉을 감실(龕室)을 만들고, 그 안에 돋을새김으로 4m 높이의 거대한 불상을 새겼습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조각한 게 아니고, 바위를 파헤쳐 부처님을 찾아낸 것일지도 모릅니다.
바위가 앞으로 숙여져 있어 비나 눈으로부터 부처님을 보호할 수 있게 만든 지혜도 돋보입니다.
얼굴은 몸에 비해 크고 풍만하며, 잔잔한 미소가 흘러 온화한 인상을 풍깁니다.
뫼 넘이 고개
절 고개(?) 능선입니다.
한 박자 쉬면서 산행 초보시절을 생각합니다.
능선만 오르면 정상일줄 알았는데, 또다시 능선이 나타나 투정대기 일쑤였습니다.
살면서 위기를 마주할 때도 그랬는데요, 그때마다 산이 일깨워 주곤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산과의 인연이 어언 20여년을 향하는데요, 아직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용봉산정이 유혹하지만, 반대방향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이번엔 ‘용’바위와 ‘병풍’바위를 제대로 섭렵해볼 참입니다.
다시 발걸음을 뗍니다.
분재를 연상케 하는 소나무들과 주위를 감싸고 있는 절묘한 기암들이 힘을 보탭니다.
자연의 신비에 새삼 감탄합니다.
용 바위
‘내포문화’숲길로 명명된 능선을 따릅니다.
쭉 가다보면 예산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바위봉우리의 장점은 역시 조망인데요, 예당평야가 시원하게 펼쳐집니다.
와~ 선경(仙境)입니다.
조선의 실학자로 택리지(擇里志)를 지은 ‘이중환’은 가야산 앞뒤로 펼쳐진 10현을 ‘내포(內浦)’라 칭했습니다.
예로부터 사대부들이 대를 잇는 충절의 고장으로 알려진 곳인데요, 생선과 소금까지 넉넉한 기름지고 평평한 땅이었습니다.
지세가 막히는 길목도 아닌지라 임진과 병자년 두 차례의 난리에도 적군이 들어오질 못했다죠.
넓고 아늑한 이곳에 충남도청이 이전한지도 10년이 흘렀습니다.
새로운 내포시대를 열겠다며 인구 10만의 충남의 행정중심 내포신도시를 꿈꾸지만, 아직도 미완이라는군요.
예서 보따릴 풉니다.
초라하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오찬상입니다. ㅎ
병풍바위
용봉산은 멋스러운 바위와 소나무들의 어울림으로도 유명합니다.
풍광과 솔향기에 취해 야릇한 쾌감까지 느껴진다는 이른바 등산오르가즘을 체험할 수 있는 산길입니다.
먹이 찾는 멧돼지처럼 코를 벌렁대며 달디 단 소나무향기를 마시며 걷다가 ‘병풍’바위에 안깁니다.
충남의 금강산이란 수식어가 뻥이 아님을 확인시켜주는데요, 마치 한국화를 보듯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풍경에 절로 감탄사 연발입니다.
곳곳마다 바위 봉우리들이 파노라마를 연출하니 눈이 호강할 수밖에요.
세워진 문패와 바위들의 생김새를 맞춰보느라 자꾸 느려집니다.
이상야릇한 형태의 여러 기암들을 만나는 길이라서 마냥 즐겁습니다.
‘의자’바위에 엉덩이도 붙여봅니다.
자연발생적인 소나무 군락과 바위들의 향연이 연이어 펼쳐집니다.
아슬아슬, 아기자기... 참 좋습니다.
기묘하게 생긴 바위들이 눈길을 붙잡고, 주변 산세가 걸음을 더디게 합니다.
하산
구룡대로 하산합니다.
용봉산이 자리 잡은 홍성일대엔 9백 의총을 비롯하여 ‘최영’장군, 사육신 ‘성삼문’, 만해선사 ‘한용운’, 백야 ‘김좌진’장군과 ‘윤봉길’의사 등 위인들의 삶과 흔적이 배어 있는 곳입니다.
용봉산의 정기(精氣)가 충절의 고장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나무와 바위가 황금비율로 잘 어우러진 보석상자 같습니다.
바위백화점 명품코너에서 멋진 추억 싸들고는 간신히 빠져나옵니다.
[엄만 내가 왜 좋아? 그냥...
넌 왜 엄마가 좋아? 그냥...] (‘문삼석’/그냥)
어머니와 아이가 주고받는 말에 사랑이 보글보글 끓어오릅니다.
왜 좋으냐고 물으면 대답은 서로 ‘그냥’입니다.
하긴 좋은데 뭐 이유가 필요하겠어요.
좋고 그르고를 따지면 의도된 사랑이겠죠.
엄마와 자식처럼 세상사가 그냥 좋은 이야기들로만 넘쳤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도 그냥, 모든 게 그냥...
산제
베이스캠프 ‘산 내음’식당에 도착하여 산제(山祭)를 지냅니다.
산악회의 가장 거창한 행사입니다.
5년 전 이곳 용봉산에서 시산제(始山祭)를 지냈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참신(參神)에서 사신(辭神)까지 유교절차에 따라 엄숙하게 제례(祭禮)가 진행됩니다.
오늘도 하얀 봉투를 입에 가득 문 도야지가 환하게 웃습니다.
토끼해이지만, 산제 날 주인공은 역시 돼지입니다. ㅎ
내포(內包)된 힘찬 기운(氣運)들이 소지(燒紙)를 통해 내포(內浦)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이어 음복(飮福)과 덕담(德談)으로 또 한해를 열며, 서로 격려하고 다짐합니다.
너나 할 것 없이 힘들다고 아우성이지만, 저 고고(孤高)한 산정을 향해 가슴을 펼치며 다시 웅비(雄飛)할 것입니다.
첫눈, 첫 사랑, 첫 걸음, 첫 약속, 첫 여행, 첫 무대... 그리고 시산(始山) -.
순결하고 신선한 처음은 항상 설렘과 기쁨을 동반합니다.
답답함을 걷어내고, 웃음을 가득 내다 겁니다.
한풀이, 분풀이 다 내려놓고 다시 신발 끈을 조입니다.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대서사시(大敍事詩)가 온 산하로 펼쳐집니다.
산제축문(山祭祝文) 하나 올립니다.
[동정양의(動靜兩儀) 무유속절(無有續絶) / 고요한 음양이 한순간도 끊기지 아니하여
위대공능(偉大功能) 신세잉벽(新歲仍闢) / 위대한 자연공능으로 새해를 여나이다.
자고산자(自古山者) 후중위덕(厚重爲德) / 자고로 산은 두텁고 무거움을 덕으로 삼으니
다중어시(多衆於是) 심산효덕(尋山效德) / 많은 이들이 산의 덕을 본받겠나이다.
재계전성(齋戒展誠) 서품진결(庶品盡潔) / 정성 펼친 뭇 제수도 깨끗하고
유비군자(有斐君子) 준례심숙(遵禮甚肅) / 군자가 예 쫓음 또한 엄숙하오니
우순풍조(雨順風調) 강구연월(康衢煙月) / 바라옵건대 비바람 조화로 풍성하게 하옵고
비무후간(俾无後艱) 일념기축(一念祈祝) / 일체 안전사고 없기를 일념으로 비나이다] (펌)
뒤풀이
산제(山祭) 뒤풀이는 걸쭉해서 좋습니다. ㅎ
식당이 왁자지껄한데요, 즐겁습니다.
지난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칩니다.
죽는 날까지 산악회와 함께 하겠노라 다짐했었습니다.
산악인들의 거친 숨소리에 선잠 깬 지리산 삼신할망구가 심통이 나서 입산금지 푯말을 내걸 때까지, 찍어대는 스틱에 의해 깨어진 설악산 바위조각들이 남대천을 흘러 동해안 백사장이 될 때까지, 꾼들의 흘린 땀방울로 백두산 천지(天池)가 넘쳐 압록강이 범람할 때까지, 꾼들의 발길에 닳고 닳아 한라산이 벽해(碧海) 속으로 가라앉는 날까지... 그렇게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늘 메고 다니던 보따리를 세월이 차지하면서부터 무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꼭 있어야할 산우들이 보이지 않아 조금은 허전합니다.
목을 쭉~ 빼고 기다렸건만..., 아쉽습니다.
멋진 취미공동체를 만들어보자며 머리를 맞댔던 열정의 지난날들이 그립습니다.
어느덧 ‘계룡’수요산악회의 산행횟수가 700회를 넘겼습니다.
영원해야할 우리들의 모(母) 산악회입니다.
에필로그
나이 들어도 좋은 점이 있다며 떠벌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횟수가 자꾸 줄어듭니다.
근사하게 늙어가던 배우 ‘윤 정희’씨가 얼마 전 병마와 싸우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 하리오.
가끔씩 ‘로맨스그레이(Romance grey)’를 내세우며 위안을 삼으려하지만, 다 헛방입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약해지고, 작아지고, 더 느려집니다.
그래도 움직여야 한다니, 짬만 되면 쏴 댕기며 즐겁게 살아보자고 외쳐댑니다. ㅋ
이런 저런 핑계로 자꾸 뒤로 미루지 마세요.
나중에 후회합니다.
어때요, 이참에 다음 산행지인 남쪽 진도로 봄 마중 함 가보지 않을래요?
[♪~봄 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이슬 신으셨네~♬] (‘이은상’)
혹여 제 오시는 봄 처녀를 만날지 누가 압니까? ㅋ
응답 없는 산행후기를 서둘러 끝내고, 짝지 정기검진 차 서울의 병원을 찾아야합니다.
그럼에도 머리엔 또 집나갈 궁리뿐입니다. ㅎ
목욜(2. 23) 아침에 갯바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