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4-25 옥구향교를 가다.
자유인은 자전거로 목천포를 지나 어은교를 거쳐 옥구향교에 가다.
자유인은 만경강 자전거길 따라 서해안고속도로를 지나 청하면 새챙이다리-만경강뚝방길-청하대교-지경교-증석교-금광교-월하교-군산4호배수관문-수산교-군산3호배수문-어은교에서 어은리 방향으로 방향을 잡고 옥구초등학교를 거쳐 약25km를 달려 옥구향교에 도착하다.
자유인의 오늘 목표는 옥구향교 답사가 주목적이었다.
옥구향교를 찾는데 이정표가 잘 표시가 않되어 옥구파출소 근무경찰관한테 겨우 물어서 찾다.
옥구향교는 옛 상평역부근으로 폐교된 상평초등학교위에 있다.
옥구향교의 특징은 큰 느티나무가 없고 수백년된 백일홍나무(간지람나무라고도 함)가 이곳 저곳이 분포되어 있는 것을 알수 있었다.
향교 입구에는 고려 조선시대 현대에 이르는 지역유지들의 선정비가 있다.
향교 입구 좌측에는 그때 그시절 백성을 위하여 선정을 베푼 그 당시의 삿도를 비롯하여 가까히는 대통령 대행 고건 박사의 부친이신 고형곤 박사 선정비도 눈에띠고 강근호 전 국회의원의 공적비도 있다.
귀로길은 수산리 이정표 방향으로 월하교지나 만경강 자전거길 따라 집에 오다.
➡참고 : 자전거를 타고 옥구 향교 찾아가는 빠른 방법은 월하교에서 가는 방법이 제일 가까울 듯 함.(또는 수산교에서 가는 방법도 있음)
☛자유인의 행복
자유인은 복잡한 속세의 삶을 잊고 오늘하루 자전거하이킹에 몰두하니 그냥 좋다.
옥구향교를 진작에 가보고 싶었으나 처음 찾아 답사하니 답사한 보람을 느낄수 있었다.
아일랜드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이런 명언을 했지요.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일에 열중하라. 이것이야말로 이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약보다도 강력한 효력을 지닌 영약인 것이다”
☛옥구향교
➡위 치 : 전북 군산시 옥구읍 상평리 626
➡도 지정문화재 : 제 96호
향교는 오는 날의 국립 고등교육기관에 해당하는 곳으로 향햑(鄕學), 학관(學官), 제관(霽官) 또는 교관(敎官)으로도 불렀다. 향(鄕)은 수도를 제외한 행정구역을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말이고 교(校)는 학교를 의미하는 것으로 향교는 지방의 학교라고 정의할 수 있다.
옥구향교는 상평 마을 북쪽으로 광월산 자락에 남향하여 자리 잡고 있고, 조선 태종 3년(1403년) 옥구읍 이곡리에 창건되었으며, 성종 15년(1484년)에 현재의 상평리로 옮겼다가 인조 24년(1646년)에 현 위치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안자, 증자, 자사, 맹자, 그리고 중국 송대의 4현 즉, 주돈 이, 정명도, 정이천, 주희를 배향하고, 우리나라의 18현을 즉, 동벽에는 설총, 안향, 김 굉필, 조광조, 이황, 이이, 김장생, 김집, 송준길을, 서벽에는 최치원, 정몽주, 정여창, 이언적, 김인후, 성혼, 조헌, 송시열, 박세채를 배향하고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 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각지붕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전사재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양사재는 정면 4칸, 측 면 2칸의 팔작지붕이고, 부속 건물로는 외삼문과 내삼문 그리고 교직사가 있다. 이 향교 내에는 단군묘가 있으며 그 옆에는 최치원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는 문창서원이 있다. 이 향교의 양사재 뒷면에는 세종대왕 숭모비와 비각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30여 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경장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