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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동 고소성,형제봉 산행을 마치고.
- 언제:2016.2.10
-어디로:악양면 평사리->외둔마을->고소산성->
고소대->통천문->봉화대->신선대
철쭉제단->성제봉(형제봉)->샘터->청학사->
노전마을->외둔마을(약 11.5km,6시간 소요)
지난 설 연휴,고향집에 다녀오면서 고향집에서 가까운
지리산 남쪽 끝의 마지막 봉우리,형제봉에 올랐습니다.
가뜩이나 짧은 2월인데 설 연휴 이후 부쩍 분주해진 일상에 쫒겨
차일피일 미루던 산행기를 이제야 뒤늦게 씁니다.
섬진강변에 터잡은 대하소설<토지>의 무대였던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외둔마을에서 산행 들머리를 잡아
소설<토지>의 별당아씨가 양반의 신분을 가차없이 버리고
머슴이었던 구천이와 달도 뜨지 않은 어느날 밤,
지리산으로 야반도주했던 그 길을 따라
형제봉능선으로 들어갔습니다.
형제봉능선은 멀리 지리산 천왕봉에서 제석봉과 촛대봉을 거쳐
비경의 남쪽능선으로 이어져 내려 비옥한 대지를 빚어내는
악양면 평사리 들녘을 품어 안으며 섬진강으로 살포시 잠깁니다.
북쪽으로 어머니의 산, 저 장대한 지리산과 남쪽으로
지리산의 좋은 기운이 바다로 바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준다는 광양의 명산,
백운산의 유명세에 가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요즘에는 철쭉 필 때 제법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산입니다.
산은 직접 들어가보지 않고서는 그 진면목을 알 수없다 했습니다.
형제봉으로 오르는 산 능선에서 내려다 본,
겨우내 움추렸던 드넓은 악양 들녘과
2월,섬진강변은 바람은 찼지만 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고
햇볕에는 제법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봄은 그렇게 서서히 섬진강물을 타고 오고 있었습니다.
산행 흐름도.
평사리 입구 외둔마을에 자동차를 주차한 후,고소성 방향으로 올라
청학사로 하산해서 '박경리 토지길'을 따라
노전마을까지 걸어 내려온 후 마을 버스를 타고
원점으로 돌아왔습니다.
故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토지>의 최참판댁이 있는
평사리 상평마을은 남쪽으로 섬진강이 흐르고
북으로는 저 뒤로 보이는 지리산 국립공원의 마지막 봉우리인
형제봉과 신선대 능선이 병풍처럼 안고 있어
경관이 빼어난 마을입니다.
'간절히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잊어버렸을 때에도 온다'는 봄!
살다보면 기다리지 않아도 올것은 오고,붙잡아도 갈것은 기어이 갑니다.
계절의 순환을 어느 누가 막을 수 있을까요.
한산사로 오르는 길에 내려다 본 악양 들녘은
어느덧 겨울 끝자락에서 벌써 봄 기운이 가득합니다.
섬진강과 지리산이 만나는 곳에 악양면 평사리가 있습니다.
평사리는 섬진강이 주는 혜택을 한 몸에 받은 땅입니다.
병풍처럼 지리산이 휘감고 있는 분지지형에 너른 들녘이 있고
마을들이 어머니 품에 안겨있는 것처럼 하나같이 안온합니다.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바람은 막고 물은 들인다는
전형적인 '장풍득수'의 지형입니다.
"30여 년이 지난 뒤에
작품의 현장에서 나는 비로소 <토지>를 실감했다.
서러움이었다. 세상에 태어나 삶을 잇는 서러움이었다.
악양평야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외부에서 넘볼 수 없는,
호수의 수면같이 아름답고 광활하며 비옥한 땅이다.(중략)
지리산이 한과 눈물과 핏빛 수난의 역사적 현장이라면
악양은 풍요를 약속한 이상향(理想鄕)이다."
- 박경리
저 아래 보이는 외둔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조금 오르면 만나는 '한산사'라는 절입니다.
섬진강과 악양벌의 수려한 풍광을 한눈에 내려다 볼수 있는
조망이 탁트인 언덕에 터잡은 소박한 절이었습니다.
한산사를 거쳐 조붓한 산길을 따라 조금만 더 오르면
고소산성에 이릅니다.
고소산성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는 이정표.
동북쪽으로 험산 준령을 등지고
서남으로는 섬진강과 악양벌을 발밑에 둔 천연의 요새로
남해서 호남으로 통하는 교통의 목을 쥐고 있는 형세로
이곳 하동 고소성은 사적 제15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크고 견고한 돌로 쌓은 고소 산성의
성벽위에 올라서니 발 아래 너른 악양 들녘과
지리산과 백운산 사이를 휘돌아 흐르는 섬진강의 물길이 오롯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평화롭고 한가롭습니다.
악양면 평사리 들녘을 휘돌아 흐르는 저 섬진강은
전북 임실과 순창,남원,곡성,구례,하동을 흘러
광양에서 바다와 만나는 육백리 아름다운 물길입니다.
아직은 삭풍이 불어오는 날씨지만
유장히 흐르는 섬진강물위에는 봄볕이 가득합니다.
고소산성에서 내려다보는
악양면 평사리의 악양 들녘은 봄기운이 완연하고
바로 아래 호수'동정호'는 파란 하늘을 가득 담았습니다.
최참판댁의 외동 딸, 서희가 그토록 되찾고 싶어했던 저 땅!
약 80만평에 이른다는 너른 악양 들녘 옆으로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이 이른 봄의 목가적인 풍경을 선사합니다.
고소산성의 돌 틈 사이에 뿌리박고 고고한 자태로
드넓은 악양 들녘과 섬진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저 소나무는
일명 '구천소나무'로 불립니다.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에서
별당아씨가 양반의 신분을 가차없이 던져버리고 머슴이었던 구천이와
달도 없는 어느 날 야밤에 이곳 성곽길을 따라
저 멀리 지리산으로 야반도주했던 길...
고려 우왕 11년, 왜구가 섬진강 하구로 침입해 왔을 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울부짖어
왜구를 쫓아냈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저 섬진강은
이 때부터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바람이 강의 얼굴을 접었다 폈다 한다
강에 담긴 산도 달도
섰다 흔들렸다 한다
바람 탓이다 상처 탓이다
강의 물결은 바람으로 일고
지리산 꽃들은 신음으로 핀다
- 최영욱,<주름>중에서
본래의 자연은 곡선이었습니다.
요즘에는 느리다는 이유로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길이나 강을 자꾸 직선화 시킵니다.
봄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저 섬진강변을 따라 난 19번 도로는
이번에 가보니 악양-하동읍 구간의 길을 반듯하고
깔끔하게 확포장 공사를 마쳤습니다.
빨리 달릴 수 있어 편리했지만 한편으론 그 만큼 저 섬진강은
멀어져 보여 씁쓸했습니다.
섬진강은 언제 봐도 정겨운 강이지만
이렇게 산에 올라 내려다보니 지리산 능선들과 어울려
완만한 곡선으로 휘돌아 흐르며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느림의 미학을 일깨웁니다.
강원도 동강처럼 물살이 사납지 않고
서울 한강처럼 강폭이 넓은 것도 아니어서 위압적이지 않습니다.
그나마 다른 강에 비해 개발의 손길이 더디게 닿는 덕분에
섬진강은 자연 그대로의 곡선의 흐름을
아직까지는 유지하고 있습니다.
섬진강은 본래 모래가람,
다사강으로 불릴만큼 고운 모래가 많은 강입니다.
갈수기인 이맘때면 강바닥의 모래가 유난히 많이 드러납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 <향수> 중
얼마 되지 않아 달은 솟을 것이다.
낙엽이 날아 내린 별당연못에,박이 드러누운 초가 지붕에,
하얀 가리마 같은 소나무 사이 오솔길에 달이 비칠 것이다.
....구천이는 눈을 반쯤 감고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박경리,<토지>중에서
형제봉으로 가는 산능선에서 내려다보는
드라마 <토지>의 무대였던 최참판댁과 상평마을입니다.
이곳을 배경으로 평사리의 대지주 최치수와 별당 아씨,
최씨 집안의 마지막 핏줄 최서희와
그 서희를 지키는 김길상의 팽팽한 서사가,그 굴곡진 역사가
펼쳐졌습니다.
"어떤 장소는 꿈으로 인도하는 통로가 되어주고,
또 어떤 장소는 우수를 일깨운다.
그런 장소의 벽들이 오랜 세월동안 보고 들어온 수많은 사연들을
나지막이 속삭이고 있기 때문이다."
- 장 자크 로니에,<영혼의 기억>p.39
산행은 하나의 성찰입니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등짐하나 짊어지고 산을 오르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대자연 앞에서 나 자신은 얼마나 작고 나약한 존재인지,
겸손을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유유히 흐르는 저 섬진강물처럼
인생은 다만 흘러가는 것만 같습니다.
"나는 모든 부의 기초이며...
부자들의 자랑이고 자본의 심복이며
수많은 성공한 자들의 말없는 내조자다.
시간은 나의 조수이고 인구증가는 나의 수익을 늘려준다.
나를 소유한 자는 나를 믿게 된다.십중팔구는 나를 선망하게 된다.
모든 사물이 시들고 조락해도 나는 살아남는다.
수 세기가 흘러도 나의 힘은 증가해 오히려 젊어진다.
나는 식량의 생산자이며 공장의 기초이고 은행의 토대이다.
...... 나는 토지이다."
- 잭하비<부동산 경제학> 머릿말에서
현대인들에게 '땅'은 이제 재테크의 수단이 되었지만
기실 '땅'은 부동산이기 이전에 자연 그 자체입니다.
땅은 만물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하고 생태계의 순환을 이루는 토대입니다.
땅은 인간의 고향이자 모든 생명의 어머니입니다.
형제봉으로 가는 길에 있는 통천문입니다.
'하늘로 통하는 문'이라는 이곳은 앙드레지드의 소설 '좁은문'이
연상될 정도로 매우 비좁아서 겨우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배나오신 분들이나 덩치가 있으신 분들은
낑겨서 오도가도 못할 수도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앞뒤로 인기척이 전혀 없는
호젓한 등산로에는 송엽이 지천으로 깔려있어 숲길을 걷는 내내
자연과 교감하며 걸어갔습니다.
우수도
경칩도
머언 날씨에
그렇게 차가운 계절인데도
봄은 우리 고운 핏줄을 타고 오기에
호흡은 가빠도 이토록 뜨거운가?
손에 손을 쥐고
볼에 볼을 문지르고
의지한 채 체온을 길이 간직하고픈 것은
꽃 피는 봄을 기다리는 탓이리라
산은
산대로 첩첩 쌓이고
물은
물대로 모여 가듯이
나무는 나무끼리
짐승은 짐승끼리
우리도 우리끼리
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 신석정,<봄을 기다리는 마음>
우리나라 5대 강 중 가장 수질이 맑은 것으로 알려진 섬진강.
청정 물고기의 대명사인 은어가 떼 지어 다니고
재첩과 실뱀장어가 대량으로 서식합니다.
저 뒤로 지리산 노고단에서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이 조망됩니다.
앞으로 우뚝솟은 봉우리가 신선대이고 그 뒤 성제봉이 보입니다.
이제까지의 산길이 완만한 능선길이었다면
이곳에서 신선대로 오르는 길은 가파른 길이 이어졌습니다.
악양면 평사리에는 산촌 마을이 30여개가 있습니다.
넓은 평야와 넉넉한 지리산을 배경으로 해서인지
푸근한 옛마을의 인심이 그대로 전해오는 것 같습니다.
산정에서 내려다 보는 악양벌은
그야말로 삶이 소설이되고 소설이 삶이된 곳입니다.
저 악양골 터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이
소설<토지>의 모티브가 되었고,
소설같은 스토리가 실제 생활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부유한 사람은
삶 속에 시가 있는 사람,삶 속에 침묵이 있는 사람,
삶 속에 뿌리가 있고 삶 속에 축제가 있으며
내면의 정원에 꽃이 만발한 사람이다.
- 라즈니쉬
신선대에 올라 내려다보이는 산능선과
그 아래 악양 들녘과 섬진강이 아득하게 보입니다.
신선대에 올라 건너편으로 보이는
광양 백운산 억불봉을 당겨봅니다.
지리산의 좋은 기운이 바다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준다는
광양 백운산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와 호남 벌을 힘차게 뻗어 내린
호남 정맥을 완성하고 섬진강 550리 물길을 갈무리한
내 유년의 추억이 있는 광양의 명산입니다.
신선대에서 남쪽의 수려한 악양벌과 섬진강이
자꾸 시선을 빼앗았지만 이내 북쪽 방향 형제봉을 향합니다.
가지에 잎 떨어지고 나서
빈산이 보인다
새가 날아가고 혼자 남은 가지가
오랜 여운에 흔들릴 때
이 흔들림에 닿은 내 몸에서도
잎이 떨어진다
무한 쪽으로 내가 열리고
빈곳이 더 크게 나를 껴안는다
흔들림과 흔들리지 않음 사이
고요한 산과 나 사이가
갑자기 깊이 빛난다
내가 우주 안에 있다
- 이성선,<흔들림에 닿아>
신선대에서 형제봉으로 가는 길을 잇는 이 출렁다리는
보기엔 견고해보였지만 철제 다리 특유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
건널 때 제법 고소공포증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출렁다리를 건너고 가파른 암릉위에 설치된 철계단을 내려서야
비로소 완만한 산길로 접어들 수 있습니다.
가파른 암릉을 타고 넘은 후에야
비로소 완만한 산능선에 서서야 지나온 길의 굴곡이 보입니다.
지나고 보면 아무리 힘들었던 길도 이내 추억이 되곤합니다.
신선대 너머로 지리산 주능선이 장대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꽃 피기 전 봄산처럼
꽃 핀 봄산처럼
누군가의 가슴 울렁여보았으면
- 함민복,<마흔 번째 봄>
스칠 때는 그렇게 절실하더니만
지나고 나니 한낱 바람이었다
- 김종원, <기억에 마음을 묻는다>
내 걸음의 속도를 자연의 속도에 맞춰서
아무도 없는 길을 묵묵히 걸었습니다.
걸음의 속도를 늦추니 주변도 천천히 움직였습니다.
내리막길은 내리막길의 속도로,
오르막길은 오르막길의 속도로 걸어갔습니다.
형제봉으로 오르는 길에 이제껏 지나온 길을 뒤돌아봅니다.
인적없는 길은 삶의 모습입니다.
인생은 늘 홀로걷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삶이란 길 위에서 길을 묻는 구도의 과정입니다.
형제봉 철쭉 군락지에서 내려다본 악양골
지금 바라보는 먼 산에 눈이 쌓여 있다는 것
지금 바라보는 먼 산에 가지 못하리라는 것
굳이 못 갈 것도 없지만 끝내 못 가리라는 것
나 없이 눈은 녹고 나 없이 봄은 오리라는 것
슬퍼할 수 없는 것, 슬퍼할 수조차 없는 것
- 이성복,<슬퍼할 수 없는 것>
형제봉 바로 아래에 있는 이정표입니다
이곳,형제봉에서 지리산 방향으로 곧장 가면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시루봉을 지나 남명 조식선생이 넘었다는
회남재를 거쳐 청학동과 묵계에 이를 수 있습니다.
드디어 도착한 형제봉 제1봉입니다.
그런데 표지석은 형제봉이 아니라 '성제봉'입니다.
이 지역의 방언에는 "형"을 "성"으로 부르기도 하여
아마 성제봉으로 표지석을 세운게 아닌가 짐작합니다.
형제봉 너머는 화개면이고 그 위쪽이 청학동입니다.
형제봉 제1봉에 서면 휘돌아 흐르는 섬진강의 도도한 물줄기와
왼쪽으로부터 지리산 왕시루봉부터 시작해 노고단,토끼봉,세석평전
그리고 천왕봉까지 한 눈에 조망됩니다.
형제봉에서 내려다 본 지리산을 휘돌아 유장하게 흐르는
섬진강에는 봄볕이 가득합니다.
산봉우리 높을수록 계곡은 골이 깊고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빛이 더욱 밝다
사랑도 이와 같아라 마음 속에 뜨는 별
겨울이 추울수록 새봄은 따뜻하고
가뭄이 심할수록 오는 비 생명수다
희망도 이와 같아라 절망 속에 피는 꽃
- 오세영,<섭리>
형제봉 하산길에 본 활공장입니다.
청학사로 내려서는 하산길에 올려다보니
형제봉 1봉과 2봉의 실루엣이 선명합니다.
형제봉 아래 터잡은 작고 아담한 사찰,청학사입니다.
이곳에서 만난 스님은 노전마을까지 내려가는 길이 너무 멀다며
콜택시를 부르라고 하셨는데 산정에서 내려다 본 아름다운 마을길을
포기할 수 없어 지친 발걸음으로 터벅 터벅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청학사를 내려오면서 보이는 계단논이 있는 악양골의 마을들이
한없이 평화롭고 한가롭습니다.
청학사에서 아래 노전 마을까지는 시멘트 포장 길입니다.
시골의 정겨운 풍경이 이어졌지만 죙일 형제봉능선을 걸어내려온
지친 발걸음으로 약 2km의 딱딱한 길을 걸어 내려가려니
관절에 무리가 오고 조금은 곤혹스러웠습니다.
노전마을의 텃밭에는 벌써 산그늘이 내려앉았습니다.
다시 그리움은 일어
봄바람이 새 꽃가지를 흔들 것이다
흙바람이 일어 가슴의 큰 슬픔도
꽃잎처럼 바람에 묻힐 것이다
진달래 꽃편지 무더기 써갈긴 산언덕 너머
잊혀진 누군가의 돌무덤가에도
이슬 맺힌 들메꽃 한 송이 피어날 것이다
웃통을 드러낸 아낙들이 강물에 머리를 감고
오월이면 머리에 꽃을 한 송이의
창포꽃을 생각할 것이다
강물 새에 섧게 드러난 징검다리를 밟고
언젠가 돌아온다던 임 생각이 깊어질 것이다
보리꽃이 만발하고
마실가는 가시내들의 젖가슴이 부풀어
이 땅 위에 그리움의 단내가 물결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곁을 떠나가주렴 절망이여
징검다리 선들선들 밟고 오는 봄바람 속에
오늘은 잊혀진 봄 슬픔 되살아난다
바지게 가득 떨어진 꽃잎 지고
쉬엄쉬엄 돌무덤을 넘는 봄.
- 곽재구,<봄>
봄이 성큼 다가온 악양골의 들녘
아직은 조금 이른 봄,
이맘때의 새순들은 딱딱한 나무 껍질을 뚫고 나오기 때문에
몸살을 앓기 쉽다던데요,
앞으로 닥쳐 올 꽃샘추위를 버티고 견뎌야
비로소 봄날 찬란한 향기로 무성한 꽃을 피어내는 것이겠지요.
다시 봄이 오면
너는 또 봄일까
- 백희다 <너는 또 봄일까>
마당이 있는 집,
건축 용어 중에 '인간적 규모'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적 규모'란 사람을 위압하지 않고 주변 환경을 고려하는
적절한 규모를 말합니다.
악양골 마을의 집들은 하나같이 넉넉한 대지에
자연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인간적 규모'를 가진 집들이 많았습니다.
감나무가 있는 집
힘겨운 겨울을 버텨 낸 견공님들도 봄 기운에 기지개를 폅니다.
손을 내밀면 연하고 보드라운 혀로 손등이며 볼을 쓰윽,
쓱 핥아주며 간지럼을 태우던 흰둥이.
보신탕감으로 내다 팔아야겠다고,
어머니가 앓아 누우신 아버지의 약봉지를 세던 밤.
나는 아무도 몰래 대문을 열고 나가
흰둥이 목에 걸린 쇠줄을 풀어주고 말았다.
어서 도망가라, 멀리멀리,
자꾸 뒤돌아보는 녀석을 향해 돌팔매질을 하며
아버지의 약값 때문에 밤새 가슴이 무거웠다.
다음날 아침 멀리 달아났으리라 믿었던 흰둥이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와서 그날 따라
푸짐하게 나온 밥그릇을 바닥까지 달디달게 핥고 있는 걸 보았을 때,
어린 나는 그예 꾹 참고 있던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는데
흰둥이는 그런 나를 다만 젖은 눈빛으로 핥아주는 것이었다.
개장수의 오토바이에 끌려가면서 쓰윽,
쓱 혀보다 더 축축히 젖은 눈빛으로 핥아주고만 있는 것이었다.
- 손택수,<흰둥이 생각>
봄이 오듯이 그 여자가 왔다
꽃이 피고 새가 울었다
자연처럼 내가 초록 물들었다
늙마 인생에 그 여자가 봄으로 왔다
몸속 깊이에서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맑았다
사람은 사람으로 하여
봄이 되고 겨울이 됨을 알았다
너는 몸의 피란 피가 잉잉 돌도록
한 사내를 흔들어놓는 돌개바람이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은 십리 밖 등불로 아득하고
이 봄날에 나는 계집에 캄캄 눈멀었다
다른 여자가 있어
이발소에서 막 나와 봄볕 속에 선 듯
멀쑥하게 키가 커졌었다
젊어지는 어떤 처방도 하지 않았다
여자만 있었다 드디어 불륜 같은
봄이 내습하여 죄가 되었다
- 강우식,<회춘(回春)>
온 종일 텅빈 저 산을 홀로 걸어 마을에 내려와서야
올랐던 봉우리들과 산능선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자신이 있던 자리를 떠나왔을 때,
그곳의 위치와 그곳에 닿기 위해 걸었던 거리가 가늠됩니다.
산 그림자는 자꾸만 내려와
내가 걸어왔던 길을 덮으며 걸음을 재촉합니다.
산을 내려와 하동읍내에서
섬진강 재첩국 한그릇으로 허기를 달랩니다.
광양, 망덕포구 소경
섬진강(蟾津江)은 임실군, 순창군, 남원시, 전남 곡성군을 거쳐
지리산 서쪽의 전남 구례군과 경남 하동군을 휘돌아
이곳 전남 광양시의 망덕포구로 약530리(212.3㎞)를 흘러
비로소 남해로 합류합니다.
섬진강 하류에서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윤동주 시인 유고를 품었던 망덕포구가 자리합니다.
윤동주(1917~1945) 시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친필 원고를 보존,
전래한 정병욱 가옥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현재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1941년에 이 시집을 발간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 하숙집 후배였던
정병욱(1922~1982)에게 원고를 맡기고
일본 후구오까 형무소에서 고초를 겪으며 죽었고
그 후,정병욱은 학병으로 끌려가기 전 어머니에게 원고 보관을 당부했고
저기 보이는 정병욱 가옥에 보존해 오다가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다가올 봄을 대망하며 오른 하동 형제봉!
나홀로 산길을 걸으며 내려다 본,
텅 빈 악양벌과 바닥을 드러내면서도 유장하게 흐르는 섬진강은
삶에도 여백이 필요함을 일깨워주었습니다.
꽉 찬 풍요를 위해 어느 한 시기는 비워두어야 한다는 것!
많은 걸 경험한 사람만이 풍요로운 삶을 산다했습니다.
이 때의 풍요란 꼭 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하진 않을겁니다.
마음이 풍요로운 사람은 가보지 않은 곳을 끊임없이 여행하며
자신을 확장시키는 사람입니다.
낯선 길위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사유의 지평을 넓히는 것.
그런 것들이 쌓여 저력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 끝.
글,사진:윤선한
이제 네게는 삼림(森林)속의 아늑한 호수가 있고
내게는 준험(峻險)한 산맥이 있다.
- 윤동주(尹東株) ,詩人
첫댓글 멋지고 좋은곳에 다녀 오셨군요~~
건강한 체력만 된다면 저도 가보고 싶은곳 입니다~~
이사장님
오랜만입니다.
사장님 정도의 체력이면
어느산인들 못가시겠습니까^^
늘 가정에 행복이 넘치시길 기원합니다.
형제봉 산행코스는
일반적으로 청학사에서 시작을 해서 외둔마을로 하산하더군요
그 코스가 오르막이 짧고 조금은 수월하기 때문일테지요.
전 남는건 힘밖에없고^^또 청개구리 근성이 발동해서 거꾸로 올랐습니다.
혹시라도 나중에 산행계획있으시면 참고하세요.
몇년전 지리산 남북종주하면서 코스에 잡았던 곳입니다.
짧은 일정으로 마지막을 소화못하고 청학동으로 하산해야만해서
형제봉을 못가고 하산한 아쉬움에
계획을 수정했던 그때가 기억나는군요..
그래서 코스가 가보진않았지만 익숙하네요..
담에 꼭 가보고싶은곳입니다..
계획하지않고 언제든 떠나는 즐기는 여행이 부럽습니다..
안녕하시지요.
흔히 지리산 종주는 '화대종주'(화엄사~대원사)에서 끝나는 줄 알았는데
사실 남부능선의 마지막 봉우리 형제봉을 찍어야 진정한 지리산 종주라는 것을
이번 산행을 통해 알게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3박4일정도의 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실 많은이들이 알면서도 그냥 지나치는 곳이 바로 형제봉인듯합니다.
형제봉 산행은 따로 섬진강변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때 오르는 것도 좋을것같습니다.
그나저나 올핸 봄꽃 구경 얼마나 할 수 있을지요~
에효 호구지책이 우선이니 말입니다.^^
그래도 무리해서라도 가볼참입니다. 일정만 잡으시면 갑시다^^
잘 봤습니다.
선한님의 산행에세이를 볼 때마다
내 삶을 되돌아보곤 합니다.
저보다 많이 어리게 보이지만 삶이 훨씬 풍요롭게 보이는
멋진 분 윤선한님
잘 봤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과분한 말씀에 늘 감사드립니다.
올 한해도 계획하시는 일들 형통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