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일 청도 읍성 야간 답사를 했다. 수 일전 우연히 들렀던 청도 읍성 야경이 너무 아름다워, 그 때의 감정을 공부 모임 선생님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그 곳을 다시 찾은 날은 공교롭게도 3.1절이었다. 그런 날이 나의 답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답사의 의미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30여년 동안 답사는 탐구적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 나에게 야간 답사는 답사도 심미적이고, 감성적일 수 있음을 가르쳐 주었다.
야간 답사와 주간 답사는 차이가 많다. 비유하면 민낯과 화장한 낯의 차이와 같다. 주간 답사에서는 민낯을 보듯이 대상을 본다. 꾸미지 않았으니 별별 것이 다 보인다. 이쁜 것, 추한 것, 좋은 것, 나쁜 것, 단정한 것, 지저분한 것, 대상과 관련된 모든 것이 보인다. 야간은 그렇지 않다. 주간과 달리 대상만 본다. 보이는 것이 그것뿐이다. 그 조차 조명 받은 부분, 다시 말해 조명이라는 화장을 한 대상만 본다. 그것을 빛과 어둠의 대조 속에 본다. 극명한 대조 속에 조명까지 받으니 읍성은 아름답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이런 특성을 가진 야간 답사는 사람을 심미적이고 감성적으로 만든다.
주간 답사에서 관찰은 관계적이다. 전체가 보이기 때문이다. 읍성이 이 곳에 위치한 이유는 무엇일까? 석빙고는 왜 동문 밖에 있을까? 옥사가 성내가 아닌 성밖에 있는 이유는 왜 일까? 전체가 보이니 대상들의 위치적 특징과 그것을 만든 맥락에 의문을 던진다. 분석적이고 해석적이 될 수밖에 없다. 해석의 토대는 당시 사람들의 삶이다. 읍성을 그들이 만들었고, 읍성 속에 그들의 삶이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동헌, 객사, 석빙고, 향교 등 읍성의 구성 요소들은 각각의 기능에 따른 읍성민들의 삶의 맥락에서 위치가 결정된다. 이렇게 삶을 토대로 해석을 한다하여도 목적 자체가 탐구이기 때문에 주간 답사는 건조할 수밖에 없다.
야간 답사에서 어둠은 '읍성'이라는 전체와 '객사'라는 부분, 읍성의 부분 중 하나인 '동헌'과 또 다른 부분인 '향교'의 위치적 관계를 보이지 않게 한다. 부분은 전체와 그리고 다른 부분과의 관계 속에 존재의 의미를 갖는다. 그 관계가 보이지 않으니 '의미 찾기'라는 해석이 차지할 심리적 공간이 생기지 않는다. 어둠으로 인해 사람들의 삶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환경에 더하여 이미 앞서 있는 감성은 분석과 해석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그러니 그냥 느낄 뿐이다. 이 같은 차이가 주간 답사는 분석이라는 이성에 근거하고, 야간 답사는 느낌이라는 감성에 토대하게 만든 것 같다.
오늘 답사에서 나는 '이성적인 주간 답사와 감성적인 야간 답사가 합쳐지는 것이 좋은 답사'라는 것을 알았다. 하루의 삶이 시작되는 아침에서 일과가 끝나는 밤까지, 과거 그 지역민의 삶을 답사 대상들을 통해 이성적으로 그리고 감성적으로 추론하는 것, 그것이 좋은 답사임을 알았다.